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0 I Have Sworn to Humanity: Unveiling the Divine Promise and the Roots of Global Conflict by Huh Kyung-young – March 9, 2024

신의 축복과 겸손의 미덕

오늘도 세계 최고의 명당인 성지 하늘궁에 오신 여러분과 토요 강연을 애청하시는 국내외 시청자 여러분께 신의 축복으로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신께서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구촌의 공존 공영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계십니다. 평생을 사회 소외 계층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해 오신 위대하신 신을 힘찬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여러분은 잠시 눈을 감아야 합니다. 눈을 감고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집이나 골방에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 가면 부인이나 남편이 신인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다투면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이 걸어온 길이 그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는 길은 그 길이 아니니 부딪히지 말아야 합니다. 길을 가다 자전거가 오면 피해야 하고, 차가 와도 피해야 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길을 피해 주지 않으면 젊은 사람이 피해 줘야 합니다. 산길이나 강변을 걷는데 좁은 길에서 누가 걸어오면 먼저 피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다. 좁은 길에서 서로 안 피하려고 부딪히면 안 됩니다. 악착같이 자신은 안 피하고 다른 사람을 내려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서로 안 피해주면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면 법정으로까지 가면 안 됩니다. 피해 주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장님이 걸어올 때 우리는 피해 줘야 합니다. 내가 눈이 안 보여야 신인이 한 번 더 생각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안 가지고 있는 것을 저 사람이 가지고 있다든지, 저 사람이 안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가지고 우월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눈을 못 본다면 모든 사람이 지팡이입니다. 여러분 눈이 안 보여 보십시오. 그때부터는 겸손해집니다.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요. 그러나 눈이 보일 때는 교만하고 방자해집니다. 신인도 안 무섭고 아무도 안 무섭습니다. 그러나 눈이 안 보여 보십시오. 그때는 “어머, 신인한테 가 봐야겠다. 내 인생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며칠밖에 못 살겠다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밖에서 만났는데, 차 안에 누워 있어 내가 가서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며칠밖에 못 살겠으니 마지막으로 신인을 한 번 보고 죽겠다고 했습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인 남자였고, 오늘 아침에 아내와 가족이 다 왔습니다. 그런 사람을 바라볼 때, 왜 나를 한 번 보고 죽고 싶어서 왔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이 굉장히 교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의 맹세와 인간의 교만

오늘 내가 강의하는 제목은 “내가 인간에게 맹세했다”입니다. 내가 인간에게 무엇을 맹세했을까요? 히브리서 6장 13절부터 16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눈을 뜨면 안 됩니다. 내가 왜 인간들에게 맹세했을까요? 이것은 구약입니다. 예수가 오기 전입니다. 히브리서 6장 13절부터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누구에게 맹세했습니까? 신이 누구와 맹세했습니까? 방금 읽었는데 모릅니까? 아브라함에게 복을 준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80살 때, 아브라함이 75살 때입니다. 모세가 나타났을 때,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 뭐라고 했을까요? “가까이 오지 마라”고 했습니다. “가까이 오지 말고 거기 그 자리에서 신발을 벗어라. 여기는 거룩한 땅이니 오지 말고 거기서 신고 있는 신발을 벗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기업을, 복을 주고 기업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 기업은 바로 모든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을 기업이라고 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형용사를 쓰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믿음이 최고로 뛰어나다”고 할 때, ‘최고’라는 말을 하나님 앞에 쓰면 안 됩니다. 인간에게 ‘최고’라는 말을 쓴다거나, ‘최고로 아름답다’거나, ‘최고의 상을 줘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인간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제가 우리 집에서 최고로 귀하다”고 하면 그 애가 제일 먼저 죽습니다. ‘최고’는 신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최고’를 붙이면 안 되는데, 여러분들은 늘 ‘최고’를 붙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켜보면 교만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전부 우상입니다. ‘최고로 컴퓨터를 좋아하면’ 그것도 우상입니다. ‘최고로 도박을 좋아하거나 마약을 좋아하거나’ 전부 우상입니다.

히브리어에는 ‘최고’라는 말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은 것은 인간 중에 최고로 깨끗했기 때문인데, 그 ‘최고’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표현합니다. 형용사를 명사로 씁니다. 그 사람들은 명사 플러스 명사를 씁니다. 우리도 그런 문화가 있습니다. “사람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고 이야기하지, “최고로 선하다”고는 안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눈을 감으라고 했지, 입을 다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가까이 오지 마라”고 이야기했지만, 아브라함에게는 “기업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80살에 모세가 와서 받는 대화와 아브라함이 받는 대화가 다릅니다.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그 기업이 적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큰 기업을 줬습니다. “내 자손이 저 하늘의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백 살이 되어도 애가 안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때 불려갔을 때가 75살 때입니다. 이때 하나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가 75살인데, 자기 친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100살에 애를 줬습니다. 25년이 걸렸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사랑하고 복을 주겠다는 사람도 25년이 흘러서 애를 줬습니다. 교만하지 말라고 줬는데, 결국 그걸 못 기다리고 이집트 여성 종에게서 애를 낳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계가 지금 아마겟돈 전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시작부터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도 1차, 2차, 3차 세계 대전 중입니다. 내가 50년 1월 1일에 왔을 때는 2차 대전이 끝난 지 5년 됐을 때입니다. 그리고 다시 3차 대전이 시작되는 해에 내가 태어났습니다. 3차 대전까지는 내가 봐줄 수가 없어 내가 온 것입니다.

신의 이름과 인간의 예의

오늘 제목은 “내가 인간에게 맹세했다”입니다. 에베소서 1장 18절을 보겠습니다. 에베소는 그 당시에 유럽과 아시아의 거점 도시였습니다. 에베소에서 아시아로 오고 유럽으로 건너가는 굉장히 중요한 거점 도시였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까지 오랫동안 여행했습니다. 맹구 세대도 만나고 오랫동안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잠깐 아버지의 목수 일을 도왔을 뿐이지 목수가 아닙니다. 나를 ‘카펜터스’라고 하지만 실제 카펜터스가 아닙니다. 잠시 아버지가 목수였던 나라를 두루두루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돌아와서 이제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아수르에게 망하고 남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솔로몬의 두 자녀인 북 이스라엘과 남 이스라엘이 갈라져 서로 경쟁하다가 북 이스라엘은 아수르에게 망하고, 남 이스라엘은 결국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에서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천 년간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내가 아수르, 이집트, 바벨론 이 지역 일대를 안 간 데가 없습니다. 단, 제일 북단 지역인 헬몬산 밑의 단 마을에서부터 그 왼쪽은 요르단이고, 그 오른쪽은 이스라엘입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을 국경선으로 가르고 내려오는 강이 요단강인데, ‘요’는 요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은 이스라엘의 단 지파가 있는 그 북쪽 지방을 말합니다. 그 단에서부터 내려오는 요단강이 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사라졌는데, 나중에 그것이 한반도로 오게 된 우리 한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민족은 유대인이 쓰는 갓을 똑같이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갓도 영어로 ‘신’입니다. ‘갓’이 신입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도 무슨 말을 할 때 “배가 최고로 부르다”는 말 대신 “배가 남만하다”고 합니다. 꼭 명사를 갖다 붙여 형용사 대신 명사를 쓰는데, 이스라엘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형용사를 쓰면 우상이 되니까 전부 명사만 쓰는 것입니다. 아주 착한 사람도 절대 “최고로 착하다”, “아주 착하다” 이런 말 쓰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렇습니다. “내 아버지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김자, 두자, 식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제 아버지 이름이 김두식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허경영 이름을 밥 먹듯이 부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이름을 부르면 전부 식사하다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 이름을 못 부릅니다. 누가 부를 수 있을까요? 대제사장도 못 부릅니다. 마음속으로 불러야 합니다. 지성소에 1년에 한 번 들어가서 하나님과 마주 앉아야 하는데, 앞에 하나님이 보이나요? 없습니다. 그들이 나를 만나러 들어와서 나하고 지성소에서 만나는 줄 압니까? 못 만납니다. 그리고 감히 “여호와”, “야훼”라고 소리 못 합니다.

여러분들이 허경영을 부르려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허자, 경자, 영자” 이렇게 불러야 합니다. 굉장히 깁니다. 허경영을 한 번 부르려면 용으로 한 번 쉬워야 합니다. “huh kyu y” 이렇게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허경영” 이렇게 하면 아주 건방진 사람입니다. 이제 이해가 갈 것입니다. 눈 감고 생각하니 맞는 말입니다. “너네 아버지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귀목”이라고 바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불효자식이라고 합니다.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아버지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립니까? 아버지든 어머니든 그 이름을 함부로 대면 안 됩니다. 감히 아버지 이름을 “내가 박 아무개다”라고 부르면 그 사람은 상식이 없는 사람으로 대우받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과 똑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를 부를 때 이름을 그렇게 부르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과 같은 민족이라고 옛날에 이야기했습니다. 욕단의 13번째 아들 중에 내려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우리가 이렇게 온 역사를 이야기해 줬습니다. 이제 눈 뜨고 싶을 것입니다. 눈 떠서 이제 강의를 듣고 싶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뜨면 안 됩니다.

