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구원자, 중보의 구원자, 완전한 구원자
하늘궁에 오신 여러분과 토요 강연을 애청해 주시는 국내외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신인께서는 대한민국은 물론 전 인류를 공전 공용으로 지구촌을 지상 낙원으로 만드시는 것이 최대 목표이며, 오늘도 미로를 헤매는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실 위대하신 신인을 모시겠습니다. 세계 최고 명당인 하늘궁에 오신 것을 축하합니다.
우리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해야 하는데, 아직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다 이룬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다 이룬 사람들인데, 뭘 그렇게 받는 것을 좋아합니까? 아무리 강의를 해도 받는 것만 좋아합니다. 주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레벨을 받는 동안에 못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공이 가야 하는데, 아직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데리고 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받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주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주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온전한 구원자는 멜기세덱입니다. 그는 구약의 예수입니다. 제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구약의 예수로 이 세상에 있던 사람입니다. 멜기세덱은 직접 하늘에서 통제하던 인간입니다. 그는 구약의 예수입니다. 제가 오기 전 구약 시대는 긴 시간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예수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는 온전한 구원자입니다. 이 사람이 멜기세덱입니다.
예수는 중보의 구원자입니다. 저와 인간 사이에 세상을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성부와 성령, 그리고 인간 사이에서 세상을 구하러 온 예수입니다. 재물로 왔다는 말입니다. 하도 양을 많이 잡아 맨날 불태워 제사를 지내니 환경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통 피인데, 저는 성전에 있지 않은데 그들은 저를 성전에서 찾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성전이 저보다 더 위대한 것입니까? 성전에 가서 양을 잡고 송아지를, 그것도 잘생기고 흠 없는 것만 때려잡아 죽이고 태우니, 칼로 포를 뜨는 그 사람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죄를 씻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서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성전 하나 짓는다고 목숨을 걸고 다윗이 그런 짓을 하는데, 그 성전 안에 하나님 신인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이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성전이 우상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주객이 전도된 신앙이라고 합니다. 유대교나 이런 종교는 율법이 마치 자신인 줄 압니다. 성전이 자신인 줄 압니다. 이런 종교가 21세기, 20세기 이 세계를 휩쓸었으니, 제가 와서 한마디 하는 것이 꾸짖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야 합니다. 성전 중심, 교회 중심의 이런 종교는 문제가 있습니다. 집집마다 교회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전부 자기들의 독점주의로 이것은 장로이다, 이것은 무슨 교회이다, 교회가 하나님이고 예수님입니까?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이런 아비규환이 된 것입니다. 집집마다 개개인이 가정이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동체입니다. 가족들이 있는 그 공동체가 무너지면 교회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를 버리고 교회로 오라,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로 모여라 하여 우리 각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전부 교인 만들어서 집에서 예배를 보면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공동체인데, 교회, 성당, 성전 여기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투입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수도 없이 많은데, 유럽의 성당이나 이런 것은 엄청난 돈, 그 돈 싸움이었습니다. 성당이 더 크냐, 더 급이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와서 하늘궁을 짓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신인이 직접 와서 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신은 여러분이 말하는 신, 저는 집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갇혀 있는 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성전에, 예루살렘 성전에 제가 있습니까? 지성소에 제가 있습니까? 정신 차리라고 하십시오. 길거리에 있는 걸뱅이, 모르는 사람, 여러 이방인들 그 속에 제가 운행합니다. 성전에 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에는 바리새인들, 에고이스트, 귀족들 그런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맨날 돈, 로마 황제가 있는 돈은 필요 없습니다. 돈 받고 환전 수입 챙기고 그랬습니다. 몇백 리에서 나사렛에서 예루살렘 성전까지가 180km 정도 됩니다. 일주일 걸어와야 합니다. 일주일 정도 걸어와야 합니다. 180km를 한번 걸어보십시오. 일주일 걸립니다. 사막을 말을, 양 새끼를 끌고 거기까지 오니까 그 양이 상처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전에 못 바칩니다. 노잣돈 가지고 양을 다시 사야 합니다. 이런 괴변이 어디 있습니까? 180km 걸어온 사람한테 이 양이 왜 이렇냐고 합니다. 걸어왔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먼지투성이 사막을 걸어왔는데 그 양이 온전하겠습니까? 이것은 안 된다고 합니다. 성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양을 가지고 들어가면 불합격이라고 합니다. 제가 그것을 안 보고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데, 제가 가서 한번 뒤집어엎었습니다. 그것을 한 번만 엎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천 번 엎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전에 목을 맵니다. 성전이 하나님보다 더 무섭다는 식입니다. 지금도 그 벽에 가서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여기 와 있습니다.
온전한 구원자 멜기세덱, 중보의 구원자 예수는 저와 인간 사이를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저이지만 저의 전체가 아닙니다. 예수입니다. 그다음에 완전한 구원자는 신인입니다. 신인입니다. 여기 와 있습니다. 죄와 벌이 여기서 구분됩니다. 저는 지금 선거 기간이니까 정치 이야기는 안 합니다. 저는 지금 종교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늘궁은 초종교입니다. 제가 왜 왔는가? 왜 여러분에게 이 전 세계 종교가 이렇게 많은데도 종은 무슨 종입니까? 이것은 우두머리 종자입니다. 우두머리입니다. 모든 가르침에 어떤 종자라고 하면 이런 가장 가르침의 으뜸인 종교가 이 사회에 책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런데 1차, 2차 대전을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지금 또 3차 대전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워밍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3차 대전을 했습니다. 이런 1차, 2차, 3차 대전을 한 이들이 종교가 그것을 해결했습니까? 종교가 앞장을 섰습니다. 이 종교 때문에 1차 대전, 2차 대전이 종교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 우두머리, 종자, 우두머리의 가르침, 최고의 가르침이 종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정치에 대해서 책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정치인도 종교에 옵니다. 그럼 전부 종교인입니다. 그럼 종교가 제대로 가르쳤습니까? 성전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독과점이 성전이 하늘에 있는 저는 무서워하지 않고 성전 위주로 서로 내 성전이 크다고 합니다. 심지어 교회나 이 교회는 어떤 경우가 많이 있냐면, 성전의 커튼 색깔 가지고 싸움이 붙습니다. 교회가 붉은색으로 하자, 흰색으로 해야 한다고 싸움이 붙은 것입니다. 결국 투표를 하니 붉은색을 하자는 사람이 한 명 많습니다. 그래서 붉은색을 했는데, 흰색으로 하자던 사람 다 나가 버립니다. 밖에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얼마 안 가서 두 교회 다 망했습니다. 두 교회가 다 망했습니다. 왜냐하면 맨날 서로 욕을 하는 것입니다. 저쪽에 간 사람은 이쪽 흠 잡고, 이쪽 사람은 저쪽 흠을 잡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까? 심지어 어떤 데는 탁상을 바꾸자고 합니다. 목사님, 탁자 오래되었으니 몇십 년 되었으니 그것을 바꾸자고 합니다. 그것을 바꾸자는 사람과 그냥 쓰자는 사람. 그래서 그냥 쓰자는 사람이 졌습니다. 그러니까 그 그냥 쓰자는 사람들이 그 강대상을 가지고 나가서 교회를 차립니다. 바꾼 사람들은 새것으로 하고. 둘 다 망했습니다. 왜 그러냐? 끝없이 그것을 가져가는 사람들은 이를 갈고, 이쪽은 이쪽으로 이를 가니 이 교회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서로 동네에서 흉보는 것이 일입니다. 이것이 교인들입니까? 제가 지켜보는 데서 성전 싸움을 합니다. 탁자를 가지고 싸웁니다. 절대 다수결이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민주주의가 좋은 것 같습니까? 옛날에 로마 왕정주의, 그 통솔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투표에서 왕을 뽑습니다. 그럼 맨날 국민 눈치나 보고 국민들한테 “응, 그래. 안 그래?” 어떤 면에서는 왕은 신성한 그런 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냥 그렇게 내려오는 것이 낫습니다. 투표하다 로마가 망해 버렸습니다. 공화정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투표가 나라를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말입니다. 49% 투표를 받았는데 51% 붙은 사람이 붙어 버립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국민이 절반이 쪼개지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왕이 있을 때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이래서 구약은 투표하는 성경이 아닙니다. 