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과 오례: 타인을 평가하기보다 자신을 성찰하라
복을 받는 사람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오례(五禮)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례가 있는데,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이 오례를 가지고 남을 평가합니다. 그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복이 없습니다. 반면 오복(五福)을 받는 사람은 남에게 인(仁), 즉 사랑을 베풉니다. 사람들은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감시하듯 평가하지만, 타인을 평가하는 것은 하나님이나 메시아가 할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남편에게 무엇을 잘해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의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저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이 평가하여 오복을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부인이 남편을 평가한다고 해서 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하늘이 주는 것이기에 우리는 평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의(義)를 두고 안중근 의사가 의로운 사람인지 아닌지를 평가합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국민에게 평가받으려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로운 자가 되어 후손들이 자신을 의롭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남이 자신을 의로운 자로 볼 것인지, 친일파로 볼 것인지가 안중근 의사에게 중요했던 것이지, 국민이 자신을 의로운가 아닌가 하는 것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남을 재단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의로워야 합니다. 남이 나에게 인사하고 안 하고에 일체 신경 쓰지 말고, 내가 남에게 먼저 인사하며 예를 갖춰야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에게 예를 갖추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평생 불행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불완전한 존재를 완전한 존재로 착각하고, 자신에게 해야 할 것을 남에게 갖다 붙여 ‘저 사람은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하며 싸웁니다.
부부싸움으로 인한 불행은 기독교의 구교와 신교의 싸움으로 죽은 사람 수보다 많습니다. 똑같은 아버지를 모시면서 형제지간에 구교다 신교다 싸워 전 세계 인구의 세계 대전보다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불교도 어느 정도 전쟁은 했지만, 그런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전쟁을 하는 이유는 ‘너희가 사랑을 하라’, ‘네 자신이 남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했지, ‘누가 사랑을 많이 받을까?’를 연구하라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인류의 희망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의 좋은 말을 잘 써야 하는데, 예수를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요새는 재벌 교회, 재벌 종교, 재벌 성경이 되어 돈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들고 다니고, 가난한 사람은 교회에 가면 재수 없다고 빨리 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좋은 지혜로 남을 이롭게 해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무식을 깨달아 남에게 무엇을 도울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인이 좋은 지혜를 주지 않아 돈을 못 벌었다거나, 남편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와 집을 부자로 만들지 못했다고 불평합니다. ‘내가 지혜를 가지고 내 아내를 도와주고 내 남편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이런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수동적인 태도는 항상 불행을 가져옵니다. 오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례를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의 본질: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집중하라
남이 인간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돈 1억을 빌려줬는데 내일 교통사고로 죽어버리면 부도가 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10억, 100억을 줬다가 은행도 수천억을 떼이기도 합니다. 김우중 회장에게 60조를 떼인 사례처럼, 우리는 인간을 믿고 돈을 주지만 실제로는 담보가 들어갑니다. 담보를 초과해서 준 돈은 받지 못합니다. 김우중이라는 사람을 믿고 줬지만, 실제 믿음은 누구를 믿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이 남이 바라볼 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 사람이 믿을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하늘의 소관입니다. 오복을 주는 하나님이 인간을 볼 때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욥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테스트해봅니다. 아브라함에게 100살에 낳은 아들을 죽여보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이 하늘의 명령에 따라 죽이는 시늉을 할 때 하늘이 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뇌를 관통할 수 없습니다. 뇌의 문을 열어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현관문처럼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문을 열어주고 ‘들어오세요’ 해야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강압적인 것을 쓰지 않습니다. 문을 열어주는 자만 도와줍니다.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은 하늘이 그 사람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없게 창조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해도 내 뇌라는 공간은 내 집이기에 하나님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못 들어갑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을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능력과 축복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하러 전도합니까? 다 줘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모든 인간을 열심히 믿게 주셨다면, 왜 안 믿는 것을 줍니까? 그것은 노터치(No-touch)입니다.
