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5 The Judge of the Origin of Life is at Your Door: Understanding the Divine and the Human Condition with Huh Kyung-young – February 3, 2024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본성: 꽃과 과일, 그리고 인간의 속성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허경영 신인의 놀라운 권능과 신묘한 불놀이를 알리는 국내외 지지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궁은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하여 세계 최고의 성지가 될 것입니다. 세계를 통일하여 지구촌 인류를 살리실 위대한 허경영님을 모시고 귀한 섭리의 말씀을 경청하겠습니다.

흰 꽃을 들고 온 사람은 속이 하얗고, 노란 꽃을 들고 온 사람은 속이 노랗게 됩니다. 이것이 자연을 만들 때의 법칙입니다. 이 지구에서 많이 바뀌었지만, 호박꽃은 속이 노랗고, 배꽃은 하얗기 때문에 속이 흰 것입니다. 꽃을 보면 그 속을 알 수 있습니다. 감꽃이 달기 때문에 감꽃을 따 먹으면 단감이 달콤한 것처럼, 꽃을 보고 그 속을 알아야 합니다. 노란 꽃을 보면서 속이 노란 것을 알 수 있듯이, 속은 곧 색깔입니다. 난을 가져온 사람은 속이 하얀 화이트입니다. 흑백 논리를 좋아합니다. 노란 꽃을 가지고 온 사람은 화수목금토 오행을 잘 따르는 사람입니다.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호박꽃이 노라니 그 속이 노랄 수밖에 없고, 배꽃은 하야니 속이 하얗게 되어 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과일은 항상 제사상에 올라가는데, 사과가 사과한다고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겉은 빨갛지만 속은 하얗습니다. 그래서 사과는 이중인격자를 상징하며, 자신을 사과하는 것입니다. 사과는 자신 자체가 사과입니다. 이것은 과실을 의미하는 과자가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비슷하지만 창조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난초의 운명론과 여왕벌의 지혜: 삶의 이치와 관계의 본질

난초를 선물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잘되려면 난초가 꽃을 피우지 않아야 합니다. 난초가 꽃을 피우지 않으면 그 집안은 망하는 것입니다. 난초가 꽃이 활짝 필 때 그 집안이 일어납니다. 장관들이나 벼슬하는 사람들이 난을 책상에 갖다 놓으면 그것을 보고 자신의 운을 살펴야 합니다. “아, 내가 물러날 때가 되어가는구나. 저 난초가 다시는 꽃이 안 피네.”라고 생각하면 때가 된 것입니다. 자신이 갈 때를 알아야 합니다. 난초와 내가 일치되어 있습니다. 난을 보면 난을 아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난이 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난을 보고 나를 아는 것입니다. 그 난자는 난초 난(蘭)자입니다. 나를 보고 나를 아는 것입니다.

여왕벌은 자기 집을 한번 나오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왕벌이 한번 자기 집이 마음에 안 들어 나오면 다시 들어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벌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 버립니다. 나가면 죽을 때까지 그 집 근처를 오지 않습니다. 벌에게도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무엇을 하든, 여왕벌이 한번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릅니다.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한번 보따리를 쌌다 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여왕벌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니 여왕벌에게 잘해야 합니다.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책임: 노고단과 대모산의 상징

옛날 지리산에 노고단이 있었습니다. 늙은 노(老)자에 할미 고(姑)자, 노고산입니다. 서울에도 노고산이 있습니다. 늙은 할머니를 의미하는 노고단입니다. 옛날 산신각은 할머니였습니다. 고려 시대에 그것을 할아버지로 바꾼 것입니다. 옛날에는 마고 할머니, 삼신 할머니처럼 할머니가 신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믿는 우상 신이었습니다. 마고 할머니는 우리 민족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삼신 할머니도 있습니다. 삼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성이 중심을 잡아야 그 집안이 일어납니다. 여성이 잘해야 일이 잘 풀리는 것입니다.

“이 집이 안 되겠다. 나는 이 집에서 언제 빠져나갈지 모르겠다”고 기회를 엿보면 끝난 집안입니다. 그 집안에 마음을 뿌리내리고 “나는 여기 안정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여왕벌이 되는 것입니다.

강남에는 제일 큰 산이 대모산입니다. 대부 산은 없습니다. 어머니 산, 여자입니다. 강남을 지키고 있는 산은 대모산입니다. 대모산이 강남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지키는 것입니다. 삼각산은 아버지 산, 대부 산입니다. 이곳은 남편 산이고, 강 건너는 어머니 산입니다. 대모산이 삼각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부부처럼 말입니다. 서울도 그렇게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대모산과 아버지 산 두 개가 있고, 그 가운데 부각산이 아들 산입니다. 조그맣습니다. 그게 아들 산이고, 뒤에 삼각산, 대부 산이 있는 것입니다. 대모산을 겨우 건너서 서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심판주의 도래와 사회의 책임: 정의와 공정의 문제

생명을 최초로 만들어 준 사람이 여러분의 심판주이며, 그가 여러분의 문 앞에 왔습니다. 이것은 지구의 종말이 온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 있고 난 다음에 천년 후에 종말이 올 것입니다. 지구는 이제 접수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블랙홀로 들어갈 것입니다. 지구의 마지막에 내가 오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 왔으니, 나를 만난 이때 나를 만나지 못한 자는 다시 볼 기회가 없습니다. 추수하고 마감해 버리면, 그 죄인들은 다시는 밭에 뿌려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별에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조건 지옥으로 다 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있는 동안에는 다 동물로 갔다가 나중에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찾아온 자는 해결이 됩니다. 천국으로 추수되어 알곡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시원입니다. 내가 생명의 시원이 아니면, 모든 살아 있는 것이나 죽은 것들이 내 이름에 반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테스트해 보았듯이, 돌이든 새든 내 이름만 붙으면 반응합니다. 병 안에 있는 물질이든, 내 이름이 반응하지 않는 물질이 우주에는 없습니다. 왜 반응하는가? 그 근원이기 때문에, 시원, 처음 그것을 제공한 자가 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한 지도자가 있습니까? 어떤 종교 지도자가 자신이 생명의 시원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월경하는 여자의 자궁에 붙어 있는 태(胎)는 시작을 의미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태로 나오는 것이 있고, 알(卵)로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방식으로 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 네 가지가 지구에 존재합니다.