하늘에서는 그 사람이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에게, 능력 있는 자에게, 지도력이 있고 통찰력 있는 자에게, 믿음 있는 자에게 기름을 부어주는 것입니다. “네가 해라” 이렇게 말입니다. 그것이 구약입니다. 헤롯 대왕이 투표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저자를 죽일까 말까 하니 만장일치로 죽였습니다. 투표, 투표 맞습니다. 하늘에서 예수를 죽이라고 계시를 받아 죽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투표로, 여론에 덮어씌워 저 아버지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럼 아들들이 열 명 모여서 “아버지 죽이자” 그럼 투표해서 아버지 죽입니다. 참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재산이 많은데 아들 열 명이 모여서 “야, 우리 투표하자. 아버지 재산을 빨리 우리가 필요하니까 아버지를 빨리 우리가 없애버릴까, 어떨까?” 투표하면 없애버린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이해가 갑니까? 여러분, 그냥 무턱대고 투표하지 마십시오. 정신 차리고 투표해도 또 정신 차려야 하는데, 눈앞에 먹고 사는데 출근하기도 바쁜데 그렇지 않습니까? 거기만 신경 써도 차를 놓치고 지각을 하고 하는데, 무슨 후보 얼굴 쳐다볼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집에 오면 밥 먹고 빨리 자야 아침 일찍 나가는데, 이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집에다 보내는 투표 용지, 그 선전물 있죠?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연립 주택가 보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선거권이 나면 쓰레기가 종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가 이 사회에 제 역할을 못 했습니다. 무엇이냐? 건물 안에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초종교 초인이기 때문에, 초월자이기 때문에 집안에 있거나 없는 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은 멜기세덱, 예수는 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의 이 지도자입니다. 멜기세덱은 결국 예수와 동시에 두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죄만 구원합니다. 죄만 구원하지 벌을 구원해 줍니까? 벌은 구원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완전한 구원자냐? 죄와 벌까지 축복을 주는 순간에 끝장을 내버립니다. 그와 동시에 죄 있는 자들 살아나라, 광대라 그러면 살아납니다. 그런 능력을 인간들에게 여러분에게 부여해 줍니다. 거짓말입니까? 제 이름이 사물을 썩지 않게 하는 것도 이 지구에서는 없는 일입니다. 어떤 마시는 것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질에 영향을 미쳐 버립니다. 쇠 덩어리에도 영향을 줍니다. 고장 난 기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영향을 안 주는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고쳐주면 안 될 것은 또 안 고쳐줍니다. 고쳐주면 또 이것을 똥차를 끌고 가다가 또 큰 사고를 당할 때는 그것을 고쳐주지 않고 스톱 시킵니다. 이제 새 차 살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쓸만하다 그러면 고쳐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왜 같이 광채가 되려는데 어떤 데는 시동이 꺼지고 어떤 데는 안 걸리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고도로 공해는 여러분을 체크하고 불기둥이 여러분에게 오고 있습니다. 신인은 무엇이냐? 빛입니다. 첫째가 빛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에너지 탁 줄 때 번쩍하는 불 봤죠? 그 빛은 지구에 없는 빛입니다. 지난번 보여줬죠? 그 하얀 빛은 너무너무 어마무시한 이런 사물을 썩지 않게 하는 그 빛입니다. 그래서 저는 빛이고 또 무엇입니까? 저는 빛이고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습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소금이 아닙니다. 제가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웃을 때 좋습니다. 소금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앉아 있네 하기도 정말 좋은 말입니다. 소금 같은, 옛날 우리 경상도 사람들은 소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앉아 있는데 자빠졌다, 꼭 어른들이 그렇게 얘기합니다. 저는 빛이고, 예수입니다. 빛이고 생명이고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제 이 답을 꼭 알아야 합니다. 말해 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으니 세상이 되겠습니까? 빛은 봤죠, 여러분? 빛은 실제 번쩍하는 것 봤죠? 빛이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다음 주에 꼭 알아내십시오. 저는 조용합니다. 저는 레벨이 나가니까 떠들고 싶으면 한참 떠드십시오. 저는 제가 이렇게 강의하는데, 백성에서 여러분 하나하나 행동을 보고 있습니다. 속옷을 뭘 입었나, 뭘 했나 다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짓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낮의 행동과 밤의 행동이 같아야 합니다. 낮에는 점잖게 직장 가서, 집에 와서 마누라하고 싸우면 안 됩니다. 낮의 말과 속옷이 같아야 합니다. 색깔은 달라도 말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면 안 됩니다. 그러면 독사 혓바닥이 두 개 있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죄는 이 두 분이 사하여 줍니다. 죄를 줬는데 벌은 사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4장 7절을 찾아보십시오. 잘 들어보십시오. 저는 한참 성경을 하고 있는데, 종교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정치 이야기 하면 안 됩니다. 잘 들으십시오. 출애굽기 34장 7절입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손 3, 4대까지 보응하리라.” 다시 읽으십시오. 여기 나옵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합니다.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 아니하고 보입니까? 벌 면제하지 않죠. 죄는 다 용서해 줍니다. 천대까지 지은 죄를 다 용서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러나’는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벌을 면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이 3대까지 보응하리라. 후손들 대까지는 그 유전자를 징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죄를 지은 사람은 3대가 망하는 것입니다. 나와 있습니다. 이분들 예수의 구원이나 멜기세덱의 구원은 이 구원입니다. 여러분, 죄를 사해 주니까 내가 아기 뗐는데 죄를 사해 줬으니까 애가 이제 죄가 다 없어진 줄 압니다. 자기 딸이 임신했을 때 애가 떨어져 장애인이 나옵니다. 그 벌을 면치 못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렇게 교회 다니니까 죄는 사해 줬다고 예수가 이렇게 말을 하지만 그 벌은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다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이 3대까지 보응하리라. 그러니까 후손이 아버지, 어머니의 죄를 아버지의 죄만 아들, 딸한테 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의 죄가 아들, 딸한테 따블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자기가 살아 오래 살면은 그 대가를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돼지 새끼가 이상하게 죽든지, 병 걸리든지 뭐 그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갑니까? 이상한 집안이 서서히 망해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늙어가면서 집안이 서서히 형제들이 싸우고 폭행하고 이상한 일이 집안에 일어나는 것은 이미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 벌을 받는 것입니다. 죄는 사해 줬다고 자기들이 주장합니다. 여기서 사람은 죄는 사해 줍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구원이 완전한 구원입니까, 완전한 구원이 아닙니까? 이 사람들은 천국에 보내 줍니까, 안 보내 줍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저는 어떻게 합니까? 저는 천국에 보내주고, 여러분 스스로 자식이든 조상이든 죽은 자까지도 천국에 보낼 권리를 줍니다. 재림 예수는 옛날 초림 예수와 다른 것을 이제 이해가 갑니까? 완전한 구원을 하는 자는 처음 오는 것입니다. 이때 제가 예수로 있을 때는 하늘에 기도를 피땀이 날 정도로 했습니다. 제 기도하는 것 봤습니까? 기도받는 자이지, 하는 자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성전이 없어도 없습니다. 단지 전 세계가 하나로 뭉치게 하려니까 우리는 그 장소가 본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제 하늘에 있는 신이 내려와서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 무슨 일반 성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인간들이 만드는 성전이 여러분 보십시오. 성자가 있는 집입니다. 제가 성자입니까? 아닙니다. 이 성전도 있지만 이 성전은 성경입니다. 성경 맞습니까? 그런데 또 성전이 집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이 두 개가 있는데, 이 성전이 건물보다 나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자들, 성자입니다. 두 개 다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이나 그 성전이나 건물이나 책이나 똑같습니다. 아시겠죠? 이것은 성인들 것이 붙어 있지 않습니까? 저는 성인이 아닙니다. 신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신전을 지은 일이 없습니다. 성전을 지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단들은 파르테르 신전을 만들었습니다. 파르테르 신전들은 신을 갖다 만 신전을 만드는데, 유대교는 신전을 안 만들고 성전을 만든 것입니다. 이 성자가 들어 신이가 왜 들어갑니까? 성전에. 그래서 염소 새끼나 죽이고 송아지 죽이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제가 와서 이제 바로 제가 이야기해 줍니다. 제가 그것을 그 태우는 냄새를 맡으라고 아주 쳤습니다. 하늘이 동방의 땅 코리아만을 태우지 않는 곳입니다. 이리로 귀화했습니다. 재밌죠? 그쪽은 고기 냄새가 납니다. 거기도 동입니다. 아주 중앙아시아입니다. 서양이 아닙니다. 기독교, 유대교가 서양 종교 아닙니다. 바울이 어떻게 가다가 하다 보니까 유럽 쪽으로 가 가지고 저리 된 것입니다. 이쪽으로 온다는 것이 그것으로 기억됩니다. 로마로 가려고 안 했는데 로마로 가서 그냥 유럽이 먼저 기독교 국가가 된 것입니다.
