973 흑암과 방광의 진리 The Truth of Darkness and Divine Radiance: Huh Kyung-young’s Lecture on the Essence of Time, Religion, and Humility – May 2, 2015

시간의 가치와 영적 성장의 중요성

시간은 빛과 중력에 따라 휘고 늘었다 줄었다 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어린 시절 저는 시간과 싸워가며 초등학교 때부터 53가지 경전을 모두 보았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강의는 10대 때부터 해온 것이며, 서울에 와서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14살 때 서울에 올라오기 전에 이미 모든 문헌과 전 세계 종교를 섭렵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공부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젊은 시절이 지나가 버리면 나이 들어 공부하기 힘듭니다. 이 소중한 시간에 저와 함께 진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습니다. 교회나 절에 가서 기도하고 예배 보고 강의 듣는 것도 좋지만, 집에서 개인적으로 공부도 해야 합니다. 성경책도 보고 불경도 봐야 합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도 공부해야 합니다.

봄 날씨가 좋다고 놀러 다니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지만, 놀면 시간이 가버리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놀 때는 즐겁지만 시간이 지나면 논 그 시간이 마치 귀신에게 홀린 것 같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궐에서 시녀들과 놀다가 지쳐 쓰러져 자는 시녀들을 보니 귀신 같았습니다.

수녀의 3대 요소: 청빈, 봉사, 희생

수녀의 3대 요소는 결혼하지 않는 것, 청빈, 그리고 봉사입니다. 청빈은 가난을 의미합니다. 돈이 없으니 교회에 헌금을 낼 수도 없고, 건축 헌금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이들은 물질이 전혀 없는 상태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촛불이 다 타야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처럼, 수녀들은 물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고통이 따릅니다. 만약 수녀에게 1억의 재산이 있다면 그 수녀는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초가 다 타야 촛물이 멈추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 부자 청년이 와서 “나를 믿는다면 다른 것 하지 말고 그 돈을 좋은 데 다 주고 나를 따라오라”고 한 것이 소명입니다. 여러분은 신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복을 빌어 무엇을 얻으려 하지 말고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수녀들은 시간만 바칩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예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지상에서 허경영을 한 번 만나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천 년, 몇억 년을 기다려서 저를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천억 년 동안 인간의 몸으로 왔다 갔다 하며 저를 만나는 것은 몇천억 년 만에 만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기다리는 것을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수녀처럼 청빈, 봉사, 그리고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수녀들은 신부나 주교가 이야기하는 대로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봉사합니다. 여기에 맹세도, 물질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비운 삶, 그런 상태가 되지 않으면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공부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이 공부를 하면 여러분이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 기독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하늘나라가 보장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오늘 저녁에 가다가 돌아갈 수도 있고, 밤중에 심장마비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부를 때, 허경영의 강의를 들은 것이 큰 덕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방황했는데, 교회나 절에 가서 열심히 목사님 말씀을 들어봤지만, 허경영 말을 듣고 나서 하늘나라에 온 것이 정말 잘된 일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맹신과 순종의 위험성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다는 것은 불교에서 부처님을 올바로 믿는 것과 같습니다. 수녀들의 청빈과 봉사, 순종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명심해야 할 것은, 순종이 잘못 활용될 때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1600년대 30년간 일어난 십자군 전쟁에서는 1차, 2차 대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기독교인들과 천주교인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죽였을까요? 그들은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한다”, “하나님 말씀으로 너를 죽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종교는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보다 최고인데, 너희가 왜 이 지구상에 뿌리를 내리려 하느냐”는 식으로 종교 전쟁이 30년간 이어지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전쟁 때는 남북이 서로 총을 가지고 싸우다 죽으니 덜 억울합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은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가 “너는 왜 하나님을 믿는 거야? 네가 무슨 예수야? 이리 와”라며 죽였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 때도 로마 총독은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가 볼 때 이 젊은이가 죽을 죄를 지었느냐? 너희 말이 되는 소리냐?”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죽여야 합니다, 죽여야 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모세 율법에 순종했다고 말했습니다.

무식한 북한 아이들이 김일성에게 순종한다며 남한에 와서 노인들을 따발총으로 쏴 죽이면서 “우리는 위대한 수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 죽인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맹신이라고 합니다. 이 맹신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수녀들의 순종을 잘못 활용할 때는 엄청나게 나쁜 결과가 되니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를 죽일 때 로마 총독은 “이 사람 무슨 죄가 있느냐”고 했지만, 유대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죽여 주세요, 죽여 주세요”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왜 죽여야 하느냐고 물으니 “우리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냐, 인간이 율법을 위해 사는 것이냐”고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주일날 사람을 고쳐준 것이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무조건 죽였습니다. 군중 심리가 순종을 내세워 상대를 죽이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를 이단이라고 하거나, 자기 교회 목사, 자기 교회만 옳고 나머지 교회나 종교는 전부 죽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교의 타락과 사회 문제

