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중과 균형의 진리: 국가와 개인의 밸런스
내 강의를 듣는 사람이 많지만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 한문과 한글을 함께 써야 한다. 쓰다 보면 자꾸 틀리는데, 이것은 편중과 균형, 즉 밸런스의 진리다. 지금 우리나라의 밸런스가 망가졌다. 빈부 격차가 심해 부는 한쪽에, 빈은 다른 한쪽에 치우쳐 있다. 모든 정치가 높은 사람, 국가 예산을 다 가져가고 도둑질을 하니 편중되는 바람에 균형이 깨진 것이다. 국가는 3만 불인데 가진 자들이 3만 불을 가지고 2천7백 불을 쓰고, 못 가진 자들은 3천 불을 가지고 몸부림친다. 2천 불이 이쪽으로 가버리고 3천 불이 위로 올라갈수록 더 가난해지는 것이다. GDP 균형이 반비례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지적해야 한다.
밸런스에는 엄청난 것이 많다. 술을 마시던 사람이 150억을 타는가 하면 300만 원을 타는 사람도 있으니 그 밸런스가 완전히 깨졌다. 편중은 승리이고 균형은 성공이다. 승리는 자기가 이겨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이고, 성공은 자기가 이루어서 남에게 베푸는 것이다. 이겨서 베푸는 것이 아니겠는가. 승리와 성공은 반대인데, 승리한 자는 대부분 인생의 실패자가 된다. 왕년에 챔피언이었던 사람이 망한 경우가 많고,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승리의 기쁨을 가지지만 결국 혼자 쓰다가 망하는 것이다. 승리와 성공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다.
무아와 유아: 자아의 본질과 교만의 경계
편중은 기어(gear)이고 균형은 밸런스다. 편중은 영어로 기어라고 알아두어야 한다. 이쪽은 무아(無我)가 되어야 하는데, 이쪽은 유아(有我)다. 무아는 마음을 완전히 지우는 것, 없는 것, 관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앞으로 불교에서 무아를 ‘내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 법률 중에 부작위죄가 있다. 이것은 과실범이다. 자기가 누구를 해코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죄를 짓는 경우다. 운전하다가 자기는 운전을 잘하려고 했는데 사고를 내서 사람이 다치는 경우, 이것이 부작위죄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죄는 부작위와 유작위가 있다. 의도적으로 죄를 짓는 놈이 있는가 하면 모르고 죄를 짓는 경우도 있다.
우리 몸에는 두 가지 호흡이 있다. 의식 호흡과 무의식 호흡이다. 무의식 호흡은 기절했을 때도 숨만 쉬는 것이고, 의식 호흡은 명상하거나 운동할 때 쓰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도 모르게 지은 것이 부작위다. 이것을 부작위 호흡이라고 한다. 한문으로 말하면 부작위 호(呼)다. 호(呼)는 내뱉는 것이고, 흡(吸)은 들이마시는 것이다. 이것과 이것이 균형이 맞아야 한다. 계속 들이마시려고만 하는 사람은 승리하려는 사람들이다. 호흡도 균형이 맞아야 한다. 계속 숨만 들이쉬려고 욕심이 많으면 죽는다. 항상 들어온 것이 있으면 나가야 한다. 균형이 맞아야 한다. 호흡도 들숨과 날숨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어디 갈 때 집에 들어가도 출입구가 어디냐고 묻는다. 출(出)이 먼저다.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이 항상 균형이 맞아야 한다. 나갈 때 ‘입구가 어디냐’고 묻지 않고 ‘출입구가 어디냐’고 묻는 것처럼, 항상 균형이 맞아야 한다. 호흡 균형이 맞아야 의식 호흡과 무의식 호흡이 조화를 이룬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만약 여자가 아들이 다쳤을 때 기절하는 여자가 있다면 다 죽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될 것을 생각해서 무의식도 하게 해놓은 것이다.