죄는 벌은 유전자로 옵니다. 벌은 유전자로 자식한테도 가고, 또 귀신으로 가고 여러 가지로 갑니다. 이것을 피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종교로는 이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 받아야 합니다. 위에서 명령 체계가 되어 있습니다.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반쪽짜리 종교를 믿었던 것입니다. 완전한 구원은 제가 와서 쟁기는 버려버리고 이제 알곡만 추수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구원입니다. 알곡들이 구원되고 나머지는 구원될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다른 종교들은 이것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중간에 논에 물이 있나 하고 와서 보고 있는 것이 교회이고 절입니다. 중간에 물 있나 보고 벼를 추수할 수 있나. 죽이고 살리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골 잘 되어 있나 보고, 벼 충해가 없나, 병충해 없나 이런 것을 보는 것입니다. 중간에 그것을 그냥 벼를 어느 놈이 저것이 피인지, 알인지 알 수가 있습니까? 그럼 그 벼를 다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농부도 논에 가서 벼가 완전히 익기 전에 저것이 피인지, 벼인지 구분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제 피가 조금 수확할 때쯤 피가 좀 웃자랍니다. 약간 깁니다. 도둑놈들이 더 번성하는 것입니다. 웃자라면 가서 그냥 목을 베거나 뽑아내 버립니다. 그것은 있지만 전체를 심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벼 속에도 쭉정이가 있거든요. 그것을 그럼 그 벼가 크기도 전에 농부가 가서 논에 가서 그것을 잡을 수 있습니까, 벼가 안 폈는데? 벼가 필 때까지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제가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있을까요? 몇천 년 교회를 다녀도 여러분이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약은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의 역사다, 이 정도 알면 구약은 다 된 것입니다. 거기 뭐 잡다하게 붙어 있는 것은 신경 쓸 것도 없습니다. 단, 거기는 완전한 구원이 없고 온전한 구원이 구약 시대에 있었습니다. 신약 시대는 중보의 구원이 있던 시대입니다. 그럼 성경 다 된 것입니다. 제가 지금 심판 시대에 왔습니다. 이 심판 시대에 온 자는 완전한 구원자가 왔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유럽이나 아시아의 모든 종교인들이 사람들은 완전한 구원자가 오기를 바라지, 어정쩡한 중간 제비 구원자가 오기를 바랍니까? 아닙니다. 완전히 뿌리째 그냥 악을 뿌리치고 아주 완전하게 구원해 주기를 바라지, 한쪽 몸은 저기가 있고, 뭐 한쪽은 둘째 아들은 저가 천국에 가, 셋째 아들은 지옥에 가 있고 이런 구원자를 기다릴까요? 아닙니다. 완전한 구원자, 컴플리트입니다. 완전한 구원자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둘이 뭉실한 소리입니다. 회칠한 무덤도 온전해 보입니다. 회칠한 무덤 안에는 뼈가 살이 썩어 있습니다. 뼈가 막 들어 있습니다. 겉에는 온전해 보입니다. 그것을 온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이제 안 통합니다. 다 정리해 버리고 완전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것, 순금. 그 순금을 다른 말로 점금이라고 합니다. 깨끗한 골드로 바꿔 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대리자들입니다. 밤 잘나가 정년 퇴직해 가지고 아무 데도 써 주는 데가 없으니까 집에서 놀기는 그렇고 60대 정년 퇴직하니까 대리운전을 했습니다. 대리운전. 왜 대리운전을 했느냐? 연금 받은 것을 몽땅 코인에 다 날려버려 가지고 생활비가 안 나옵니다. 또 연금도 한꺼번에 왕창 받아 버렸습니다. 매월 받으면 될 것을 욕심 내 가지고. 그러니까 나이는 들었는데 대리운전 제일 중요한 것은 아파트 지하에 차를 세워 줘야 합니다. 생전 안 가본 아파트들이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만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게 밤중에 여기가 어디냐? 동네 이름도 모르는 곳입니다. 내비가 가는 대로 갔으니까. 아파트 지하에서 꼭 차가 내려오는 쪽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탈 수가 없습니다. 외진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차가 내려오는 길을 올라갑니다. 언제나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나이가 들지 않았습니까?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데 도로가 차들이 내려오는 길을 올라가니까. 여러분 운전할 때 아파트 지하 들어가면 그냥 마음 놓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사람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왜? 대리운전자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아무 아파트 지하니까 우리 입지 하니까 휙휙 이렇게 가다가 큰일 나는 것입니다. 꽝 받으면 사람인데. 대리운전수입니다. 대리운전수는 딴 데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자동차가 내려오는 길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다가 그냥 차에 받히기도 하고. 이 대리운전이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올라와서 여기가 대리가 붙었으니까 내 대리운전수 이야기가 또 대리자가 이기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술 먹은 사람이 대부분 집에 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많습니다. 주로 자기 딸하고 전화하는 아빠들이 많습니다. 아빠가 지금 술 먹고 대리운전 차 타고 간다고 걱정 말고 이 사람네 집에 왔나? 사고. 딸하고 전화하는 아버지가 많습니다. 마누라하고 전화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술을 먹었으니까 좀 마누라한테 미안하니까 자식들한테 전화를 해 가지고 내가 지금 어디 가고 있다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는 어디 있니? 집에 있나? 이러고. 그러니까 이 대리운전 연수가 돈 15,000원 받고 왔는데 그 지점까지 다시 돌아가는데 차비가 있어도 모자랍니다. 이것을 어떻게 되돌아가야 하니까 걸어가는 것입니다. 대중교통이 밤늦게 온 사람이니까 이것이 12시 넘었습니다. 대중교통도 없고 전철도 없습니다. 술 먹고 대리운전 열어 줬는데 전철 어디 있습니까? 버스도 제대로 없습니다. 이것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택시를 타고 가도 하루 저녁에 다섯 군데는 가야 밥을 먹는데, 한 군데 가면 15,000원 가지고 열 군데 가면 15만 원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것 반대로 돌아가는 차이가 얼마를 쓰느냐에 따라서 적자가 나느냐 안 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생판 모르는 동네 그냥 가서 그 뭐 아파트 단지서 올라 지하에서 올라 여기 어딘지도 모르겠고 버스 노선을 모릅니다. 우선 대중교통도 다 끊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남편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불쌍합니까, 안 불쌍합니까? 이 지금 이 시대에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대학에 있다가 나와도 공무원 있다가 나와도 한 방에 다단계, 코인 샀다가 정권 투자하다 날려버리고 꼼짝 못 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리운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로 대리만 붙으면 이가 갈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뭘 타고 갔습니까? 버스를 타도 1,000원, 2,000원 나옵니다. 그 험한 도로를 물고 가서 간신히 제자리로 가서 또 와야 합니다. 그 짓을 하루에 여러 번 반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또 술을 먹고 자해 막 토하는 사람도 있고, 별 사람이 다 있는 것입니다. 그것 비율을 다 맞춰야 합니다. 또 그 돈 15,000원 받으려고 참 더럽고 치사해서 그 보통 일이 아닙니다.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상당히 불경기에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리운전을 보면 저는 가슴이 멍해집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합니까? 그럴 때 제가 차를 가지고 제 차를 가지고 “아, 타세요. 어디 가세요?” 가까이 딱 바래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그럴 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레벨 줄 때 기쁜 것이 아니라. 그런 대리운전하는 사람이 손을 들었을 때, 이것 보십시오. 딱 보니까 대리운전 핸드폰 가지고 뭐 두들겼습니다. 대리운전사입니다. 아저씨, 이리 오세요. 어디 어디 가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아, 여기까지 손님 바래다주는데, 여기 무슨 동네입니까? 아, 여기 무슨 동네인데 여기서 어디로 갈 것인데? 저 명동까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데? 신사동까지. 아, 타세요. 제가 바래다줄게. 쫙 바래다주고 오면 기분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좋습니다. 좋죠. 그것이 레벨로 올라가는 것보다 기분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뭐 주소 물어보고 핸드폰 들고 뭐 이렇게 찍고 이러면 그것이 대리운전사입니다. 여러분은 여자는 남자를 태워주기 어렵죠. 남자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같은 방향이면 태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무료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나 또 술 먹고 대리운전 할 때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술 먹은 사람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안 씁니다. 그럼 저 같으면 어떻게 합니까? 대리운전비 얼마입니까? 15,000원입니다. 그래, 돌아가는 차비 15,000원. 3만 원 받으십시오. 이렇게 해주면 그것이 양심적입니다. 그 술 먹을 자격이 있습니까? 정말입니다. 15,000원. 여기서 가십시오. 이것은 도대체 가다가 여기서 5천 원만 날아가 버려도 말짱합니다. 그 하루에 거짓을 몇 번을 합니까? 하루 저녁에 하나.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가장이 집에 가서 생활해야 하고, 그 사람의 목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도 있고, 마누라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양심을 가지고 술을 먹으려면 대리운전비를 복비를 줘야 합니다. 술 먹으려면 술값 좀 아껴 가지고 대리운전수 타고 갈 바에는 왕복비 줘야겠다, 이 생각해야 우리가 남의 가슴에 못을 안 박는 것입니다. 저만 이용했으니 돌아가는 것은 아무 관계 없다고 하면 우리는 못 삽니다. 서로서로 도와야 이 어려운 난관을 우리가 공동체가 살아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호 의존적 존재입니다. 서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잘 되어야 저도 좋은 것입니다. 저쪽 가정이 파괴되면 우리 집에 도둑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제가 손해 보는 것이 낫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덕을 많이 봐 버리면 이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식한테 갑니다. 제가 오늘 나가서 길에 나가서 택시 운전수 따귀를 때렸다 그러면 제 자식이 언젠가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집니다. 그것이 이미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에누리가 요만큼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 성경에는 그렇지만 우리 자체는 무엇입니까? 