어떤 목사는 이단으로 몰려 죽을 뻔했습니다. 교회가 커지면 그 사람 앞에 가서 “당신이 이단이 아닙니다”라고 굴복해야 합니다. 이런 기독교는 세계에서 철퇴를 맞아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이 사회를 구해내야 하는데, 기독교든 불교든 사회를 위해 제대로 해야 합니다. 젊은 여자들은 담배 피우고 낙태하며, 결혼해도 유산하기 위해 불임제를 먹어 임신이 되지 않습니다. 부부 두 명이 결혼하면 여섯 명을 낳아야 인구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데, 한 명도 낳지 않으니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인구가 5천만 명을 유지하려면 부부가 네 명을 낳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담배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증가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기독교인과 불교인이 가장 많은 나라인데도, 종교를 믿지 않는 나라보다 사회 타락이 심합니다. 장가 못 가는 사람, 시집 못 가는 사람, 부모에게 대드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1년에 청소년 1,300명이 자살을 시도하고, 그중 3천 명이 죽습니다. 1년에 20만 명의 여자가 납치되어 소식이 없습니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나라의 목사나 스님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맨날 예배만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도 없는데 우리나라만 그렇습니다. 여자 납치가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멀쩡한 여자를 차에 싣고 가서 섬에 가두고 폭행하며 마약을 맞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게 만듭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종교가 가장 강하고 신도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일본은 불교 하나만 믿습니다. 우리가 197명을 고소할 때 일본은 한 명을 고소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와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197명을 고소합니다. 일본보다 197배나 많은 고소 고발을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약점만 잡히면 연예인이고 뭐고 무조건 고소합니다. 제가 강의하기 전에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본질적 차이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기독교는 먼저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았든, 예수님이 부활했든 무조건 믿어야 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불교는 확인하지 않은 것은 믿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합리적이지 않으면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는 끝까지 의심하여 화두를 가지고 파고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파고들어서 자신을 끝까지 분석해야 합니다. “과연 부처님이 있는가, 석가모니는 언제 태어났는가” 등을 육하원칙에 의해 따져보고, 맞지 않으면 믿지 않는 종교입니다. 먼저 확인하고, 확인된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확인하려 하면 불신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것을 봤느냐”고 이야기하면 불신자라고 합니다.

불교는 나중에 종교로서 항복합니다. 소승불교는 석가모니가 “나는 인간이다. 신은 논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일도 해결 못 하는데 신의 일이 무엇이냐며, 죽음 이후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깨달으라고 했습니다. 석가모니의 소승불교는 그래서 인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저것을 무슨 종교라고 믿어? 저거 우리 아버지가 하는 소리지. 너희 사람들이나 깨달아라. 그거 누가 못 해? 그게 무슨 종교야?”라며 믿지 않았습니다.

이후 불교는 달마에 의해 중국으로 넘어와 대승불교가 됩니다. 대승불교는 신앙과 학문적으로 맞지 않으면 안 되는 철학적인 종교입니다. 소승불교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고려 시대, 신라 시대에 유교가 몇천 년간 우리나라에 있었는데 갑자기 불교가 들어왔습니다. 불교가 신라에 들어오자 법흥왕이 이차돈을 죽였습니다. 이차돈은 신라에서 최초로 불교를 믿은 사람입니다. 왕이 신하들 앞에서 이차돈의 목을 치라고 했습니다. 이차돈은 그때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차돈은 죽으면서 “여러분, 불교는 유교와 다른 것이 있습니다. 불교는 기적이 있는 종교입니다. 불교도 신이 있습니다. 아미타불도 있고 하늘에 천신도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방편론입니다. 신이 있다고 하니 “그럼 신이 있는 것을 한번 보자. 무엇으로 증명하려느냐? 내 목을 베라. 목을 베면 내 목에서 흰 피가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피는 빨갛지만, 그것이 증거이니 그때부터 불교를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왕이 이차돈의 목을 치자 목에서 흰 피가 솟아올라 신라 전체가 불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종교 전쟁과 유교의 승리

법흥왕이 불법을 일으켰다 하여 법흥왕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때부터 신라의 불교가 커졌고, 신라 불교의 힘으로 삼국을 통일했습니다. 한국 통일 때는 불교가 잘 나갔습니다. 고려 시대에도 고려가 망할 때까지 불교가 잘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고려가 망하자 유교 세력들이 숨어 있다가 “우리가 유교를 묶어 놓고 불교를 그렇게 믿어봤더니 천년 동안 잘 나가다가 고려가 망해버렸잖아. 이제 불교를 때려치우자”고 했습니다. 정도전이 정몽주를 죽였습니다. 정몽주는 불교 세력이었고, 정도전은 유교 세력이었습니다. 유교가 불교를 죽이니 정몽주를 죽였습니다. 정몽주의 앞잡이였던 하륜이 다시 정도전을 죽였습니다. 정도전 밑에 있던 불교 세력인 방원이 하륜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종교 싸움이 노골적으로 일어나다가 결국 유교가 이겼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불교를 모두 탄압하여 불교 국가가 없어지고 유교 국가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유교는 사람이 비가 오라고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종교 전쟁이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수녀들의 3대 요소인 순종이 잘못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거나 부처님을 믿을 때, 부처님을 믿어도 그분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믿어도 그분이 하나님입니다. 기독교, 불교가 오기 전에 우리 민족이 믿던 삼신이 있었습니다. 그 삼신이 하나님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어 하늘을 숭배하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천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종교입니다.

