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눈, 하나의 진실: 긍정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
오늘도 밝은 모습으로 하늘궁에 오신 여러분, 그리고 토요 강연을 애청하시는 국내외 시청자 여러분, 신의 은총으로 모든 소망이 다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신인께서는 평생을 사회 소외 계층을 위해 봉사해 오셨으며, 어떻게 하면 모든 국민이 병고 액란을 벗어나 돈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심하고 계십니다. 시애민 정신과 인류애가 뜨겁게 넘치시는 존경하는 신인님을 모셔서 주옥같은 섭리의 말씀을 경청하겠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두 개를 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를 보라는 의미입니다. 두 개의 눈이 하나로 맺혀 상이 거꾸로 맺히고, 뇌에서 이를 바로 보게 됩니다. 두 눈이 있는 것은 더 확실히 보기 위함이며, 중심을 잡는 역할도 합니다. 한쪽 눈을 감으면 사물이 약간 치우쳐 보이지만, 두 눈을 뜨면 하나로 합쳐져 보입니다. 만약 한 눈으로만 운전한다면 옆 차와의 거리를 재기 어려워 사고가 나기 쉽습니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두 개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둘로 봅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가르쳐 드리는 것은 세상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이 보이는 이유는 긍정적인 것 때문에 존재합니다. 하나는 긍정, 하나는 부정으로 나뉘지만,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며, 성공할 수 없습니다.
긍정의 힘: 가나안 땅에 들어간 두 사람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거인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부정적으로 본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고, 긍정적으로 본 두 사람과 그들의 자식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몇백만 명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다 죽고, 긍정적으로 본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노인이 되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같은 나이였음에도 죽지 않았는데, 이는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불평불만은 명줄을 짧게 만듭니다. 광야는 불평불만의 온상이 되었고, 결국 그들의 자식들만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정적인 시각과 피해 망상은 뇌와 인체에 해롭습니다. 신인을 보면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은 강제로 하늘궁에 온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병고를 고치러 온 사람들입니다.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하늘궁은 공부하는 곳입니다. 신인이 있다고 해서 다른 종교를 믿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가도 부르고, 불교 염불도 하며, 불교 강의, 기독교 강의도 합니다. 스님, 신도, 목사님, 수녀님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하늘궁에 옵니다. 이곳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올 수 있는 곳입니다. 옛날 종교 집단처럼 집을 팔아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왔다가 물처럼 다시 돌아갑니다. 종교도 자유롭고, 신인만 섬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는 종교 행위는 모두 인정합니다.
민주주의의 뿌리: 국민의 7대 권리와 의무
목사님들이 교회 분쟁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단상 하나 바꾸는 것으로 교회가 쪼개지기도 합니다.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난방비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윤석전 목사님 같은 분들은 성자 같습니다. 많은 교인이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옥한흠 목사님이 계시던 내수동 교회에서 목사님의 양아들처럼 지냈습니다. 그 후 스님 밑에 들어가 스님을 아버지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님도 내수동 교회 출신입니다. 저는 훌륭한 사제들과 신부님들을 많이 알고 있으며, 모든 종교를 인정합니다. 종파를 만들려 하지 않고, 초종교적인 입장에서 모든 것을 여러분의 자유에 맡깁니다.
우리의 자유권은 국민의 7대 권리에 들어 있습니다. 국민의 7대 권리는 생존권, 소유권, 평등권, 사회권, 자유권, 참정권, 청구권입니다. 사회권은 종교 단체, 사회 단체, 주식회사, 사단 법인 등 모든 단체를 만들 수 있는 권리입니다. 참정권은 투표할 권리이며, 청구권은 돈이 없을 때 국가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하늘궁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것을 공부시키며, 모든 종교와 사람을 인정하고 함께 가자는 곳입니다. “내만 잘났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권리를 가지려면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사회권과 자유권이 사라집니다. 납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사업할 권리가 박탈되고 사업자 번호도 압류됩니다. 권리는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의무와 권리가 합쳐지면 자유가 됩니다. 의무를 지키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것은 나쁜 국민입니다. 사회는 권리와 의무가 플러스될 때 자유로 바뀌고, 마이너스될 때 부자유가 됩니다.
국민의 7대 권리 중 5대 권리는 평등권, 사회권, 자유권, 참정권, 청구권입니다. 3대 권리는 생존권, 소유권, 평등권입니다. 3대 권리가 가장 중요하며, 생존에 직결된 권리입니다. 수도물이 안 나오거나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것은 생존에 관계된 문제이므로 국가가 봉사해야 합니다. 세금을 냈기 때문입니다. 도로가 막히면 뚫어주고, 눈이 오면 제설차가 다니는 것도 생존권 때문입니다.