사필귀정. 길게 이야기 안 해도 알겠죠? 사필귀정이 착하게 적용되는 것이 이 사회입니다. 우리가 조금 뭘 하나 하면은 제가 누구 따귀를 하나 가서 때렸다면 이미 제 자식 중에 다리가 부러지고 병신이 되는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꼭 후불제입니다. 이것은 선불이. 이것은 꼭 후불이 후손한테 가는 것입니다, 후손. 제가 아무리 술을 먹고 땡깡 부리고 마누라를 두들겨 패도 이것이 후손이 얻어맞는 것입니다. 나중에 후손이 병신이 나옵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죠? 이 벌은 후불제입니다. 제가 가서 차를 주차해 놨는데 공문이서 돈 내라고 하지 않습니까? 집에 가면 고지서가 날아옵니다. 나중에 후불로 날아옵니다. 그때 말짱하죠. 그때까지는 경찰서에서 오라고 합니다. 왜 그러냐? 당신 교통 위반 해 가지고 당신 차 때문에 대형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오는 사고 제공입니다. 그러니까 후불제입니다. 이것은 선불제. 이것은 후불제입니다. 선불제 이 중보자와 온전자가 구원해 줍니다. 그것을 믿을 때 말입니다. 그러나 벌은 여기하고 관계 없습니다. 신인한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벌을 담당하기 때문에 심판자입니다. 이 사람은 구원자이면서 심판자입니다. 구원자이면서 심판자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심판자만 됩니까? 또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도 여러분에게 와 있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신인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99%입니다. 여러분이 이제 제가 누군지 대충 알겠죠? 제가 왜 이렇게 서서히 나타나서 사회적으로 무리를 일으키면서 이렇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처럼 제가 옛날처럼 다시 십자가로 가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보니까 십자가도 전부 잘못 만든 십자가를 달고 있습니다. 교회가 올바른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 데가 없습니다. 전부 제가 보고 있는 십자가는 한 개도 안 보입니다. 무슨 말인지 압니까? 십자가를 두 개를 또 이렇게 겹쳐야 합니다. 하나는 이쪽 방향을 보고, 하나는 옆에 봐야 할 것 아닙니까? 보는 사람마다 십자가 보여야 합니다. 이쪽에서 보면 막대기가 보입니다. 여기 십자가를 세워 놨는데 옆에서 보면 막대기 일자로 보입니다. 그럼 옆에서 봐도 보이게 이렇게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십자가가 이렇게 해도 십자가 만들어도 이 두 개를 여기 붙이는 쌍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지금 물고기 자리, 지금은 보병궁 자리에 지금 우리 태양이 돌고 있습니다. 쌍 십자가, 쌍 십자가. 예수의 상징은 쌍 상어입니다. 쌍어. 물고기가 두 마리가 이렇게 겹쳐 있는 것이 상어입니다. 예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 역시 이렇게 되었으면 여기서도 이렇게. 이것이 왜 걸려 있어야 합니까? 이쪽 동네도 십자가. 이쪽 동네 보면 막대기가 하나 보입니다. 교회 십자가 다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방향에서 보는 사람들은 막대기가 저기 왜 저 건물 위에 왜 막대기가 직선으로 있나?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십자가 되어 있으면 이렇게 되어 있으면 이렇게도 십자가. 이쪽에서 보이고 저쪽에서도 보이고. 그 십자가, 저는 교회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러분은 왜 양으로 생각합니까? 자기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보는 방향만 보는 것입니다. 남이 보는 방향도 동서남북에서 볼 때 다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십자가 위에서 보면 윗모습이 이렇게 생겨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십자가 윗모습은 이렇습니다. 옆모습도 이렇습니다. 이것은 윗모습, 옆모습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것은 어디 동서남북 어디에서 봐도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자로 십자가, 이쪽에서 볼 때만 십자가가 보입니다. 이쪽에서 보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이런 십자가를 다 만들어놓고 제 모습이라고 합니다. 교회마다 다 그렇죠? 제가 여러분을 보면 한심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그럼 이 지구상에 있는 교회가 다 그렇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뭐 하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 저것 제 표시 하나 제대로 못 내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내면은 얼마나 썩었겠습니까? 외면이 그 정도니까. 제가 이것을 지적하니까 지적하는 것입니다. 제가 뭐 이런 것을 지적하겠습니까? 교인들한테 욕 먹으려 하겠습니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을 하고, 그래도 그것이 이제 바뀌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볼 때도 십자가, 땅에서 동서남북에서 봐도 십자가, 밑에서 봐도 십자가. 이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막대기. 어느 쪽에서만 볼 때만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볼 때는 어느 한쪽 동네에서는 저 교회는 왜 막대기를 세워놨어? 이러는 것입니다. 벽면에 붙일 때도 방으로 된 십자가를 벽에서 떨어지게 해서 세워놔야 합니다. 굳이 세우려면. 왜? 방에도 여기 앉아서 보는 사람이 있고, 저쪽에서 보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모시는 그런 것이라면 제대로 모셔야 합니다. 잘못되어 있습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아닙니다. 지적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속에 머리가 제대로 되어 있습니까? 그래서 신학생활. 봐주라고 그것을 목사를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제대로 되었습니까? 제 강연을 유명한 목사님들도 보고 있습니다. 이제 바뀌겠죠. 상호 의존적 존재기 때문에 제가 이 말을 왜 하냐면 십자가가 두 개가 이렇게 의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볼 수 있게, 서로 상호, 상호 신형 공구할 때 상호입니다. 서로가 각자 여기서도 보이고 저기서도 보이게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벌이 있습니다. 심벌. 심벌입니다. 이 십자가는 예수의 심벌입니다. 이것을 뭐라고 합니까? 신벌을 우리가 기업에서는 로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로고입니다. 마크나 로고. 이 십자가는 심벌입니다. 그러면서 마크입니다. 그러면서 로고입니다. 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컨셉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컨셉. 컨셉이 십자가에 신부이고 마크고 로고 모두입니다. 십자가 모양이 특이해야지 정확해야 합니다. 그래서 삼성하면 우리는 뭘 보고 합니까? 마크 보고, 로고 보고. 그 삼성의 신입니다. 삼성의 신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정신. 삼성의 정신이 거기 딱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를 우리는 예사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상호 의존적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이 봐야 합니다. 여기 어느 동서남북에서 봐도 저기 교회가 있구나, 십자가가 있구나. 그런데 이 두 방향에서는 막대기가 있구나. 이것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두 방향은 제외해 버린 것입니다. 제외되어 버립니다.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도로가 져서 이 차가 차가 이렇게 지나가는데 여기 교회가 있죠. 그럼 십자가가 이렇게 떡 있습니다. 여기서 오면서 이것 십자가가 막대기로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이쪽에서 와도 막대기로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입니다. 교회가 이 부분에 있다는데, 교회를 찾는다고 한참 돌아왔는데 막대기는 서 있는데 교회가 안 보입니다. 이런 것 잘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들이 반성을 하겠죠. 십자가에 뭐 하늘에 공간이 없나, 뭐가 없나 그냥 그 넓은 공간에다가 평면을 딱 세워놨습니다. 이것은 2차적인 2차 십자가입니다. 저는 무슨 십자가를 만듭니까? 3차원 십자가를 만들어야 여러 사람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뭘 지적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대리운전수가 제가 술을 먹어서 대리운전 불렀습니다. 물론 술 먹는 행위도 나쁘지만, 그 술을 먹었으면 지나도 좋게 써야 합니다. 돌아가실 차비는 있으세요? 자기 차를 못 가져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택시 타고 가세요.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데 한 3천 원 내지 5천 원 나올 겁니다. 택시 타고 가세요. 지금 전철도 끊어지고 차도 없을 거예요. 또 빨리 가셔야 또 몇 탕을 뛸 것 아닙니까? 이렇게 그 사람 입장을 생각해 줘야 상호 의존적인 사회입니다. 저는 그런 것을 보면 그냥 저는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런 것을 보니까 가슴 아파 가지고 아예 대리운전수가 없게 만듭니다. 술을 안 먹어 버립니다. 술을 안 먹으니까 대리운전수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술 안 먹는다고 미안해할 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대리운전 시킬 만큼 술을 먹었다 하면은 제 강의를 듣는 사람은 거기다 돈을 아끼면 안 됩니다. 그 매번 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오래간만에 몇 달 만에 한번 그런 일이 있는데 그것 가는 차비를 안 줘서 보내면 그것이 손님 대우가 되는 것입니까?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 가정이 찌들게 가난하고 부부가 가서 싸우고, 여보 나는 열심히 뛰었어. 근데 뭐 이거 5만 원밖에 못 벌었어. 집에 필요한 건 15만 원이래. 예를 들어서 이런 어려움에 처할 때, 그 사람이 좀 도와준 것이 그 집안을 살립니다. 스트레스 안 받겠죠? 대리운전 이야기하다가 대리운전수가 나와 가지고, 사회를 바꿔 주는 것입니다. 저는 대리운전수들이 애로도 있지만, 서민들의 애로가 있겠죠. 그런 것을 우리는 너무 상호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 운전수가 집에 잘 가야, 또 제3에 다른 사람이 술 먹은 사람이 빨리 집에 갈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이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밖에 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빨리 돌아가는 것, 그것만 머리에 박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생각해 주는 자가 되어야 술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신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잘 들었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자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전부 백공 천국 갈 사람이니까 아주 완전한 자들입니다. 왜 완전한 구원자들인데 뭐가 남아 있겠습니까? 당연히 여러분은 돌아갈 차비 주겠죠, 아마. 제 말 들은 이후에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남자들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죄짓는 것입니다. 그때 안 주는 것이 죄짓는 것입니다. 