부작위죄가 있듯이 유작위죄도 있다. 유작위죄는 형이 무겁고, 부작위죄는 형이 가볍다. 그와 같이 무아는 무자기아(無自欺我)다. 내가 스스로 나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교만한 것이 없어지는 것을 무아라고 한다. 내가 없어져 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내가 옛날에 지은 죄도 있고, 다음 생에도 가야 하고, 내가 계속 움직인다. 나중에 하늘의 심판을 받아서 인간이 계속 태어나는데, 영원히 살 인간이 왜 없어져 버리는가? 그래서 무아는 무아와 유아로 나뉜다. 유아는 내가 고의적으로 나를 자꾸 내세우는 것이다. 내가 잘났다고 내세우는 것을 없애는 것이 무아다. 과실과 같이 모르고 진리를 행하는 것, 즉 자기를 스스로 내세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내세우지 않아도 자기는 있다. 자기를 알 필요가 없는 것을 불교에서는 무아라고 한다.
성철 스님을 찾아온 중이 ‘나는 성철이가 없어졌어, 나는 무아다’라고 하면 되겠는가? 스님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성철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철 스님 마음은 무아를 터득한 것이다.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잘났어, 당신은 고생 바가지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성철 스님은 무아를 터득한 것이다. 자기가 없어져 버리면 정덕(正德)이 없게 된다. 무아를 정덕한 자가 있다는 말이다. 이 ‘나’라는 존재는 영원히 우주에서 없어지지 않는다. 히틀러처럼 사람을 다 죽여 놓고 내가 없어져 버리면 안 된다. 그것은 언젠가 리바이블(revival)되어 돌아온다.
이것과 이것은 균형이 맞아야 한다. 이것은 성장할 때, 승리할 때 쓰는 것이고, 이것은 성숙할 때 쓰는 것이다. 인간이 성숙되면 젊어서는 아버지가 조금만 구박해도 대들다가, 나중에 자기가 애 낳아보고 사업해보니 아버지가 고생한 것을 알게 된다. 그때는 무자(無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고에 숙인다’고 한다. 불교를 오래 믿는 사람들도 무아를 혼돈하고 유아를 혼돈한다. 개인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여러분이 지은 죄는 영원히 따라간다.
건강과 관계의 균형: 편중을 경계하라
건강에도 밸런스, 즉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이 깨지면 몸이 무너진다. 편중되는 것은 음식도 너무 편식하면 안 되는 것과 같다. 음식도 균형을 맞춰야 하고, 대인 관계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 너무 부자들한테만 가서 잘 보이려고 하면 안 된다. 높은 사람들이 봐주지 않는다. 골고루 사람을 대해야 한다. 권력 중심의 사람들만 세우는 것은 편중이다. 빌 게이츠는 권력자에게 돈을 주지 않고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준다. 그러면 정부에서 ‘저 사람은 건드리지 마’라고 한다. ‘저 사람은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야’라고 소문이 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자 쪽에 편중하면 문제가 생긴다.
성완종 회장이 종로 상가에 ‘성완종 무료 급식 센터’를 만들어 누구든지 오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충청도 사람만 도와주는 것은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실수한 것이다. 그 사람 밑에 두뇌가 없었던 것이다. 쌀이 1년에 몇 가마 들어가겠는가? 한 달에 천만 원, 3천만 원이 들어가도 1년에 3억밖에 안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한 사람에게 집어주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소욕다시(少欲多施)와 소언다행(少言多行)
소욕다시(少欲多施)는 욕심을 적게 내고 많이 베풀라는 뜻이다. 빌 게이츠처럼 하라는 것이다. 성완종 회장이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자기 고향에 장학금을 만들어 놓고 사부작사부작 도와주는 것은 국민들이 잘 모른다. 종로 상가에 ‘성완종 무료 급식 센터, 누구든지 오세요’라고 크게 붙여야 한다.
소언다행(少言多行)은 말을 적게 하고 많이 움직이라는 뜻이다. 강의를 하지만 운동도 하고 자꾸 움직여야 한다. 소육다채(少肉多菜)는 고기를 적게 먹고 채소를 많이 먹으라는 뜻이다. 밥을 많이 먹고 과일을 많이 먹으라는 것이다. 소당다과(少糖多果)는 당분을 적게 먹고 과일을 많이 먹으라는 뜻이다. 과일 당분이 더 좋다. 소식다정(少食多靜)은 밥을 적게 먹고 명상을 많이 하라는 뜻이다.
한민족의 위대성과 종교의 기원
옷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옷 자 옆에 과일 과(果)자가 붙으면 버(벗을) 자가 된다. 기독교 구약의 모든 내용은 히브리어로 쓰였고,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였다.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이 문제다. 이것은 우리 한민족의 조상들이 쓴 것이다. 먹지 말아야 할 과일을 먹으니까 옷을 입게 된 것이다. 벗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성경 창세기의 내용이 한문에 그대로 담겨 있다. 우리 민족이 만든 것이 중국으로 흘러가 이스라엘로 간 것이다. 인도의 석가모니 사상도 결국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사상이 내려간 것이다. 우리 한민족이 석가와 같은 족속이다.