인간은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합니다. 학교 가라, 밥 먹어라, 일어나라, 이런 것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엄마 아빠가 갑자기 이혼하고, 엄마가 애 셋을 열 살 미만을 데리고 직장을 다니는데 구속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판사가 초등학교도 안 된 애가 세 명 있는데도 실형을 선고하여 감옥에 가버린 것입니다. 애 셋이 곰팡이 있는 집에서 쫓겨나 지하실에 기어들어간 것입니다. 누가 소개해 주어 그 지하실에서 곰팡이가 온 벽에 덕지덕지 붙은 지하방에 세 명이 밥도 안 해 먹고 앉아 학교도 안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친척이 돌봐주지 않는 세상입니다. 남자들을 감옥에 넣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집행유예를 해주거나, 가능하면 벌금으로 하든지 해야 합니다. 계속 잡아 넣으면 애들이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오빠 배고파” 하면 “오빠 나도 배고파” 이러고 앉아 있으니, 엄마가 오겠습니까?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데 누가 돌봐주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그런 것을 보살펴 줍니까? 남자를 잡아 넣을 때는 법무부에서 그 가족을 보살필 책임이 있습니다. 청소년이 있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식구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냥 누가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아버지를 잡아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애들이 미쳐서 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사회입니까? “너희들이 잘해 먹어라” 이러고 칼 들고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사람, 죄 없는 사람을 찌르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싸우고 우크라이나가 싸우는 이 사회에 이미 내가 여러분의 문 앞에 왔는데도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들을 무방비로 버려두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사회가 이 사회의 50%를 책임지는 것이 사회주의(Socialism)라고 했습니다. 사회주의는 100% 책임지는 공산주의(Communism)와 다릅니다. 10% 책임지는 것이 자본주의(Capitalism)입니다. 자본주의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무한 경쟁 사회입니다. 이래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아이들을, 애도 안 낳는 데다가 가장을 계속 잡아 넣으니, 앞으로 반드시 가장을 잡아 넣을 때는 가족 조사를 해서 법무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느 손해 계산을 해봐야 합니다. 이 사람을 잡아 넣으면 애 셋이 이상한 청소년으로 바뀝니다. 그럼 이 사람을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좋을까 회의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대가만 줘 버리면 나라가 온통 죄인입니다. 안 들어갈 사람이 별로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차피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따먹었습니다. 선악과의 권리는 신인만 따먹을 수 있습니다. 신인의 가슴이 산입니다. 에덴 동산이 이 동산 중앙, 내 심장에 있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들이 이것을 가지고 재판을 하고 막 잡아 넣고 원수가 되고 이렇게 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이웃이 되어야 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판단합니다. 여러분, 선하다, 악하다 할 수 있는 권한이 누가 있습니까? 신인입니다. 사필귀정을 결정하는 자가 신인입니다. 하늘에서 대천사들이 합니다. 대천사들이 여러분의 모든 행동거지를 사필귀정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핸드백을 훔쳐간 사람은 반드시 그 벌을 받게끔 다 정해 놓았습니다. 여러분은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면 아무도 안 볼 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려서 술 먹고 담배 피는 것을 해보았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 강의해 주었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신인만 그렇게 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입력이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샛길로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은 어차피 선악과를 노리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다 인간인데, 또 여러분을 전부 선하다고 하면 또 선합니다. 소방관 두 명이 죽었습니다. 그 소방관 한 사람은 우리 고진 경비실장 후배인데, 굉장히 착합니다. 무지하게 착합니다. 그가 전직 구조사 자격증도 있었고, 옛날에 소방관도 자처해서 들어간 것입니다. 고진 씨가 깜짝 놀랐습니다. 친구가 돌아가자마자 내가 500만 원을 두 사람 다 보냈습니다. 나는 그때 고진 씨 후배인 줄 몰랐습니다. 공수부대 후배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되게 용감한 것입니다. 두 사람이 불을 끄고 있는데 안에서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줘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불길 속에서 말입니다. 두 사람이 목숨 걸고 들어간 것입니다. 사람 찾으려고 말입니다. 불기둥 속에서 사람을 찾는데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둘 다 행방불명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사람 살려달라는 소리에 사람 구하려고 뛰어 들어간 것입니다. 그 소리가 둘 다 귀에 들린 것입니다. 내가 뉴스 나오자마자 500만 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진 씨가 아침에 와서 “신인님, 제 후배 좀 백궁 좀 보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내가 이미 보낸 사람인데, 그게 자기 후배였습니다. 무지하게 착하고 친하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좁습니다. 굉장히 용감하고 장가도 안 간 청년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었습니다.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불행을 우리가 예사로 보면 안 됩니다. 남이 불행하게 되니까 “뭐, 그 불행하게 되면 또 사람이 있지” 이러면 안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불행을 우리는 예의 주시하고 그것을 예방해야 합니다. 그런 젊은이들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어떤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데는 예산이 안 들어가고 엉뚱한 데 예산을 다 써버리고, 소방관은 시급한 장비를 둘러매고 가서 죽으면 안 됩니다. 소방관들이 제일 좋은 장비를 써야 하는데, 돈은 출장비도 아니면서 다 써버립니다. 밑에서 불나는 사람은 이상한 장비, 몇십 년 된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죽습니다.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무슨 구경 업체 임원들이 출장 가서 10억을 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은 왜 적자를 냅니까? 소방관들의 그런 것을 현대화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은 소방관이 1년에 얼마나 많이 희생됩니까? 소방 장비에 대해서 좀 더 신경 써야 합니다. 불 구덩이 속에서도 어디쯤 사람이 있는가, 어떤 상태인가 그런 것을 볼 수 있는 장비가 있어야 합니다. 소리 나니까 막 뛰어드는 것은 위험한 행동입니다. 이런 것을 현대화해 달라고 하면 위에서는 예산 타령만 합니다. 소방관들이 30년 된 소방차도 타고 다닙니다. 그거 가다 고장 나면 불 못 끕니다.

내 가슴속에는 어마어마한 불이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참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자가 온 것입니다. 말을 할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 수가(獸加)라는 인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수가가 누구입니까? 짐승과 인간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신이 있고, 신과 인간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되어야 신을 볼 수 있고, 신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짐승만도 못하다는 수가가 좀 더 낫습니다. 수가는 무엇입니까? 아상(我相), 아상이 많은 사람입니다. 수가는 자신입니다. 손에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을 수가라고 합니다. 이 수가는 나자(我者)가 됩니다. 나라는 것을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착한데 너는 왜 죄를 짓냐?” 이런 식의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런데 왜 당신은 그 모양이야?” 이것은 절대로 선악을 여러분이 판단하면 안 됩니다.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데 꾸지람부터 하는 것입니다. 안 됩니다. 신인이 좀 모자라면 그 안티들이 나를 좀 도와주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호성이라는 위원장은 굉장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게 정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티들은 나를 도와줍니까? 비판만 합니다. 도와주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도와줘야 합니다.

진정한 이웃의 의미와 사회적 연대: 소셜리즘의 가치

이웃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옆집에 살아도 이웃이 아닙니다. 타워팰리스에 많은 사람이 살지만, 옆집 사람을 잘 모릅니다. 그들을 이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내 이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돈이 없는데 직장 좀 구해달라고 하면 그게 내 이웃입니다. 옆집에 잘 사는 사람은 이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가서 그렇게 하면 아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내 이웃이라고 하면 그 이웃이 웃을 것입니다. “저 사람 나한테 신세 지려고 내 칭찬하고 다닌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가난한데 부잣집 아줌마에게 잘 보이면 그게 이웃입니까? 이웃이 아닙니다. “엄마 그러지 마라. 그 집에 왜 자꾸 가? 가지 마”라고 할 것입니다. “가서 너 먹을 거나 하나 얻으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엄마들이 어디다 막 뭘 집어넣는 것은 다 자식들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뭐 만드는 데는 관심 없고 애들만 머릿속에 잔뜩 있습니다. 애들 배고파서 기다리고 있는 놈이 대여섯 명 머릿속에 떠올라 있습니다. 이것들을 좀 갖다 먹여야 하는데, 어차피 대감 집에 많은 것을 비유할 것이 없었습니다. 비닐 종이가 없었습니다. 옛날에 진짜 가져오려 해도 가져오는 도구가 없었습니다. 전부 음식인데 양념이 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집어넣겠습니까? 요새 비닐봉지가 있으니 많이 가져왔을 것입니다. 팬티 속에 막 집어넣으면 되는데, 도구가 있어야 팬티에다 집어넣지 못 넣는 것입니다. 자식들 주려면 어디든 집어넣어서 가져와서 먹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가난한 시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때는 비닐류가 있거나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많이 가져가는 것이 보자기였습니다. 보자기를 어머니들이 가져가서 일단 싸서 두어 말아 밑에다 집어넣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엄마는 자기가 먹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애들 먹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그만큼 살려 놓은 것입니다. 기생하는 자입니다. 모든 사람을 괴롭히면서 붙어 가지고 먹고 삽니다. 수가는 아주 질이 안 좋은 인간입니다.