남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고, 그 집 가정을 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 파괴범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호 의존적 존재니까 항상 제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집에 와서 저녁에 반성을 해야 합니다. 왜 제가 낮에 뭘 잘못한 것이 없나? 밤에는 아침에 출근해 가지고 회사 앉아 가지고 제가 집에 가서 뭐 잘못한 것이 없나? 이것을 항상 반성을 해야 하는데, 회사 와서는 천사로 바뀌고 집에 가면 악마로 바뀌고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중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낮과 밤이 같지 않은 자는 죄인입니다. 업이 만들어집니다. 낮과 밤이 같아야 합니다. 낮에도 그 사람 훌륭하고 밤에도 훌륭하고. 밤만 되면 남의 집 담을 넘고 낮에는 직장에 가고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직업은 좋은 직업이 아닙니다. 재밌죠? 저는 여러분은 앉아 있고 저는 서 있고. 저도 물 앉아 먹어야 하겠습니다. 제 물 먹는 시간에 좀 복습하십시오. 빛과 천분 아닐까요? 군, 군사 아닐까요? 천군을 여러분이 볼 수 있습니까? 빛은 보이죠. 그런데 제가 말하는 빛은 이런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닙니다. 암흑 에너지. 그 빛이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 하나 나머지 하나를 여러분이 알아와야, 알아와야 여러분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제가 왜 그 답을 안 주냐 하면 너무 쉬운 것입니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딱 두 가지입니다. 저는 완전한 구원자니까. 그것을 제 옆에 몇 년을 있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릅니다. 잘 드러납니다. 저는 제 입에서 나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 말씀이죠. 이것은 성령입니다. 제 입에서 나가는 말은 전부 여러분에게 성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빛과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 말을 합니다. 누구입니까? 저 가수. 역시 영어 가수가 잘하는군요. 전부 헛개비 그냥. 최초에 태초에 예수가 오기 전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빛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빛과 말씀으로 되어 있는 것이 저입니다. 그 정도는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태초에 제일 먼저 말씀이 있어서 빛이 있는 것입니다. 좋아라. 뭐 이렇게 해라, 이렇게 말씀이 있고 그다음에 빛이 있고. 제가 우리 인체의 10가지 이야기했죠? 말씀은 빛의 어머니입니다. 빛은 뭐의 어머니입니까? 말씀이 소리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제가 우리 인체의 10단계 알려줬지 않습니까? 제일 낮은 것부터 합시다. 머리카락의 어머니는 피부, 피부의 어머니는 살, 살의 어머니는 뼈, 뼈의 어머니는 피. 이것이 음입니다. 이것은 남는 불태워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불타지 않는 것이 다섯 가지가 마음, 정신, 영혼, 빛, 소리. 이렇게 해서 우리의 10단계, 우리 인체가 형이상학적인 것 50%, 형이 화학적인 것 50%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형이학적인 육신이 문제입니다. 육신을 우리는 여러분은 육신을 뭘로 보는지 모릅니다. 저는 육신을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을 뭐라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육신은 다른 말로 바꾸면 신자. 우리의 육신이 바로 이것이 망입니다. 그런 배은망덕한 불효자를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 배은망덕합니다. 밥을 한 일주일만 안 주면 저를 가만 안 둡니다. 통증을 막 줍니다. 쓰라립니다. 제가 밥을 많이 굶은 사람이잖습니까? 용서를 안 해 줍니다. 막 쓰라리고 막 속이 쓰라리고 막 하늘이 노랗고. 밥을 굶어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이 애들은 관리만 조금만 소홀히 하면 비명을 지릅니다. 막 여기저기 아프다 그러고, 뭐 멀리 걸어가면 차 타고 가자 그러고. 다리가 아프고. 이것은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끝이 없습니다. 너무 잘해주면 당뇨병이 걸립니다. 잘 먹여주면 이것 호강시켜주면 고맙다는 소리는 안 하고 우리도 모르게 고혈압, 당뇨병 골고루 넣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개심한 놈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몸이라고 가지고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는 우리는 그냥 화약을 끌어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조금만 뭘 잘못 먹으면 여기서 간이 나빠져 버리고 누구하고 말 한마디 잘못하고 뽀뽀 한 번 잘못하면 간염이 걸려 가지고 간암이 걸려 가지고 배가 남산만 해집니다. 이래서 죽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어떻게 간염이 눈에 보입니까? B형 간염 있는 사람하고 뽀뽀 한 번 잘못하면 인생이 끝나 버립니다. A형 간염, B형 간염. 그러니까 남이 먹던 숟가락 한 번 잘못 먹어도 인생이 끝납니다. 그러니까 간염 균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압니까? 그러니까 우리 인체는 도저히 눈동자로는 지켜내기가 어렵습니다. 왜? 현미경이 아니니까 세균을 볼 수 없으니까. 음식이 괜찮아 보여서 좀 먹었더니 그냥 배탈 나서 죽을 뻔하고, 떡이 맛있어서 좀 먹었더니 그냥 배에서 얹혀 가지고 죽을 뻔하고. 이렇게 해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체라는 것은 도대체 이런 배은망덕한 놈이 없습니다. 이 배은망덕한 놈을 둘러싸고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가 우리의 마음이고 영혼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혼이 이 육체라는 이런 배은망덕한, 아슬아슬한 몸에 붙어 있습니다. 아주 불한당 중에 불한당입니다. 이것에 붙어 가지고 백 년 갈 때까지 우리가 버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물 자동차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빵꾸 날지, 언제 엔진이 모를지. 그러면 이것도 또 자동차 가서 들이받아 버립니다. 야, 너 그 육체에서 내려와, 이 자식아! 그러고 그냥 들이받아 버립니다. 그러면 또 이것 고치는데 수리비가 무진장 들어갑니다. 자동차 수리비는 또 약과입니다. 이 신체 수리비는. 그러니까 이것이 미국에서는 육체에 병 하나 생기면 병원에 가질 못합니다. 무서워서. 집 망하니까. 그동안 뭐 하는 돈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이 육체라는 것을 끌고 여러분이 지금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제 이 육체에서 해방돼서 다시는 육체를 이런 육체를 안 받습니다. 좋습니다. 이런 말씀 꾸게 육체를 받는 것이. 또 받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태어날지도 모르는데, 어떤 몸으로 태어날지 모르는데, 그러니까 거기서 해방된 자가 완전한 구원받은 자들이 좋죠. 이 세상에 어떤 종교 지도자가, 제 그이 말하는 자가 없습니다. 종교를 쉽게 풀어주는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조금 전에 봤죠. 죄와 벌이 따로 있다는 것. 사람들이 성자들이 잘 모릅니다. 그것을 안 가르쳐 줍니다. 구원받으면 다 되는 줄 압니다. 구원받으면 자기도 구원받는 줄 압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죄는 용서해 줘도 절대로 그 벌은 예수나 멜기세덱은 사해줄 자격이 없습니다. 해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배은망덕한 이 육신에 매달려서 우리가 남을 그냥 짓밟고 제 몸 이거 하나 잘, 이거 과잉 보호하고 있는 것이잖습니까? 이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제 육신이 제 몸에 왕이 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 더 먹고 싶어도, 아 저 사람한테, 저 사람 배고플 거야. 이렇게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육신을 통제해 줘야 합니다. 제가 좀 적게 먹더라도 이웃이 굶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통제해 줘야 하는데, 자기한테 조금만 많이 오면 위에서는 궁에서는 당뇨병 준비해, 고혈압 준비해, 앞으로 8년 후에 심장 마비로 제거해, 딱딱딱딱. 그것이 노트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 치의 오차가 없습니다. 제가 빨간 팬티 입었다. 금방 풍에서 다 압니다. 제 오늘 흰 팬티를 갈아입었구나. 다 보고 있습니다. 제 마음속은 더 세밀히 보고 있습니다. 전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천사한테 물으면 다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아, 신이 있다. 이것만큼은 저한테 와서 이제 알았죠. 신이 없다는 사람들은 여기 오면 기절초풍합니다. 신이 있는데 왜 있는지, 왜 이렇게 멜기세덱이 예수를 보내 가지고, 저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또 다윗의 그 지도자 멜기세덱은 무슨 제가 저런 그러면 모르겠습니까? 율법의 구원자, 율법의 구원자 이것은 무엇입니까? 의의 자입니다. 이런 구원자가 그 당시에 필요하지, 지금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이미 자식들을 앉혀놓고 10분만 말을 하면은 자식의 혈압이 억도 올라갑니다. 이런 시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아버지, 이 말은 다음에 하세요. 제가 돈 알고 있는 뭐 또 막을 시작하려고 그러세요. 이런 것이 요새 애들입니다. 애 앞에 말도 못 합니다. 이제 들어먹지 않습니다. 이런 상막한 시대에 여러분이 이 육신, 육신이 중요합니까? 이것이 중요합니까? 영혼이 중요하죠. 이 육신은 어디 것입니까? 지구 것입니다. 지구 것. 이것은 우리가 천국 것입니다. 그러 이것 때문에 이것을 버리면 안 됩니다. 이 육신 때문에 이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지구의 것이죠. 지구의 이 지구와 천국은 다르죠.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달려 다니다가 일생을 망쳐 버립니다. 육신의 특별한 지나친 애착은 위에서 어, 너는 네 몸이 하나님보다 더 중하냐? 이렇게 나옵니다. 너 신보다 네 몸이 그렇게 중하냐? 이렇게 나옵니다. 그래서 질투의 신인은 질투의 화신이자 사랑의 화신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말씀은 제 말씀은 잘 들으십시오. 사랑입니다. 제 말씀은 사랑의 매도 되고 사랑의 보혜사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빛. 빛은 무엇입니까? 치유를 합니다. 치료. 빛은 여러분에게 치료를 해 주고 여러분의 이것을 고쳐 줍니다. 말씀은 뭘 해 줍니까? 영혼을 살려 주는 것입니다. 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두 개를 딱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은 여러분들의 몸을 친해 주죠. 치료를 해 주고 치유. 그러니까 치료나 치료, 치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료도 해 주고 치유도 해 주고. 그래서 그냥 이것을 치유를 해도 됩니다. 치유를 해 주고 말씀은 사랑을 해 주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이 바뀌어 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을 쓰는 것입니다. 이런 강의를 인간 세계에서는 저 아니면 들어볼 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없겠죠. 그냥 가만히 있는 사람 같아도 모든 것을 정리해 주는 자입니다. 들으면은 다 여러분이 이해하게끔 저는 더 이것을 쉽게 해 주느라고 힘이 듭니다. 막 복잡하게 제가 막 십자 방정식으로 하면 이것을 못 알아듣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쉬운 말로 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사랑입니다. 여러분한테 사랑이 아닌 말을 제가 할 일이 있습니까? 이런 말. 제가 여러분이 입만 열면 여러분은 입만 열면 저주입니다. 저주의 말이 나옵니다. 