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반복되는 순환의 길
우리 조교수님 말씀처럼,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시인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길이 끝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작일까요? 실은 길이 끝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은 전생이 마감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마감되었으니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그가 이제 전생의 일을 끝내고 왔다는 뜻입니다. 다시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것이죠. 전생에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은 얼굴이 잘생기게 태어나고,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은 몸이나 정신적으로 어딘가 이상하게 태어납니다. 거기서부터 또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길이 시작되는 사람이 있고, 좋은 길이 시작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은 끝나는 것 같지만, 사실 출생은 끝난 길이 다시 시작되는 지점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끝났지만 또 시작되는 것이 계속 반복됩니다. 이를 시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24시간이 끝나면 또다시 1시가 오듯이, 노동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공장에서 햇볕도 못 보고 하루 종일 자동차를 조립하는 이들은, 죽어서는 다시 자동차 조립공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공장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라도 이 공장에서 일만 할 수 있다면 만족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개미 쳇바퀴 같은 삶의 반복입니다.
근로자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또 다른 시작이 됩니다. 사망만큼 인간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죽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특히 외모가 부족한 사람들은 다음에 무엇으로 태어날지, 누구의 딸이나 아들로 태어나 이건희보다 부자로 태어날 수 있을지 하는 기대로 가득 찬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극적으로 태어납니다. 아프리카에서 물도 없는 곳에 태어나 엄마는 에이즈에 걸리고 아빠는 전쟁에서 죽고 집도 없이 끓는 물을 마시다 식중독에 걸려 죽는 삶, 그것이 또 반복되는 것입니다.
사망은 시작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듣는 것도 사망이 불현듯 갑자기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죽음은 하루의 오차도 없이 다가오는데, 아무도 그것을 모르고 평생 살 것처럼 죄를 짓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입니다. 진리 속으로 들어가면 사망이 왔을 때 기대감이 생깁니다. “나는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될 거야.” 이 세상에서 성형 수술 없이 간신히 잘 살았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아주 멋진 여자나 남자로, 키 크고 잘생긴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사망에 담겨 있습니다. 그중 아주 착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것이고, 인간으로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만이 인간에게 꿈을 주는 것입니다.
살아서는 절대 자신의 꿈을 꾸면 안 됩니다. 살아서는 신의 꿈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하늘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부모님께 잘 보일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이유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집안 식솔들을 돌봐주며 책임을 다하는 것 때문입니다. 살아서 그것에 충실하면 신이 상을 줍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가장 가까운 아버지이지만, 그 위에 신이 존재합니다. 신이 그 사람을 통해 너는 태어나라고 했으니, 육신의 부모님께 실망시키지 않고 어머니의 후손에게 좋은 핏줄을 퍼뜨리겠다는 책임을 다하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 효도했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사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욕구를 위한 꿈을 위해 사는 자는 실패하는 자입니다. 부모의 꿈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착한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을 돕고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 부모의 꿈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위해 사는 자는 도둑질도 하고 나쁜 짓도 합니다. 그것은 부모에게 죄가 됩니다. 하늘에서는 “내 아들이 왜 저런 짓을 할까? 저것만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 꿈을 꾸는 자는 결국 망합니다. 하늘의 꿈, 즉 진리의 꿈을 벗어나지 않아야 효도입니다.
끝없는 순환, 천부경과 원불교의 진리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시인의 말은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과 통합니다. 시작이 없는 시작이라는 말처럼, 끝은 또 다른 시작이 됩니다. 실제로는 끝이 없는 순환을 의미합니다.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시작과 결과가 없어지고 또다시 끝이 되며, 또다시 시작이 되는 인생의 반복입니다. 시인이 말한 원은 바로 이러한 순환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증산도나 원불교의 교리도 이와 같습니다. 원불교의 교리인 ‘원시반본(原始返本)’은 동그라미를 의미합니다.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죠. 끝이 없는 순환입니다. 우리는 12시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잠을 자야 한다거나, 낮 12시에는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선을 긋지만, 이 선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계속 죽었다 깨어나고, 죽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지금까지 이 얼굴을 만들어온 것입니다.