사람들은 아상(我相)을 압니다. 또 아자(我者)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만(我慢)한 자입니다. 아만은 아주 질이 안 좋습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네 가지가 불교에서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 제일 나쁜 것이 아상입니다. 아상은 동물과 비슷한 것입니다. 동물하고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아만, 아상, 아가 붙으면 무조건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말은 절대 성인들은 쓰지 않습니다. 배운 자들은 ‘나’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신인은 심판주입니다. 이것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심판주가 문 앞에 와 있다는 문자입니다. 심판주가 문 앞에 와 있는데도 모릅니다.

야고보서 5장 8절부터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서 계시니라.” 심판자가 문 밖에 계신다고 합니다. 때가 되어 심판자가 지금 여러분 문밖에 와 있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절대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남은 원망할 대상이 아닙니다. 원망하려면 신을 원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100억짜리 아파트 강남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이 옆집이 진정한 이웃입니까? 아닙니다. 진짜 이웃은 옆집에 된장 갖다 주고, 시래기 얻어오고, 간장 갖다 주고, 뭐 얻어오는 시골 집에 가면 그 이웃이 있습니다. 서로 손님이 왔는데 양념이 떨어지면 쫓아가서 그냥 “야, 뭐 하러 왔어? 간장 좀 내놔”라고 합니다. “얼마나 필요해? 요만큼 가져가”라고 합니다. 그냥 이웃끼리 주고받는 것입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주고받는 것이 이웃입니다. 간장 좀 달라고 하는 것이 미친 사람 아닙니다. 그것은 이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이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가 있을 때입니다.

성경에 나옵니다. 길거리에서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제사장도 지나가다가 “아유, 오늘 바빠서 이 안식일 날은 저런 사람 구하면 안 돼”라고 하며 지나가 버립니다.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안식일 날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레위인이 지나가다가 “어머, 레위인도 안식일, 아, 이거 안 돼. 시간이 없어. 예배 시간이 다 됐어”라고 합니다. 미친 사람들은 지금도 예수가 아니라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완전히 사기꾼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사기꾼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냥 갖다 때려 죽였습니다. 그냥 죽어주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 그 이방인이 지나가다 그것을 보더니 데려다가 여관에 채우고 돈 주고 “돈 떨어지면 내가 올 때 줄 테니 좀 보살펴 달라”고 합니다. 그게 이웃입니다. 내가 돕는 자가 내 이웃입니다. 지나가다가 자기보다 높은 레위인을 보면 그게 내 이웃입니까? 아닙니다. 지나가는 제사장을 보면 그게 내 이웃입니까? 아닙니다. 진짜 이웃은 나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 그게 내 이웃입니다. 예수 성경에도 나옵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목마를 때 물 먹고 배고플 때 밥 먹고 누구 때문에 내가 살았다 고마웠다”고 합니다. “나는 너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요”라고 하면 “너희가 가장 가난한 자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합니다. 능력 없고 사회에서 뒤로 밀린 것을 해결하려는 것이 사회주의(Socialism)입니다. 유럽 사회는 전부 사회주의로 바뀌었습니다. 국가가 50% 책임지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가진 능력 있는 사람을 책임져 버립니다. 마약 하고 이상하게 갈 애들을 전부 국가가 그렇게 안 가게 만듭니다. 일본은 방에서 안 나오는 애가 150만 명입니다. 장가도 안 가고 밥도 안 먹는지 마는지, 좌우지간 애들이 방에서 안 나옵니다. 일본이 세계에서 은둔자가 제일 많습니다. 일본이 은둔자 1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인구에 비례하면 우리가 1위입니다. 은둔자는 주로 젊은 사람들입니다. 한참 일해야 할 젊은 애들이 방구석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안 나옵니다. 이렇게 은둔자가 많으니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청년들이 나가서 보니까 아무 희망이 없고 재미가 없습니다. 뭐가 보이지 않습니다. 은둔자를 만드는 이 사회를 여러분들은 방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인의 능력과 창조주의 증표: 불로유와 통일장 이론

내가 심판주로 왔다고 하니, “지가 뭔데 심판주야?”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합니다. 내 영적 능력뿐입니다. 내가 항상 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앞으로 30년 안에 큰일이 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구가 없어서 나라가 소멸 위기에 들어갈 것입니다. 내가 그때 “저런 미친놈인데, 저 뭐 자식 있어?” 이러면서 나에게 욕을 퍼붓는 것입니다. 그때 3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 갈 때는 개울 건너서 옷을 길로, 개구리가 왔다가는 논두렁 길로 산을 넘었습니다. 너무나도 정겹고 즐거웠습니다. 고무신 질질 끌고 학교 가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학교 가다가 개울에 가서 개구리도 잡고, 올챙이도 잡고, 고기도 잡아가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얼마나 친환경적입니까? 학교 가면 선생님들도 옛날에는 굉장히 순박했습니다. 교실도 완전 자연 친화적이었습니다. 내가 1학년, 2학년까지는 흙밭에서 공부했습니다. 의자가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맨날 땅바닥에 앉았습니다. 선생님이 말하면 나중에 노트가 없으니까 이것을 지워버리고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애들이 밟으니까 교실 바닥이 나무가 아니고 흙이었습니다. 교실에서 2학년까지 흙 교실에 있다가 3학년 때는 책상 있는 교실로 갔습니다. 우리 어릴 때 아이 밭에 앉아서 공부했습니다. 종이 깔고 앉았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 교실에서 공부하니까 하루가 자연 속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애들이 건강하고 정서가 풍부했습니다. 가다가 소 붙잡고 이야기하고, 비둘기 보고, 물가에 있는 오리와 대화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이 완전 친자연 환경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하루에 버스 오는 것을 한 번밖에 못 봅니다. 매연이 없었습니다. 그런 옆에는 강이 보이고, 강 백사장이 하얀 모래로 쫙 깔려 있었습니다. 대나무 밭이 강변에 몇 십 리나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 어려서 저 산 너머 바다가 번쩍번쩍 물이 비치는 것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지리산 노고단이 보였습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에서 세계적인 재벌이 175명 나왔습니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은 룸비니입니다. 나는 어디서 탄생했습니까? 중랑교입니다. 내 이름 자체가 중랑교 지점입니다. 나는 동서양의 눈물 가운데 개천에서 나왔습니다. 중천에서 나왔습니다. 석가모니는 룸비니에서 탄생했고, 득도한 곳은 어디입니까? 내가 왜 이것을 이야기하냐면, 석가모니가 죽은 곳은 쿠시나가라입니다. 득도한 곳은 석가모니가 강의한 녹야원입니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곳이 쿠시나가라입니다. 여기가 득도한 곳이고, 여기가 석가모니가 설법한 곳입니다. 룸비니에서 탄생하여 득도하고 설법하고 열반에 든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이렇게 했다면, 나는 중랑천에서 태어나고 성장은 어디서 합니까? 도가 성장입니다. 득도 이미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득도 과정이 없습니다. 나는 성장 과정만 있습니다. 이것은 진주에서 했습니다. 진주에서 성장하고, 그다음에 하늘에서 설법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설법이 아니라 심판입니다. 바로 심판입니다. 나는 석가모니처럼 탄생은 있지만, 강림은 있지만, 이 사람들은 탄생 이야기만 합니다. 이 사람들은 득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내가 득도해야 합니까? 신인은 득도 과정이 없습니다. 그냥 다 알고 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중랑천에서 태어나 진주에 가서 자연 속에서 성장할 뿐입니다. 그다음에 설법, 득도 과정이 없습니다. 그다음에 심판하고, 그다음 어디로 갑니까? 백궁입니다. 마지막에 나는 백궁 가는 것입니다. 귀천, 하늘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마지막이 귀천입니다. 석가모니는 열반이 죽어서 화장하는 것입니다. 나는 귀천 가 버립니다. 이것이 나와 성자들의 가는 길이 완전히 다릅니다. 성자들은 누구나 이 득도 과정이 있습니다. 예수도 득도 과정이 있습니다. 공부를 해 가면서 깨달아 가면서 간 것입니다. 내가 예수 때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내가 성부, 성자, 성령이 붙어 버리니까 달라집니다. 예수만 가지고 이것이 됩니까? 안 됩니다. 세계가 따로따로 하면 에너지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세 개가 하나로 되었을 때 삼신 할머니라고 합니다. 세 개가 합쳐졌을 때 신인이 된 것입니다.