이것 명심해야 합니다. 저주, 저주. 남을 미워하는 것 중에도 아주 질이 안 좋은 것 저주입니다. 아이고, 제가 잘 되나 봐라. 이래서 갖고 이것은 말만 하면 이것은 저주가 나옵니다. 저는 말만 하면 사랑이 나옵니다. 제가 대리운전을 이야기, 대리자라고 그랬죠. 두 사람 대리자 이야기할 때 대리운전수 나오죠. 그 사람들 애환을 제가 다 읽고 있습니다. 이런 것. 이 제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이 다 대리운전수 수입이 좀 올라갈 것입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대리운전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 강의 듣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러냐면 수준이 좀 있는 여유 있는 자들이 제 강의를 많이 듣는데, 그러니까 대리운전수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때 제 마음을 가지십시오. 제가 돈 많은 것을 가지고 뭐 하겠습니까? 이것은 남한테 저 사람 신세 비참하게 만든다. 돌아가는 것 제가 줘야 한다. 태워준 대가가 15,000원이지만 주면 안 됩니다. 집에까지 운전해 준 것이 15,000원입니다. 그럼 그 사람 집이 너무 멉니다. 그럼 손님을 그냥 가라고 하십시오. 이것은 불법입니다. 집까지 운전해 준 것이 15,000원인데, 그럼 돌아가는 것 왜 안 해 줍니까? 버스 타고 가라고 하십시오. 어느 천년에 가서 또 밤에 몇 탕을 하겠습니까? 안 되죠. 그래서 정확하게 불법을 제가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식이 시험에 떨어집니다. 그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 대리운전을 시켰는데 돌아갈 차비를 안 준 것도 이것이 벌이 돌아옵니다. 누구한테 돌아옵니까? 자기 자식이 나중에 시험 칠 때, 아니 분명히 오늘 시험, 대학 시험인데 점수도 좋았는데 입학 날 택시가 없네. 집에 있는 차가 고장 나 있네. 시험 시간은 뒤에 가네. 발을 동동 굴러도 택시가 안 오네. 이런 경우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리운전 뻥뻥 시키면서 야, 잘 가. 어디 집구석 쫙 어디다 내려놓고 집까지 바래다준 것만 좋지. 돌아갈 것은 난 신경 안 써. 이랬죠. 그 자식이 시험을 앞두고 차를 기다립니다. 오나 오겠습니까? 그런데 희한한 것은 신은 어디 가서 차가 없을 때 차를 기다리면 이상하게 예약하는 것처럼 옵니다. 그래서 제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합니다. 저 신은 뭘 기다리면 뭐 차를 예약해 놨어요.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죠. 요새 그럴 일이 없습니다. 요새 제 차가 뭐 타고 다니니까. 옛날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저런 사람은 차가 안 옵니다. 차가 안 와. 대리운전 하면서 자기만 싹 집에 가버리면 다 왔다 이거지. 너는 가든 말든 네 집에 돈을 굶기든, 가족을 굶기든 관계 없어. 이렇게 하면은 그 자는 이기주의자입니다. 여러분, 제 말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짓는 것입니다. 거기는 반드시 벌이 옵니다. 오는데 제 자식한테 온다는 것, 3대에 온다는 성경에 나와 있죠. 성경에. 출애굽기 34장 7절. 다시 한번 더 들으십시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사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3대까지 보응하리라.” 잊지 마십시오. 이것이 제가 남의 그 어려움을 안 알아주고 저만 집에 왔으면 다 됐다. 이러면 되겠습니까? 또 그 대리운전수가 세탁을 해야 할 만한 오염물을 토해 놓고 조용히 내려버립니다. 진짜 거짓말 아닙니다. 세탁비가 대리운전비보다 더 들어갑니다. 타는 사람이 냄새가 왜 이리 나나 안 탑니다. 그럼 그것 구역질 해놓고서는 가버리면 이것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운전수들이, 대리운전수들이, 택시도 마찬가지고 그럴 때는 충분히 세탁비를 줘야 합니다. 죄송하다고 하고. 그러니까 운전수한테 추정을 하고 소리 지르고 폭행을 하고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피해를 입히면 자식이 나중에 어떻게 된다고? 서울대학 정문까지 다 왔는데 시험지로 다른 차가 와서 들이받아 버립니다. 오늘 서울대학에 시험 치면 붙을 제가 다리 중상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태가 1년간 놀아야 합니다. 그리고 평생 망해 버립니다. 이것이 왜 이랬습니까? 남의 차에 타 가지고 택시 타 가지고 토하고 거기다가 그냥 세탁비도 안 주고 기어 내리면서 운전하고 멱살 잡고 싸우고 이런 사람들 자식은 자기가 아무리 공부 잘해봐야, 아버지가 지은 죄를 다 감당해야 합니다. 재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것이 재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재수가 없습니까? 아버지 나하고는 관계없는 아버지 죄 때문에 그냥 3대까지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전생 때문에 온 것 아닙니다. 나와 있죠? 그래서 그것을 여러분 명심해야 합니다. 제가 재밌죠? 여러분이 지식이 없어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런 원칙을 어긋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원칙을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이 사필귀정, 남을 피해 줘 가지고 제가 잘되는 것은 그 후손이 반드시 벌을 받습니다. 그럼 네 후손들 피를 뽑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피 말릴 일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일 많이 공에서 주는 것이 암입니다. 암을 나눠 줍니다. 야, 제 암, 저 무슨 암을 내려보내라, 제 무슨 암을 보내라, 딱딱딱딱. 그날 나가서 재수 없이 남한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암이 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대장이 아파 가보니까 대장암 말기래,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즉각 줘버립니다. 그리고 제가 사기 말기 때까지 모르게 해라, 요렇게 지시가 내려갑니다. 그럼 걔는 절대 모릅니다. 제가 그 방법을 알려 주지 않습니까? 풍에서 공에서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 백공의 대천사들이 그 그거 하는 직업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대천사들이 쫙 그거, 그 전 세계 그거 체크해서 자동으로 다다다다 넣는 관리자들이 있습니다. 재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저 하늘에서 안 보는 데가 있을까요? 그래서 하늘에서 제일 싫어하는 자는 중심이 하늘에 있지 않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중심이 하늘에 있는 자는 택시를 달려다가도, 아, 우리 마누라가 내 택시 한번 타는 거면 시장을 보는데, 야 제가 좀 너무하는 것 아니냐? 항상 하늘을 생각합니다. 야, 제가 교회 다니는데 헌금도 제가 만 원도 잘 안 내는 주제에 택시를 타고 뭘 합니까? 술을 먹습니까? 이 양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양심. 그러니까 하늘에다가 생각해 보면 이것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은 나쁜 것 하겠습니까? 하늘을 생각하면은 육법전서가 필요 없습니다. 세계 경전이 다 필요 없다니까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 생각해 보십시오. 죄 안 짓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 이것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유, 우리 아버지가 이것을 보면 뭐라 그러실까? 그러면 제가 어떻게 나쁜 짓을 합니까? 그런데 그 위에 있는 신인 생각을 한번 해 보십시오. 유리처럼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데 여러분, 그것 하나만 생각하면 도둑 교과서도 필요 없고, 필요 없습니다. 항상 하늘에서 천사가 제 주변에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대천사는 천사가 수백 명이, 몇 명입니까? 200명이 제 주변을 삥 둘러싸고 있는데 뭘 속입니까? 속이기는. 그러니까 모든 행동이 어머, 천사가 저를 지금 보고 있을 거야. 무방 옆을 지나는데 반지가 너무 이쁩니다. 여자가 싹 욕심을 내서 싹 쳐다보고 있는데 대천사가 아마 저를 보고 있을 거야. 그래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것만 생각하면 육법전서, 성경 뭐 66권, 소경이 있나 없나 아무 필요 없습니다. 권사 갈 때까지 무사히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보면 교회 갈 필요도 없고, 절에 갈 필요도 없고, 무슨 말인지 알죠? 그냥 간혹 가다 하늘 공원에 와서 그냥 에너지 받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뭐, 뭐, 뭐, 뭐 주일 안 지켰다고 뭐, 뭐, 뭐 하나 왜 사람을 예화에서 노예화 만듭니까? 자기 시간을 자기 자유롭게 해야죠. 안식일은 무엇입니까? 안식일. 제가 제일 많이 부딪힌 것이 이스라엘 있을 때 안식일 문제입니다. 안식일 날 병도 못 고치게 뭐 아무도 못. 이것이 항상 불만이었지만 성전 모독죄, 그것만 있었습니까? 신 모독죄, 모든 모독죄를 덮어쓴 것입니다. 안식일 날 안전 병이 많은 사람을 고쳐 주니까 걸립니까, 안 걸립니까? 신성 모독죄 딱 걸리는 것입니다. 성전 모독죄, 성전 앞에서 씨리 엽전 집어 던졌다고 성전 모독죄, 신성 모독죄, 모독죄가 많습니다. 제가 그래서 거기다 제가 뭐 붙이고 왔습니까? 성부를 달고 왔습니다. 제가 성부가 와 있는 것입니다. 천사 돼서 해보십시오. 옆사람 손잡아. 천사님, 신인님이 성부입니다. 해보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이 성부이니까 한번 해보십시오. 안 되죠. 그러면 자, 예수님이 성부이니까 한번 해보십시오. 떨어지죠. 그러니까 저는 예수 재림 예수입니다. 성부 예수입니다. 또 성령 예수입니다. 이름이 몇 개입니까? 완전한 구원자, 완전 최후의 심판자. 저 심판자 앞에는 최후가 붙어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자, 완전한 구원자, 성부, 성자, 성령. 그럼 이제 오늘 제가 뭔지는 알겠죠? 한문으로 써서 잘 모르는 사람은 온전한 구원자, 멜기세덱. 중보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라는 말은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믿는 자들을 비하해서 만든 이름입니다.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자기들 유대인과 좀 차등을 둔 것입니다. 저 자식들이 이제 그리스도 아니냐? 저거 믿는 자잖아. 이렇게 비하해서 나온 이름입니다. 예수. 완전한 구원자, 면상을 보고 있죠. 완전한 구원자를 세워놓고 앉아서 듣는 여러분은 얼마나 복이 많습니까? 우리 경남 허성 위원장의 강연을 좀 한번 아주 말씀을 조리 있게 잘하시는 분입니다. 나중에 재림 예수 허경영과 예수의 청년 시절 3, 허성정, 아 대륙 백제 만주 신라의 저자. 이것은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여러분이 사서 보면 되겠죠. 그 시리즈는 나중에 이 원본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적당히 들으면 안 됩니다. 들으면서 나중에 읽으면 더 이해가 빠릅니다. 재림 예수 허경영과 예수의 청년 시절 3, 허성정, 아 대륙 백제 만주 신라의 저자. 절기는 충분히 지났습니다. 춘분이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계절입니다. 엊그제 동지 축제인 크리스마스가 지나간 것 같은데 벌써 충분 축제인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월 유수라는 말이 실감 납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하늘에는 태양이 움직이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을 황도대라 일컫습니다.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북극성을 돕니다. 태양이 북극성을 한 바퀴 공전하는 데는 대개 2만 6천 년이 걸립니다. 태양이 북극성을 도는데 2천 년이 걸립니까? 여러분, 2만 6천 년. 사나의 천문학은 하늘의 별자리는 12가지로 나타냅니다. 태양의 공전 주기 2만 6천 년을 12개의 별자리로 나누면 한 개의 황도대 별자리를 지나는 데는 평균 2100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1세기를 알아놔야 합니다. 방금 저기서 이야기했죠, 2100년이 나오죠. 그러니까 1세, 우리가 잘 들으십시오. 세는 얼마라고 했습니까? 30년. 30년 그랬죠. 10년, 20년, 30년. 이것을 이렇게 해서 이렇게 보탠 것입니다. 