지구가 없어지면 다른 행성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헌 집을 없애고 새집을 짓듯이, 지구가 헌 집이 되면 다른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집을 재보수하기도 합니다. 아파트 리모델링처럼 수십억 년이 지나면 지구도 재보수됩니다. 신이 쓴 시 한마디가 이처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큰 인물의 길: 역풍을 거슬러 오르다
큰 봉황은 날개가 만 리에 달합니다. 중국 대륙 전체가 이 새의 날개 한쪽 길이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새입니다. 이 새는 바람을 역으로 이용하여 날아갑니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가지 않고, 항상 역풍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람이 뒤에서 불면 날아가지 못하고 추락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큰 인물은 여론을 뒤집어쓰고 욕을 먹으며 나아갑니다. 남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는 길로 가지 않습니다. 크게 될 인물은 어릴 때부터 부모 속을 썩이기도 하고, 고집불통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나 석가모니도 많은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석가모니는 왕비와 왕궁, 돈과 땅을 모두 버리고 출가하여 염세주의자처럼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백성들은 그를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했고, 6년간 거지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큰 봉황이 역풍을 이용하듯이, 저는 노이즈 마케팅의 세계적인 전문가입니다. 노이즈 마케팅은 욕먹는 마케팅이며, 가장 차원 높은 마케팅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제자들은 그를 비난했습니다. “네 몸이나 구해라, 이 사람아!” 하며 엄청난 욕을 먹었습니다. 제자들은 나중에 예수의 체면을 세웠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망신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나라는 1차, 2차 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이집트에 의해 종속되었고, 성전은 이슬람에게 빼앗겼습니다. 2천 년 동안 나라가 없어지고, 히틀러는 유럽에 숨어있는 유대인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로켓이 날아와 사람이 죽어나가는 비상사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주는 그들이 예수를 비참하게 죽이고 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이 저주는 2천 년이 아니라 수천 년간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골치 아픈 나라 중 하나입니다. 파키스탄과 인도도 핵을 가졌지만, 이스라엘도 핵을 가졌습니다. 골치 아픈 나라들은 모두 핵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도 핵을 가졌지만, 남한은 아직 핵이 없습니다.
스위스의 생존 전략: 용병 국가와 비밀 은행
현재 세계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나라는 스위스입니다. 우리나라는 풍전등화와 같아서 다른 나라에서 보면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 사는 불쌍한 사람들로 보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지만, 북한과 정반대되는 나라입니다. 인구는 몇백만밖에 안 되지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강력한 이웃 나라들이 수천 번을 쳐들어가 빼앗으려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옛날 스위스와 운명이 비슷했습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사이에 끼어 있는 형국입니다. 스위스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점령당한 역사가 없습니다.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스위스를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스위스가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위스의 정치인들은 비상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작으니 살아남기 위해 특별한 전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대를 최고로 강하게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10만 명도 안 되는 군대를 훈련시켜 로마 교황청의 용병으로 들어갔습니다. 스위스는 옛날부터 군대를 강력하게 훈련시켜 전 세계 은행과 부인들, 왕들을 지켜주는 군대로 파견했습니다. 로마 교황을 경호하는 군대가 바로 스위스 군대입니다. 로마 교황은 스위스를 건드리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스위스 정치인들은 젊은이들을 초강도로 훈련시켜 어떤 경우에도 의리를 지키고, 다른 나라의 정쟁에 말려들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는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스위스 군대는 누구든지 데리고 가면 안전하다고 믿을 정도로 신뢰가 높았습니다. 전 세계 재벌들과 대통령들이 스위스 사람들을 경호원으로 고용했습니다. 로마 교황은 수백 년, 천 년 동안 스위스 군대를 용병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도 군인이 있지만, 이탈리아 공수 특전단은 이탈리아 정부에 매수되어 교황을 해치거나 교황청을 전복할 수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습니다. 칭기즈칸의 경호실장도 스위스 사람이었습니다. 스위스는 용병 국가로서 전 세계 지도자들을 경호하는 특수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위스는 또한 은행을 통해 경제를 살렸습니다. 예금 비밀주의를 통해 전 세계의 자금을 끌어들였습니다. 전 세계가 실명제 은행 거래를 할 때, 스위스는 본인 이름이 없는 예금 비밀주의를 고수하여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으로 경제를 이끌고 용병을 파견하며 관광객을 유치했습니다. 경제는 너무 맑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약간의 탈세는 봐줘야 합니다. 너무 칼같이 들이대면 누가 사업을 하겠습니까? 납세 쿠폰제나 납세 포인트 제도를 통해 어려울 때는 세금을 유예해주고 금융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국가가 여유를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실명제를 하고 부동산 실명제를 하면 은행 거래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지하로 들어갑니다. 5만 원권이 나오면서 전부 지하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5만 원권을 지하로 넣는 사람은 그래도 국민 중에 90점은 줘야 합니다. 더 나쁜 놈은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자들입니다. 달러로 바꿔 집에 가지는 사람은 양호한 편이고, 아예 해외에 묻어버리는 자들도 있습니다.
