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과 허랑방탕: 시간의 본질과 인간의 선택
우리가 지난 2주 동안 공부를 쉬었지만, 시간은 이처럼 빠르게 흘러갑니다. 오늘 강연의 제목은 ‘삼학과 허랑방탕의 진리’입니다. 여기서 ‘허랑방탕(虛浪放蕩)’은 ‘빌 허(虛)’, ‘물결 랑(浪)’, ‘놓을 방(放)’, ‘흐를 탕(蕩)’으로, 텅 비고 물결치듯 흘려보내는 방탕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이 시간을 공부에 쓰지 않고 허랑방탕하게 보냅니다. 그렇게 살다가 눈을 감고 하늘에 가보면, 자신의 신분이 지상에 있을 때보다 더 낮아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에 와서 공부해야 다음 생에 좋은 곳으로 진급할 수 있습니다. 삼학을 통한 삶과 허랑방탕한 삶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시간을 낭비합니다. 사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며, 우주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늘에는 시계가 없습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허경영을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그때가 오늘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간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지구에만 존재하며, 지구를 떠나면 시간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시간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나 모레 세상을 떠날 사람들에게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이 아닙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언가를 공부하여 점수를 높여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간과합니다. 방탕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무리 교회나 절에 가거나 천도재를 올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혼의 진급을 위한 육신의 역할
영국 왕실의 왕궁에 여왕이 있을 때는 깃발이 올라가고, 여왕이 없을 때는 깃발이 내려갑니다. 이는 여왕의 존재 유무에 따라 경호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청와대는 대통령이 자리에 있든 없든 태극기가 항상 걸려 있지만, 영국 여왕은 개인 깃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깃발의 유무는 엄청난 차이를 만듭니다. 깃발이 없으면 집은 헛것이 되고, 영이 나가버린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몸의 육신은 영혼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간의 삼혼칠백(三魂七魄) 중 혼백(魂魄)이 육체에 붙어 지구에 옵니다. 육체를 다 쓰고 나면 육체는 지구에 돌려주고 영혼은 떠나야 합니다. 영혼이 육체를 만나는 목적은 자기 영을 공부하기 위함입니다. 육체 없이는 공부할 수 없으며, 육체가 있을 때만 공부가 가능합니다.
행복과 고통의 역설: 위장된 축복
우리가 말하는 행복은 반드시 위장하여 고통의 형태로 찾아옵니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은 종종 거지나 이상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만약 이들을 귀찮게 여기거나 이상하게 대접하면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가구점 사장이 비를 피하는 할머니를 가게 안으로 모셔 따뜻하게 대접하고 우산까지 건넸습니다. 할머니는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아들은 록펠러였습니다. 할머니는 아들에게 사장의 친절함을 이야기했고, 록펠러는 그 사장에게 그룹의 모든 가구 사업을 맡겼습니다. 이 사장은 결국 세계적인 가구 그룹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행복은 이처럼 예상치 못한, 때로는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멋있는 여자나 젊은 여자가 복을 가져다주는 법은 없으며,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집안이 망할 징조는 종종 그런 유혹에서 시작됩니다.
행복은 고행을 통해 얻어집니다. 고행은 곧 공부입니다. 공부를 통해 우리는 할머니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무식한 사람은 돈 많은 사람에게 아첨하고 약한 사람을 짓밟습니다. 절에 온 거지가 소리를 지르자 스님이 꾸짖었지만, 그 거지는 갑자기 사자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관세음보살로 변했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헛공부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공부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 선한 행동과 사랑
기도는 자기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닙니다. 도둑놈들이나 나쁜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기도는 하늘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기도는 선한 행동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행동, 즉 천한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은 복이 오지 않습니다.