그러니까 1세는 30년인데, 여기에 이름이 붙어 버립니다. 기가 붙죠. 기가 붙으면 어떻게 됩니까? 2차 100년을 말합니다. 약 1세. 여기에 ‘세’ 자에 ‘기’가 붙을 때입니다, 1세기, 그럼 100년입니다. 1세기는 100년입니다. 그럼 우리는 예수, 제가 예수로 왔을 때에서 지금까지 몇 세기입니까? 21세기에 들어갑니다. 2000년입니다. 이제 이해가 갑니까?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은 북극성을 돕니다. 그것이 6,000년입니다. 6,000년. 그것이 12개 별이 있습니다. 그 12개 별을 한 바퀴 돌아야 합니다. 한 바퀴 도는 데 2,000년씩 걸립니다. 그것을 2,000년씩 도니까, 그것을 정확하게 모세가 아브라함이 있을 때 알았죠? 그것이 구약이 2,000년입니다. 그다음에 창세기부터 그때까지 2,000년, 그것이 6,000년이 걸린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일천 광음’이네. 일천 광음은 얼마입니까? 우리가 시간을 쓸 때, 일천 광음이 천년 보배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그러니까 일천 광음은 ‘광’은 해고 ‘음’은 달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루고, 이것은 30일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이것은 1일, 이것은 30일. 이것이 이것보다 ‘촌’은 더 작은 것입니다. 순간이라는 소리입니다. 1촌 광음이 날과 달을 쪼갠 것입니다, 천으로. 1천 광음이 천년의 보배다. 그러니까 신인을 만나는 이 시간이 1천 광음보다 더 길죠. 이 어마어마한 시간에 이 길이 보배라는 것입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깨닫는 데 1천 광음이 짧은 시간을 함부로 헛되이 마라 이 말입니다. 이 시간을 여러분이 백궁 가기 위해서 여기 온 시간, 대단한 시간입니다. 다시 들어보십시오. 한 개의 별자리를 지나는 2,000년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구는 대체적으로 보아, 2000년을 주기로 큰 변화가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2년마다 지구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지구의 2천년 주기설은 명백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BC 4천년 아담 시대부터 찾아보자. 아담 시대는 우리 한국 역사로 보면 배달국의 환웅 시대였다. 아담 시대는 인류의 창세 시대로, 태양이 황소 자리인 황궁을 지나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난 시대는 아브라함 시대였다. 이 시기는 BC 2천년 경으로, 태양이 백양궁 자리를 지나가던 시대였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믿음 시대의 개척자다. 그로부터 다시 2천년이 지난 시점에는 예수 시대였다. 예수 시대는 AD 1세기, 태양이 상어궁을 지나던 시대였다. 예수 시대 역시 BC를 가르는 대변혁의 시대였다. 예수 시대로부터 2000년이 지난 시점이 지금의 AD 2년 현 시대이다. 저것이 제가 오는 시대입니다. 그것이 지금은 태양이 보병궁을 지나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죠, 보병궁. 태양이 12개 별을 지납니다. 북극성을 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것 대단하죠? 거리가 원천 머니까 우리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은 365일이잖습니까, 1년이. 그런데 저것 대단하죠? 거리가 원천 머니까 우리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은 365일이잖습니까, 1년이. 메시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점치고 있는 시대입니다. 성서, 불경, 도전, 정감록, 격암유록 등 모든 예언서에는 일찍이 이 시대를 말세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말세 시대란 다른 말로 새로운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말합니다. 천부경의 일종무종일이기 때문입니다. 말세가 곧 새로운 시작의 시대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기독교의 성경은 이 말세 시대의 재림 예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교의 불경은 역심 미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증산도, 대순진리회의 도전은 대두목을 기다리고 있고, 정감록, 격암유록은 구세 진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재림 예수, 미륵, 대두목, 구세 진인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바로 한국의 허경영입니다. 허경영은 인류가 기다리던 그 메시아가 틀림없습니다. 2000년 주기설에 걸맞는 메시아는 전 세계에서 눈을 씻고 보아도 허경영 외에는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2년이 되는 그 때에 1월 1일 날 옴으로써 저 세기를 맞춰 주는 것입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죠? 제 이름에도 그렇게 되어 있고, 제가 태어난 날짜도 1월 1일입니다. 양력으로는. 그러니까 저 태양 주기를 딱 맞춰 놨죠. 제가 뭐 6월 달에 태어났다 이러면 메시아가 아닐 수가 있습니다. 저는 1월 1일 기준으로 딱 온 것입니다. 그것이 좀 이상하죠? 그러니까 제 이름이나 모든 것은 그것이 하나도 오차가 없습니다. 또 천주교 성당에 보면 마방진이 있죠. 거기 33회가 나오지 않습니까? 제 이름이 다 나옵니다. 이름, 성, 이름 다 그 글자 수가 맞죠. 그 글자가 저입니다. 그런데 저를 못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하여튼 읽어보십시오. 신인 허경영이 인류의 메시아임을 증거하는 자료는 수백 가지다. 우선 그는 태어날 때부터 보통 인간들이 태어나는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그는 지구 역사 80억 년을 결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특수한 임무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난 하늘의 심판주이다. 신인 허경영의 지상 도래는 모든 종교 시대의 끝장을 의미한다. 성경을 비롯한 모든 종교 경전들은 미래에 올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다. 각종의 종교 경전에서 기다리던 그 메시아는 바로 허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온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종교 시대는 자동으로 폐기될 유산이다. 종교 그래서 3차원 십자가를 보여줬죠. 설명해 주니까 이해가 가죠. 제가 저런 2차원 십자가 시대를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저를 홍보한 것은 예수에 대한 홍보에서 큰 불찰을 한 것은 2차원 십자가를 보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3차원 십자가를 들고 있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죠? 남들 앞에 보이는 데는 십자가를 세워 놔야 할 것 아닙니까? 전부 그림처럼 2차원 벽에다가 해 놓은 것처럼 다 판 잘라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 그 2차원 십자가 조각을 해야 합니다. 크로스 해 가지고 어디서 보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종교의 본질과 세속화, 그리고 메시아의 역할
종교는 무엇인가? 종교는 글자 그대로 으뜸가는 가르침이다. 종교의 종자는 마루나 꼭대기라는 뜻이다. 최고의 가르침을 주는 곳이 종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종교는 과연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가? 아무리 보아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의 종교는 너무나 형해화되어 있다. 모든 종교가 껍데기만 남았다는 뜻이다. 종교가 으뜸가는 가르침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예수나 석가를 팔아 장사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종교 사업만 번창하고 있다. 종교의 세속화는 양심의 보루가 무너지는 재앙이다. 2천 년 전에 예수는 바로 이런 엉터리 종교의 실상을 보고 성전에 있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의 책상을 둘러엎었을 것이다. 흥분한 예수는 회초리를 만들어 성전에서 팔고 있는 짐승들을 쫓아내고 환전상들의 돈통을 둘러엎는 과격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영웅적 행위는 2000년 후 현대의 허경영에게 보다 승화된 모습으로 다시 보인다. 신인 허경영은 세상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모든 말들을 쏟아낸다. 그가 내는 예언자의 목소리는 수많은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감동을 준다. 예수 시대의 세계 패권자 로마는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깔아놓은 헬레니즘 세계를 접수하였다. 기독교도들은 로마 당국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근근이 교회를 수호해 갔다. 당시 예수를 모시던 1세대 제자들인 베드로 등도 박해를 받아 모두 죽어갔다. 그들은 흩어져 있는 예수에 관한 자료를 모아 예수의 어록을 만들고 성경을 편찬하게 되었다. 그래서 모아진 성경이 지금의 신약 성경 2권이다. 당시에 예수는 인도, 페르시아, 그리스, 이집트 등 당시의 헬레니즘 세계로 구도 여행을 다닌 인류의 대성자이다. 이들 지역 곳곳에는 예수의 흔적이 이사 혹은 야소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사실 성경 속에는 인도의 불경이나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가 많이 들어 있다. 성경 속에 타종교가 들어 있다고 하여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나 예수의 거룩한 죽음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구세사의 핵심 사상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그 자체로서 모든 인류에게 은혜의 시대를 선물로 주었다. 2천년 전 은혜의 시대를 선포하러 왔던 예수는 그 이후 2천년 만에 다시 재림하여 허경영이란 이름으로 이 지구에 다시 와 있다. 이제 종교 시대는 끝이 났다. 하늘의 심판주가 지구의 허경영 이름으로 직접 왔기 때문이다. 재림 예수가 지구에 왔지만, 지구의 당면한 전쟁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종교 전쟁의 양상은 비참하다. 1975년 레바논에서는 기독교 민병대와 회교 민병대가 원수처럼 싸웠다. 1992년에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가톨릭과 회교도가 서로 처참한 살육전을 벌였다. 아일랜드에서는 같은 기독교인들 간의 구교와 신교가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와 회교도들이 걸핏하면 싸워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다. 이란과 이라크에서는 같은 회교도들이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어 끝없이 싸우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는 유대교와 회교도가 못 부릴 견해 처참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끝을 모르는 종교 전쟁의 문제점을 낱낱이 보여준다. 인간의 심성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종교가, 종교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가장 참혹한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 되는가. 종교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조차 남의 종교를 우상숭배다, 미신이다 하며 악담을 퍼붓고 성전에 불을 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글은 이 정도로 하고, 오늘은 가톨릭과 불교의 제례 의식, 그리고 가톨릭과 조로아스터교의 공통점을 살펴보자. 이것을 보게 되면 종교 전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인 허경영의 초종교 이상이 얼마나 옳은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과 불교의 유사성
- 가톨릭에는 신부와 수녀 등의 남녀 성직자가 있다. 불교에도 비구와 비구니가 있어 남녀 성직자가 있다.