한국 종교의 현실과 우상 숭배

우리는 하나님을 믿던 민족에 기독교와 불교가 들어왔으니 종교가 발달하여 자살자도 없고 여자 납치도 없어야 하는데,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종교들이 수천 개의 파로 나뉘어 무엇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정신이 있습니까? 유교와 불교가 싸우더니 이제 기독교와 불교가 싸우고, 서로를 우상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의 십자가도 따지고 보면 우상입니다. 유교 마크도 십자가와 같습니다. 불교 마크도 십자가와 같습니다. 아시아를 뜻하는 ‘아(亞)’자도 십자가 모양입니다. 아시아에서 에덴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노틀담 사원도 옛날에는 염불하고 염주를 들었습니다. 옛날 기독교도 종을 쳤습니다. 장로도 불교에 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목사나 신부를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석가모니의 어머니는 마리아, 즉 마야 부인입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릴 때 조사해보니 그랬습니다.

기독교도 불교를 우상 숭배라고 하는데, 교회에 가보면 목사 옆에 십자가가 붙어 있습니다. 그것이 불상이 아닙니까? 성당에 가면 예수, 마리아, 신부가 그 앞에서 집전하고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누가 우상을 가지고, 누가 우상을 안 믿는다고 말합니까? 서로 상대방 종교를 보고 “당신이 좀 더 낫습니다. 우리가 좀 더 반성해야 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종교도 아니야. 너희는 구원도 없어. 우리만 구원이 있어. 우리 아버지만 훌륭하고 다른 아버지는 훌륭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입니다. 나이 들어 보면 우리 아버지가 지게꾼이라도 대단히 소중한 것이고, 남의 아버지가 재벌이라도 하루아침에 자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아버지가 훌륭한 아버지입니까? 택시 운전하는 아버지가 훌륭합니까, 재벌이 훌륭합니까? 재벌은 한 번 세무 조사를 잘못 받으면 자살하거나 교도소에 가서 평생 못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한민족의 뿌리와 세계 종교의 기원

제가 수녀의 3대 요소인 순종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한민족이 에덴, 즉 아덴 동산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시아 권역에 있고, 우리는 아시아에서 몽골을 거쳐 한반도로 이동해 왔습니다. 수메르 문화도 우리 한문에서 나왔습니다. ‘목자(牧者)’는 소를 지키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희생(犧牲)’이라는 한자도 소 구(牛) 변에 오를 승(升) 자를 씁니다. 왜 전부 수메르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이 한문은 1만 년 전부터 만들어져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가 이 문화를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창조’할 때 ‘흙 토(土)’ 자를 씁니다. 흙에 하나님이 바람을 불어넣어 움직이게 했습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이 한문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아담이 노아의 10대, 아브라함이 20대, 보아스가 30대, 시아가 40대, 아비가 50대, 예수가 60대입니다. 창조를 한문으로 이야기한 것이 에덴동산입니다. ‘옷 의(衣)’ 자는 과일을 따먹지 말라는 과일을 따먹으니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벗을 탈(脫)’ 자는 선악과를 안 따먹으면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이 모두 만 년 전 한문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민족이 전 세계 종교를 만든 민족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욕단의 13아들 중 12아들이 이스라엘로 들어가 서쪽으로 가고, 나머지 한 명, 막내아들 하라가 동방으로 왔습니다. 하라가 우리 단군입니다. 12번째 아들 하라가 동방으로 와서 세운 나라가 조선입니다. 아담이 웅입니다. 하라가 제일 먼저 세운 나라가 아사달입니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아’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모두 아덴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노아는 배를 만들어 여덟 식구가 탔습니다. ‘배 선(船)’ 자는 여덟 명의 입이 배에 올라탔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를 파고들면 성경이 모두 우리 한문과 일치합니다. 우리가 먼저 이런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종교의 뿌리와 상징

이슬람은 마오쩌둥이 가부를 만나 만든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표절한 것입니다. 마오는 돈 많은 가부의 돈으로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이슬람의 마크는 초승달에 다윗의 별입니다. 천도교의 마크는 포원수님교입니다. 불교의 마크는 ‘아(亞)’자입니다. 유교의 마크도 ‘아(亞)’자입니다.