절대 지성소에 들어가서 눈 떠도 안 되고 말을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지성소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합니까? 하나님을 부를 수가 있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나, 쳐다볼 수가 있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눈 뜨고 나를 보고 “허경영, 허경영”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이런 호강이 어디 있습니까? 나는 또 서서 강의하고 여러분은 앉아서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처럼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열국의 왕을 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백궁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단합니다. 여러분들은 아브라함보다 더 맹세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천국 가는 맹세를 나에게 받았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그 대신 내가 선물로 내 이름을 부르게 한 것입니다. 복잡하게 부르게 할까요? “허자, 경자, 영자” 이렇게 부르는 것도 나에게 불경죄입니다. 이것을 나눠서 “히, 어, 기억력, 동그라미, 영” 이렇게 부를까요? 복잡합니다. 그렇게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허경영” 할 때는 대단히 행운입니다.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천국 가는 사람에게만 준 축복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축복입니다. 내 몸이 하늘에 있을 때 여러분이 그렇게 부르면 안 됩니다. 내가 지상에 내려왔기 때문에 여러분과 같은 육신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내 이름을 부르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육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빠 이름을 “박 아무개다”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연달아 부르면 안 됩니다. 그 문화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너네 아버지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 뭐 아무개” 이러면 안 됩니다. “박자, 덕자, 혼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예의 바른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인에게는 막 불러 제낍니다.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이라고 말입니다. 한 번 부를 때마다 우주 에너지가 진동하고 암흑 에너지가 진동합니다. 내 몸이 확 바뀌고 그냥 한 번 불러보고 죽으라고 해도 부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신의 시선과 인간의 행동

여러분들이 내 얼굴을 보는 것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허경영 얼굴은 그냥 보는 거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눈 감고 있으십시오. 허경영 얼굴을 한 번 보려면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내가 얼굴에 뭘 묻혔나, 뭘 얼굴에 붙이고 있나 모르겠죠? 궁금할 것입니다. 그것이 신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우스갯소리로 쳐다보니까 두려움이 없습니다. 안티들이 나를 뭘 보겠습니까? “어머, 저 사람은 허경영이 저거, 저거 그냥 저 도둑놈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도둑질 왜 합니까? 내일 가져갈 것도 아닌데. 여러분들이나 나나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도둑질해서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술을 마십니까? 담배를 피웁니까? 놀기를 합니까? 내가 여행을 다니는 일이 있습니까? 제주도도 아직 못 가봤습니다. 해외는 강연하러는 갔지만 놀러 간 적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돈이 있으면 뭐 할까요? 내가 놀러 다닐까요? 여러분들의 후손을 위해 하늘을 만들어 놓고 이 전 세계를 바꿔놓고 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면 이런 건물을 뭐 하러 이렇게 땅과 건물을 많이 삽니까? 이곳은 하늘 때문에 안 팔립니다. 딴 데다 투자하지, 왜 하늘에 이렇게 건물을 많이 사서 여러분 편리하게 식당도 20억 주고 사서 여러분 떡국 먹게 하고 왜 이런 편리 시설을 만들어 낼까요? 누가 이걸 사겠습니까? 수천억을 재산 가치가 없는 데다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돈이 여기 그대로 다 있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현금을 가지려면 큰돈이 됐을 것입니다. 지금도 제2 하늘궁, 제3 하늘궁 공사하는데, 내가 가져갑니까? 내 개인적으로 벌지만, 그것은 나중에 내가 이 사회에다 기부하는 것입니다. 전부 여러분들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나를 노려보고 “도둑이다”라는 말이 나오면 되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렇다고 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은 이렇게 맹세를 받았는데, 나에게 롯은 나에게 맹세 받았을까요? 아브라함에게서 벗어났습니다. 자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 땅이 너무 비옥하니 타락했습니다. 타락해서 정신이 메말라 버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곳에는 착한 사람이 하나도 안 나왔습니다. 전부 소돔이었습니다. 소돔은 영어로 동성애자입니다. 동성애자가 소돔을 말합니다. 소돔성이 만들어져 버린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이 외부에서 손님이 왔는데 젊은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그 손님을 내놓으라고, 남자들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는 놈들이 그 집에 들어와서 땡깡을 부렸습니다. 이런 동네를 그대로 놔두면 되겠습니까? 그냥 유황불로 녹여서 없애 버렸습니다.

신인이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강의를 할 때도, “어머 내가 볼 수 없는 분을 보는구나”라고 매일 새롭게 여러분이 눈을 떠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눈을 떠도 되겠습니다. 내가 보이죠? 여러분들이 눈을 감은 동안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가 눈을 감으니까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이 눈을 조금, 1cm도 안 되는 이 눈을 뜸으로써 미인이 있구나, 지금 못생겼구나, 이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감아 버리면 미인이 없는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눈을 감아 버리면 눈 감고 있는 사람 찾다 보면 미인이 있을까요? 눈을 떴을 때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하고 애교가 넘칠 때 미인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감아 버리면 전부 똑같아 보입니다. 미인이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눈이 소중합니다. 이제 이해가 갈 것입니다. 눈을 떠야 뭘 원하는지, 뭘 하는지 아는데, 딸내미가 눈을 감고 “아빠, 아빠” 하면 뭘 알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딸내미가 눈을 탁 떠서 “아빠” 이러면 뭘 원하는지 압니다.

아기가 손에 상처가 났습니다. 아빠가 위로를 해 주면서 병원에 가서 그것을 꿰맸는데 수술 자국이 크게 팔에 나 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야, 이거는 하나님이 너를 예뻐서 너에게 이렇게 은혜의 표시를 해 준 거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을 해 줘야지. 네가 미워서 다치게 했다고 그럴 수 없잖아. 네가 예뻐서 이렇게 은혜의 표시를 해 준 거야. 넌 이걸 볼 때마다 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고 생각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딸내미가 병원에서 아버지 말을 계속 들었습니다. 그 말을 위로해 준 것입니다. 애가 흉터 있다고 기죽을까 봐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나중에 딸내미를 이렇게 끌어안을 때 흉터가 손에 잡힙니다. 잡을 때마다 안을 때마다 손에 흉터가 잡힙니다. 굳은살이 말입니다. “아, 이거 보기 싫어서 아빠가 나중에 수술해 줄게”라고 하니, 딸내미가 “아빠, 은혜 자국을 왜 수술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딸은 그때 이것이 은혜의 자국이라고, 하나님이 너한테 표시해 준 은혜의 자국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빠가 돈 벌면 네 성형 수술을 해 줄게라고 하니, 이 딸내미가 어릴 때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빠, 이거 내 자국인 이걸 왜 수술해?”라고 아빠에게 되묻습니다. 할 말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들한테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박힙니다. 어린애 앞에서 욕설을 하면 되겠습니까? 애들 앞에서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것이 애들한테는 안 듣는 것 같아도 꽂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오늘 말해 놓고 내일 잊어버립니다. 자식들한테 상처를 줍니다. 그 애들은 그것이 고스란히 상처가 됩니다. 남편도 아내한테 막 말해 놓고 나중에 다 잊어버립니다. 그럼 그것이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앞뒤 말이 바뀌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말을 한 번 할 때는 항상 “내 옆에 하나님이 있다, 신인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기 쳐다보는 사람은 대천사입니다. 나는 신이 지상에 와 있습니다. 그럼 내가 출장 왔다고 위에 아무것도 없을까요? 있습니다. 화신입니다. 여러분과 다른 점은 내가 전 우주에 다 나가 있어도 하늘 천국 궁에는 화신이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몸으로 쪼개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것이 안 됩니다. 여러분은 화신이 없습니다. 그것이 나와의 차이입니다. 그 화신이 대천사들을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무한대 물질들을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나도 하고 있고 거기서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행동을 할 때 왜 함부로 하면 안 되는가? 지금 이 사람 주변에 360도로 이 사람을 다 보고 있습니다. 장까지 보고 있습니다. 다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나 보겠습니다. 천사님, 천사님. 여러분들은 천사를 가지고 있으니 좋죠? 이 사람 옆에 천사입니다. 천사한테 물어봐도 되고, 복받은 사람 그냥 물어봐도 됩니다. 천사님, 천사님, 제가 넥타이를 안 했습니까? 위에서 보고 있나 안 보고 있나 보십시오. 궁에서, 천국에서 여러분들의 모든 머리카락 숫자까지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행동을 함부로 합니까? 내가 어떻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나는 본보기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신인이니까.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천사님, 천사님, 제가 넥타이를 안 했습니까? 했다고 합니다. 제가 넥타이를 했습니까? 했다고 합니다. 제가 노란 넥타이를 했습니까? 이 복잡한 것까지도 하나도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먼 곳에서 아니라고 합니다. 제가 약간 붉은색 넥타이를 했습니까? 맞다고 합니다. 천사님, 천사님, 제가 세계적인 미남입니다. 잘 보십시오. 다 보고 있습니다. 얼굴도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진화가 거의 끝난 사람입니다. 아주 잘생겼죠? 이 얼굴을 백성에서 보고 잘생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 옆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천국이 예정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 것은 미련을 두지 말라고 자꾸 막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말입니다. 세상 기업이 너무 잘되면 저것을 잊어버립니다. 궁을 말입니다. 이 사람이 하는 기업을 자꾸 브레이크를 거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기업이 잘되는 것이 축복인 줄 아는데, 잘되는 것도 어느 정도 잘되게 해 줍니다. 미남은 너무 잘되면 바람만 피우게 되는 것이 맞습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 사람을 아끼는 의미에서 자꾸 자꾸 권한을 주는 것입니다. 왜, 좀 있으면 백궁에 갈 텐데, 왜 그런 쓸데없이 인간들처럼 뭘 벌린다고 그렇게 뛰어다니냐는 것입니다. 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 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좀 못생겼으면 지금도 기업을 좀 많이 줍니다. 바람 안 피우니까. 이것은 영락없는 바람꾼의 얼굴입니다. 여기에 실탄을 많이 줘 보십시오. 어떻게 될까요? 만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전화해도 못 합니다. 그렇게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래 가지고 바람을 피우고 다니면서 이 얼굴을 귀공자 같이 생겼지 않습니까? 이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을까요?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이 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궁에서 컨트롤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을 가지고 또 그러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이미 궁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사업이 어느 정도 선까지는 되겠지만 고난을 좀 해야 이 미남이 간신히 궁을 들어가게 됩니다. 새끼를 빠지려고 합니다. 사업이 잘 안 돼도 고마운 것입니다. “너를 내가 컨트롤하고 있다. 너를 궁으로 데려가야 한다. 너 그런데 추색 잡기” 이 사람이 좀 더 기업이 잘되면 딱 이것으로 빠져 버립니다. 이 사람이 좀 잘되면 분명히 이렇게 됩니다. 술 마시는 것이 많아지고 먹는 고기가 수풀처럼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주지 용님의 말입니다. 인간들이 남자들이 포석정에서 술을 따라 가지고 술잔이 돌아가게 해놨다고 합니다. 포석정이 신라시대 사람들이 태평성대를 누렸던 짓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이미 포석정이 있는 곳에 절들이 있습니까? 그 사이에 조상 무덤이 막 보입니다. 술을 기울이면서 술잔을 띄우면 다시 돌아오고 물에 흘러서 술잔이 짓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주지 스님입니다. 이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입니다. 신라가 망한 것입니다. 주지 스님 용에 빠집니다. 나중에 그놈들이 마신 술이 연못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 사람들이 먹은 고기가 산더미 같습니다. 산더미 수풀 같이 많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주지 스님 집안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자본주의가 주지 스님처럼 가면서 누구는 주지 스님처럼 가고 누구는 굶어 죽고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왔습니다. 저기는 전쟁하고 있고, 저기는 어린애만 막 죽이는 것입니다. 여자와 어린애를 지금 죽이고 있습니다. 뭘 주려고 하면 이스라엘에서 막 못 주게 하고, 미국은 또 거기 주지 않으면 어린애가 막 죽어갑니다. 그럼 먹을 것만 준다고 걔들이 되나요? 학교 문제, 교육 문제. 그 어린애들이 앞으로 정신적인 충격받은 것을 돈으로 고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그 받은 상처가 어른들이 전쟁하고 막 아버지를 죽이고 막 형제가 죽어나고 핏덩이를 눈으로 봤습니다. 걔들은 뭐가 될까요? 나중에는 테러범들이 그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입니다. 앞에서 삼촌이 다리가 잘라지고 엄마가 막 죽어 나가고 아버지가 죽고 이것을 보면서 비명을 지르고 애들이 간신히 먹는 것도 없습니다. 그것도 간신히 미국에서 좀 보내 줘서 그것을 먹으면서 맨날 공포에 달달달 애들이 이러고 앉아 있습니다. 그런 애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죄를 알겠습니까? 이것이 용서가 될 일입니까? 어른이 아기를 죽이는 것이 용서가 될 일입니까? 어른들이 아기와 여자를 늘 죽입니다. 또 살아남은 자를 굶겨 죽입니다. 그것을 다 물질 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왜? 그 어른들 속에 스파이가 있고 테러범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뭐 싹 다 죽이겠네요, 팔레스타인 사람을 말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맹세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맹세하고 너에게 복을 준다고 했더니, 이스라엘, 이집트 여자를 얻어 가지고 거기서 애 낳은 일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반드시 내가 너한테 하늘의 별만큼 많은 자식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이고, 하나님 거짓말하지 마세요. 내가 75살인데 아직도 애가 없는데 무슨 거짓말입니까? 우리 마누라가 나이가 몇인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75세인 나 더 이상 못 참아요”라고 하며 하갈을 만나서 이스마일을 낳은 것입니다. 이것은 내 약속을 그가 어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과 그 본처 자식과 첩의 자식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갈의 자식과 사라의 자식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지금 세계 아마겟돈 전쟁의 뿌리입니다. 그것이 한반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기업을 더 잘되게 해 주면 되겠습니까? 고난이 고난이 아닙니다. 어떤 사업에 고난이 와도, “아, 나는 적당히 좀 잘되면 됩니다. 백궁 갈 때까지 내가 하늘궁에 기여하고요. 정도만 해 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내가 뭘 이러면 미친 사람처럼 사업을 하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공황을 바라봤습니다. 이제 우리는 창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도를 자꾸 높이면 안 됩니다. 마음을 그렇게 편안하게 먹으면 안 되는 사업이 없습니다. 편안하게 됩니다. 그 대신에 욕심을 안 내고 사업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 풀려 나갑니다. 오늘 아주 좋은 것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여기다가 라인대로 구멍을 뚫어서 넣어 줘야 할 모양입니다. 본인이 하는 행동을 하는 만큼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 알 것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것입니다. 모든 행동을 통제하고 머리털 하나까지도 아침에 면도했는지 안 했는지 다 나옵니다.