소유권에는 반드시 의무가 따릅니다. 세금을 내야 합니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지 않으면 모두 빼앗깁니다. 자본주의는 소유를 인정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세금을 내야 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가가 가져갑니다. 원칙적으로 개인 재산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속세 때문에 빌딩을 팔고도 남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린벨트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상속세를 내지 못하면 집안이 망할 수 있습니다. 국가에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자유권과 소유권이 박탈됩니다. 소유권은 무서운 것입니다. 수입원이 없으면서 부동산만 많이 소유하면 나중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평등권은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투표는 자유이며, 투표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잡으러 오지는 않습니다. 제 이야기는 민주주의를 재미있게 설명해 드리는 것입니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
우리가 눈을 하나로 바꾸는 것은 긍정의 눈과 부정의 눈, 즉 남의 약점만 보는 눈을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약점만 보는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옷을 입었을 때도 좋은 점을 빨리 찾아내 칭찬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도 칭찬을 해야 관계가 좋아집니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배우자를 대하면 관계가 나빠지고, 결국 다른 곳에서 인정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계산을 잘하는 사람은 돈을 잘 세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잘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생존권, 소유권, 평등권, 사회권, 자유권, 참정권, 청구권 이 일곱 가지가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뿌리입니다. 국가가 돌아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모든 종교가 돌아가는 것도 긍정적으로 보면 얼굴이 점점 좋아집니다. 마음이 준수한 사람은 옷도 원만하게 입고, 마음이 허탈한 사람은 옷을 허하게 입으려 합니다.
민주주의는 항상 홀수를 둡니다. 3, 5, 7과 같이 홀수를 두어 한 사람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합니다. 대법원 판사도 홀수로 두어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합니다. 짝수로 두면 의견이 갈렸을 때 해결할 수 없습니다. 홀수는 양(陽)이고, 짝수는 음(陰)입니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희생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약점을 보는 대신 장점을 보아야 일이 됩니다. 약점을 보는 버릇은 네거티브가 되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장점을 빨리 캐치해야 합니다.
면접 시험을 볼 때도 면접관을 긍휼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그 자리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이해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면접관을 긍정적으로 보면 합격할 수 있습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보듯이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시험관에게 정이 가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진솔하게 자신의 목표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하면 면접관은 감동하여 합격시켜 줄 것입니다.
면접관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합격합니다. 초조해하거나 바보처럼 보이면 안 됩니다. 면접관의 노력을 존경하고 그들의 애로를 인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쉬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들을 존경하면 면접관은 여러분을 좋게 볼 것입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원칙, 그리고 하나의 눈
우리는 긍정적인 눈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잘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의 눈으로 사업을 해야 합니다. 두 개의 눈은 필요 없습니다. 오직 부모님께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약점만 외우고 있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사필귀정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제가 말한 대로 하면 종교도 필요 없고, 이 세상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의 3대 원칙은 계약 자유의 원칙, 소유권 절대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입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계약할 수 있고, 돈 주고 무엇이든 살 수 있습니다. 단, 사람만은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인격이나 양심,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상대방의 사랑을 살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3대 원칙은 행복 추구의 원칙, 인간 존엄의 원칙, 절대 공평의 원칙입니다. 여기서 ‘공평’은 ‘귀인 공(公)’ 자를 씁니다. ‘공공’이 붙을 때는 ‘한 가지 공(共)’ 자와 함께 쓰여 국가와 개인이 같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공 시설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관리자는 국가라는 뜻입니다.
국민은 권리뿐만 아니라 주권도 가지고 있습니다. 주권은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권리입니다. 국민의 3대 주권은 투표권, 저항권, 혁명권입니다.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고, 나라가 잘못되면 저항 운동을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혁명도 가능합니다. 4.19 혁명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혁명입니다. 이 세 가지는 자동차 기어로 치면 1단, 2단, 3단과 같습니다. 1단계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2단계, 3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혼 과정도 협의, 조정, 판결의 3단계로 진행됩니다.
우리는 두 개의 눈을 하나로 바꿔야 합니다.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설명해 드린 것입니다. 선거는 선거로 끝나야 하며,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칼로 물 베기: 부정적인 시각의 허무함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부정적으로 보면 안 됩니다. 긍정적인 눈으로 보아야 발전이 있습니다. 여자가 옷을 입었을 때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옷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 맞는 옷을 스스로 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작업복을 입은 어머니의 모습도 아름답게 보아야 합니다. 아들이 엄마에게 용돈을 타러 왔을 때, 청소부 옷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야 합니다. 그런 아들이 효자입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어도 가족 관계를 아름답게 보아야 합니다. 엄마의 유니폼이 자극제가 되어 공부와 인내심을 길러줄 수 있습니다.