기독교는 왜 한문으로 기독교라고 부를까요? ‘기(基)’는 뿌리 기(基) 자이고, ‘독(督)’은 살필 독(督) 자입니다. 뿌리를 살피는 종교입니다. 인간이 어디서 왔는지 깊이 들어가는 뿌리를 살피는데, 먼저 믿어야 합니다. 먼저 믿고 뿌리를 살펴야지, 뿌리를 살펴 확신이 갈 때 믿으면 그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신앙의 반대는 이해입니다. 이해하려 하는 자는 신앙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이해와 반대가 됩니다. 신앙은 기독교적인 것이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신앙은 일단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목사님이 말하면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그것이 신앙이지만, 의심하면 신앙이 아닙니다.

원불교의 마크는 원입니다. 기독교의 마크는 십자가입니다. 유대교의 마크는 일곱 개의 촛대입니다. 천주교는 천신 유일 사상으로, 오직 하늘에는 신 한 사람밖에 없고 인간으로 신이 올 수 없으며 예수는 가짜라고 합니다. 천주교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마리아가 하나라는 천주 모일 사상입니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늘 싸웠습니다. 천주교의 마크는 기독교의 프로테스탄트가 아니라는 의미로 엑스(X) 표시를 합니다. 이렇게 종교가 상대방 종교를 가입 엑스로 하여 마크로 쓸 정도이니 전 세계 인간들이 구제되지 못하고 전쟁만 일삼는 것입니다.

한자 속에 담긴 창조의 비밀

‘양(羊)’ 자 밑에 ‘나 아(我)’ 자를 쓰면 ‘의로울 의(義)’ 자가 됩니다. 양을 갖다 놓고 내가 밑에서 엎드려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의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쌀떡을 갖다 놓고 제사 지내는 것은 의롭지 않다고 합니다. 양으로 제사를 지내고 그 밑에 엎드려 제사 지내야지, 쌀을 갖다 놓고 밥을 해놓고 제사 지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로써 제사를 지내라는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절대 보지 말라는 의미의 한자도 있습니다. ‘볼 시(視)’ 자와 ‘말 검(檢)’ 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창세기가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세계를 지배하고 이끌어가는 민족인데, 보지 않는 사이에 다 변해버렸습니다.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철저히 병신으로 만들었습니다.

‘마귀 마(魔)’ 자도 있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알게 하는 나무를 귀신이 자꾸 먹으라고 꼬시는 것입니다. 유혹하는 것입니다. 어떤 장소에 와서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먹으라고 귀신이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창조의 섭리와 우주의 구조

창세기는 빛을 먼저 만들고, 그다음에 어둠을 만듭니다. 흑암입니다. 빛과 어둠을 만들고, 그다음에 궁창과 물을 만듭니다. 그다음에 식물과 낮과 밤을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과일과 물고기와 짐승을 만들고, 사람을 만듭니다. 짐승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만듭니다. 이것이 일주일, 즉 6일 동안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하루 쉬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빛은 하나님의 본체, 존재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 어둠은 혼돈, 흑암을 의미합니다. 물과 궁창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태양과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물과 연관이 있습니다. 물이 먼저 나왔습니다. 궁창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은 세 개가 있습니다. 맨 밑에 3층 하늘은 블루 스카이, 두 번째 하늘은 다크 스페이스, 가장 위에 있는 하늘은 화이트 헤븐입니다. 우리는 블루 스카이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헤븐 하늘에 계십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아무리 우주선을 날려도 하나님의 하늘은 보이지 않습니다. 빛의 속도로 12억 광년을 달려가야 하나님이 있는 하늘이 보입니다. 그 하늘에 들어가면 투명 인간으로 바뀝니다. 엄청 무서운 곳입니다.

다크 스페이스에는 은하계가 있습니다. 블루 스카이에서 다크 은하까지 인공위성을 타고 하루 갔다 오면 지구는 몇천 년이 지나갑니다. 중력이 있는 곳에서는 24시간이 맞지만, 중력을 벗어나면 시계 바늘이 총알같이 돌아갑니다. 빨리 가서 빛의 속도로 갔다 오면 지구는 몇천 년이 흘러버립니다. 인간의 몸은 몇천 년 동안 살아있습니다. 지구에 오면 지구는 몇천 년이 지난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신비하기 때문에 앞으로 위성을 개발하는 날이 오면 사람의 수명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살짝 가서 몇 년을 늘리고, “나 한 3천 년만 늘리게 해 주시오” 하면 지구에 3천 년이 지나갑니다. 수명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늘릴 수 있는 시대가 옵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것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구를 아주 완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여러분은 범죄하고 죄를 짓는데, 나중에 감당이 안 됩니다. 흑암은 빛과 어둠을 말하며, 빛은 하나님의 화이트 헤븐을 말합니다. 화이트 헤븐에도 어둠이 있습니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입니다. 물이 있는데 물고기는 나중에 만듭니다. 낮에는 빛이 있고 밤에는 어둡습니다. 물이 있으면 고기가 있고, 허공이 있으면 새가 날아다닙니다. 식물이 있으려면 짐승이 있어야 하고, 자연이 있으면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6일까지 반복되어 있습니다. 목사들은 이 비밀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전부 가짜로 가르칩니다.