화폐 변경과 지하 자금 회수
저는 대통령이 되면 화폐 변경을 할 것입니다. 화폐 변경은 화폐 개혁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돈의 가치는 그대로 두고 돈의 모양만 바뀌는 것입니다. 한 달 전에 작업을 해두고 갑자기 대통령이 청와대로 재고장을 오라 하여 오늘부로 은행 현찰 거래를 중지하고 새 돈으로 전부 바꾸는 것입니다. 지하 자금 수표 모양도 다 같이 바뀌므로, 사람들은 모든 돈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가지고 나오지 않으면 휴지가 됩니다.
돈을 가지고 나오면 잘 바꿔줄 것처럼 해야 합니다. 몇만 원만 준다고 하면 안 됩니다. 대통령이 무조건 교체한다고 하고, 접수하면 열흘 있다가 돈을 찾아가게 합니다. 큰돈은 나중에 10%밖에 안 주고 90%는 국가에 회수한다고 합니다. 정확한 돈의 출처가 있는 사람은 10% 더 준다고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지하 자금을 회수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5년간 쓸 국가 예산이 준비될 것입니다. 이제 핵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평안과 불안의 진리: 역경 속에서 찾는 평화
평안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여러분 속에는 불안이 있어야 합니다. 천생 평안을 얻은 자들은 병들고 나쁜 길로 갑니다. 그러나 진짜 평화는 불안 속에서 평안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가진 것이 별로 없지만 가장 편안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가장 배부른 자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렵다고 하지만, 제가 보면 저보다 다 좋은 상황입니다. 심지어 아내도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지만 불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불안 속에서 평안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제자들은 폭풍우 속에서 불안해했습니다. 배가 뒤집히고 난리가 나는데도 예수님은 코를 골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눈이 뒤집어져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당신 따라다니면 피가 오다가도 뭉치고, 태풍이 불다가도 잠잠해진다고 했는데, 왜 배가 뒤집어집니까?” 예수님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이들은 평안 속에서 평안을 찾으려 했지만, 그것은 인생을 잘못 사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이 제 옆에 있어도 저녁에 쌀거리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여러분에게 큰 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를 만나고 나서 일이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도를 깨치게 해주는 것입니다. 불안한 일이 왜 계속되는지, 왜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배가 뒤집어지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워 따졌습니다. “예수님, 이게 웬일입니까? 왜 배가 이렇게 뒤집어집니까? 예수님이 여기 타고 있는 것을 하늘이 모릅니까?” 예수님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나를 믿는 거야? 평안을 믿는 거야?” 이들은 평안을 바라는 것입니다.
평안 속에서 평안을 찾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돈 많으면 편안하게 살다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생지옥에 태어납니다. 불안 속에서 평안을 주는 것이 신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신과 관계된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사를 가야 할 때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안은 마귀이고, 평안은 남편입니다. 불안과 평안이 부부처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석가모니도 너무 좋은 환경에 태어나 눈에 보이는 것이 여자와 돈뿐인 곳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환난을 자처했습니다. 환난이 오는 것이 여러분의 선물입니다. 환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큰 물고기는 환난을 찾아갑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편안하게 먹고 살 돈이 있었지만, 그것은 남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남자는 정의를 위해 모든 사람이 잘 살게 하는 것을 국가 앞에 미리 공약하고, 나중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미리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인구가 줄기 시작할 때 미리 손을 쓰면 미친놈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인구 늘리자, 출산 수당 주자 하면 정상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에서 안을 가지려고 몸부림치다가 많은 사람을 해치게 됩니다. 안의 진리는 공(空)입니다. 유(有)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태풍의 가장 편안한 곳은 공입니다. 무중력 상태이고 진공 상태입니다. 진공이 없어지면 태풍이 사라집니다. 소용돌이 속에서 평안함이 있는 것입니다. 불안은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같습니다. 유라는 개념과 공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공은 무서운 것이지만, 동시에 편안한 것입니다.