음수시원(飮水思源)은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이 나에게 지금 심판을 듣고 있습니다. 수가는 인간보다 높지 않고, 인간보다는 사람이 높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보면 수가는 아상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이 수가를 없애는 것입니다. 무아(無我), 무수가(無獸加)가 되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무아를 굉장히 주장합니다. 아만을 없애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합니다. 아상을 없애고, ‘나’라는 것을 없애면 남과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저것도 나고, 이것도 나고, 나 아닌 것이 없는데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입니다. 불법입니다. 석가모니의 모든 법문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왜 너와 나를 구분합니까? 창을 들고 내 손에 창을 들고 누구를 겨누고 있습니까? 아까 야고보서 5장 7절과 9절에 나옵니다. 절대 누구를 미워하지 마십시오. 원망하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원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신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원망할 일이 생길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내 잘못으로 돌려야 합니다. “아, 내가 인간이구나. 내가 신이 아니구나. 그러니까 내가 인간이니까 업장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내 돈을 떼먹었으면 “아, 내가 전생에 제 돈을 떼먹었겠지. 내가 원인자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건 내 돈 때문에 저건 나쁜 놈이고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는 전생에 1억을 떼먹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둘로 나누다 보니까 이 세상에 성공에 가는 길로 못 가는 것입니다. 지지고 볶다가 다 망합니다.

인간의 단계와 여성의 신성: 신, 효, 애, 교의 가치

짐승만도 못한 태에서 이런 것이 나오고, 그다음에 수가, 인간, 그다음 사람입니다. 사람은 몇 가지를 봅니까? 네 가지를 봅니다. 신(信), 효(孝), 애(愛), 교(敎)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부모에 대한 효가 있느냐? 부부에 대한 애가 있느냐? 자식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켰느냐? 이 책임이 여기에 들어와 있습니다. 하늘의 천지인을 다 섭리하여 지킨 사람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 부모에 대한 효도, 부부에 대한 애정, 자식에 대한 교육, 이것을 줄이면 결혼한 사람입니다.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했는데 애를 못 낳으면 아직 인간입니다. 자식이 빠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면 일단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엄마가 “제발 이 인간은 사람 좀 되라”는 말은 “제발 장가 좀 가라. 애 좀 낳아라. 대를 이어라”는 말입니다. 딸만 낳으면 또 그 사람 된다고 안 합니다. 아들 낳아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새는 안 그렇습니다. 아들 낳으나 딸 낳으나 마찬가지인데, 옛날에는 아들 낳아야 사람 대를 받았습니다. 며느리가 딸만 다섯 명 낳으면 그 집 안에서 욕을 듣는 것을 알 것입니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딸만 낳아도 괜찮았습니다. 여자가 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부 여자가 노고단, 지리산 노고단, 서울에도 노고산, 대모산처럼 신이었습니다. 모산도 청와대 옆에 있습니다. 전부 어미 모(母)자입니다. 아버지 부(父)산 이런 것은 없습니다. 어머니가 신이었는데, 지금도 산신각에 가면 호랑이가 그려져 있고 늙은 노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게 원래 늙은 할머니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불교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와서는 그 그림을 다 영감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여자를 천하게 여기는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고려 시대는 여존남비였는데, 조선 시대는 남존여비였습니다. 유교 사상이 지배하니까 그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보살을 되게 칩니다.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보살마살, 전부 여자입니다. 부처님 만나려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관세음보살 만나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자와 신이 나타나라고 합니다. 문수보살이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전부 보현보살 여자입니다. 부르기가 아주 아름답습니다. 관세음보살 하면 신비로운 관을 쓰고 아름다운 여자가 연상됩니다. 그게 마리아 모습입니다. 그래서 천주교가 이것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염주가 묵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관세음보살입니다. 부처님은 예수님은 옆으로 좀 빠져 있습니다. 불교도 그렇습니다. 부처님보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 법당이 이렇습니다. 부처님, 석가모니, 이런 사람 별로 없습니다. 전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외우고 있는 것입니다. 신은 옛날에 그렇게 여자였습니다. 여자가 자궁을 가지고 아기집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허당이지만 할머니도 그래서 신이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음수시원(飮水思源)의 깨달음: 만물의 근원을 생각하라