불교의 신격화와 종교의 본질

불교도 옛날 대승불교는 결국 신통주의로 바뀌었습니다. 신통주의로 바뀌니 마야 부인도 나오고, 태어나자마자 “내가 가장 높다”며 몇 발자국 걸었다는 등 신격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불교가 대승불교가 되면서 결국 신격화를 통해 살아남은 것입니다. 불교가 신격화하지 않았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슨 종교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우주는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세상에서 온 사람인 허경영을 예사로 생각합니다.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어떤 목사에게 이것을 물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뭘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과학만 믿으려 합니다. 불교도 기독교처럼 신주의를 따르면서 관세음보살도 나오고 아미타불도 나옵니다. 낮과 밤은 지구에서부터 만들고, 은하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화이트 헤븐과 중간은 다크 스페이스, 그리고 지구입니다. 이렇게 세 개의 하늘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는 이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만든 것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일 때 순종을 내세워 하나님 이름으로 예수를 죽이겠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히틀러가 나타나 유대인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히틀러는 5살에 죽을 때까지, 자살할 때까지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아주 젊은 나이에 자살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종교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이 신이 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600만 명을 죽이고 나서 자살해 버렸습니다.

빛과 흑암, 그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진정한 의미

빛은 흰 빛이고, 흑암은 어둠입니다. 빛의 삼색은 빨강, 초록, 파랑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부처나 하나님이나 같은 존재입니다. 불교에서는 하나님을 부처님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상제라 부릅니다. 뭐라고 불러도 하나님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 우주를 만든 조물주는 반드시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어야 합니다.

흰 빛에 프리즘을 넣으면 빨강, 초록, 파랑 색깔이 나옵니다. 이것을 합치면 흰색이 됩니다. 흑색에 프리즘을 넣으면 빨강, 노랑, 파랑이 나옵니다. 이 색깔들을 다시 합치면 검은색이 됩니다. 이것이 물질입니다. 불교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색은 곧 공이다, 공은 곧 색이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 때 석가모니가 한 말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기독교인이나 불교인들이 굉장히 조심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낙원이 곧 공원이고, 극락이 곧 지옥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옥이 곧 극락이고, 극락이 곧 지옥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불교인들이 해석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색을 먼저 택한 사람은 결국 낙원에 나중에 가게 됩니다. 바로 갈 수가 없습니다. 공을 먼저 택한 사람은 인간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게 됩니다. 물질적인 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네가 버려라. 네가 택해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네가 공을 먼저 택하면 네가 원하는 색, 즉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공을 먼저 택하면 인간이 말하는 모든 원하는 것이 나중에 다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기가 가지겠다고 색에 집중하면 낙원은 금방 오지 못하고 멀리 가버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비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흑암을 택하고, 이쪽을 택합니다.

색은 육체를 말하고 물질을 말합니다. 공은 정신을 말합니다. 이것은 이성이고, 이것은 영성입니다. 이성은 에고이고, 영성은 디바인 체입니다. 이성은 합리주의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다고? 예수가 진짜 십자가에 죽었을까? 부활했을까? 천국이 진짜 있을까? 처녀 마리아가 어떻게 아기를 낳았을까?” 이런 것은 기독교의 정신에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그 이름으로 전쟁만 안 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것이 거짓말이다, 뭐다 이런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합리주의이고 이성주의이며, 오늘날 21세기 인류가 갇혀 있는 문화입니다.

맹신을 넘어선 섭리의 이해

유대인들이 예수님 때 랍비들 중에 아무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똘똘 뭉쳐서 한 사람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고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 종교는 나중에 히틀러 같은 사람이 나와서 다 죽여 버립니다. 합리주의의 반대는 섭리입니다. 합리주의를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불교를 비판하며 “그것이 우상이다, 저것이 뭐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되려고 하는 것이고, 하늘 부처님을 믿는 것이고, 깨달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죄 안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누구는 법당에 불상을 모셨고, 누구는 십자가를 목에 달고 다닙니다. 불교는 “우리는 부처를 달고 다니지 않아”라고 이야기합니다. “너는 목에 우상을 걸고 다니면서 남을 우상 숭배한다고? 네 눈에 있는 티끌을 못 보고 남의 눈에 대들보를 보느냐”고 이야기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의 기독교인, 불교인들은 에고이스트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죽인 자들입니다. 자기들만 옳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초월적으로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 못 배운 사람 편에 있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중학교 이상 나온 사람은 상대 안 하겠다. 나는 가난하고 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 편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너는 초등학교도 안 나온 놈이 무슨 메시아냐?”고 했습니다. 로마 총독이 볼 때는 “저 청년이 뭘 잘못했냐?”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으로 똘똘 뭉쳐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사람 죽이는 전위대가 되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로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섭리는 영어로 ‘Divine Nature’입니다. 섭리는 영성입니다. 제가 영어를 쓰는 이유는 전 세계 10억 명이 제 강의를 유튜브로 시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 사람들도 알아야 합니다. 한문은 중국 사람들도 봐야 하고, 한글로도 적어줘야 합니다. 이성, 합리, 영성, 섭리는 세 가지 언어로 표현됩니다.