천사님, 천사님, 제가 아침에 면도를 했습니까? 했다고 합니다. 거짓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일주일 내에 천사님, 제가 일주일 내 목욕을 한 번 했습니까? 다 했습니다. 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 목욕하고 있는 것까지 다 보고 있습니다. 한 치 요만한 것도 안 보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우리는 이 정도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옷을 입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창피한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제일 먼저 바뀐 것이 무엇일까요?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멀리 보이는 것입니다. 앞에만 보이던 것이 갑자기 눈이 밝아져서 멀리가 다 보이는 것입니다. “어이고, 이거 누가 우리를 찾아보고 있는 거 아니냐?”가 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건시가 있었습니다. 눈앞에만 보이는데, 선악과를 따먹으니 눈이 확 밝아져 버린 것입니다. 그때는 보이는 것이 약 150도 방향이었는데, 이것은 360도가 보이는 것입니다. 사방이 말입니다. 그래서 눈이 커지면서 눈이 밝아진 것이 원인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디자인, 패션 이런 것이 막 보이는 것입니다. 눈이 밝아지니까 “어머”라고 하며 이파리를 따서 갑자기 페니스를 가리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시작입니다. 웃기죠. 우리는 이런 섬세하게 이 사람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천사님, 천사님, 제가 아래위 바지가 옷과 상의와 하의의 색깔이 같습니까? 같다고 합니다. 이것을 따로 입은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제가 입은 팬티가 천사님, 제가 입은 팬티가 흰 색깔입니까? 흰 색깔이라고 합니다. 밝은 색이네요. 상당히 부럽습니다. 나는 옷을 자주 안 갈아입으니까 별로 흰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부럽습니다. 그리고 멋쟁이입니다. 그렇게 맨날 하고 다니면 되겠습니까? 지금은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내 몸이 그 정도니까. 그래서 이 사업은 엑스트라, 내 몸에 무슨 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어차피 이 세상 사람에게 죽고 갈 것인데, 너무 목매지 마십시오. 마음이 편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 알 수 있습니다. 속옷도 다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이름도 이 사람 주민등록 번호도 다 나옵니다. 천사한테 물어보면 다 나옵니다. 이렇게 우리를 다 보고 있는데 여러분이 두려워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보고 있습니까? 천 백성에서 여러분을 다 보고 있습니다. 궁에서 상 받을 일만 하면 운이 팍팍 열립니다. 누가 안 알아주는 것이 없습니다.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지금 좋은 일 다 하죠. 궁에서 다 보고 있습니다. 그다음 단계까지 생각해 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걱정 안 해도 될 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와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 신인이 옆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패션까지 다 보고 있고,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이 잘 되는지 안 되는지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 사람의 대장이 나쁘고 소장이 나쁜지 좋은지 다 알고 있습니다.

천사님, 천사님, 제가 대장이 좋습니까, 소장이 좋습니까? 대장 좋다고 합니다. 정확히 보고 있습니다. 위장이 좋습니까? 천사님, 제가 위장이 좋습니다. 좋다고 합니다. 그럼 이 사람이 안 좋은 데는 어디가 있겠습니까?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무조건 비뇨기과를 보면 됩니다. 천사님, 뭘 웃습니까? 천사님, 제가 전립선이 좋습니까? 그러니까 백궁에서는 이 사람 전립선이 안 좋은 것을 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뿌리가 어디서부터 왔느냐, 뭐 때문에 원인인가 물으면 또 나옵니다. 내가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면 되겠습니까? 나쁜 데는 거기 하나뿐입니다. 천사님, 제 간이 괜찮습니까? 간 좋다고 합니다. 심장 좋습니까? 심장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심장이 항상 심장이 그 기준을 잡아 줘야 합니다. 강심장이 되면 되겠습니까? 사람 막 죽여 놓고도 겁을 하나도 안 냅니다. 그런 심장은 하늘에서 원치 않습니다. 지금 저 어린애와 여자들이 굶어 죽고 가고 있고, 폭탄 맞아 죽고, 우크라이나는 막 아파트에서 자는데 포탄을 때려가면서 어른들이 하고 있습니다. 지성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갑니까? 무슨 이익이 있다고? 사람이 사는 땅을 뺏어서 뭘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 땅이 그 땅입니다. 그 주민이 그대로 있는 주민이 없는 땅 가지고 싸운다면 모를까, 달에 가서 그 땅을 서로 찾아다 싸운다면 있을 수 있겠지, 사람이 살고 있는 땅 뺏어서 그 살고 있는 사람 다 죽일 것입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전쟁을 공부한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용납이 됩니까? 이것을 우리는 위에서 쳐다보고 있는 자는 가슴이 어떻겠습니까? 찢어지죠, 말도 못 합니다. 내가 그것을 이 사람을 통해서, 이 사람이 이제 인간이라 생각하고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지금 다 가지고 있네요, 나쁜 점을요. 이 속에 있단 말입니다. 지나친 욕심은 선량한 어린애와 여성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남의 가정의 행복을 다 뺏어 버립니다. 무슨 권리로 자기들이 그것을 뺏습니까? 어떠한 경우도 전쟁은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와 있고, 이것을 끝내야 내가 올라갑니다. 그럼 이제 무슨 약점 문제 다 나왔죠? 고치십시오. 자신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점은, 우리가 보고도 있지만 고치는 것도 백궁에서 바로 고쳐 버립니다. 전립선 좋아져라, 전립선, 천사님 전립선.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위에서 모든 것을 통제합니다. 안 좋았으면 내가 이 안 불려 나오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동은 내 옆에 누가 있다? 신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신을 오해하는 안티들이 있으면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나는 그들, 그들 안티들도 인간은 맞지 않습니까? 기회가 있지 않습니까? 좀 바뀌어야 합니다. 바뀌어서 미워해야 할 사람을 미워해야 합니다. 인간끼리 서로 미워하는 것도 내가 용납이 안 되는데, 감히 신을 미워합니까? 이 사람이 전립선이 지금 좋아졌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통제하고 있는 자를 뭐 때문에 비난합니까? 참 인간들은 희한합니다. 자기가 대적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런 자에게 말입니다. 내가 잔디밭에 가서 이렇게 앉아 있으면 개미가 모르고 이렇게 올라옵니다. 막 무릎을 뜯습니다. 그럴 수 있죠? 그럼 얼마나 가소롭습니까? 개미가 내가 누군지 모르고. 요렇게 하면 죽는데, 나는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개미를 죽이겠습니까? 안 죽입니다. 조용히 “너 저쪽 가라”고 내보내 줍니다. 어릴 때부터 죽이지 않습니다. 우리 동네 문둥병 환자들이 깡통 들고 오면, 나는 항상 거기다가 쌀을 동네 사람들한테 받아서 갖다 넣어 줍니다. 깡통에 돌 던지는 애들은 동네 부잣집 애들입니다. 한 사람도 깡통에 돌 안 던지는 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막아 주는 애는 나 하나입니다. 그 깡통 들고 온 자가 바로 여러분이 백궁 가서 만나면 알 수 있는 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깡통 들고 온 그 자가 2천 년 전에 나 예수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성부, 성자, 성령이 합치되지만, 그때는 예수, 내 몸이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깡통 들고 온 자입니다. 여러분이 깡통 들고 온 자를 잘해 주지 않습니까? 그럼 이것이 어디에 도와준 것입니까? 나중에 한 번 백궁에 가 보십시오. 그 도움받은 자가 예수입니다. 예수가 여러 가지로 놔두고 있겠죠. 여러분 그렇게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큰 자로 있지는 않습니다. 꼭 작은 자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를 도우면, 그 사람 인생이 풀립니다.