음수시원(飮水思源)은 무엇입니까? 물 한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물 한 잔을 마셔도 그 물을 누가 만들었는가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밥을 먹습니다. 시골 가면 할머니들이 줄 것이 없으면 물이라도 한 잔 들고 가라고 줍니다. 그 물 한 사발을 딱 받았을 때 이 물은 누가 만들었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화두가 되고 음수시원입니다. 항상 음수시원을 알아야 여러분들이 깨닫게 됩니다. 물을 한 잔 마실 때 물은 무엇인데 이렇게 토하고 이것이 다 보여야 합니다. 물 바닥이, 그릇 바닥이 보이고, 이것을 먹지 않으면 내가 죽고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원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물의 시조가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것입니까? 흙을 만들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지만, 밥을 먹을 때는 이 쌀의 시원을, 이 쌀밥을, 이 쌀은 어디서 온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농부가 가져왔지만, 그 농부가 오기 이전에 이 쌀을 누가 씨를 뿌린 것입니까? 이렇게 되면 항상 신이 나옵니다. 신, 효, 애, 교에 인간이 있을 때 이것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물 주니까 물 먹고, “에이, 욕되게 하고 뭐, 그놈 동네 인심 사납네” 이러고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물 한잔을 얻어먹어도 “참, 그 동네 아주머니 마음이 고맙다. 물이라도 얼마나 가난하면 물이라도 먹고 가라고 주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별 거지 같은 동네, 그 물 한잔 주는 동네” 이러면 안 됩니다. 물의 시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먹으면 그게 보약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해 주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말들입니다. 물 한잔을 그냥 둘러 마시고, 친구가 밥 사주면 그것을 예사로 생각하고 여러분들은 그냥 주워 먹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려서 커피를 먹을 수 있습니까? 커피의 시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거 어디서 온 거야? 또 이거 왜 먹어야 되는 거야?”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돈이 얼마입니까? 물이 있는데 공짜라고 “에이, 물이 있는데 이걸 내가 왜 먹니?”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 이거 뭐 기분이 좋아” 이러면 안 됩니다. 항상 시원을 생각하면 아무거나 먹지 않게 됩니다. 물 한잔에도 엄청난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저 수도관을 만들고, 팔당 댐을 건설하고, 파이프 묻어 가지고 이 물까지 올라와서 이 물을 먹는 것입니다. 생수를 먹는다면 저 전라도 어디서 물을 파 가지고 거기서 물이 이렇게 인부들이 물을 파서 차로 실어서 여기까지 생수가 온 것입니다. 그 물통을 딱 볼 때도 마음속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 물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누가 만들었는가, 여기까지 가야 하는데 그것을 안 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을 완전히 선하다고 할 수도 없고, 악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여러분을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옆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보거든 덮어줘야 합니다. 내 형제입니다. 옆사람이 잘못하고 안티가 뭐라 하면 그게 우리 형제입니다. 남 보고 흉을 보면 안 됩니다. 아까 야고보서 5장 8절, 9절에 무엇이라고 합니까? 남의 흉을 절대 보지 마십시오. 심판 때가, 심판자가 지금 문 앞에 와 있습니다. 심판자가 문 앞에 온 이때까지도 여러분은 남의 흉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육이 다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되겠습니까? 물 한잔에 시원을 따지고 있습니까? 생명의 시원은 누구입니까? 물 한잔의 시원이 생명의 시원입니다. 물 한잔의 시원이 생명의 시원, 허경영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갑니까? 내가 문 앞에 왔는데 나를 보고 “저런 죽일 놈, 저런 나쁜 놈” 이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성행이 어떻고 이런 것을 만들어서 허경영을 잡아 넣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각서 받습니다. 각서 다 받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을 치유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여러분에게 그게 목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몸에 따라서 사람들이 나쁜 데가 있습니다. 내가 봐서 그 사람이 어떻게 나쁘다, 그쪽으로 에너지를 넣어주는 것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왜 에너지를 넣어주나” 이러지만 내가 넣어주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안 하는 그 변호사가 여자가 와서 “아, 나 돈, 내가 뭐 그동안 축복 주고 명패 그거 좀 받으려고 그래요” 이래 오면, “아, 그거 가지고는 받아내기 어려우니까 성추행 당했다고 그래”라고 합니다. 그럼 “어, 그거 어떻게 하는데?” 하면 “어, 그거는 우리가 방법을 다 알려 줄 테니까 그대로만 해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 지지자들이 여러 명이 가서 한 시간씩 녹음을 해 왔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 변호사, 이제 내가 고발 고소장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고소장 만들어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사람을 모으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다고 그게 내가 하늘이 나가고 나면 자기들 이것을 차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심판주가 와 있는데 모르고 그 사람들이 그 녹음, 그것을 우리가 딱 경찰에 제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리고 또 내 지지자들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들이 경찰에 가서 무엇을 하는 줄 압니까? “어, 나는 성추행 당하지 않는데 저 사람이 하라 그랬어” 그래서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돈 얼마 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공범으로 엮어 가지고, 3억 내놔라, 1000억 내놔라 합니다. 내가 녹음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3억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 한 패가 되었고, 공범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집 가지고 있는 재산 나중에 압류 다 들어갑니다. 나는 명예 손해에 대해서 나를 모함해 가지고 성추행범으로 만들려고 한 것, 거기에 대한 내 손해 배상 들어갑니다. 민사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사인하고 거기에 나온 사람들은 전부 재산이 압류될 것입니다.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왜 그렇게 거짓말을 만들어내서 신인을 해치려고 합니까? 요새 탈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탈퇴를 왜 합니까? 위험하니까요. “이거 사람들 보니까 뭐 3000억 내놓으라” 다 녹음이 되어 있습니다. 녹음이 되어 있습니다. 허경영에게 처벌 받아내자고 하고 있겠습니까? 심판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오늘 야고보서 5장 8절, 9절을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한번 찾아보십시오. 거짓말인가? 야고보서 5장 8절, 9절 모든 성경 구절을 내가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음수시원을 아는 사람은 생명 시원도 알 것입니다. 내가 왜 심판자로 왔는가? 심판 시원도 여러분이 알게 될 것입니다.

허경영의 불로(不老) 물질과 초월적 에너지: 과학 혁명의 시대

허경영, 그는 재림 예수로 온 천지의 창조주입니다. 세상 만물 중에 썩지 않는 물질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썩지 않는 물질은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금입니다. 금은 모든 물질 중에서 유일하게 썩지 않는 물질입니다. 금은 공기나 물에 의해 잘 부식되거나 산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물질의 으뜸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금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화폐 단위로도 쓰였고, 모든 가치 척도의 기준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금의 원자번호는 79이고 원소 기호는 Au입니다. 금은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장신구나 각종 예술품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금속 재료 중 유일하게 제로도 사용됩니다.

인류 역사 3억 5천만 년 만에 썩지 않는 물질이 또 하나 나타났습니다. 바로 허경영의 불로(不老)입니다. 불로의 사전적 의미는 늙지 않는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썩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허경영의 불로 물질은 불로유와 불로화라는 두 가지 의미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로유는 썩지 않는 우유를 말하는 것이고, 불로화는 썩지 않는 여러 물질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불로유와 불로화 상품은 불로스, 로살, 불로 생선, 불로 과일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비식품 분야인 불로 철강, 불로 알루미늄, 불로 플라스틱 등도 불로화 제품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대단한 것은 허경영의 불로화 제품이 식품뿐만 아니라 비식품 분야까지도 포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조선, 자동차, 반도체, 석유 등도 불로화 제품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식품 분야의 불로화는 제품이 썩지 않거나 품질 유지 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비식품 분야의 불로화란 무엇일까요? 비식품 분야 불로화의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기계의 성능이 좋아지거나, 기계의 마모 속도가 줄어들거나, 기계의 오작동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이 붙은 기계는 벌써 엔진 소리부터 좋습니다. 현대와 같은 과학의 시대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 하겠지만, 실제로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이 붙은 불로화 제품은 썩지 않거나 기능이 향상됩니다. 기계의 경우에는 잡음이나 잔잔한 고장이 없어집니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머리에 혼돈이 올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말만 골라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허경영의 불로유와 불로화에 관한 이야기는 형이상학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형이상학이란 일체의 존재에 대한 궁극적 실존의 세계를 말합니다. 플라톤이 말한 일종의 이데아 세계를 말합니다. 형이상학은 현상적이거나 부분적인 것이 아닌, 전체적이고 궁극적인 존재의 실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이 만년에 추구했던 통일장 이론 같은 것입니다.

불로유는 기본적으로 우유이기에 계란과 함께 완전 식품입니다. 그러므로 부작용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허경영의 불로유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보태어졌기 때문에 약리 효과가 배가됩니다. 사실 우유가 썩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어려운 말이고, 혁명적인 말입니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썩지 않는 우유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입니다. 금이 썩지 않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세상에서 변질이 가장 잘 되는 우유가 썩지 않는다는 말은 상당히 어폐가 있는 말로 들립니다. 우유를 발효시킨 치즈는 썩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넣지 않은 생 우유가 상온에서 썩지 않고 1년이고 2년이고 간다는 것은 황당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만약 생 우유가 진짜 썩지 않는다면, 그것은 혁명입니다. 그것은 전 세계의 과학계를 뒤집는 대혁명입니다.