섭리의 길: 고난 속에서 성장하다
저는 14살 때 서울에 올라와 중국집 보이, 구두닦이, 영화 엑스트라 등 30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제가 정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였습니다. 사고가 나면 다음 단계로 보내지는 식으로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주리에 담겨 나일강에 띄워졌지만, 왕궁 옆으로 흘러가 공주가 목욕하는 시간에 발견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시간적으로 일치했습니다. 어린아이를 모두 죽이는 상황에서 모세는 역청을 바른 광주리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이 역청은 중동 지역에서 기름 찌꺼기가 많이 올라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성경을 보고 미국의 칼텍스라는 사람이 중동에서 기름을 찾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왕가에 보내져 교육을 받은 것도 섭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를 만들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모세 오경을 만들 수 있는 문장 실력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식했기 때문에, 모세는 최고의 교육을 받아 글솜씨를 익혔습니다. 80살이 되어 글솜씨가 무르익었을 때 모세 오경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또한 중국집에서 애를 잃어버리고, 구두닦이를 하다가 권투 글러브로 맞고, 도둑질을 하러 갔다가 잡힐 뻔하고, 영화 엑스트라를 하다가 폭약에 맞아 공중으로 뜨는 등 수많은 사고를 겪었습니다. 버스 차장으로 일할 때는 기름때 묻은 손 때문에 여고생들이 돈을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버스 안에서 자다가 전기담요에 불이 붙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사고는 저를 다음 단계로 이동시키는 섭리였습니다.
홍제동 무학산 꼭대기에 텐트를 치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텐트가 날아가 다리가 부러져 35일 동안 눈만 먹고 살기도 했습니다. 다리가 나아 내려왔을 때 실내 샌들을 만들어 파는 사람을 만나 이병철 회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병철 회장 집 대문이 열리는 순간, 저는 그 앞에 샌들을 놓고 공부할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저를 집으로 데려가 양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부모님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거절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공부만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 또한 사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맹장이 터져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간호사들이 신문지를 감고 다니던 저의 딱한 사정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돈을 모아주기도 했습니다. 퇴원 후 흥국사라는 절에 들어가 6개월간 행자로 지냈습니다. 그곳에서 폐병을 앓던 재벌 딸을 만났는데, 그녀가 죽으면서 남긴 약을 제가 먹고 병이 나았습니다. 흥국사는 약사불이 모셔진 병을 고치는 절이었습니다. 그녀가 죽자 주지 스님은 제가 그녀의 귀신에 홀릴까 봐 절에서 내보냈습니다.
이처럼 하늘에서 섭리로 키우는 자는 끊임없이 변화를 겪습니다. 어린 나이에는 남의 병도 고쳐주었지만, 제 병이나 누나의 병은 고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교육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히 훈련시켜 불안 속에서 항상 평안을 얻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환난 속에서도 언제나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 돌아가신 부모님께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어린 나이에 머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쁜 길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고난의 길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지금도 마음속 평안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은 모두 죄에 빠집니다. 불안 속에서 평안을 찾는 것이 진짜 평안입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불안 속에 평안을 찾아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평안 속에서 평안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전쟁이나 무슨 일이 터질 때 평안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한반도 통일과 국제 정세: 위험한 발상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하지만,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남의 집을 사러 가서 대박이라고 말하면 집주인이 집값을 올리거나 팔지 않으려 합니다. 피값이 걸리는 문제입니다. 김정은이 흡수 통일을 싫어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최후에 몰리면 쥐도 호랑이에게 달려들듯이, 북한도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우리는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언론에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제 통일부는 없애야 합니다. 우리는 통일하지 않는 것이 나라에 더 편합니다. 우리는 아시아 세계 연방 통일을 원하지만, 남북 통일은 급하지 않습니다. 아쉬운 사람은 북한입니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합니다.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북한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도 핵을 준비하고 우리도 우물을 파야 합니다.