기독교 성경을 한문으로 분석해보면 전부 성경이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아는 나무를 보지 말라고 금한다. 이것이 전부 한문이 성경이라는 증거다. 내가 초등학교 때 전 세계 경전 53가지를 다 떼면서 보니 전부 한민족이 만든 것이다. 성경, 코란, 대장경까지 모두 한민족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유럽으로 흘러간 것이다. 성경에 마귀가 유혹하는 내용도 한문으로 풀이하면 기독교 문화의 시작이 된다.
종교가 여러 개라서 서로 싸우지만, 실체는 우리 한민족이 만든 것이다. 아브라함이 산에서 제사를 지낸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원구단이나 강화도에 제단이 있다. 하늘의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민족이다. 우리는 천손 민족이고 유대인도 천손 민족이다. 유대인과 우리의 족보가 똑같다. 기독교 목사들이 이것을 모른다.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알려야 한다. 전 세계에서 포경 수술하는 민족은 유대인과 우리뿐이다. 일본 같은 나라는 포경 수술을 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과 유대인이 쓰는 갓(갓, 건)이 같다. 영어로도 ‘갓(God)’이다. 우리가 왜 ‘갓’이라고 불렀겠는가? 이것이 신이라는 뜻이다. 유대인들도 갓을 쓴다. 그들의 빵모자는 우리의 상투와 같다. 우리 할아버지들과 똑같이 상투를 쓰고 갓을 썼다. 이것이 그대로 전수된 것이다.
유대인이 믿는 신은 여호와다. 여호와는 계집 여자(女)에 이 화(禾)자가 합쳐진 것이다. 옛날에 우리 민족이 섬기던 여신이다. 하나님의 부인이 여호와다. 여호와가 우리를 낳은 최초의 여자다. 이것을 우리는 여호와라고 하는데, 그들도 여호와라고 한다. 우리 한문을 그대로 베껴서 구약이 된 것이다. 그들의 조상과 우리 조상이 같다. 여호와는 삼신 할머니, 마고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삼신 할머니가 우리를 낳았으니 우리가 여호와를 섬겼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호와를 섬긴다. 이것은 우리 한문에서 나간 글자다.
소욕다면(少欲多眠)과 소염다수(少鹽多水)
소욕다면(少欲多眠)은 번뇌를 적게 하고 잠은 많이 자라는 뜻이다. 소염다수(少鹽多水)는 소금을 적게 먹고 물을 많이 마시라는 뜻이다. 반대로 먹으면 몇 달 안에 죽을 수도 있다. 이것이 균형이다. 소금을 많이 먹고 물을 적게 먹으면 죽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왜 이것을 지키지 않는가? 돈 때문에 지키지 않는다.
한민족의 창조 정신과 노아 방주
천지 창조도 한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흙 토(土)자에 입 구(口)자가 합쳐지면 흙으로 바람을 밀어 넣어 입으로 바람을 넣는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움직여서 창조된 것이다. 노아 방주도 한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배 주(舟)자에 여덟 팔(八)자와 입 구(口)자가 합쳐지면 배에 여덟 명이 탔다는 뜻이 된다. 노아 부부와 세 아들 부부, 여덟 식구가 한 배에 탔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 사람들이 써먹은 것이다.
여호와를 집어넣었을 때 모든 종교가 한민족이 만든 것이 된다. 이스라엘 지역에 있던 우리 한민족의 최초 문화는 수메르 문화다. 수메르는 ‘소문화’라는 뜻이다. 우리 한민족이 그곳에서 이동한 것이다. 수메르 문화에는 빗살무늬토기가 있는데,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 빗살무늬토기와 동일하다. 고고학자들이 이것은 코리아의 문화, 한민족의 문화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화이고 수메르 문화다. 우리가 왜 ‘갓(God)’이라고 발음했겠는가? 하늘에서 온 것이다.