모든 것은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가 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두 열심히 믿게 해주고 신용 있게 해주었다면 상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상이란 존재가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하는 것을 하나님 마음대로 못하기 때문에 상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상을 줄 자격이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자를 찾지 말고, 자기 자신이 남이 믿게 행동하는 것이 인의예지신입니다. 이것을 남에게서 구하면 언제나 불행합니다. 오복을 보면서 오례를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인의예지신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저 ‘남을 신뢰하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남에게 믿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믿을 놈이다’, ‘저거 못 믿을 놈이다’라고 평가하고 앉아 있습니다. 목사나 전도사를 평가하며 교회에서 하나님 역할을 다 해버립니다. 하나님도 인간의 뇌를 함부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면에서 하나님과 동등하며, 동등한 인격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왜 복을 짓지 못합니까?
오복은 능동적으로 생각할 때 옵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신이 남에게 믿게 행동해야 합니다. 남이 믿게 행동하지 않을 때는 ‘저건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믿게 행동하면 절대 사람이 나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내가 믿게 행동하지 않을 소지가 있을 때 사람이 배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깨달아야 합니다.
효(孝)의 진정한 의미: 부모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라
효(孝)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효의 근본을 모릅니다. 효는 부모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보고, 부모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자식이 되어야 합니다. 자식이 땅속에 있어도 부모의 소리가 흙 속으로 들어와 아들이 알아들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놔두고 죽어도 부모를 보살펴야 그것이 효입니다. 자식이 목숨을 땅속에 묻을 정도가 되어도 부모님 얼굴은 항상 봐야 하고, 부모님의 소리가 안 들려도 ‘우리 어머니가 지금 기침하고 계시겠구나’ 하고 이불 소리가 귀에 들려야 효자입니다. 콧속에 넣어놔도 부모님의 기침 소리가 들려 ‘아, 우리 어머니한테 내가 뭘 약을 지어드려야 되겠다’ 생각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이 미국에 가 있어도 자식이 아프면 금방 알지만, 자식은 부모와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효의 정확한 뜻은 국어사전에 ‘부모의 마음으로 내 마음이 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내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우리 아버지가 80세라면 내 마음이 80세 아버지 마음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그것이 효입니다. 20대, 30대, 40대 젊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부모에게 효를 할 수 없습니다. 효의 진정한 뜻은 부모의 마음으로 내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놀러 갔을 때 ‘우리 엄마가 지금 걱정할 텐데’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 엄마가 지금쯤 내가 전화를 하길 바랄 거야’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엄마, 며칠 정도 있으면 들어갈 거야. 그때까지 걱정하지 말고 있어’라고 전화를 해줘야 그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부모는 부모고 나는 나라고 실컷 논다면 효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동양에서 효 하나를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은 허경영 외에는 없습니다.
안 보이고 안 들려도 부모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뜻입니다. 흙 속에 엄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합니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자식이 아버지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 키우느라고 저렇게 고생하셨는데, 맨날 내 입에만 뭘 집어넣어주고 자기는 안 먹고 부엌에 가서 뭘 하는지 먹었다고 그러는데, 우리 어머니 몸에 가야 할 것을 내가 다 가져왔으니 내가 도둑놈 아니냐?’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효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부모들이 존경을 못 받기 때문에 효하라고 하면 오히려 욕을 먹고 자기 잘난 얘기만 한다고 합니다. 동정받을 짓을 못 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에게 지킬 것을 지킵니다. 아무리 나쁜 부모라도 자식들에게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자식들에게 하는 잔소리가 있습니다. 부모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부모의 행동은 자식들이 본을 못 보더라도 부모들은 항상 ‘너는 잘 돼야 한다’,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너는 뭘 해야 한다’는 염려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기들은 부부싸움을 하고 난리를 하더라도 자식을 앉혀놓고 가르칠 때 그 소리를 머릿속에 넣고 다닙니다. 1%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99% 망하는 사람이 되려면 부모를 개똥 취급합니다. 그러나 1%의 상류층으로 잘 살고 싶으면 허경영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부모가 잘못한다고 부모의 나쁜 점은 절대 머릿속에 넣으면 안 됩니다. 부모의 좋은 점만 머릿속에 넣는 자는 1%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모의 잘못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문제가 있습니다. 흉은 절대 보면 안 됩니다. 인의예지신이 남을 보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뀌어야지 남에게 적용하면 안 됩니다. 인의예지신이나 효도를 두고 ‘저 사람이 효자인가 아닌가’ 이렇게 보면 안 됩니다. 자기가 효자인가 아닌가를 돌아봐야지, 남을 불효자식이라고 괄시하고 이러면 안 됩니다.