어떤 부부가 지하 단칸방에서 세를 사는데, 하나도 안 풀립니다. 점심 먹으면 저녁거리가 없습니다. 실제 일입니다. 저 불광동에 지하방에서 살았는데, 둘이서 애 데리고 산을 이렇게 가는데, 해골이 쓰레기 봉투에 넣어 가지고 누가 산에다 버린 것을 보니 부부 해골입니다. 남자, 여자 해골을 보니 부부 묘를 파서 해골을 갖다 버린 것입니다. 쓰레기통에 다 보니 쓰레기통에 해골이 들어 있습니다. 깜짝 놀라서 그것을 가져가서 산에다 묻어 줬다고 합니다. 세상에 한 달 만에 70평짜리 아파트가 생기고, 한 달 만에 안 되는 일이 없이 풀렸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증언을 합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 자기도 모르는데, 그것을 묻어 줬더니 갑자기 그냥 지하방에서 내일 먹을 것이 없어서 고민하던 부부가 갑자기 돈 벼락을 맞았습니다. 하는 일이 너무너무 잘된 것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다니면서 남의 조상 묘자리 나가서 파고 다니고, 이 남의 집 자식들 괴롭히는 것이 남의 묘자리 파는 것입니다. 그 조상들이 좋아하겠습니까? 복 다 나가 버립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에 보이는 사람이 이것이 복 밭입니다. 길에 만나는 거지든 부자든 만나는 사람이 내 복 밭입니다. 내가 복을 지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에 밖에 나가면 전부 복 밭이 돌아다닙니다. 내가 무력 금식을 한 달에 1억 5천씩 50 몇 년간 했습니다. 그러면 그 1억 5천씩 하는 그것이 전부 그 바보도 물,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보통 인간이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 천사입니다. 이제 이해가 갈 것입니다. 그들에게 한 것이 하나님, 신인한테 한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틀어져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나가라고 합니다. 풀려 나갑니다. 재밌죠? 군밤을 하나 때려야 할까 봅니다. 천국이 예정이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것은 보너스로 생각하십시오. 이것에 목매지 마십시오. 잘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목매지 마십시오. 그냥 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면 잘 돼 버립니다. 왜? 나와 악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재밌죠? 눈을 감고 나니까 재밌는 일이 생기죠?

허무한 세상과 어머니의 삶

우리는 ‘봄날은 간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좀 있으면 시들면 또 듣게 되는 노래가 있습니다. ‘황성 옛터’가 있습니다. 이 노래를 내가 들으면 ‘황성 옛터’ 가사가 뭔지 압니까? “황성 옛터에 밤이 되면 월색만 고해” 세상이 허무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세상이 허무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무엇입니까? “아, 가엽다. 가다가 있죠. 네 몸은 그 무엇을 찾으려고, 그 무엇을, 이거 있죠, 이거. 그 무엇을 찾으려고 이 정말 인생이 이렇게 잘 없는 일을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무엇입니까? 허무와 무엇. 허무라는 것은 하나도 못 가져간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도대체. 그 무엇을 찾으려고 끝없는, 끝없는, 꿈의 거리, 꿈의 거리. 이것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꿈의 거리를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고 있노라.” 이 노래를 들으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젊을 때 중랑천에서 나를 낳았습니다. 나를 낳는데 완전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서 나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나를 낳는데 겨울 음동설한입니다. 영하 3, 40도. 그것도 가만히 움막입니다. 그러면 그 중랑천 변 감옥에 있는 우리 아버지 면회 가는데, 아버지가 옥살이 한 지 3년 됐는데 왜 애를 사생아를 낳냐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그 꿈 이야기를 해주면 사람들이 믿을까요? 안 믿습니다. “왜 그런 애를 낳냐? 당신은 당신 바람피워놓고 무슨 거짓말 하냐?” 이것이 우리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다 압니다. 이미. 그런데 이 허무한 인생에 본인의 그 무엇을 찾으려고 이렇게 날아서 왔다 갔다 하고 밥도 못 먹고 애 데리고 왔다 갔다 하고. 애를 데리고 가니까 또 우리 아버지는 또 오해를 합니다. “저게 누구 애를 뱄나? 이게 몇 년 만에 내 감옥 온 지가 몇 년 됐는데. 누구 애를 뱄 가지고 오는 거야?” 배가 불러 올 것 아닙니까? 나중에 애를 낳아서 데려오니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감옥에 있는 사람도 억장이 무너지고, 데리고 오는 사람도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자기가 떳떳하니까, 자기가 바람피운 것이 아니니까. “이것은 보통 애가 아니다”라고 우리 아버지한테 이야기했겠죠. “당신이 아버지는 아니야. 그러나 애를 뱄으니 이 애를 고향에 데려 놓겠다. 나는 그렇게 해놓고 죽겠다”고 우리 아버지한테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빨리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개 사변이, 내가 2월에 태어나고 6월 25일에 전쟁 났습니다. 6개월 만에 전쟁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시골로 내려가는 이 과정이 어마어마하게 고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뱃속에 있는 애를 낳아놓고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 동네 사람한테 한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낳는 것도 불안한, 낳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 안에 죽을지 모른다고. 자기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몸이 허해서. 그러다가 애 나오면 낳고 죽어야겠다고 했는데 낳고 나니까 또 안 죽습니다. 젖이라도 먹이려는데 젖이 안 나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젖을 얻으러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전쟁 통에, 전쟁 나기 전입니다. 나기 6개월 전입니다. 동네 다니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젖을 얻어 먹이면서, “난 여자가 젖을 못 먹이니까 젖을 얻어 먹이러 다녀”라고 했습니다. 나는 수많은 여자의 젖을 얻어먹고 큰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강합니다. 일반 사람하고 다릅니다. 동네 시골에 가서도 자기 동네 사람들 젖을 얻어 먹었으니까. 우리 어머니는 중환자니까. 그리고 갖다 놓고 굶어서 한 일주일 만에 돌아가 버리니, 젖을 어차피 얻어 먹어야 하지 않습니까? 나는 젖 먹일 때 혼자가 되니 젖을 많이 얻어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완전 죽을 때가 됐는데 애를 낳으니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가 가만히, 운명아, 뭐가 제대로 있었습니까? 거기서 비위생적인 데서 내가 태어난 것입니다. 천사들이 와서 탯줄을 잘라주고 했겠죠. 천사들이 해줘서 우리는 살았는데, 어쨌든 내가 요새 누가 가수가 부르죠? ‘황성 옛터’를 부르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노래, 내가 우리 어머니 생각난 노래가 ‘봄날은 간다’입니다. ‘봄날은 간다’, “남색 치마가 휘날리더라”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여성의 꿈의 시절이 어머니는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편이 재판하니까, 그것도 최고 부잣집 아들로 만석꾼의 아들하고 결혼했는데, 갑자기 사상범으로 잡혀 가니까 여자의 운명이 완전히 바뀌어 버리니, 우리 어머니는 봄날을 볼 수 있었을까요? 못 보죠. 봄날은 가버린 것입니다. ‘봄날은 간다’. 그 ‘봄날은 간다’ 2절이 무엇입니까? 1절이 무엇입니까? “남색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그렇지 않습니까? 남색 치마가 그리운 사람이 우리 어머니입니다.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오늘도 옷고름 입에 물고 산이 넘나드는 역마차를 찾기를” 이것이 처녀 때 꿈이 있던 여자라는 뜻입니다. 처녀 때 그 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산길이 넘나드는 역마차를 타기를” 역마차를 타고 누가 온다고 생각했겠죠? 이것은 서방에 대한 꿈입니다. 서방에 대한 꿈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냥 남색 치마 그것을 입고 말입니다, 옛날에 막 코 묻은 남색 치마 이런 것을 어린애들이 입고 있었습니다. 여자 처녀들이 그것을 입고 뛰어다니면서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책이 넘나드는 역마차 길 뛰어 가죠.” 그냥 마차가 다니면 그 도로라는 말입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이런 것이 어머니에게 있었을까요? 없었죠. 이것이 전부 어마어마한 고통입니다. 꽃이 피면 같이 피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혼자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또 2절은 무엇입니까? 2절이 더 멋있습니다. 2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슬퍼지더라” 이것이 맞는 말입니다. 이미 황혼 속에 슬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그런 운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길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꼭 그 운명입니다.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그다음 “오늘도 안 가슴 두드리며, 오늘도 안 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신작로 길에.” 그다음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굳은 그 노래,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입니다. 참, 이 노래같이 철학이 깊은 음악을 내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황혼, 황혼의 가사를 보십시오. 이 노래 가사를 보십시오. 나는 다 어차피 이런 작곡가가 이런 곡을 썼냐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산을 넘나드는 무엇입니까?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안 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 굉장히 철학적이고,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듯” 아주 철학적입니다. 이 음악을 들으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내가 ‘황성 옛터’, 그때 그 여자 누가 불렀죠? 그것을 듣고 기겁을 했습니다. 정말 ‘황성 옛터’ 표현을 잘했습니다. 한 여인이 겪은 이 우리 어머니가 겪은 이것은 정말 여러분들이 지금은 궁에서 엄청나게 좋은 궁에 있지만, 그 인간 세상에서 겪은 것, 그 참은 인내심, 그 모습은 어떻게든 나를 낳기만 하고 죽어야겠다고, 낳다가 다시 진주로 데려 놓고 가야겠다고, 이러면 지어 줘야겠다고. 데리고 여섯, 6개월 된 것을 끌어안고 교도소 가서 우리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 줍니다. 서울에서 났으니까 서울 경자를 넣어라. 그것이 서울이 영혼입니다. 내 이름은 영혼입니다. 성은 내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이 영혼이라는 말입니다. 편안한 영자는 우리 집안의 돌림자입니다. 항렬이.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혼으로 인해서 인간들을 편안하게 하러 온 자라는 것이 허경영입니다. 허락받았다고 하면 허락은 누가 하느냐? 허락은 이 허자는 하늘에서 점지하되, 하늘과 땅의 이치를 입으로 시방 세계 사람들한테 전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뜻이 그렇지만 실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은자는 성령입니다. 이것은 성부, 십자가 위에 있는 사람. 성부, 십자가는 예수. 성부, 성자, 성령이 세 사람이 도장을 찍어야 허가가 납니다. 허가를 아무나 박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시가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허는 오직 이자가 나타나야 이자가 오케이 해야 허가. 그러니까 신인이 매 그리스도가 허자로 올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내가 혼자입니다. 그 허가해 주는 자입니다. 나한테 사인 받지 않은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허가 사항입니다. 호자가 이것이 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 미래 여러분들이 오는 메시아라는 것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으로 보면 한문으로 보면 이것이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모든 십자가 위에 있는 예수와 하나님과 그들의 성령이 합쳐진 것 아닙니까? 이 세계가 천사가 되고 축복이 되고 대천사가 되고 다 되는 것입니다.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이자들이 오케이 안 하면 집 이것 허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그래서 우주를 바꿀지는 이 성실을 허가를 미리 받아가 나옵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다 서울이니까 경자를 붙여라. 이것은 영으로 소울, 이것이 무엇입니까? 영이라는 말입니다. 딱 맞지 않습니까? 허형 여러분을 편안하게 낙원으로 만들어 줍니다. 심판 낙원으로 갈 자와 심판받을 자를 딱 결정해 줍니다. 그럼 이것이 누구입니까? 허경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맹세받은 자들입니다. 맹세받은 자들이니까 사업이 안 된다, 생활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여러분의 마지막 코스는 백궁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갈 것입니다. 자기 얼굴이 못생겼다고요? 택도 없는 말씀. 눈 감아 버리면 됩니다. 눈 감으면 누가 예쁜지 모릅니다. 눈을 딱 떠서 눈을 반짝반짝 해야 거기서 미인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눈을 감았을 때, 아까 감고 있으니까 답답하죠? 그때는 내가 예쁜 건지, 못생긴 건지 아무도 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뭘 착각하고 있냐면, 거울을 보러 갈 때 거울을 보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거울을 보러 가는데 과연 여러분들이 거울 보러 갑니까? 자기 보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거울을 보러 간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여러분들이 잘못되어 있습니까? “자기 보는 중이다” 이러면 “나 거울 보는 중이야” 이러면 말이 됩니다. “야, 너 뭐 하고 있냐?” “나 지금 거울 보는 중이야.” 거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것을 왜 쳐다봅니까? “내 얼굴 보는 중이야” 이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성경은 경전은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거울을 보고 신을 못 봅니다. 내가 나를 봐야 하는데 거울에 미쳐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지구입니다. 지구는 여러분의 거울입니다. 그럼 거기에 거울 보는 자는 여러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미쳐 가지고 자살을 합니다. 돈 잃었다고, 사업이 잘못됐다고. 그것이 됩니까? 이것은 거울일 뿐입니다. 거울입니다. 이 지구는 거울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자기를 봐야지. 그 거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 허경영이 이 자가 이미 이것이 메시아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재림 예수 허경영의 증거