엄마가 사업을 잘하더라도 그 이면에 있는 고생을 긍휼히 보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번듯해 보여도 실제로는 가슴에 멍이 들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긍휼히 보는 것입니다. 속 좁은 사람은 엄마에게서 더 뺏어내려 합니다. 부모가 잘 나가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못 사는 것이 자식에게 큰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근신하지 못하면 자식들이 망하는 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망하는 것도 자식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종자가 긍정적으로 보는 눈만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점만 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칼로 물을 잘라도 물은 다시 흘러갑니다. 부부지간에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잔소리할 일은 끝이 없습니다.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아무리 잘라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잔소리는 칼과 같습니다. 남의 결점을 잘라내려 하지 마십시오. 칭찬을 해주면 단점이 점점 없어집니다. 약점이나 허점, 단점을 자꾸 지적하는 버릇이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바닷가에서 다이아 반지를 찾겠다고 바닷물을 퍼내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아내의 나쁜 점을 계속 퍼내려 하지 마십시오. 평생 퍼내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부부 싸움은 헛된 것입니다. 아무리 싸워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내의 마음속 보석을 퍼낼 수 없습니다. 평생 퍼내도 여자 마음에서 “내가 졌습니다” 하고 다이아몬드를 보여주지 않을 것입니다. 헛고생하는 것입니다.
두 개의 눈을 가지지 말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바닷물을 퍼낼 이유가 없습니다. 좋은 눈으로, 긍정적인 눈으로, 하나의 눈으로만 보는 버릇을 가져야 합니다. 부정적인 눈을 추가하면 안 됩니다. 여행을 가서도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감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리 아프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의 흠집을 잡으면 안 됩니다.
대동강 물, 한강 물, 포토맥 강물, 찰스 강물이 바다에 가서 서로 전쟁을 하면 웃길 것입니다. 물은 모든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면 하나로 보입니다. 다 통합니다. 부산에서 온 사람, 광주에서 온 사람을 따지지 않고 모두 좋게 보아야 합니다. 편을 가르면 안 됩니다. 하나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한다
기독교의 묵상친일(默想親一), 이슬람의 청진반일(淸眞返一), 불교의 만법귀일(萬法歸一), 대종교의 만수본일(萬數本一), 원불교의 원시반일(原始返一), 천도교의 동체귀일(同體歸一) 등 모든 종교는 끝에 ‘일(一)’ 자가 붙습니다.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뜻은 눈을 하나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목적은 결국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정산교의 원시반본(原始返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二)’ 자가 붙은 종교는 없습니다. 천주교는 천주모일(天主母一)이라 하여 하늘과 예수와 마리아가 하나라고 합니다. 유대교는 천신유일(天神唯一)이라 하여 하늘의 신이 유일하게 하나라고 합니다. 도교도 포원수일(抱元守一)이라 하여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갑니다.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도 결국 하나로 돌아갑니다.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은 너와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 전체가 일체이지 이체가 아닙니다. 천지가 동근(同根)이며 동일(同一)입니다. 모든 것을 둘로 보는 데서부터 전쟁이 일어납니다.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것입니다. 영육 분리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면서 살고 있습니다. 백궁 비자를 가지고 있다면 죽으면 자동으로 비자 대행 하나로 가는 것입니다. 백궁 비자가 없는 사람도 긍휼히 보아야 합니다. 동아줄이 하늘에서 내려왔을 때, 자신만 천국에 가려다 동아줄을 끊어버린 사람처럼 되지 마십시오. 매달리는 사람을 불쌍히 생각해야 합니다. 줄은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70억 명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영육이 분리되는 시점을 알지 못하므로 모든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닷물에 다이아 반지를 떨어뜨려 놓고 평생 물만 퍼내는 피곤한 삶을 살지 마십시오. 제가 하는 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석가모니의 불이 사상처럼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입니다. 선악으로 바라보면 끝장입니다. 불교는 사상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선악, 미추, 애정, 생사 등 모든 것이 두 개로 나뉘지만, 이 두 개를 하나로 보는 것이 불교입니다. 묵상을 통해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도는 신과 친해지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 종교를 인정하며, 이러한 종교가 전부 하나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늘궁은 ‘하늘 궁’입니다. 하늘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이듯이, 하늘궁은 하나의 궁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곳이 하늘입니다. 전부 하나라는 것을 명심하고 두 개의 눈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두 눈이 있는 것은 하나를 보라고 있는 것입니다. 죽기 직전에는 모든 사물이 두 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실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정신을 놓으면 두 개로 보이고, 정신을 집중하면 하나로 보입니다. 죽을 때 정신을 놓으면 눈도 풀어져 두 개로 보입니다. 그러면 죽음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굉장한 속도가 가해져야 합니다.
오늘 철학 공부를 시켜 드렸습니다. 이제 부부 싸움은 하지 마십시오. 하나로, 좋은 점만 보아야 합니다. 신인의 약점을 발견하는 것은 나쁜 눈입니다. 좋은 점만 보아야 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좋은 점만 보고, 나쁜 점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것도 말을 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긍정적인 사고와 상대방의 장점을 찾는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슴 깊이 간직할 귀한 감명을 주신 신인님께 큰 박수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