오복과 팔복: 덕(德)이 없는 복은 불완전하다
오복은 능동적으로 생각할 때 옵니다. 팔복(八福)은 천권(天權), 천재(天才), 천관(天官), 천수(天壽), 천문(天文) 등이 있습니다. 정주영, 이병철 같은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재능을 받은 천재입니다. 이문열 같은 사람들은 책만 쓰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천문의 복을 타고났습니다. 오복에 귀(貴)가 있는데, 권력과 귀와 관이 모두 귀에 들어갑니다. 오복을 다섯 가지로 줄이면 다섯 가지가 되고, 확장하면 여덟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권력이 있으면 귀해지지만, 오복 중에 귀한 복은 있어도 덕(德)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귀복은 있었지만 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과 덕은 갈라져 있기에 ‘복덕’이라고 함께 부르는 것입니다. 복은 전생과 현생에 걸치지만, 덕은 다음 생의 복을 쌓는 것입니다. 현생에서는 복과 똑같은 예물을 누리지 못합니다.
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베푼 덕을 자기 자신이 모르는 음덕(陰德)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몰라야 합니다. 이보다 높은 덕은 없습니다. 성경에도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치고, 사마리아인이 그를 도와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개처럼 취급했지만, 그는 쓰러진 사람을 주막에 데려가 돈을 주고 옷을 찢어 붕대를 만들어주고 약을 발라주며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는 이 중에 누가 진정한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종교를 가진 자들은 이런 결점이 있습니다. 남이 믿음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따지지 말고, 자기 자신이 믿음이 가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기주의자가 되어 교회 건물 올리는 데만 미쳐 있고, 진정으로 배고프고 고생하는 젊은이들, 실업자,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청소년 자살 1위, 청년실업 1위인 현실을 외면합니다. 아이들을 거지 발새끼같이 만들어 놓고 교회에 돈만 부어 해외 선교한다고 다 가져가 버리면 우리나라는 무엇이 됩니까? 이런 사람들이 남을 자기에게 비교하며 ‘저자는 믿는 자가 아니야’, ‘저자는 이단을 섬겨’라고 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자중지란이 일어나 망하는 길입니다.
진정한 이웃은 사마리아인처럼 믿음이 없고 신앙이 없는 자, 이방신을 섬기는 자, 무신론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지나가는 자에게 물 한 그릇을 준다면, 목마르고 배고플 때, 옷이 없을 때, 감옥에 갇혔을 때 자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이름 없는 거지에게 물 한 잔 주는 것이 하나님께 준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에 올라가면 금고가 가득해집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 자들이고, 지구에 여행 온 여행자들입니다. 그 여행 온 자기 자식이 거지가 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밥을 굶고 있는데 도와준 자는 주인이 나중에 상을 줄 것입니다. 물 한 잔을 준 자는 반드시 상이 있으리라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음덕입니다. 내가 한 일을 오른손이 한 걸 왼손이 몰라야 합니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다음 덕은 은덕(恩德)입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지간, 이웃지간에 사랑을 베풀 때 생기는 덕입니다. 마지막 덕은 공덕(功德)입니다. 안중근 의사처럼 민족과 국가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도 있고, 자기가 이룬 것을 남에게 베푼 자의 덕입니다. 이 세 가지 덕이 중요합니다.
사랑과 증오: 호르몬으로 본 인간의 운명
우리 몸에는 두 가지 종류의 호르몬이 있습니다. 한정 호르몬과 무한 호르몬입니다. 500가지 호르몬 중 한정 호르몬은 단 한 가지, 인슐린입니다. 인슐린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이 죽을 때까지 나옵니다. 다 소모되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아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당뇨병에 걸리면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인슐린이 많이 소모되는 경우는 술, 담배, 커피, 단 음식, 일하지 않고 쌀밥 많이 먹을 때, 그리고 스트레스 받을 때입니다. 신이 인간을 그런 인간은 자동으로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비상약이자 하늘의 법칙입니다. 40대에 인슐린이 다 없어져 주사를 맞아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주는 인슐린과 주사로 맞는 인슐린은 다릅니다.