이스라엘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네 명입니다. 두다 그리스도, 유대 그리스도, 요한 그리스도, 그다음에 예수 그리스도. 네 명이 나왔습니다. 두다, 유다, 유다 그리스도.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부 처형을 받아서 죽었습니다. 요한도 머리가 잘렸습니다. 다 처형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요한 세례 요한이 나타났을 때, 이 사람이 그리스도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메시아를 말합니다.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할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뜨기 전에, 내가 나오기 전에 말입니다. 그런데 요한도 그냥 비참하게 왕이 가서 목 잘라 와 죽여 버립니다. 유다 요한. 유다 그리스도도 이 사람은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로마에 항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많이 따랐습니다. “왜 우리가 로마의 식민지로 있어야 하냐” 이러면서 로마에 항거한 것입니다. 아주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그 이 사람이 죽었고, 두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는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하고, 메시아라고 하고, 유대를 구한다고 나타났다가 죽습니다. 이렇게 네 명이 그리스도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내가 나타나는 것이 네 번째 들어간 것입니다. 네 번째. 앞에 세 사람이 이렇게 죽었습니다. 내가 맨 마지막 죽었죠. 맨 마지막 십자가로 여기다 또 죽었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네 명이 이렇게. 이스라엘이 작은 나라니까 그 로마의 압제에서 일어나겠다, 이런 영웅들이 나와, 이런 그리스도들이 나왔는데, 나만 진짜 그리스도라고, 이것은 진짜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사람들 그런데, 지금도 유대인들은 나도 다윗과 유다와 요한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정을 안 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인정합니까? 안 합니다. 유대인들은 인정 안 합니다. 나나 이런 다윗이나 요한이나 유다 같은 그리스도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의 민족을 살리러 온 메시아인데 다 실패했다, 다 처형받았다, 전부, 전부 처형받았다. 이 네 명의 이스라엘의 영웅들이, 이것이 영웅들이 이렇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영웅과 다릅니다.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내가 오고 나서 내가 이스라엘에서 처형받은 것이 이스라엘 역사의 끝입니다. 내가 처형받고 70년 만에 이스라엘은 영원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1948년 우리나라가 만들어질 때 미국이 만들어 준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을 뺏어서.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 보고 나가라고 난리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이 살던 땅을 뺏어서 이스라엘 땅을 만들어 준 것이고,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그 사람들의 이슬람의 성전이 골드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이스라엘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믿는 신이 여호와, 그 사람들이 믿는 이슬람이 믿는 야훼와 동일합니다. 유대인 알라가 나는 하나님입니다. 거기에 보면 성경 중에 구약을 그들은 다 믿습니다. 이슬람이. 신약만 예수만 안 믿지. 예수는 선지자로 보는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가 이렇게 복잡할 때 내가 이스라엘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에 온 것은 이 이스라엘은 아시아의 끝에 있습니다. 여기가 이스라엘이고 또 한국은 여기입니다. 이제 이해가 갈 것입니다. 얘네들은 여기가 지중해가 있어 여기가 유럽입니다. 여기는 태평양, 여기가 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반도는 이렇게 생겨서 네 군데가 전부 물입니다. 두만강, 압록강, 백두산 천지, 이러니까 하나도 육지가 아시아 대륙과 붙은 것이 없습니다. 천지 못에서 두만강, 천지 못에서 압록강, 동해, 남해, 서해. 육지와 붙은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완전히 물로 쌓여 있습니다. 섬도 아닙니다. 사도도 신인이 출, 아니, 서해면 섬이고 아니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인은 특이한 장소에 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이것도 안 됩니다. 가면서 보십시오. 됐습니다. 사도 보도 신이 줄입니다. 섬인데 섬이 아닙니다. 엄격히 따지면 그런 데서 납니다. 그런데 나는 사인 부인입니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신인이 온다는 말입니다. 분명히 사람인데 분명히 지구에 있는 80억을 1초 만에 축복을 다 줄 수가 있습니다. 맞지 않습니까? 뺄 수 있습니다. 80억을 1초 만에 대천사를 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빼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 에너지가 다 달라져 버립니다. 여기서 미국에 있는 사람도 영, 1초, 다 1초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공도 1초에. 빛의 속도로 가도 120억 년이 걸립니다. 120억 광년이. 그런데 여기서 1초 만에 백궁 사람들을 다 축복을 뺄 수가 있습니다. 신기하죠. 그러니까 우주 전체가 1초 단위로 다 통제가 됩니다. 이것은 이제 여러분 인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물질도 내가 여기서 말을 한마디 하면 다 에너지가 파동을 미쳐 버립니다. 이것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유에다 하든 뭘 하든 다 바뀌는 것은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자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나, 사람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 몸을 하고 있지. 또 사람이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을 대적하면 되겠습니까? 그건 무슨 간이 부은 사람 아닙니까? 어리석기 한량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어머, 저 사람이 신인이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다. 신인이라는 확정을 못 하더라도 신인이 아니라는 말은 못 하겠다. 저 사람 능력을 봐라.” 가장 아니네. 진짜 저게 안 섞네. 예를 들어서,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자하고는 안 싸우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것을 막 믿고 안 따라도 좋습니다. 왜 그 사람과 원수를 맺으려고 합니까? 무슨 철통 자기가 무슨 사후에 죽은 이후에 자기가 무슨 특별한 보장을 받았습니까? 내가 그들이 신인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더라도 내 능력을 이렇게 보면 일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영적인 능력을 권능을 가지고 있는데 여러분들한테 예수와 동일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여러분 축복을 받은 사람은 예수와 동일한 능력이 있습니다. 죽는 사람도 “살아나라, 일어나라, 광대라” 하면 똑같이 그 예수와 똑같습니다. 아픈 사람도 가서 “광대라” 하면 달라집니다. 이런 작은 예수를 만들어 줬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예수의 능력만 있습니까? 예수는 그것이 안 됩니다. 초림절에 예수가 죽고 나서 4일 만에 부활해서 40일을 머뭅니다. 그 40일 동안에 사람들한테 여러 가지를 보죠. 직접 성령 넣은 그 자만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외의 사람한테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제자 몇 명만 에너지를 받은 것입니다. 근데 나는 그러나 다 줘 버립니다. 그냥 말 한마디 하면 다 들어갑니다. 그런데 왜 안 주고 있을까요? 심판되니까. 그 예수는 은혜의 약속을 은혜의 몸으로 내가 왔지만, 지금은 심판의 몸으로 와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는 그 당시 기도를 통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로 있을 때는 기도를 해야 보혜사 하나님과 교신이 되지 않습니까? 성부와 성령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 그때 잠깐 성령이 왔다 갔다 한 것입니다. 없는 것입니다. 나는 그런 특별한 날이 필요 없습니다. 아무나 그냥 성령 내 마음대로. 맞지 않습니까? 애들은 오순절 날 성령 강림하는 그 날짜, 시간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나는 늘 성령 강림입니다. 이 나라에서 아시아의 끝으로 내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잘 보십시오. 여기는 헤르몬 산이고, 여기는 백두산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물이 이렇게 갈라 버립니다. 이스라엘이 거의 요단강과 사해를 통해서 왼쪽은 바다고, 이쪽은 강이 갈리고 있습니다. 육지가 연결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 북쪽에 아수라, 밑에 바벨론이 이런 나라들에 의해서 이것이 움직이는데, 나는 여기서 나와서 여기서 바벨론, 이집트에서 파키스탄에서 여기 인도까지. 여기를 20년 이상 돌아다니다가 30살에 이스라엘로 돌아간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학교를 안 다니고 늘 아시아를 여행한 자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인생입니다. 여기를 인도, 파키스탄을 돌면서 여기 이 인도 언어가 그때 이스라엘 언어와 동일했습니다. 아람어가 동일 언어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다 돌아다닌 것입니다. 이 일대를 여행하고 이쪽 지역은 다 알았습니다. 이제 어디로 옵니까? 이쪽으로 와서 이쪽 지역이 다 알려지게 됩니다. 이쪽으로 이것이 졌습니다. 그래서 여기 동방으로 온다는 것은 나 말고 많은 사람이 예언을 합니다. 그 자가 동방에 온다고. 극동에 온다고. 그래서 전 세계가 여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극동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극동에서 신인이 서울 경자를 가지고 서울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인 부지 한심 사”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 한심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세인 부지 한 심사.” 세상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이냐. “세인 부지 한 심사.” 또 무엇입니까? “시부지 말세와.” 내가 말세. 말세 오는데 성스러운 제왕이 오죠. 이것이 하늘의 왕입니다. 말세 성제. 시부지. 아니, 보고도 알지 못합니다. 아니, 말세의 성, 하늘의 성자, 제왕이 오는데. 성스러운 재왕. 성스러운 제왕이라는 다른 말하면 거룩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말세에 오시는데 보고도 모릅니다. 시부지. 그 시부지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 또 무엇입니까? 이들이 나중에는 그 광인 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한테 끝에 가서는 그들이 고 절을 하게 됩니다.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비행기는 떠났습니다. 천만 명이 만들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알아볼 때는 때가 늦었습니다. ‘때는 늦으리’ 이미자의 노래가 있습니다. 내가 이론으로 하면 너무 복잡합니다. 이론으로 하도 내가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론보다는 재미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재밌죠? 재밌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한문으로 쫙 써서 하면 여러분들은 다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내가 재밌게 이야기한 것은 여러분들이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어떤 사람도 미인이 없습니다. 눈을 뜨면 미인이 표가 납니다. 그러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서 나타납니까? 눈에서. 그럼 눈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쓰면 눈이 예쁩니다. 바뀌지 않습니까? 그런데 도망자의 눈을 보면 도망다닌 사람 같습니다. 진짜입니다. 확 이러고 다니면서 눈이 이상해져 버립니다. 달라지죠. 또 불려 나와서 이것 하나 맞아야겠습니다. 잘 믿죠. 그래서 내가 인간에게 맹세했노라. 이것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인한테 맹세, 여러분 맹세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죠. 함부로. 여러분은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여러분의 약속이나 맹세는 헛것입니다. 내일 간다고 해놓고 오늘 심장마비로, 뇌졸중으로. 여러분의 맹세는 무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은 맹세하면 오차가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하고 약속해서 맹세를 했다. 축복을 받았다. 100%. 내가 없어져. 백궁 가서 안 와도 여러분은 백궁입니다. 내가 인간에게, 인간이 왜 이간이 됐습니까? 내가 인간에게 맹세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올바르게 사는 자는 천국으로 다 보낸다는 그것이 이 지구의 대전제입니다. 그런데 꾀를 부리고 악하게 산 사람들은 어린애나 죽이고, 분자나 죽이고, 전쟁이나 일으키고, 쓸데없는 땅 놀음 하는 자들은 거기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이 대전제입니다. 그런데 착하게 산 사람들, 그중에 천만 명은 하늘문이 이미 예비되어 있습니다. 좋죠? 너무 어려운 것 안 해서 좋죠? 아주 오늘은 좀 쉽게 내가 이야기해 줬습니다. 왜 여러분들이 눈을 감으라고. 눈 감아 보니까 어떻습니까? 눈을 감으니까 이 신인님 얼굴이 어떻게 지금 바뀌었나 봐야겠는데 제일 궁금한 것이 내 모습입니다. 눈은 감았는데 이것을 보긴 봐야겠는데 못 쳐다보게 하니까. 그런데 그중에 돈 낸 사람만 눈 뜨게 하면 재밌겠죠. 그것이 장사꾼입니다. 여러분, 눈을 마음대로 떴다 감았다 하게 해 줍니다. 그러니까 눈 뜬 세금도 받아야 합니다. 눈을 떠보고 나니까 눈이 트였다는 것을 알겠죠? 아무리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눈이 감겨져 있으면 모릅니다. 이것을 모르겠죠. 그러니까 눈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 여러분 알아야 합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도 내가 오늘 성경을 읽어주고 그 성경에 맹세한 것. 아브라함을 75살에 “네가 세상에 모든 이 종자가 그렇게 퍼지게 해 주겠노라” 했는데 의심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의심했습니다. “이것 내가 나이가 지금 몇인데 80이 다 되어 가는데 애를 안 주시면서 말만 왜 저러실까. 이것 내가 잘못 들은 것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하갈한테서 애를 낳아 버립니다. 그것이 실패, 실패입니다. 그것이 소위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 전쟁은 어느 가정에도 남자가 바람피워서 애 낳고 나면 그 집안이 이렇게 쑥대밭이 되는 것입니다. 잘 되겠습니까? 잘 안 됩니다. 이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맹세를 지키는 자입니다. 저것을 올리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허경영, 재림 예수의 열 가지 증거