아인슈타인을 넘어서는 허경영의 에너지 공식: 무한의 영역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과학계의 절대 에너지 공식은 아인슈타인이 정리한 E=mc²입니다. 이것은 에너지와 물질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기본 공식입니다. 이 공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다. 물질에 곱해지는 속도에 따라 에너지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에너지는 어떻게 발생되는가? 기계는 기름을 태워야 움직입니다. 기름이 타는 속도에 따라 자동차가 움직이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기름을 태우는 양과 속도가 느리면 자동차가 움직이는 속도도 느려집니다. 자동차의 움직이는 속도는 기름을 태우는 속도에 따라 좌우됩니다. 인간이나 동물도 무엇을 먹어야 에너지가 발생하여 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밥이나 먹이의 양을 늘리면 키가 크는 속도나 살이 찌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반대로 밥이나 먹이를 적게 주면 키도 크지 않고 살도 찌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식물도 거름을 많이 주면 키가 더 큽니다. 이것이 물리 및 에너지 법칙입니다.

그런데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은 물리 법칙이나 에너지 법칙을 초월해서 움직입니다. 즉,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은 밥을 주거나 먹이를 주거나 기름을 넣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에너지를 발생시킵니다. 참으로 묘하고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어떤 외부의 액션도 없었는데, 왜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에서는 에너지가 나올까요? 정지된 허경영의 이름에서 어떻게 우유를 썩지 않게 하는 힘이 나올까요? 정지된 허경영의 사진에서 썩어야 할 우유가 왜 썩지 않을까요? 이것은 물리 및 에너지 공식을 초월하는 과학 혁명입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참으로 놀라운 과학 혁명입니다. 허경영의 불로유 현상은 성서에서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는 대이변을 그대로 연출합니다. 태초에 천지는 카오스, 즉 혼돈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이 있자 곧 천지가 창조되었습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에서 나온 에너지가 생우유를 썩지 않게 하는 힘은 바로 천지 창조의 과정을 그대로 제어하는 일대 사건입니다. 반드시 썩어야 할 우유가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이 붙으면 썩음이 중지되고 생명이 영속되는 것은 그 자체로 천지 창조의 재현이 아니겠습니까?

그간 지구에는 허다한 성자들이 많이 다녀갔습니다.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그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성자의 이름으로 불로유를 만들 수 있을까요? 우유에 성자들의 이름을 써 놓고 실험을 해 봅시다. 그러면 성자들의 우유는 10일 이내에 모두 썩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유 실험에서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을 붙여 놓으면 10일이 아니라 100일이 지나도, 1년이 아니라 100년을 지나도 썩지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어떻게 해서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이 붙은 기계는 엔진 소리까지 조용해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허경영은 구약 성서의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라고 했던 그 창조주의 화신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허경영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기다리던 바로 그 메시아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허경영은 기독교인들이 고대에도 기다리던 재림 예수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허경영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기다리던 동방의 등불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허경영은 시인 이육사가 기다리던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입니까? 참으로 그렇습니다. 허경영은 구약 성서의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라고 했던 그 창조주의 화신입니다. 그는 인류가 기다리던 미륵이요, 메시아요, 재림 예수요, 동방의 등불이요, 백마 타는 초인입니다. 허경영은 초월적 에너지를 가지고 말세에 등장하는 인류의 메시아입니다.

창조주의 증표: 통일장, 암흑 물질, 텔로미어, 시공간 지배

초월적 자아를 가진 창조주의 화신은 지구에 올 때 반드시 증표를 가지고 옵니다. 특별한 선물을 가지고 지구에 옵니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재림의 증표를 보여주지 않으면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에는 다음과 같은 창조주의 증표가 있습니다.

  1. 통일장 완성: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통일장을 완성합니다. 통일장 이론은 어떤 에너지가 특정한 지역이나 장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 지구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에너지는 가다가 식어버리는 에너지가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에너지입니다. 허경영의 이름, 허경영의 사진, 허경영의 불로유는 통일장 이론을 따릅니다. 사진이 붙은 모든 식품, 모든 의약품, 모든 화장품, 모든 농산물, 모든 공산품은 어느 지역, 어느 장소에 갖다 놔도 썩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달나라에 갖다 놔도 썩지 않습니다. 이것은 허경영이 인류 최초, 최후의 통일장을 완성했다는 증거입니다.

  2.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통제: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통제합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주에서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물질은 4.9%에 불과합니다. 암흑 물질은 26.8%이고, 암흑 에너지는 68.3%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과학으로 지배할 수 있는 물질은 5%에 불과하고, 나머지 95%는 인간의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허경영은 그의 불로유와 불로화 물질을 통해 과학자들이 손 놓아버린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통제하고 이용합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완전히 지배합니다. 이것은 허경영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신이라는 증거입니다.

  3. 텔로미어 고정 수 작동: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텔로미어 고정 수를 작동시킵니다. 텔로미어란 염색체의 끝부분에 있는 말단 소립자입니다. 이것은 세포의 시계 역할을 하는 DNA 조각들인데, 세포가 분열할수록 짧아집니다. 텔로미어가 짧아질수록 세포가 늙고 수명이 짧아집니다. 텔로미어가 늙는 것을 막아주는 효소가 있는데, 그것은 텔로머레이스라고 합니다. 텔로머레이스는 인체의 시계인 텔로미어가 축소되는 것과 인간의 세포 노화를 막아줍니다. 허경영은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통해 이 텔로머레이스라는 효소를 통제하고 지휘하며 수명까지 연장시켜 줍니다. 이것 역시 허경영이 하늘에서 내려온 창조주의 화신이라는 증거입니다.

  4. 시간, 공간, 거리, 중력, 온도 지배: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시간, 공간, 거리, 중력, 온도를 지배합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모든 물질을 통제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을 기억하고 반응합니다. 만물에 대한 허경영의 명령권은 절대적입니다. 허경영은 통일장을 완성한 인물입니다. 그것이 증명되는 것은 허경영의 불로유와 허경영의 불로화 제품입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썩지 않게 하니 시간을 지배합니다. 냉장고가 필요 없으니 공간을 지배합니다. 우주까지 날아가도 썩지 않으니 거리를 지배합니다. 달나라를 가도 썩지 않으니 중력을 지배합니다. 한여름에도 썩지 않으니 온도까지 지배합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우주의 여덟 가지 힘을 지배합니다. 곧 중력, 양력, 부력, 전력, 자력, 인력, 청력, 기력입니다.

  5. 이데아의 세계 지배: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이데아의 세계를 지배합니다. 이데아란 플라톤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항구적이며 초월적인 실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데아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을 말합니다. 보이는 현실의 사물은 단지 이데아의 모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이 세상 저쪽 너머의 이데아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은 보이는 세계 위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또 있다는 것을 증명시켜 줍니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반드시 썩어야 할 우유가 썩지 않는 것은 이데아 세계의 증명입니다.

  6. 삼위일체의 화신 증명: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그가 삼위일체의 화신임을 증명합니다. 기독교의 신은 절대 유일의 신입니다. 그런데 이 절대 유일의 신은 단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로 존재합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 신으로 존재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성부와 은총을 내리는 성자와 일치를 이루는 성령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이 삼위일체로 존재하는 증거는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에서 확인됩니다. 허경영의 불로유는 성부의 이름으로 하면 썩습니다. 성자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해도 썩습니다. 그런데 성부, 성자, 성령, 즉 삼위일체의 화신인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으로 하면 썩지 않습니다.