미국에서 북핵에 대해 물었을 때, 저는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핵 보유국들을 언급했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미국의 전략 핵 등 14개국이 중국을 핵으로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지역은 핵이 없는 지역입니다. 우리 한반도에 미국의 핵이 와 있지 않습니까? 중국은 완전히 핵으로 포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이 동시에 핵 보유국인데, 육자 회담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육자 회담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육자 회담을 보이콧하고 통일부를 해제해야 합니다.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통일이 아쉬운 사람은 북한입니다.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통일을 지나치게 내세웁니까? 이것은 오히려 북한과 전쟁을 붙이는 형국입니다. 지금 이렇게 나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통일이 대박이라고요?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하겠다는 소리와 비슷합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을 완전히 없애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적당히 통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나중에 핵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것은 전쟁입니다. 북한의 핵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것은 북한과 전쟁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한반도는 북한이 이미 핵을 개발했기 때문에 핵 문제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정치인들이 북한의 핵을 없애라고 해도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핵을 만들겠다고 하고 통일부를 없애버리면 전 세계가 놀랄 것입니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을 안 한다고 나가면 아주 강하게 보일 것입니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로 계속 북한과 싸움만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국민 소득이 6만 불을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분단된 이상 통일을 대박으로만 추진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정부가 어떤 전략을 쓰는지 눈치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김정은을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하여 법정에 세우려 하는 것 같습니다. 유엔 상임이사국 사인을 받지 않아도 유엔 법정에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김정은은 가야 하는데, 안 가면 전 유엔군이 쳐들어가 초토화될 것입니다. 이란이나 이라크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 작전을 쓰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절대 위험합니다. 전쟁이 날 수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세균탄 5천 톤을 가지고 있습니다. 5천 톤이면 미국 전체, 중국 전체 사람을 다 죽일 수 있는 양입니다. 남산에 떨어뜨리면 경기도 사람들은 전부 잠을 자고 죽어버릴 것입니다. 모든 동물이나 인간은 10분 동안 조용히 죽고, 시체만 걷어내면 산업 시설은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북한은 한국 군인의 옷을 200만 벌 사 가져가 중국에서 만들었습니다. 나타나서 아군과 섞이면 누가 한국 군인인지 북한 군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몽땅 제거하기 전에는 비행기도 폭격할 수 없고, 누가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주 위험한 불장난이 지금 준비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조심해야 합니다.
신과의 교신: 겸손과 진실의 중요성
며칠 전 김영수 고모님과 김기상 고모님, 박 회장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제가 아는 여자 거지에게 데려갔습니다. 김영수 고모님이 그날 제 말에 좀 반박을 했기 때문에, 그 거지에게 돈 만 원을 주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김 고모님이 보도 앞에 서서 돈을 주려 하자, 거지는 “너 같은 놈이 나하고 같이 한자리에 서냐? 저 보도 밑으로 와라.”라고 말했습니다. 거지는 자신이 지체가 높고 김 고모님이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김 고모님은 그 여자에게 혼이 났습니다.
거지는 “너 같은 놈 돈은 절대 안 받아. 정 주고 싶으면 너 이름하고 핸드폰 번호 써. 내가 나중에 갚을 거니까.”라며 노트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김 고모님이 가짜로 적자, 거지는 “당장 주민등록증하고 핸드폰 꺼내 확인해야 돼. 만약에 내가 돈을 당신한테 이게 가짜면 못 주잖아.”라고 말했습니다. 그 거지가 바로 신인데, 거기에 가짜를 내민 것입니다. 제가 김 고모님을 데려간 것은 교육을 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김 고모님은 결국 돈을 주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돈을 주면 그 거지는 고개 숙여 받지만, 김 고모님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박기사님이 오자 거지는 박기사님에게도 야단을 쳤습니다. 김영수 부인은 그 여자가 귀신이네, 마귀네라고 말했습니다. 김 고모님은 엄청 혼이 났습니다. 제가 그 돈을 다시 받았지만, 김 고모님은 집에 가는 동안 돈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엄청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럴 때는 무릎 꿇고 실제 이름과 정보를 적어주고 해야 합니다. 요만한 자존심이나 거짓말이 있으면 신과 교신이 안 됩니다. 김 고모님은 다음 날 찾아가서 돈을 주고 왔습니다.
그 거지는 여러분이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압니다. 그래서 김 고모님을 데려간 것입니다. 여러분은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공(空)이 세계를 지배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불안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자의 눈에 보이는 것이 그 여자는 영적으로 그 여자를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김 고모님에게 야단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한 것은 제가 하는 일이 약간 어렵다는 것, 그리고 평안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안 속에 평안을 얻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강의를 듣는 여러분은 복이 많습니다. 생활이 어렵더라도 조금씩 내서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