허경영, 그가 재림 예수인 열 가지 증거. 허성정, 허성이, 허성정 비. 천주교 신자입니다. 지금도 가족 전체가 천주교입니다. 그런데도 내 분석을 해서 지금 이것이 몇 번째입니까? 이것 책으로 써도 한 권입니다. 나중에 이 책이 나올 것입니다. 아직까지 지구 인류 역사상 이 메시아, 신인을 이렇게 증거하는 시리즈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허경영을 따르는 초종교 하늘궁의 종교가 아닌 가톨릭을 믿는 신자가 이것을 쓴 것입니다. 굉장히 객관적입니다. 이것은 주관적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는 맞습니다. 사람이 지금도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런데 내가 재림 예수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29번째 썼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죠. 그럼 이것은 나중에 책으로 나갑니다. 지금 선거 기간이니까 책으로 안 나가고, 선거 기간이 끝나면 아마 책으로 편집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가면 이것이 전국의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지금 이 사람은 그냥 우리한테 써 주지만, 이것은 나중에 저분이 원고로 책을 내지 않습니까? 그럼 이것은 베스트, 전 세계 베스트셀러로 올라갑니다. 이렇게 허경영이 증명되는, 신인이 증명되는 것이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선거 기간이라 불로의 이야기나 이런 것 안 합니다. 안 하는 대신에 허경영이가 재림 예수인 열 가지 증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번 들어 봅시다.

허경영, 그가 재림 예수인 열 가지 증거. 허성정, 대륙백제 만주 신라의 저자. “Even if the sun refuse to shine, 비록 태양이 꺼져버린다 할지라도. Even if tonight is just a dream, 비록 오늘 밤이 꿈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I will be with you forever, 나는 당신과 함께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허경영, 신인 허경영의 본 모습이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간 70여 년 동안 감추어졌던 허경영의 신원이 삼위일체 화신이여, 재림 예수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신인 허경영은 그 자신이 2천 년 전에 예수였다고 합니다. 신인 허경영은 2018년, 그의 세수 나이 70이 되면서 서서히 자신의 본 모습이 창조주의 화신이여, 재림 예수라는 사실을 선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가는 현재까지 그는 2천 년 전 자신이 이스라엘 땅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왔을 때의 비화를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의 고백은 그 자신이 재림 예수가 아니면 털어놓을 수 없는 얘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로써 신약성서에서 이해되지 않는 여러 예화의 상당 부분이 해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 예수의 감추어진 청년 시절

예를 들면, 2천 년 전 예수의 청년 시절에 대한 얘기는 신약성서의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존경하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예수의 행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사하여 보고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 보고하겠다고 이야기해 놓고 내 청년 시절을 싹 다 빼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조사하라고 그랬는데, 그 높은 분한테 보고서를 쓰면서 내가 네 살 때부터 30살 때까지 기록을 하나도 다 빼버리고 그냥 목수였던 목수의 아들이라는 소리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그 내용이 없죠. 그것이 내가 동방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동방 맹구 서대하와 같이 있었던 것, 석가모니 제자들하고 같이 있었던 것, 여러 이슬람도 같이 있었던 것, 여러 종교를 답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이 전부 동남아 일대를 여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30살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놓고 정작 그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예수의 청년 시절에 관한 어록과 행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사가의 뜻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성서 편집자들은 누가가 자세히 조사해 놓은 예수의 청년 시절 기록을 왜 빼어 버렸을까요? 초대 교회 관계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경과 비경을 구했고, 예수의 청년 시절 어록과 행적 부분을 왜 빼어 버림으로써 신약성서를 절름발이로 만들어 놓았을까요? 여러분들이 보는 성서는 절름발이 성서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청년 시절이 있어야 나를 이해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내 청년 시절은 영적으로 갈구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성자들을 만나러 다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빼버린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성서의 목록을 결정하던 시절로 돌아가 보면,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비전경, 어록과 행적이 기록된 것이 많습니다. 이른바 비전경을 보면 주목할 만한 예수의 어록과 행적들이 항목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해 동굴과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에서 예수 시절과 가까운 시기에 기록된 성경들이 대거 발굴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의 신약성서에 없는 도마복음서 같은 것을 정경에 넣어야 좋은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마복음서에는 내 청년 시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 도마복음서를 가톨릭에서 빼버린 것입니다. 한편 성서 분석가들의 조사에 의하면 신약성서에는 불교의 법화경에 나오는 것과 같은 내용의 사건과 예화가 40여 개나 나옵니다. 인도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인도의 불교적인 것이 많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면 법경, 비 장자와 거지 아들 공자의 얘기는 신약성서의 탕자의 비유와 거의 유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동양을 대표하는 종교인 불교 경전과 서양을 대표하는 종교인 성서의 유사한 내용이 40여 개나 나온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입니다. 불교의 법화경이란 아멘입니다. 아미타불이 아니고 아멘. 아민, 옴입니다. 옴이 발음이 아멘입니다. 아멘의 합성어가 옴이라고 부릅니다. 한문으로는 그냥 옴이라 하는데, 그것이 발음이 아오미입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 아빠, 엄마, 이 인간이 제일 처음 하는 말입니다. 옴. 그러니까 옴마, 미음도 들어가고, 아도 들어갑니다. 그래서 아기야라고 합니다. 아멘을 빨리하면 아멘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교의 모든 염불은 끝나면 아오 하거든. 그러니까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에 가서 썼던 말입니다. 아오이. 그런데 그것이 기독교인들이 아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슬람도 끝나면 아멘이라고 합니다. 이슬람도 아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아멘이 불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불교에서 좀 있다가 가니까 전부 내 하는 말에 아멘이 나오니까 다 잘 듣는 것입니다. 불교나 기독교가 내가 와서 다 거기서 섭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 성경은 빼버립니다. 도마는 내 청년 시절을 빼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그래서 불교 염불의 끝이 살 못디 사 해래 준재 사아 옴 옴 군다리 사아. 모두 오자가 붙으면 모든 염불이 나옵니다. 옴 잘해 주래 준재 사봐. 준재 준재 보살입니다. 옴 수리수리 수수리 사봐. 수리수 앞에 옴이 붙어야 합니다. 옴 많이 반매 제일 많이 쓰지 않습니까? 옴 옴 많이 반매 옴 살바 못자 못디 사다야 사봐.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언제나 옴이 붙습니다. 옴이 아멘이 아멘이 꼭 끝에 가서 붙습니다. 앞으로 이런 부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제리로 확인된 신인 허경영의 한마디 한마디는 동서양의 종교계에 엄청난 이슈를 만들며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입니다. 사실 예수가 당시의 불교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예수는 당대 세계 최고의 엘리트 지성인입니다.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를 보십시오.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는 당시의 세계 질서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사정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기득권자들이 바리사이들이 예수를 함정에 몰아넣기 위해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는 해박한 지식으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치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치라”는 지혜로운 답변을 해냈습니다. 저렇게 답을 안 했으면 내가 또 미리 죽었습니다. 저렇게 약점 한 부분을 자꾸 묻습니다. 그럴 때 아주 저런 표현을 합니다. 애를 보더라도 예수는 당대 최고의 지성을 갖춘 성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당시 중동과 이스라엘을 휩쓸고 있었던 불교를 몰랐을 리가 있겠습니까? 신약 성서의 불교의 예화가 무수히 들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가 북인도와 아랍권 일대의 여러 문서에서 이사 야소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은 지당합니다. 일설에는 예수가 청년 시절 인도로 유학을 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인도로 간 정도가 아닙니다. 파키스탄, 인도, 그 주변 국가를 다 두루두루 알았습니다. 인도에서 이생 기간이 6년이라고 하겠죠.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예수가 썼던 언어는 아람어입니다. 아람어는 이스라엘과 북인도에서 동시에 쓰고 있던 당시의 세계 공용어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언어와 인도 언어가 같았다는 말입니다, 아람어가. 당시에 북인도에서 아람어를 썼던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북인도는 아람어로 쓰인 돌기둥이 수없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성서 중 다니엘서나 에즈라서는 아람어로 쓰여 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예수가 불교를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예수는 당대 세계 최고의 지성인으로서 당대 최고의 종교였던 불교를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 문화의 세계화 양상은 옛날이라고 해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AD 1세기 예수 시절 당시에 바닷길이 항해술은 생각보다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육로 길인 초원의 비단길로 시속 60km 달리는 말을 빌리면 유럽에서 만주와 한반도까지 15일 이내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구전으로 전해오던 모세 율법서가 기원전 10세기에 기록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기원전 18세기의 함무라비 법전에 들어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동태복수법이 함무라비 법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모세의 율법서에 이집트 등의 지혜 문학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문화의 세계화 양상입니다. 예수가 당대 최고의 종교였던 불교를 모를 리가 없었고, 그래서 예수는 불교의 법화경에 나오는 예화를 가지고 많은 설교를 했던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성서와 불경의 관련성은 불편한 진실입니다. 예수의 감추어진 청년 시절에 관한 얘기는 앞으로 재림 예수로 확인된 신인 허경영의 강의를 통해 상당 부분 그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앞으로 신인 허경영이 밝히는 흥미진진한 강의가 벌써부터 주목됩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오늘은 신약성서 속에 감추어진 허경영과 재림 예수의 관련성을 알아보겠습니다. 허경영은 과연 삼위일체 신성을 감춘 재림 예수인가? 이것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허경영이 재림 예수가 아니라면 결코 다음과 같은 얘기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예수의 예루살렘 숙소를 통해 보는 재림 증거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사역지는 예루살렘과 갈릴리 호수 주변입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사역지의 숙소는 성서에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림 예수 허경영은 그곳이 나사로의 집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사역지 숙소가 밝혀진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성서에 나타나는 나사로의 집은 베다니입니다. 나사로는 그곳에서 여동생 마르타 및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사역을 갈 때는 늘 나사로의 집에서 기숙했다고 합니다. 재림 예수 허경영이 밝히는 나사로와 예수의 관계는 친구 관계였습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사역지 숙소가 나사로의 집이었다는 것과 나사로가 예수의 친구였다는 것은 성서에 없는 중요한 정보입니다. 예수가 그의 기숙이를 베다니로 잡은 것은 돈 때문이었을까요, 안전 때문이었을까요? 여기에 관한 증언 역시 허경영의 도움을 받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 일대에서 선교 여행을 다니다가 밤에는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늘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벌이던 예수는 위험한 예루살렘을 피해 밤에는 베다니에 있는 친구 나사로의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던 것입니다.