자연의 3대 이치와 운명의 비밀

자연의 3대 이치가 있습니다. 인정은 이치를 못 이기고, 이치는 법을 못 이기고, 법은 권력을 못 이기고, 권력은 하늘을 못 이깁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덕 있는 사람을 못 이기고, 덕 있는 사람은 운 있는 사람을 못 이깁니다. 운 있는 사람도 하늘을 못 이깁니다. 덕 있는 사람은 덕장입니다. 운이 있는 사람이 이깁니다. 아무리 존경받는 사람이라도 운이 나빠지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운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저질러 놓은 과거가 현재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덕행을 했지만 극락을 못 갈 수도 있습니다. 옛날에 살인을 많이 했다면 그것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과해야 하는데, 운이 앞에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운을 예사로 보면 안 됩니다.

겸손은 지혜의 뿌리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겸손해집니다. 지혜의 뿌리는 겸손입니다. 지혜의 아버지는 복이고, 복의 아버지는 덕이고, 덕의 아버지는 하늘입니다. 겸손이 없으면 지혜와 복과 덕이 올 수 없습니다. 오늘날 불교나 기독교인들이 겸손을 버리고 있습니다. 거지 같은 사람이 나타나도 교회를 못 가더라도 그 사람에게 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아플 때 약 주고, 옷 없을 때 옷 주고, 추울 때 옷 주고, 모함 받을 때 나를 구해 주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구해 줬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이 사람아, 지금 전 세계에 거지들이 있는데도 도와준 사람들이 그게 다 나를 해 준 거야. 나는 여기 있지만 그 거지들이 바로 나야. 너의 이웃, 그것이 나한테 해 준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거지 중에 예수가 있고, 나환자 중에 예수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보면 알게 됩니다. 가장 작은 자에게 해 준 것이 예수님께 해 준 것입니다.

겸손이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지혜가 있어도 교만이 됩니다. 교만은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지혜가 있으면 교만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 가려면 제일 먼저 통과해야 할 문이 겸손의 문입니다. “나는 교회 30년 다녔어, 나는 목사야”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을 통과하지 못한 것입니다. 겸손을 통과한 다음에 지혜가 얻어지고, 지혜가 얻어진 다음에 팔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여덟 가지 복을 이야기했습니다. 석가모니도 이야기했지만, 예수님이 여덟 가지 복을 말했습니다.

팔복과 종교인의 자세

첫째,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에 들어갑니다. 저는 이 성경을 어릴 때 한문으로 번역하여 외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가난할 빈(貧) 자를 씁니다. 영빈천국입니다.

둘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습니다. 애통은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내 욕심대로 살아온 것을 애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애통이라고 합니다.

셋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온유는 겸손입니다. 팔복은 복의 뿌리를 예수님이 나열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으려면 “내 영만 최고다”라고 하면 천벌을 받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영만 최고고, 네가 믿는 불교의 그 사람은 하나님하고 다른 사람이야”라고 하면 천벌을 받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심령이 꽉 차버리면 예수를 죽이는 것입니다. 랍비들이 “저 예수 같은 말이라도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저 예수 말도 뭔가 일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해야 합니다. 온유해야 하고, 애통해야 하고,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넷째, 의에 목마른 자는 배불리 먹게 해줍니다.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우리나라 기독교인, 불교인들은 의로 충만합니다. 자기들이 제일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가 제일 의로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교회는 사기꾼들이라고 합니다. 힘없는 교회를 세워줘야 합니다. 힘없는 종교, 거지 같은 종교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저렇게 열심히 믿는 거지가 참 대단한 분이다”라고 남의 것을 존경해야 합니다. 의를 위해 목말라 있는데, 자기들이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남을 평가하고 남을 시험하러 돌아다닙니다. 의를 위해 목마른 자는 부자가 되게 해주고,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해주고, 배불리 먹게 해주고, 의식주 걱정 안 하게 해줍니다.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자만이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은혜와 긍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은혜는 내가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부모가 자식을 키워주듯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준다면 내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받을 자격이 없어도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긍휼은 내가 반드시 받아야 하는데 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애통해하고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반드시 천벌을 줘야 하는데, 우리를 긍휼히 여기고 벌을 안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해 준 것입니다. 긍휼은 받아야 할 것을 안 주는 것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욕하고 때리고 싶은데, 불쌍히 생각하고 손을 안 보는 것입니다. 반드시 벌을 내려야 할 것을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안 줍니다. 은혜는 사람들이 안 받겠다고 해도 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 키울 때 다 줍니다. 받을 자격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는 것입니다. 단, 자격이 있다면 하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해 준 것, 제일 큰 은혜는 부모라는 이름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자식이 안 태어났으면 부모가 아닙니다. 그냥 부부입니다. 자식 때문에 부모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없으면 하나님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을 창조했는데, 인간이 없으면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치입니다. 이것과 저것은 항상 공존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개인’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 개인이라는 말을 쓰면 겸손이 없어집니다. 여러분이 있으니까 선생이 있고, 목사님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말은 겸손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만납니다. 마음이 까다롭지 않고 깨끗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일곱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습니다.