수술을 앞둔 환자가 과거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었던 젊은 의사를 만나는 상황처럼, 우리는 매사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 삼학은 우리가 지구에 온 세 가지 목적입니다. 행복을 얻으려면 고행, 즉 공부를 찾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시달리고, 위장한 사람들에게 속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반면 불행은 술, 담배, 도박, 그리고 예쁜 사람과의 유혹처럼 즐거움의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이런 유혹에 빠지면 결국 허랑방탕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삼학(三學)의 심오한 의미: 마음, 정신, 영혼의 공부
삼학은 마음, 정신, 영혼의 세 단계를 공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마음: 마음으로 하는 행동은 죄가 가볍지만, 변덕이 심하여 육신을 관리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 정신: 정신으로 하는 행동은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며, 죄를 지으면 법정에서 더 큰 벌을 받습니다. 정신은 마음을 붙들고 관리해야 합니다.
- 영혼: 영혼의 눈으로 보면 선악이 없습니다. 영혼은 육신이 있을 때까지 생각하며, 사후를 고려하여 양보하고 남의 자식도 자신의 자식처럼 바라봅니다. 영혼은 정신을 붙들고 더 높은 차원에서 행동을 이끌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영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교통체증 속에서도 상대방의 부모를 생각하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 영혼의 공부입니다. 이러한 공부를 통해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공(空), 원(圓), 정(正)의 철학
세상의 모든 것은 공(空)으로 돌아갑니다. 이는 무상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자녀가 언젠가 공으로 돌아갈 것을 알면, 그들의 실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공으로 돌아가기에 지금 마시는 물 한 잔, 함께 공부하는 이 순간이 귀중합니다. 공을 모르면 우리는 항상 존재하는 줄 알고 다투게 됩니다.
원(圓)은 원만함을 의미합니다. 모든 일에 원만하게 대처하고,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져주는 것이 원만함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투면 남자가 져주고, 여당이 야당의 주장을 들어주는 것이 원만한 태도입니다.
정(正)은 바름을 의미합니다. 한자 ‘正’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꿰뚫는 임금,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모든 행동이 하늘에 합당해야 합니다. 길거리의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푸는 마음이 하늘에 닿는 것입니다. 젊은 여자가 아니라고, 늙은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마음은 땅에 닿는 것입니다.
이 공(空), 원(圓), 정(正)은 철학의 3대 요소이자, 밝게 살기 위한 학문이며, 계정(戒定)과 같은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주변의 공간에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늘에서 체크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진정한 의미: 사랑과 자비의 실천
불교에서 말하는 팔정도(八正道)의 ‘해(解)’는 깨달음, ‘정(定)’은 선정(禪定)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선한 행동, 즉 사랑과 자비입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며, 자신을 욕하는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신은 바보가 아니므로, 교회에 가서 소원을 비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고아원을 찾아가 베풀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한 행동이 기도입니다. 남의 자식을 위하면 하늘이 그 사람의 자식을 돕도록 결재를 내립니다. 자기 자식만 잘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사랑과 자비가 없는 이기적인 기도이며, 신은 그런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곧 기도입니다. 교회나 절에서 백일기도, 천일기도를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그 돈으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계(戒)의 본질: 자기 경계와 타인 존중
계(戒)는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자신을 철저히 경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십계명이나 불교의 오계처럼 종교에는 숫자가 붙지만, 개인은 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합니다.
계는 마음이 육신을 지키고, 정은 정신이 마음을 지키며, 해는 영혼이 정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거치면 졸업하여 천단(天壇)에 이르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립니다. 장사가 안 된다고 점집에 가는 것은 미신입니다.
옛날에는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듯이, 교회나 절이 물을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수도가 있고 성경도 있습니다. 개인이 깨달으면 영적인 물이 집집마다 나오듯,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앞으로는 개인이 삼학을 통해 깨닫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집단을 이끌어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사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종교는 점차 개인주의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지나치게 종교 단체에 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신을 구원할 자는 자기 자신입니다. 사업이나 직장에서 남과 이야기하는 것, 즉 자신의 얼굴 표정과 말하는 태도 자체가 기도입니다. 흉악한 인상으로 남을 노려보는 것은 잘못된 기도이며, 재앙을 부르는 행위입니다.