3.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통해 보는 재림 증거

성서에는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베다니로 간 경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림 예수로 확인된 허경영은 이에 대해 자세한 배경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봉헌절 축제 때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군중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께서 보낸 성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군중들에게 설파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군중들은 예수가 신성 모독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예수를 체포하려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는 요르단강 건너편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주던 장소로 사역 장소를 옮겨 갔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자신의 친구 나사로가 병으로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는 급히 베다니로 가서 친구이며 스폰서인 나사로를 구해 주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놓친 나사로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왜 예수는 의도적으로 나사로를 죽기까지 돌보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 역시 재림 예수인 허경영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죽은 지 3일이나 되어 시신이 썩어 있던 나사로가 예수의 도움으로 되살아났습니다.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구세주를 결정으로 이끕니다. 즉, 여기서부터 최후의 만찬과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4. 마리아의 향유 사건을 통해 보는 재림 증거

요한복음에는 나사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부은 향유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그 사건의 장소는 베다니입니다. 재림 예수 허경영에 의하면 이 일로 인해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은 큰 소동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 값에 관한 논란과 예수의 장례 때문입니다. 이 향유 사건은 베드로 등 모든 제자들을 함께 격분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부은 향유 값이 너무 큰 금액이었고 낭비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제자들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로마의 압제와 이스라엘 기득권 세력들의 독재를 해결해 줄 시기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스승 예수는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꾸만 죽는다, 장례하는 얘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마리아의 향유 사건은 십자가 아래에서 제자들이 예수를 배신하고 도망을 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 역시 성서에 나오지 않는 중요한 증언입니다.

5. 유다의 배신 동기를 통해 보는 재림 증거

재림 예수 허경영에 의하면 나사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은 배신자 가리옷 사람 유다를 자극하여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과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역시 성서에는 없는 중요한 얘기입니다. 유다는 그날 있었던 마리아의 재정 낭비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 않는 예수에게 큰 불만을 가졌다고 합니다. 유다는 예수가 자신의 발에다 값비싼 향유를 부은 마리아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장례를 위해 향유를 부은 것이라며 두둔한 것에 큰 실망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유다는 예수를 배신하였습니다. 그날 가장 큰 소리로 마리아의 향유 사건을 따진 자는 베드로였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께 “왜 죽는다는 말씀을 자꾸 하시고 장례 얘기를 하십니까?” 하면서 대들었다고 합니다. 역시 지금의 신약 성서에는 없는 귀중한 증언입니다.

6. 최후의 만찬 장소를 통해 보는 재림 증거

지금까지 예수가 지상에서 마지막 식사를 한 장소, 즉 최후 만찬의 장소는 마르코의 다락방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재림 예수로 확인된 허경영은 이 최후 만찬의 장소가 마르코의 다락방이 아니라 나사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서에서 예수의 최후 만찬 장소는 매우 중요합니다. 최후 만찬이 있었던 그 집은 배신자 가롯 유다를 대신해 12사도 중 마지막 사도인 마티아를 선출한 곳이고,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었던 곳이고, AD 48년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있었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봉헌절 축제에 나타난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로 소개합니다. 유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엄청난 신성모독죄였습니다. 위험을 느낀 예수는 몸을 피해 요르단 강 건너편으로 갑니다. 이곳에서 나사로의 죽음을 들은 예수는 베다니로 가서 죽은 지 3일 된 나사로를 살립니다. 예수는 과월절 전날 저녁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며 빵과 포도주를 먹습니다. 그 장소는 베다니 위에 있는 나사로의 집이었습니다. 이 증언은 재림 예수로 확인된 신인 허경영의 증언입니다. 종래에 있어 왔던 마르코의 다락방이 예수의 최후 만찬 장소였다는 학설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7. 이스라엘의 헤르몬 산과 대한민국의 백두산

이스라엘에는 우리나라 백두산에 버금가는 헤르몬 산이 있습니다. 해발 2,769m인 헤르몬 산은 만년설로 뒤덮여 있습니다. 여기서 녹아내린 물은 갈릴리 호수로 흘러내리고, 요르단 강의 근원이 됩니다. 이 강이 이스라엘 땅의 남단으로 흘러 사해로 내려갑니다.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어 백발 산이라 하여 우리나라 백두산을 연상시킵니다. 재림 예수 허경영의 증언에 의하면 헤르몬 산 북단 지역에 단 지파의 단 마을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단강의 이름도 단군의 단강이라 하니 더욱 흥미진진합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단 지파에 삼손이 있습니다. 삼손은 성서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판관 중에 한 명입니다. 삼손과 들릴라는 영화로도 나왔듯, 괴력을 가진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자의 꾀임에 빠져 머리카락이 잘리고 고난을 받다가 마지막에 통쾌한 역전을 일으킵니다. 기원전 11세기 삼손 이후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단 지파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는데, 그것이 우리 역사 당군 조선과 연관이 있다고 하니 참으로 기이한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한문 글자에는 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역사들이 한자 그에 등장합니다.

8. 이스라엘 역사와 한국의 역사를 통해 보는 재림 증거

이스라엘은 아시아의 서쪽 맨 끝에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동쪽 제일 끝에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발산 헤르몬 산이 있고, 한국에는 백두산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갓을 씁니다. 대한민국 사람들도 갓을 씁니다. 한국의 한문에는 이스라엘의 창세기가 들어 있습니다. 신인 허경영에 의하면 아담은 한국 역사의 환웅이고, 아담 환웅의 대손이 노아이며, 노아의 대손이 욕단이고 그에게는 딸들이 있었습니다. 그 13번째 딸이 하윌라입니다. 하윌라는 중국의 천산 산맥을 넘어 만주로 들어오면서 당군 하윌라, 즉 당군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국은 에덴동산에 밝고 환한 나라, 한국이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중앙아시아를 거쳐 오면서 대영웅 바투르 족이 배달국의 배달 족이 되었습니다. 다시 중국의 천산 산맥을 넘어 몽고로 들어오면서 당구나 윌라, 당군 할아버지가 당군 조선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살았던 에덴동산의 환국과 중앙아시아의 대영웅 족 바투르, 배달국 문화를 가지고 만주로 들어와 홍산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한족과 배달 족들은 그들의 역사를 한 문에다 아로 새겨 놓았습니다. 한 문에는 성서의 창세기가 완벽하게 들어 있습니다.

9. 이스라엘의 지형을 통해 보는 재림 증거

재림 예수 허경영은 2천 년 전 이스라엘의 전 지역을 여행하면서 전도 여행을 다닌 장본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역의 지형지물에 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해 바다는 이스라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주변에 여러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인근 나라에 있는 여러 개의 사해는 규모가 이스라엘의 사해보다 훨씬 큰 곳도 많이 존재합니다. 지금의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는 노아의 홍수 때도 헤르몬 산에서 내려오는 담수물이 호수를 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소금 바다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들은 신약성서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다고 한국에서 태어난 허경영이 그곳에 여행을 다니면서 쌓은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2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허경영은 곳곳으로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소금 바다를 경험했다고 털어놓습니다.