여덟째,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 이것은 순교자를 말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여덟 가지 복을 받는 방법을 전체적으로 보면 겸손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성경은 디모데후서 4장 6절에 “내가 모든 한평생 행동은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였다”고 나옵니다. 바울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재행천재(再行天祭)”라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죽을 때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나는 이제 떠난다. 내 떠날 날이 가까웠으니 너는 이렇게 살아라. 너의 발자취 하나하나가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여야지, 너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지혜의 뿌리이고, 지혜의 아버지는 복이고, 복의 아버지는 덕이고, 덕의 아버지는 하늘입니다. 반대로 덕의 뿌리는 복이고, 복의 뿌리는 지혜이고, 지혜의 뿌리는 겸손입니다. 오늘날 종교인들이 겸손해지지 않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겸손을 버리고 있습니다.

불교의 오온과 윤회의 길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은 색(물질), 수(감각), 상(인식), 행(반응), 식(정보)의 다섯 가지입니다. 반야심경에 “오온 개공 능제일체고(五蘊皆空 能除一切苦)”라고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이 공으로 이루어지게 하면 모든 고통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오온을 깨달으면 색과 물질을 바라볼 때, 그 감각과 인식과 반응과 정보를 활용하면 능히 모든 것을 없앨 수 있고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온을 정확하게 알려면 오치와 오착을 알아야 합니다. 오치는 천상, 인간, 축생, 아귀, 지옥의 다섯 가지입니다. 오온을 잘못 사용하면 천상에서 인간으로 내려가고, 인간에서 짐승으로 태어나고, 짐승으로 있다가 귀신으로 태어나고, 귀신으로 있다가 지옥으로 갑니다. 이 다섯 가지가 불교의 치입니다. 이것은 하행선 기차표와 같습니다. 99%의 인간이 이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를 다니든, 절을 다니든, 모든 사람들의 약 90% 이상이 천상에서 와서 인간으로 와서 짐승으로 다시 태어나고, 짐승으로 태어났다가 귀신으로 가고 지옥으로 갑니다. 이 열차를 타고 하행선 열차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는 지옥에 있던 사람이 아귀가 됐다가 짐승이 됐다가 인간이 됐다가 하늘나라에 가야 합니다. 천상 세계에 태어나야 하는데 천상을 못 가게 되는 것입니다. 상행선을 타려면 허경영 강의를 들으면 됩니다.

오착은 사람의 귀, 눈, 입, 코, 마음의 다섯 가지 구멍입니다. 이 다섯 가지 구멍이 얼굴에 있습니다. 귓구멍, 눈구멍, 입구멍, 콧구멍, 마음 구멍입니다. 마음 구멍은 이 네 군데가 마음 구멍입니다. 눈을 보면 마음을 알고, 입이 비틀어져 있으면 어린애가 우유 달라는 소리입니다. 코가 실룩거리면 감기가 걸렸거나 몸이 안 좋다는 소리입니다. 이것을 보면 그 사람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마음도 이 네 가지 구멍에서 나온 데서 다섯 가지 구멍이 있습니다. ‘치(馳)’는 달릴 치 자이고, ‘착(鑿)’은 뚫을 착 자입니다. 여기서 뚫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육경과 108번뇌의 생성

육경은 색(형상), 성(소리), 향(냄새), 미(맛), 촉(촉감), 법(마음의 대상)의 여섯 가지입니다. 육근(눈, 귀, 코, 혀, 몸, 의식)과 육식이 있습니다. 육식과 육근은 같은 것입니다. 뿌리가 다릅니다. 육식이 육경을 만날 때 죄가 만들어집니다. 눈이 색깔을, 여자를 보니까 이뻐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고뇌가 생기고 번뇌가 생깁니다. 이것이 죄가 됩니다. 죄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6(육근) 곱하기 6(육경)은 36입니다. 36에 현세, 내세, 과거세 3을 곱하면 108번뇌가 됩니다. 108가지 번뇌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물질을 보니까 이쁘고, 감각이 느껴지고, “저 사람이 나하고 결혼해야겠어”라는 인식이 생기고, 선물을 사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다음에 그 사람에게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습니다. “저 여자하고 나하고는 결혼해야 돼. 나는 저 여자하고 사회에서 자식도 낳아야 돼. 저 여자의 모든 이쁜 것만 정보가 머릿속에 다 들어오는 거야.” 그러면 일이 벌어집니다.