신 앞에 제사 지내는 것을 제(祭)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양(羊) 밑에 내가 엎드려 있으면 제사 지내는 것이고 번제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리(義理)다. 하늘의 의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하는 말과 일치한다. 우리 한문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중국의 문화는 우리 한민족이 만들어 준 것을 그 사람들이 써 된 것이다. 한문은 음이고 한글은 양이다. 우리는 음양의 조화를 만들었는데, 유대인들은 한문이 자기들 글이 없으니 히브리어를 쓴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쓰지만 글자는 없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우리가 섬기던 여호와를 지금까지 섬긴다.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언어를 쓰지 않고 ‘여호와’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여호와라고 하면 이상하다고 해서 ‘야훼’라고 부르지만, 실제는 여호와가 맞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여호와라고 한다.
여호와의 화(禾)자는 여자의 자궁에 씨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최초의 씨로서 아이를 낳아준 여자다. 지구에 최초로 아이를 낳아준 여자다. 그 사람이 남자겠는가, 여자겠는가? 여자다. 그래서 여와(女媧)다. 유대에서는 이것을 마리아라고 한다.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뜬 것이다. 밸런스가 그렇게 중요하다.
정치 황사: 국가를 병들게 하는 불균형
지금 정치의 밸런스가 완전히 깨졌다. 경제 밸런스도 깨져 빈부 격차가 심하다. 정치 밸런스, 경제 밸런스, 종교 밸런스 이런 것이 다 깨져서 허경영이 나타난 것이다. 밸런스를 배에다 비교해보면 평형수와 같다. 배에서 평형수를 빼고 배를 움직인 놈들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다. 평형수를 빼고 물건을 더 싣는 것이다. 그러면 배가 평형을 잃어버린다. 지금 이것을 지적하는 정책이 우리나라에 어디 있는가?
우리나라에 닥친 일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 정치 황사를 명심해야 한다. 중국에서 오는 황사는 미세 황사다. 미세 황사는 우리 폐를 망친다. 우리 폐가 최대한 호흡할 수 있는 양은 4800cc다. 미세 황사가 들어가면 혈관이 망가진다. 미세 황사가 많이 오면 우리가 죽는 것과 같이 정치 황사가 우리나라를 지금 덮어버렸다. 황사는 불교로 말하면 장(障)이다. 정치 황사는 대중 통제와 관련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정치 황사를 만들었는데, 금융 실명제를 만들었다. 이것 때문에 우리 경제가 망했다. 돈은 실명제가 되면 안 된다. 홍콩은 실명제를 하지 않아 경제가 발전한다. 전 세계 돈이 다 몰려온다. 실명제를 하면 돈이 다 도망간다. 우리나라 돈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건설 회사를 해서 돈을 몇천억 벌어도 은행에 넣을 수 없다. 모든 뒷구멍으로 번 돈이 미국으로 몰래 빠져나간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3만 불인데 절절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실명제가 대중에게 들이닥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불경기가 닥치자 카드를 발행하여 카드 대란을 만들었다. 경기를 살리려고 한 것이지만, 이것도 만만한 황사가 아니었다. 이것이 커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 부채 920조를 떠안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로또, 복권, 카지노, 도박 황사를 만들었다. 바다 이야기 같은 것을 만들면서 나라가 쫄딱 망해가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황사를 해결하지 못해 황사가 점점 내려온 것이다.
그다음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황사와 청년 실업 황사를 만들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 부채가 천조로 늘어났다. 이명박 황사를 최종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뒤집어썼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무 잘못도 없고 돈을 먹은 것도 없지만, 청년 실업 세계 1위, 어른 실업 세계 1위, 저출산 세계 1위 등 나쁜 것 세계 1위가 54개나 되는 실업 대란 황사를 맞은 것이다. 이 황사를 하나하나 다 뒤집어썼으니 헤어날 구멍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잘못한 것도 없이 처음부터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구해내려고 하니 발목 잡는 사람이 계속 나타났다. 미국에 가니 망신을 시키고, 대변인이 또 어디 가니 총리들이 줄줄이 대망신을 시켰다.
이 대란을 마무리할 자, 최종적으로 완전히 없앨 자는 허경영이다. 허경영은 경영을 허락받은 자다. 마지막으로 허경영이 오면 이 대란이 다 없어진다. 여러분들은 즐겁게 신명나게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청년들 얼굴을 보면 희망이 없다. 그러나 내 말만 보면 달라붙는다. 그것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가 최고로 어려울 때 대통령이 되었지만 동력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