인슐린은 심판 호르몬입니다. 인간에게 심판을 내리는 호르몬입니다. 성질내거나 놀라거나 공포를 가질 때 인슐린이 많이 나옵니다. 남을 미워할 때도 인슐린이 많이 나와 재앙을 줍니다. 인슐린이 많이 소모되면 수명이 짧아지고 50대가 되면 인슐린이 잘 나오지 않아 만병이 나타납니다. 인슐린이 멈추는 것이 천벌입니다. 인슐린이 이렇게 통제하지 않았다면 악한 자가 계속 큰소리치고 돌아다니며 놀고 먹는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빌딩 가지고 임대료만 받고 해외여행만 다니면 당뇨병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때 ‘내가 남에게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좋은 일을 하면 인슐린 소모가 줄어들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남아있는 인슐린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인슐린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보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랑을 베풀 때 나오는 호르몬은 수명 연장, 질병 예방, 면역력 강화에 기여합니다.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여성 호르몬), 엔도르핀, 도파민, 베타 아밀로이드, 옥시토신, 세로토닌, 페닐에틸아민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호르몬이 나오려면 인의예지신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야 합니다. ‘내가 남에게 신용 있게 보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자기 신용을 쌓아가야지, 남을 재단하는 눈으로 보면 안 됩니다.
페닐에틸아민은 ‘콩깍지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며,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질 때 3년간 나옵니다. 이 호르몬이 나올 때는 상대방의 나쁜 점도 다 좋게 보입니다. 계산적으로 따지지 않고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호르몬도 사랑과 관계됩니다. 아세틸콜린, 아드레날린, 노르아드레날린은 성질낼 때, 위험할 때, 공포를 느낄 때 나옵니다. 이것이 나오면 사람이 늙습니다. 부신 호르몬과 췌장 호르몬인 인슐린이 엄청나게 많이 소모됩니다. 남이 한 달 쓸 것을 하루 만에 다 써버리는 것입니다. 성질이 못된 사람은 일찍 가게끔 인슐린이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인슐린은 영양분인 포도당을 세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을 너무 많이 써버리면 나중에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그것으로 인간을 통제합니다. 당뇨병이 오면 인슐린이 동나고, 췌장은 인슐린을 만들지 못합니다.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 췌장이 유전자를 복제하기 시작하는데, 밥 많이 먹고 놀고 술 많이 마시고 단 거 많이 먹고 편안하게 일 안 하면서 폭식하고 나쁜 짓이나 하고 돌아다닌 기록이 인슐린에 들어가 8대 손까지 저주를 받습니다. 할아버지가 당뇨병이면 손자도 당뇨병이 되는 식으로 유전자가 내려가는 것입니다. 전생과 현생에서 벌을 주지만, 직계 후손까지도 잘라버리려는 것이 인슐린입니다.