이 오온이 육근과 육식에 의해 인식된 나머지가 오착으로 내려옵니다. 눈과 귀와 입과 코와 마음 구멍에서 죄가 만들어집니다. 죄가 여기서 만들어지면 죄도 만들어지고, 덕도 만들어지고, 복도 만들어지고, 다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오치에 가서 결론이 나옵니다. 오치에 가서 천상에 갈 수도 있고, 인간 세계로 갈 수도 있고, 축생으로 갈 수도 있고, 귀신으로 갈 수도 있고, 지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도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하행선을 타고 있습니다. 좋은 부잣집에 태어나면 맨날 먹고 놀고, 맨날 헬스만 하고, 맨날 놉니다. 그러면 나중에 본전치기가 될까요? 안 됩니다. 예수님이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 준 사람의 돈을 가만히 가지고 있으니 나중에 본전을 찾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뺏어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더 줘버립니다. “나는 하나님 믿는데 죄 안 짓고 조용히 살았어. 나는 아무한테도 남 괴롭히지 않고 조용히 살았어”라고 하면 그것은 그냥 지옥입니다.

오온과 오치, 오착은 인간이 과보에 도달하는 이론입니다. 과보를 다른 말로 운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덕이 있어도 그 덕이 운을 이기지 못합니다. 평생 덕행을 했는데 전생에 사람을 열 명 죽였다면 그 앞에 운이 닥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좋은 일 했는데 왜 잡혀가요? 저 사람은 착하고 좋은 일 했는데 왜 교통사고로 죽어야 돼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생에 교통사고로 남을 여러 명 죽였다면 자신도 죽어야 합니다. 이렇게 아무리 좋은 일을 행해도 그 앞에 운이 나타나는데, 그 운명은 내가 전생에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현생에 허경영 앞에 와서 강의를 들었다면 다음 생에 운명이 좋아질 것입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여덟 가지 낙

성경 계시록에 나오는 666은 육경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똑같습니다. 기독교에는 여덟 가지 낙이 있습니다. 기도, 구원, 축복, 성령, 은사, 부활, 영생, 천국입니다. 이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낙은 정각(바로 깨달음), 확인, 열반, 해탈, 반야(지혜), 보시, 삼매, 무아, 성불입니다. 불교의 여덟 가지 가르침은 전부 공부해 가지고 깨닫는 길입니다. 자기 어떤 메시아 신이 갖다주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는 누구에게 해 달라는 것이고, 구원은 도와 달라는 것이고, 축복은 축복해 달라는 것이고, 성령은 달라는 것이고, 은사는 달라는 것입니다. 전부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교는 스스로 깨달아 가지고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대입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반대인데, 이것을 배우는 자들이 이것을 배워야 하나님이 보이고 부처님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절에 가면 기독교인이 절에 가서 법당에 앉아서, 서서 바깥에 서서라도 명상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명대사가 살생을 안 하겠다는, 살인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 있는 것은 절대 죽이지 말라는 오계를 버리고 천 명의 스님들을 데리고 가서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호국불교라고 합니다. 이렇게 살생이 자기 불교의 계율을 버리면서도 스님들을 데려와서 칼로 일본 목을 땄습니다. 계율이 우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불교 자체, 법당에 가서 “아, 불교가 옛날에 우리나라를 구해 준 적도 있구나. 법당이나 불교인들은 이렇게 믿는구나. 저기도 천주교처럼 향을 사네. 목탁이 있구나. 종이 있네”라고 천주교처럼 보고, “아, 많은 우리나라, 우리나라가 몇천 년간 믿은 불교구나”라고 쳐다보고 감사 표시하고 와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기독교가, 이것은 종교도 아니야”라고 하면 그 종교는 나중에 없어집니다. 유럽에서 다 없어졌고, 미국에서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한민족은 그것을 지탱하려면 하나님을 똑바로 봐야 합니다.

흑암과 방광의 진리

오늘의 결론은 방광입니다. 흑암은 제가 이야기한 모든 것이 흑암이고, 방광은 무엇입니까? 방광은 허경영이 강의할 때 제 강의를 보는 수녀와 스님이 도망간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 옆에는 방광이 있습니다. 아무 때나 나오지 않습니다. 방광이 나와서 빛이 나와 도망간 사람이 많습니다. 허경영은 방광이 나옵니다. 제 사진도 오늘 안 가지고 왔지만, 방광 하는 사진들도 있습니다. 허경영은 얼굴에 불이 타는 방광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얼굴에 이런 것이 있고, 부처님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오라(aura)라고 합니다. 허경영은 방광이 있습니다. 제 이름과 제 얼굴은 똑같은 신문에 나도 제 사진을 보면 방광이 나옵니다. 몸에 힘이 세집니다. 허경영을 부르면 몸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인터넷에서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