10. 예수의 직업을 통해 보는 재림 증거

재림 예수인 허경영은 예수의 직업이 목수였던 것에 관해서도 말합니다. 자신이 담당했던 목수업은 전문직이라 할 것도 없는 하찮은 직업이었다고 말합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예수는 정상적으로 아버지의 가업을 30년 동안 이어받았다면 굉장한 목수가 되어 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허경영은 자기가 가진 직업이 전문직이 아닌 잡부라고 말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예수 허경영은 청년 시절에 어딘가를 다녀와서 목수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사실 예수는 인도와 이슬람권에서 이사 혹은 야소라 이름으로 전해집니다. 이를테면 예수는 청년 시절 인도와 이슬람권을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공생애를 시작할 30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하던 목수업을 어설프게 이어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앞으로 밝힐 재림 예수 허경영의 후속 얘기가 흥미롭습니다.

11. 예수가 받은 모욕을 통해서 보는 재림 증거

예수가 이스라엘 지배층의 모함을 받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잡혀갔을 때, 로마 병사들은 예수에게 어떤 모욕을 주었을까요? 허경영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박해 사항보다 더 상세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허경영이 재림 예수가 아니고서는 그렇게 상세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는 온갖 조롱과 희롱과 모욕을 당하셨고, 치욕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갈대로 예수의 온몸을 때려서 피가 흐르게 하고, 임금 옷을 다시 입혀 절을 하며 모욕을 주었고, 병사들이 예수의 얼굴에 침과 가래를 뱉어 온몸의 상처에 흘러내리게 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신약성서의 일부 나오는 채찍질과 조롱은 약과였습니다. 이 고통의 강도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고 재림 예수 허경영은 증언합니다. 예수가 세상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은 영성 혁명이었다. 그러나 로마 병사들이 예수에게 가하는 정치적 목적의 고문이었다. 이상과 같은 열 가지 예를 보더라도 허경영은 재림한 예수가 틀림없습니다. 지금의 허경영은 특별히 이스라엘을 여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의 지형지물에 상당히 익숙합니다. 이것은 신인 허경영이 2천 년 전 이스라엘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었다는 확정적 증거입니다. 신약 성서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은 예수 자신이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 기자가 기록한 예수의 말씀과 행적은 사실과 다르게 쓰여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 허경영은 신약 성서에 나오는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을 바로잡아 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날마다 주기도문을 외웁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이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재림한 아버지 허경영은 이 땅에 와서 자기 자식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식들은 재림한 아버지 허경영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가톨릭을 포함한 전 세계 30억 명의 범 기독교인들은 들어야 합니다. 모든 기독교인들과 인류는 지상에 도래한 자신의 아버지 허경영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허경영의 손과 발에는 예수의 십자가 상처가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자 허경영에 성부, 성자, 성령이 들어 있습니다. 마리나 타 주여 오소서. 요한계시록 22장 20절. 2024년 3월 8일 북향.

불교와 기독교, 그리고 허경영의 도래

석가모니가 “하시야소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야소라고 불렀습니다. 아까 그 나오죠. 야라고. 이 야를 이제 그 사람들은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그렇습니다. 하시야소래가 오고 나면은 “오도 무유지 야.” 나의 불교는 도는 기름이 없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석가모니가 자기가 돌아가고 나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독교가 나오는데, 그 사람이 야소, 예수입니다. 그가 오면 자기의 도, 나의 도는 기름이 없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교가 밀리는 형국에 온다는 소리입니다. 불교가 쇠퇴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쌀 짊어지고 절에 가는 사람이 적어지고, 절들은 결국은 성녀가 되겠다는 사람이 없어지고, 템플 스테이로 먹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템플 스테이가 뭐 하는 것입니까? 그냥 숙박업입니다. 산도 있고 경치도 좋으니까 숙박업으로 먹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이트클럽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전 세계가 그렇습니다. 이런 형국을 밟아가는데, 기독교가 나중에 나와서 그나마 기독교는 좀 그 이후에 번성합니다. 그러다 또 기독교도 또 그렇게 점점 없어집니다. 그때 내가 올 때입니다. 이런 말은 내가 하지 않으면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 내가 지어냈습니까? 이것이 바로 불교의 라마다 경전입니다. 라마다 경전은, 라마다 교회 경전입니다. 라마다 경전에 이렇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가 오면 바로 나의 도는 기름 없는 등불로 사라질 것이라고. 이것을 미리 이제 그 나옵니다. 맞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많이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일본만큼 기독교가 못 들어갑니다. 왜 그럴까요? 귀신이 많아서 1%를 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그냥 우리는 비 사상이 너무 심했습니다. 여자와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와 종들이 교회 가서 그 집에 있는 종이 장로가 되고, 집주인이 나중에 종 때문에 거기 가서 집사가 되는 것입니다. 계급을 뛰어넘게 해 준 것입니다. 여기가 계급 사회였습니다. 계급 사회니까 양반, 상놈이 심했다는 말입니다. 상놈 계열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 가서 장로가 되어 버립니다. 양반들이 뒤늦게 교회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어떻게 되냐면 상놈들 탈출구가 종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 여성을 너무 비하하니까 여성들이 거기 가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니까 여성들이 좋아합니다. 여성이 외출을 못 하게 되어 있던 시절인데 교회 간다고 하면 외출 허용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가니까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대주니 여성들이 좋아합니다. “내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니 “어머, 이것은 완전히 공자 맹자하고 다르잖아”라고 합니다.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여자 대우와 남자 질서가 탁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다, 하인이다 이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같이 그렇게 조선시대 때 양반 사회, 상놈 사회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종교가 파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다 만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불만 세력이 많았습니다. 부여자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남존여비. 그리고 종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종이 90%, 양반이 10%. 그러니까 기독교 퍼집니까, 안 퍼집니까? 퍼져 버리는 것입니다. 종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독교가 팍 퍼져서 그 집 종이 장로가 되어 있고 그 집 주인이 나중에 집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 실제 있었던 일들입니다. 그럼 누가 먼저 갑니까? 종들이 먼저 가는 것입니다. 왜 너무 잘해 주니까. “인간은 평등하다. 종이 어디냐? 우리는 주의 종이지. 네가 양반이 뭐” 이러니까 완전히 이 해방 신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우리는 기독교가 빨리 퍼졌습니다. 내가 오기 위해서 자그마치 이승만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데 누가 성경을 한 권 더 줬겠습니까? 감옥에 있으면서 성경을 다 외웠습니다. 너무 철학적이고 내용이 좋으니까, 이승만 청년이 거기서 성경을 다 외워 버린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나와서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들을 알게 되고, 선교 만고 선교사 만들려고 미국에 보낸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 사람이 성경을 감옥에서 읽고 나와서 교회를 가니까 교회에서 선교사가 “당신은 훌륭한 청년이야. 유학을 가야 돼. 미국을 보낸 거야”라고 했습니다. 갔는데 그 대학교 교수가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 자기 담당 프린스턴대, 자기 담당 교수가 누구입니까? 윌슨. 그 윌슨이 주장한 것이 무엇입니까? 윌슨의 주장이 딱 한 가지입니다. 민족 자결주의. 모든 민족은 작든 크든 그 민족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하게 해야지, 강대국이라고 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안 된다. 이것이 민족 자결주의를 이승만이 그 교수를 자극을 해서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이승만 대통령이 유명해진 것은 민족 자결주의로 대통령이 됐습니다. 어떤 민족도 속박하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 우리가 해방이 된 것은 그 이승만의 덕입니다. 민족 자결주의. 모든 민족은 그 민족 고유의 그 권력을 인정해야 한다. 식민지 안 된다. 이것이 윌슨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윌슨의 민족 자결 주의가 이승만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자꾸 대통령 되게 한 사람이 이승만이 아니니까, 그 이승만의 사상이 최고로 훌륭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윌슨이 또 이승만에게 보답을 합니다. 윌슨이 논문을 제출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그 당시 일본 식민지 때입니다. 이마이가 미국 간 것 아닙니다, 유학 간 것이 식민지 때 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저, 저, 저 식민지 때 미국을 가서 공부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라고 하냐면 한반도에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신탁 통치에 대하여, 이런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이 윌슨이 그 논문을 보고 민족자결주의를 생각한 것입니다. 무엇이냐, 한반도는 절대 독자적으로 당장 설 수가 없다. 반드시 소련이 일본을 쫓아서 들어올 것이고, 미국도 그것을 도울 것이고, 그러면 한반도는 몇 년 동안 신탁 통치를 하게 될 것이고, 그때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서 쫙 논문을 썼는데, 그것이 30년 후에 다 들어맞아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윌슨이 이승만 대통령을 세계 최고의 논문을 쓴 사람, 천재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그 사람은 한반도에 소련군이 들어오고 미군이 들어갈 것을 알았냐는 말입니다. 그때는 조선 일본이 지배하고 있을 때인데. 그러니까 한반도 신탁 통치를 최초로 이야기한 사람이 이승만입니다. 그러니까 이승만의 사고방식의 논문이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해서, 그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됩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돼서 대통령 숙소에 맨날 불려 가는 사람이 이승만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집에 수시로 가서 밥을 먹습니다. 파워가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되니까 우리나라가 전쟁이 날 때 이승만 대통령을 도운 미국 대통령들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그 논문을 30년 앞을 내다보고 민족 저저저 저 한반도 신탁 통치라는 논문을 쓴 자가 저 이승만이다. 미국 전 세계에서 아직까지도 이승만 논문을 따라가는 논문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 논문에는. 이렇게 그래서 이승만을 윌슨은 예언자라고 합니다. 예언자라고. 예언을 한 것입니다. 그대로 한반도 역사가 지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승만이 딱 한국에 와서 국회의장이 됐습니다. 국회의장이 됐다고. 1948년 5월 달에 국회 오픈을 했습니다. 그때 이승만 국회 의장이 됐다고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의장이 돼서 국회를 오픈을 했는데, 우리나라 기독교인이 1%밖에 없을 때입니다. 99.9%가 불교, 유교인데 국회 오픈하는데 목사를 데려와서 축복 기도를 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고 국회의원들 전부 앉아서 그 목사한테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가 이렇게 어떻게 되게 해 주세요” 하면서 거기서 기도를 하니까 전 국회의원들이 눈이 동그래져서 종교가 다 불교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이씨하고 그 몇 명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민족 33인 독립 3일 운동도 결국은 목사가 나머지 불교, 천도교 뭐 뱅이 천도교 뭐 이런 사람들이 끼어 있지만 그래도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민족주의가 이승만 대통령 입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그 이승만 대통령이 그나마 천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석가모니도 “하시야소래 오도 무유지 정자”라는 이런 문구를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너희가 판명이 말세가 올 것인데 언제 오느냐? 내가 죽고 나서 3천 년 후, 그때는 이 불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