코티졸 호르몬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대표적인 것으로, 인슐린을 많이 소모시킵니다. 레라친 호르몬은 아기를 낳을 때 나오는데, 자궁을 열게 합니다. 아기를 낳는 여자 옆에 있는 남자에게서도 같이 나옵니다. 이 호르몬이 나오면 두 사람이 똘똘 뭉쳐 그 아이를 잊을 수 없게 됩니다. 아이를 두고 서로 싸우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남자가 출장 가 있었다면 ‘애 당신 가져가서 키우시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소유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레라친 호르몬이 나오면 아이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빠들은 반드시 아이 낳는 데 가서 레라친이 나오게끔 옆에서 고통을 함께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애정이 더 좋아집니다. 서양 사람들은 같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돈이 없어 도둑질을 하러 남의 담을 넘어갔다면 얼마나 단결이 되겠습니까? 레라친 호르몬이 나옵니다. 집에 어린애를 눕혀놓고 쌀이 떨어져 남의 담을 넘었다면, 둘이 권총 들고 은행을 털었다면 엄청난 정이 드는 것입니다. 그때는 배신을 못 하고 동지가 됩니다. 이것을 스톡홀름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스톡홀름 은행 강도 사건에서 은행 직원들이 강도들과 결혼한 실화가 있습니다. 총을 들고 지성인들을 때리고 발로 차는 모습에서 남성적인 매력을 느낀 것입니다. 둘이 같이 도둑질을 했다면 동질감이 생겨 레라친 호르몬이 나와 헤어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자 혼자 아이를 낳았다면 이혼할 때 레라친 호르몬이 나오지 않은 남자가 여자에게 아이를 줘버립니다. 남자가 아이 낳는 데 가서 있으면 남자도 레라친 호르몬이 나와 여자가 고통스러워하면 남자도 호르몬으로 다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져 둘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남에게 성질내고 놀라고 공포를 가질 때는 인슐린을 소모하는 호르몬들이 나오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하고 사랑을 할 때는 수명 연장, 질병 예방, 면역력 강화에 기여하는 호르몬들이 나옵니다. 인의예지신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 남에게 신용 있게 보여야 합니다. 남을 재단하는 눈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이 호르몬들은 무한정 나오지만, 인슐린은 한정 호르몬입니다. 성질내거나 남을 미워하면 밤새도록 인슐린이 소모되어 수명이 짧아지고 50대가 되면 인슐린이 잘 나오지 않아 만병이 나타납니다. 인슐린이 멈추는 것이 천벌입니다. 인슐린이 이렇게 통제하지 않았다면 악한 자가 계속 큰소리치고 돌아다니며 놀고 먹는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내가 남에게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좋은 일을 하면 인슐린 소모가 줄어들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남아있는 인슐린을 아낄 수 있습니다. 인슐린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보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네 가지 기쁨: 얼굴, 말, 물질, 몸으로 베풀라
100년 동안 탐낸 물질과 재산은 빈 공간의 티끌에 불과합니다. 수명이 멎을 때 생각해보면 그것이 다 자식에게 가든 누가 가져가든 사라집니다. 80세가 넘어서 재산이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것입니다. 자식들의 것입니다. 이것을 ‘일조진(一朝塵)’이라고 합니다. 하루아침에 티끌이라는 뜻입니다. 100년 동안 모은 재물이 하루아침에 티끌이 되는데, 무엇을 많이 보냈습니까? 인슐린만 많이 낭비한 것입니다. 돈을 벌더라도 ‘나는 인슐린 낭비 안 하면서 돈을 벌겠다’, ‘나는 악을 정화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겠다’는 큰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허경영에게 진리를 하루만 들으면 1000년 동안의 보배입니다.
훈자 동학 성재 순회 왈(荀子 勸學 聖哉 舜會 曰), ‘일일행선(一日行善)이라도 복수미진(福雖未至)이나 화자원(禍自遠)이라’ 했습니다. 하루 좋은 일을 해도 복은 비록 오지 않았으나, 화는 자동적으로 멀어진다는 뜻입니다. 내일 자기 손자가 교통사고로 죽을 텐데 오늘 할머니가 시주를 했다면 반드시 화는 멀어집니다. 복은 못 받더라도 집안에 우환이 없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입니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방비책입니다. 선을 행하기만 하면 선에 대한 대가가 즉시 옵니다. 하늘이 호르몬인 인슐린으로도 우리를 체크하고 있지만, 일일이 볼 수 없으니 이런 것을 다 자동으로 해놓은 것입니다.
‘일일행악(一日行惡)이라도 화수미치(禍雖未至)이나 복자원(福自遠)이라’ 했습니다. 하루 악한 일을 해도 화는 당장 오지 않으나, 복은 자동적으로 도망가 버립니다. 내일 자기 아들이 시험 칠 텐데 오늘 엄마가 나쁜 짓을 했다면 아들이 시험에 붙지 못합니다. 누가 행악을 행하겠습니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행선지위(行善之謂)는 여추원지초(如芻園之草)하여 불견기장(不見其長)이라도 일유소정(日有所增)하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동산의 풀과 같아서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매일같이 늘어납니다. 풀이 자라는 것이 눈에 안 보여도 매일같이 늘어나는 것처럼 복은 늘어납니다.