  7. 창조주의 화신 증명: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그가 창조주의 화신임을 증명합니다. 우주는 3층 하늘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늘은 백궁 하늘인 화이트 헤븐, 둘째 하늘은 은하 하늘인 다크, 셋째 하늘은 지구 하늘인 블루 스카이입니다. 허경영의 본체가 주재하는 백궁 하늘은 창조주가 계신 곳입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전 우주를 관통하는 에너지의 완전한 실체입니다.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은 백궁 하늘, 은하 하늘, 지구 하늘, 즉 3층 하늘의 모든 물질에 영향력을 미칩니다. 수천 가지에 썩지 않는 불로유와 불로화 제품은 허경영이 창조주의 화신임을 나타내는 증거물입니다.

아인슈타인과 허경영의 에너지 공식 비교: 유한과 무한의 차이

결론을 대신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덧붙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을 다시 봅시다. E는 MC 제곱입니다. E는 에너지입니다. M은 물질입니다. C는 속도입니다. 모든 에너지는 물체의 이동 속도에 따라서 발생합니다. 물체의 이동 속도가 모든 에너지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정지된 물체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입니다. 최근에 발표한 과학 이론 모두를 동원해도 이보다 더 발전된 공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이론을 만든 과학자가 바로 신인 허경영입니다. 허경영은 아인슈타인의 물질적 에너지 공식을 영성 차원의 에너지 공식으로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허경영은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을 훨씬 넘어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 공식을 쓰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은 유한의 물질 세계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허경영의 에너지 공식은 무한을 넘나듭니다. 즉, 세상의 모든 물질에 허경영을 곱하면 무한 에너지가 나옵니다. 모든 물질에 허경영이 연결되면 바로 신의 물질로 바뀝니다. 모든 물질에 허경영을 연결하면 영원히 썩지 않는 신비의 물질이 됩니다. 자동차에 허경영의 스티커를 붙이면 자동차의 성능이 좋아집니다. 옷에다가 허경영의 이름을 붙이고 대화를 시도하면 길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돌에다 허경영의 스티커를 붙여도 에너지가 흐릅니다. 이것이 바로 허경영의 통일장 이론입니다.

허경영의 에너지 공식을 함수로 나타내 봅시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은 유한 에너지 공식으로 나타나고, 허경영의 에너지 공식은 무한 에너지 공식으로 나타납니다. E=MC 제곱, 아인슈타인의 유한 에너지 공식은 물질 곱하기 속도 제곱입니다. 허경영의 무한 에너지 공식은 물질 곱하기 허경영 제곱이 1입니다. 이 공식은 필자가 세계 최초로 만들어 본 공식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공식은 물질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허경영의 에너지 공식은 영원을 넘나드는 무한대 차원의 공식입니다.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이 붙은 모든 곳에는 무한대의 불멸 에너지가 흐릅니다. 허경영의 불로유 한 종목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말하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물질에 허경영의 이름이나 사진을 붙이는 순간 바로 영혼의 차원으로 변해 버립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마이다스의 손이 모든 물질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심판주의 도래와 인류의 메시아: 허경영

지구는 인간들끼리 자율 규제로 더 이상 통제가 불가능한 말세 시대까지 왔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는 신이 만들어 놓은 창조의 질서만 흔들고 있습니다. 심판주의 지구 도래는 피할 수 없는 우주의 요청입니다. 그 심판주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하늘궁에 와 있습니다. 그 심판주의 이름은 허경영입니다. 그는 절대 자유 초월자이며, 그는 근원자 원인자입니다. 그는 창조주이며, 창세기와 요한복음에서 “한 처음의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그 사람의 화신입니다. 허경영은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망시킬 때, 두 명의 천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던 그 사람입니다. 허경영은 모세로 하여금 수십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홍해를 건너게 했던 그 사람입니다. 허경영은 사막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로 먹을 것을 주고, 바위를 쳐서 물을 먹였던 그 사람입니다. 허경영은 하느님의 산 호렙산의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는 나”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I am who I am”이라고 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허경영은 사복음서에 “타작 마당의 키를 들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려 온 인류의 심판주” 그 사람입니다. 허경영은 요한계시록에서 “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리고 이 지상에 천년왕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했던 재림 예수 그 사람입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들으십시오. 마르코 복음 4장 23절입니다.