에밀레종의 울림: 메시아를 기다리는 소리
에밀레종은 물질에 아이를 넣어 만든 것으로, 그 종소리는 엄마를 부르는 소리, 즉 ‘에밀레’로 들립니다. 이는 엄마를 찾는 소리, 즉 메시아를 기다리는 소리입니다. 봉황정(鳳凰亭)의 시에도 ‘하일일래(何日一來)’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어느 날 메시아가 올 것인가’를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이 시를 쓴 이항복은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부원군 등 많은 벼슬을 지낸 인물로, 400년 전에 이미 미래를 내다본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희망이 없고 사람들이 벙어리가 된 듯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메시아가 나타나 썩은 정치를 바꾸고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등 개혁을 단행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허경영의 공약들이 현실화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에밀레종의 슬픈 울림처럼, 사람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메시아는 일본군으로 상징되는 썩은 정치인들을 한 방에 날려버려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것입니다.
동양의 부와 서양의 모방: 도자기와 반도체
옛날 명나라 때는 전 세계 생산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 경제 1위였습니다. 유럽은 한동안 가난한 국가였으나, 산업혁명 이후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시아, 특히 한반도와 중국은 수천 년간 세계 경제를 지배했습니다.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의 물건, 특히 도자기가 유럽으로 건너갔고, 유럽인들은 이를 보석처럼 여겼습니다.
중국(China)이라는 이름은 진시황의 ‘진(秦)’에서 유래했으며, 도자기가 진나라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면서 ‘차이나’가 도자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가 되었습니다. 이는 중국이 도자기 산업을 주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나라 도자기에는 장인의 혼이 담겨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집니다. 반면 서양은 동양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었기에 혼이 없습니다. 유럽인들은 중국 도자기를 연구하여 세라믹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과거 도자기가 세계 경제를 지배했듯이, 지금은 반도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돈의 위험성: 다이너마이트와 삼학
돈(Money)은 위험한 것입니다. 영어에서 ‘D’로 시작하는 단어, 예를 들어 다이너마이트(Dynamite)나 다이아몬드(Diamond)처럼 돈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삼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돈을 가지는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다이너마이트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 다루면 폭발하여 자신을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삼학을 배우지 않고 돈을 벌면 허랑방탕한 삶으로 이어집니다. 지금은 물질의 시대, 즉 어머니의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성의 권위가 높아지고 물질주의가 절정에 달하면서 자본주의는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이대로 가면 사회는 폭발 직전에 놓이게 됩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 초등학교가 사라지고 노인만 남는 미래가 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물질주의 시대에 영혼의 시대, 즉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남자의 권위가 떨어지고 여자의 권위가 올라가는 현상은 중간의 조화가 깨졌음을 의미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양보하고 조화를 이루는 ‘사이 간(間)’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구 감소와 미래 사회의 위기
대통령이 되면 시집가는 여성에게 2억 원, 신혼 주부에게 주부 전업 수당을 지급하여 여성들이 직장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하고, 남편의 자식만 낳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3천만 원씩 지급하여 출산율을 높여야 합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가정을 살리고 초등학생이 끊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현재 일본 인구는 1억 3천만 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5천만 명에 불과합니다. 몇 년 후부터 인구가 줄어들면 우리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중국은 인구가 20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므로, 우리는 나라가 없어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민을 허용하여 다민족 국가가 되었지만, 인구 감소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선과 악의 본질: 자기 경계와 타인 존중
선과 악은 사실 같은 것입니다. 악이 없으면 선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남이 하는 모든 행동은 선으로 보고,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악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남편의 행동을 악의 눈으로 바라보고 비난하며, 자신의 행동은 로맨스로 여깁니다. 하지만 계(戒)는 남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당신은 왜 계를 지키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문제 있는 사람입니다. 계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해야 합니다.
남을 바라볼 때는 언제나 선하게 봐야 하고, 자신을 바라볼 때는 잘못할까 봐 항상 악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고아원에 돈을 기부하고도 혹시 상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남의 행동에 법이나 계를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법리적으로 따질 때만 법을 적용하고,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을 죄악시해서는 안 됩니다.
악은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선은 남을 볼 때 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를 반대로 하면 집안이 망하고 나라가 망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이 흥행한 이유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들의 보상 심리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침몰하지 않는 배와 죽지 않는 이순신 장군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이는 썩은 정치인들을 한 방에 날려버릴 메시아를 기다리는 국민들의 무의식적인 염원을 반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