‘행악지위(行惡之謂)는 여마도지석(如磨刀之石)하여 불견기손(不見其損)이라도 일유소윤(日有所損)이라’ 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숯돌에 칼을 가는 것과 같아서 그 손해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날이 갈수록 집안이 기울어집니다. 선은 사랑으로 시작되는데, 모든 것은 사랑이 선과 의의 근본입니다. 선은 반드시 그 대가가 오고, 악은 반드시 대가가 후손에게까지 미칩니다. 당장 집안에도 미칩니다. 그러니 절대로 남을 증오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따져야 할 것은 법적으로 따지지만, 감정을 개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할 수 있으나, 감정을 개입하여 수명을 단축할 필요가 없고 내생에 나빠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인슐린이 소모되어 수명이 빨리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살인(殺人)이 아니라 살생(殺生)하지 말라고 합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것은 증오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살생은 식물도 포함하여 모든 자연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독점하여 동물이고 식물이고 마음대로 해버렸기에 언젠가 환경 파괴 때문에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은 육적인 것입니다. 부모 불효하지 말라는 것은 부모가 곧 하나님이기에 부모와 하나님은 동격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영적인 것입니다. 부모는 돌아가도 마음속에 항상 모시고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돌아갔을 때 마음속에 언제나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 사모지효(思慕之孝)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간 이후에 어머니 아버지를 사모해야 합니다. 밥을 먹다가 남기려 할 때 ‘우리 엄마는 누룽지하고 밥떡거리 하나가 하수도로 나간 적이 없고 환경도 얼마나 깨끗이 했는데 내가 밥을 이렇게 남기고 이거 와이프 앞에 쓰레기를 밥을 먹다가 남겨버리고 내가 찌꺼기를 막 반찬을 이렇게 이거는 있을 수 없는 거예요’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옛날에 그렇게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밥풀 하나 버리면 천벌 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부모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모지효는 부모님의 좋은 점만 사모하고 항상 좋은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쓰레기를 하수도에 버리고 믹서에 갈아 버리는 등 환경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면 남편이 얼마 안 가서 당뇨병이 옵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밥풀 하나라도 하수도에 버리면 천벌 받는다고 생각하고 하늘에서 본다고 여겨 주워 씻어 먹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부모들입니다.
사후효도(死後孝道)와 생전지효(生前之孝)도 있습니다. 생전지효는 살았을 때 입신출세하여 부모에게 큰 벼슬을 해서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가문을 일으키면 애효(愛孝), 부모님 의식주를 해결해주면 물효(物孝), 부모님께 손자 낳아주고 좋은 며느리 데려와서 봉양 잘하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심효(心孝)입니다. 이것은 소효, 중효, 대효입니다. 효자가 되려면 대효를 해야 합니다. 허경영을 만났으니 대효를 한 것입니다. 사모지효를 강조하는 이유는 부모를 항상 사모하는 효도가 신에 대한 효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네 가지 기쁨을 의미합니다. 첫째, 얼굴로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웃는 얼굴입니다. 둘째, 말로 남에게 기쁘게 해주는 것입니다. 말씨를 잘 써야 합니다. 셋째, 물질로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넷째, 몸으로 베푸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가 사랑입니다. 사랑에 증오를 더하면 죄가 됩니다. 이 네 가지를 하지 않으면 무조건 죄를 짓게 됩니다. 어른이 왔는데 인상 쓰고 있으면 그 자체가 죄입니다. 청소년들도 어른들에게 얼굴 찡그림이 있거나 말 불손하게 하거나,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았다면 저녁에 군고구마를 사와서 드려야 합니다. 어머니에게 받기만 하지 말고 1%라도 돌려줘야 합니다. 추운 날 군고구마를 사와서 까서 어머니 입에 넣어드리면 어머니가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그런 아들이 나중에 효도하는 것입니다. 물효는 돈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부엌에 가서 설거지도 해주고, 물질로 봉사하고, 말로 ‘우리 어머니가 오래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얼굴로 항상 부모에게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얼굴로 복 짓는 것이 돈이 제일 안 들어갑니다. 얼굴로 하루에 복을 얼마나 지었느냐에 따라 인슐린 소모량이 달라집니다. 이것만 잘하면 인슐린 소모가 아예 없습니다. 이것을 안 할 때 사랑이 아닌 죄, 증오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