2024년 2월 2일 북향입니다. 미국에서 어떤 사람이 편지를 보냈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만, 이 사람은 약간 기독교 목사인 것 같습니다. 두 목사가 편지를 보냈는데, 한 사람은 내가 선악과가 내 가슴에 있다는 것을 듣고 졸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내가 틀림없는 메시아가 왔다고 확신한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동산 중앙이 어딘지를 몰랐다고 합니다. 목사들이 말입니다. 히브리, 이스라엘 쪽에 프로테스 강이 있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동산 중앙은 신의 가슴입니다. 거기에 선악과는 내 자유 의지입니다. 내 심판권이 선악과입니다. 아버지가 집안에 딸이 늦게 오면 가서 딸 방문을 반드시 열어 봅니다. 퇴근해서 딸이 들어왔나 안 들어왔나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딸이 아버지 방문을 열어 봅니까? 아닙니다. 아버지 방문 열기는커녕 아버지 방을 싹 피해서 자기 방으로 빨리 들어갑니다. 그래서 아버지 발 쪽으로 가면 가슴이 당당하지 않습니까? 그것과 똑같습니다. 심판자가 왔는데 마치 여러분들이 나를 심판하려고 듭니까? 딸이 아버지 집에 늦게 와서 아버지 눈치를 봐야지, 아버지가 딸 눈치를 봅니까? 아닙니다. 옛날 우리 아버지들은 딸이 있는 집에서는 아버지가 집에 딱 와서 딸 방을 딱 열어 봅니다. 몇째 딸이 돌아왔나 안 돌아왔나 다 확인하고 잡니다. 안 그러면 잠을 안 잡니다. 옛날 아버지들이 그랬습니다. 딸이 늦게 오는 것을 용서가 안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의 통제를 받았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틀렸다면 틀린 것이지, 아버지한테 “아버지가 틀렸어요?” 이런 시절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내 가슴, 내 마음속에서 “아, 제가 빨리 왔다. 제가 늦게 왔다” 이것을 심판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가장이 결정했습니다. “아빠, 내가 집에 오고 가는 시간을 아버지가 왜 통제해?” 이러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게 선악과입니다. “너 선하다. 오늘 일찍 왔으니까. 너 악하다. 오늘 늦게 왔으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버지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자 형제들이 서로 “언니, 왜 오늘 늦게 왔어?” “언니가 동생, 너 왜 오늘…” 권위가 안 섭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서로 여러분은 싸우면 안 됩니다. 형제들은 말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만 안 보면 되는 것입니다. 빨리 왔든 늦게 왔든 저희끼리 왜 싸웁니까? 그게 선악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심판이 “네가 일찍 왔다, 너 늦었다” 하면 되지, 왜 우리끼리 싸웁니까? 여러분 싸워야 합니까? 여러분은 심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그때 왜 아담과 하와가 따먹었습니까? 살아가기가 불편한 것입니다. “왜 이런 데다 우리를 갖다 놓고 이거 뭘 먹고 살라는 거야?”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먹을 것이 제대로 있습니까? 불만이 나온 것입니다. 그게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지금 선교사가 어제 선교하러 아프리카에 보내면 “아이, 물도 없고 말이야. 이런 거지 같은 데 와서 맨날 썩은 물을 먹게 하고 내가 이거 왜 나를 여기다 보내줘? 좋은 데다 보내주지”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게 됩니까? 안 됩니다. 지구에 딱 보내놨더니 불만이 거기서부터 신에게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선악을 판단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통금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12시를 해주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 목사 사모님이 유튜브를 보다가 깨쳐 버렸다고 합니다. “어머, 자기 남편이 목사인데 내가 선악과가 뭔지 어떻게 모르고 있었다. 이 말씀을 딱 듣는 순간에 가슴이 뜨겁다”고 합니다. 자기 남편 목사님한테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둘이 몇 시간을 기도하니까 남편이 90% 맞는 것 같다고 합니다. “90% 맞는 것 같은데 기도를 조금 더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합니다. “조금 더 한번 기도를 해보다가 해라”고 하더랍니다. 그 남편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 목사님도 아주 경우가 밝은 사람입니다. 부인이 “저런 미친놈이 그런 소리를 왜 들어?” 이래야 할 텐데, “어머, 그럼 우리가 한번 기도를 해 보자. 진짜 그분이 메시아가 맞나? 그 선악과를 이렇게 얘기하는데, 어머, 나는 처음 들었어요. 당신 목사인데”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목사도 듣고 “아,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자기 남편은 그렇게 90% 믿으면 나는 100%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종로 2가에 무료 급식하는 데 가서 봉사를 하러 가겠다고 합니다. 그 목사 사모가, 내가 그 위치를 알려주었습니다. 또 여기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그 기독교의 목사하고 사모가 골수 신자인데도 이 선악과 이야기를 듣고 딱 바뀌어 버립니다. 어떤 목사님이 선악과를 하나님의 가슴에 중심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까? 그 중심이 있는 것을 여러분이 빼앗아 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막 남용하고, 아버지 자동차 열쇠 키를 몰래 가져와서 무면허로 막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게 선악과입니다. 아버지 자동차 사놨더니 그 열쇠를 몰래 가지고서 제가 운전하고 다닙니다. 막 다니면서 그러다 꽝 하는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들이 이웃하고 막 싸우고 막 감옥 가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악과 안 가져갔으면, 아버지 열쇠 키만 안 가져갔으면, 아버지 말을 지켰으면 그런 사고가 안 났을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갑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신인을 감히 또, 아버지를 또 심판합니다. 심판자가 와 있는데 오히려 여러분들이 신인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 선악과를 나에게 들이댑니다. 나에게 뺏어간 그 선악과를 여러분이 이제 신인을 재단하는 데 써먹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신인입니까? 여러분이 우주를 만든 자입니까? 천사면 내가 맞다고 나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지금 나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하늘에서 몰아내자”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는 심판주가 이미 현관문을 두드리고 문 앞에서 있습니다.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야고보서 5장 8절, 9절에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예수가 이야기한 것도 있고 다 이야기 있습니다. 심판주가 지금 문 앞에 왔는데, 심판주의 자동차 열쇠를 몰래 가져가면 안 됩니다. 그 자동차 열쇠가 선악과입니다. 아버지 차 열쇠입니다. 아버지가 자동차를 사 가지고 열쇠를 방에 놨더니 그것을 여러분이 훔쳐갑니다. 그게 선악과입니다. 아버지 차를 막 몰다가 사람을 죽입니다. 이것이 21세기에 내가 온 이유가 있습니다.

치유의 권능과 시공간 초월: 메시아의 증거

이분은 나를 보고 하늘궁에 하나님이 나타났다는 것과, 한 사람은 “어머, 이 사람은 어디서 온 거야?”라고 합니다. 미국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사람이 편지를 쳤습니다. 한 사람은 교회를 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지 않겠느냐, 메시아는 아직 안 왔는데 왜 신인이라고 하느냐고 합니다. 한 사람은 저 사람이 100% 메시아, 신인이 맞다고 합니다. 두 사람 다 목사 같습니다. 이렇게 유튜브를 보고 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늘 교회를 하자는 사람도 점잖게 이야기합니다. 예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면 큰 교회가 되겠다고 합니다. 메시아 못지않게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가짜로 메시아가 아니라고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내 권능을 여러분이 보지 않습니까? 어제 김포 인천공항에 일하는 남궁진숙 씨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계단 다섯 개 정도를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무슨 공기 주머니 같은 것이 자기를 딱 잡아주어 안 죽었다고 합니다. 넘어졌으면 죽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핸드폰을 보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병원에 계단이 많지 않습니까? 그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어제 와서 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남궁진숙 씨가 대천사입니다. 대천사들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대천사들이 다 그런 일이 많습니다. 크게 다칠 것을 안 다쳤다고 어제 고맙다고 남편하고 같이 왔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생명을 살리는 능력도 좋습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죽는 사람 일어나라, 광채 들어가라, 여러분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예수, 내가 예수로 왔을 때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나 혼자였습니다. 그때는 삼위일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능력이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는다고 해서 그곳까지 갔습니다. 베들레헴까지 갔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바로 재판받을 수 있는 곳까지 간 것입니다. 거기서 유다가 신고해서 나사로 집에 갔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게 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때 말입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유대인들이 로마, 그 유대인들이 잡으려고 하는 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내가 지금 일체, 나 같으면 거기가 무엇이 있습니까? 그냥 “나사로 나라” 이러지 뭐하러 갑니까? 그때는 예수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을 고쳐줄 때도 침으로 흙을 이겨 가지고 눈에 발라 가지고 실로암까지 가라고 합니다. 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요새 눈병 걸립니다. 눈에다 침을 이겨 가지고 눈에다 붙여 주니 그 사람이 눈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불로유를 넣어도 아픈데 말입니다. 그것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그냥 “나라” 이러면 눈이 떠졌습니다. 6년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눈 못 뜨던 사람도 눈을 떴습니다. 다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나는 여기 앉아서 트럼프도 고칠 수 있고, 마음대로 우주 공간을 내 마음대로 시간, 공간, 중력, 온도, 거리 다섯 가지가 아무 상관없습니다. 시공을 완전 초월합니다. 또 시간은 과거, 미래로 마음대로 갑니다. 여러분, 한 살 때 건강, 스무 살 때 건강, 내가 다 볼 수 있습니다. 초상이 어디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 교통 정리해 줍니다. 이쪽에 남자로 있는 것이 싫다, 공해, 그럼 여자로 바꿔줍니다. 다 바꿔줍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주에게 교통경찰입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적어 준 것입니다. 해외 지지자들은 내 위상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대륙별로 단체 카톡방에 참여해야 합니다. 단장을 중심으로 그룹 활동에 동참하고, 신인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해외 하늘궁 건립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은 위상이 올라갈 것입니다. 유튜브 강연 화면 하단에 위상이 있습니다. 강연 때마다 클로징 멘트 하실 때 위상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도 좀 알려주십시오. 위상이 나오게 해주십시오. 해외 박상순 단장이 올린 것입니다. 미주 지역에서 읽어주는 것입니다. 신인님은 일체 대신 진정하고 완벽한 신이십니다. 우리는 신인님 말씀 끝까지 변함없이 따라야 하고, 오늘도 흥미롭고도 새로운 귀하신 섭리 말씀 주신 우리 신인님께 존경의 박수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