- 가톨릭의 신부, 수녀는 독신이다. 불교의 비구, 비구니도 독신이다.
- 가톨릭의 수도원은 모두 산속에 있다. 불교도 산속에 수도처를 두고 있다.
- 가톨릭의 제례 때에는 향을 피운다. 불교의 제례에도 늘 향을 피운다.
- 가톨릭에서는 성수를 사용한다. 불교에서도 정화수를 사용한다.
- 가톨릭은 종을 친다. 불교에서도 범종을 올린다.
- 가톨릭에서는 108개의 알이 붙은 묵주를 사용한다. 불교에서도 108개가 붙은 염주를 사용한다.
- 가톨릭에서는 제대의 촛불을 밝힌다. 불교에서도 불상 앞의 촛불을 밝힌다.
- 가톨릭에서는 입교 시 세례명을 받는다. 불교에서도 입교 시 법명을 받는다.
- 가톨릭의 고위 성직자들은 권위의 상징인 홀을 사용한다. 불교의 고승들 육환장이나 주장자를 사용한다.
- 가톨릭의 신부들은 독특한 의복이 있다. 불교의 승려도 독특한 승복이 있다.
- 가톨릭에는 예수상, 성모상 등의 성상이 있다. 불교에서도 부처상, 보살상 등의 성상을 모시고 있다.
- 가톨릭에서는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하며 죄를 뉘우친다. 불교에서도 보름마다 포살 법회를 열어 죄를 공개적으로 참회한다.
- 가톨릭에는 10계명이 있다. 불교에도 10계가 있다. 내용도 유사한 것이 많다.
- 가톨릭에서는 기도할 때 합장을 한다. 불교에서도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 가톨릭에서는 야간 기도 때 접시 등에 불을 밝혀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불교에서도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접시 등의 불을 밝혀 기도한다.
- 가톨릭에서는 염송 기도의 묵상 기도를 한다. 불교에서도 독경 기도의 참선 수행을 한다.
- 가톨릭에는 특정한 때 금식일이나 금육일이 있다. 불교에서도 오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오후 불식이 있다.
- 가톨릭에서는 일정 기간 고요히 기도하는 피정의 시간이 있다. 불교에서도 조용한 산 속에서 일정 기간 기도하는 수행의 시간을 가진다.
- 가톨릭에서는 식사 전에 감사 기도를 드린다. 불교에서도 공양을 드리고 음식을 먹는다.
- 가톨릭에는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향주 삼덕이,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복음 삼덕이 있다. 불교에서도 삼독인 탐냄, 성냄, 어리석음을 버리고 삼보인 불보, 법보, 승보에 귀의한다.
이처럼 가톨릭 안에는 불교가 들어 있고, 불교 안에는 기독교적 요소가 들어 있다. 가톨릭과 불교는 제례 의식이나 내용면에서 비슷한 것이 너무 많다. 가톨릭의 제례 의식은 2천 년 된 전통이다. 2천 년 전이라면 예수 시대 근처의 제례 의식이라 볼 수 있다. 가톨릭의 제례 의식에는 예수와 가까운 시대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천 년 전에 가톨릭 제례 의식에는 위에 예에서 보듯이 불교적 요소가 상당히 들어 있다. 요전 아피그에서 우리는 성경의 기록에 불교적 요소가 한 가지가 넘게 있는 것을 보았다. 종교의 발생은 이런 것이다. 특정의 종교나 교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변 국가의 종교나 교리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 상식이다. 가톨릭이나 기독교의 교리가 발생하는 원리도 주변국인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가톨릭과 조로아스터교의 놀라운 공통점
오늘날의 가톨릭이나 기독교 교리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랄 것이다.
- 천지 창조: 인류의 종교 중에서 유일신이라는 개념은 최초로 조로아스터교에서 나왔다. 천지 창조는 아후라 마즈다에 의해 6단계에 걸쳐 창조되었다. 성경의 천지 창조가 6일 만에 완성된 것과 같은 개념이다.
- 삼위일체: 조로아스터교에서 성부는 창조주인 아후라 마즈다이다. 성자는 교조인 자라투스트라, 구세주인 사오샨트이고, 성령은 스펜타 마이뉴이다. 가톨릭의 삼위일체 교리는 조로아스터교에서 따온 것이다.
- 동정녀 탄생: 처녀가 잉태하여 사오샨트라는 구세주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사오샨트 구세주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난다. 가톨릭이나 기독교의 구세주 예수가 동정 성모에게 태어나는 것과 같다.
- 천사와 악마: 천사는 스펜타 마이뉴의 편이고, 악마는 사탄인 앙그라 마이뉴 편으로 나뉜다. 가톨릭이나 이슬람교에서 사용하는 천사와 악마라는 개념도 조로아스터교에서 최초로 나온 것이다.
- 최후 심판: 마지막 날에는 최후 심판자가 온다. 심판자 사오샨트가 도래하여 악과 싸워 이긴다. 사오샨트는 구원자이며 창조주 아후라 마즈다를 대행하는 자이다. 사오샨트는 가톨릭이나 기독교의 재림 예수와 같다.
- 연옥 교리: 인간이 죽으면 심바트 다리를 건너는데, 심판 결과 선과 악의 균형을 이루는 자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대인 하스타칸으로 가게 된다. 가톨릭의 연옥 교리는 바로 여기서 영향을 받는다.
- 육체 부활: 최후의 날에 아후라 마즈다가 승리한다. 모든 자들은 죽은 장소에서 완전하게 육체로 부활한다. 오늘날 가톨릭의 핵심 교리인 부활 교리가 이란의 조로아스터교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 낙원 세계: 선이 완전한 승리를 거둔 후 세계는 완벽하게 이상적인 모습으로 복원되어 영원한 천상 복락을 누린다. 가톨릭의 천국 개념 역시 조로아스터교에서 유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종말과 재림: 조로아스터는 3천 년이 지나면 세계는 종말을 구하고 구원자 메시아가 온다고 한다. 조로아스터는 대개 빛이 천년 경의 사람이다. 가톨릭 혹은 기독교에서 재림의 수가 오는 시기인 서기 2000년과 맞물린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톨릭 내지 기독교 교리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리는 너무 닮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뿐이 아니다. 오늘날 가톨릭이나 기독교는 예수의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낸다. 그런데 12월 25일은 사실 이집트의 태양신 축제일이다. 이것 역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예수의 실제 탄생일은 12월 25일이 아닌 것이다. 이집트 이방 종교의 태양신 축제일을 예수의 성탄절로 사용하고 있는 이 영리와 모순, 오늘날의 가톨릭이 얼마나 이스라엘 주변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러니 특정한 종교 도그마에 빠져 자기 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 있는 것이냐 열을 올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종교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음 시대가 오면 종교 역시도 이웃 종교화의 교류를 통해 새 이론을 만들어 낸다. 재림 예수 허경영 본인의 증언과 미국의 리바이 도우리 목사가 하늘로부터 자동 기술로 받아 적은 성약 성서에 따르면 청년 예수는 12세부터 24세까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히말라야, 겐지스강, 유프라테스강, 페르시아, 바빌론을 거쳐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이다. 바빌론은 지금의 이라크. 고향으로 돌아온 예수는 이스라엘의 나자렛에서 잠시 머문 후 25세에 다시 그리스 아테네를 거쳐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 간다. 예수는 이집트의 형제단에 들어가 이집트 밀교를 공부한다. 예수는 일곱 단계의 시험을 거쳐 마침내 그리스도란 칭호를 받는다. 이윽고 예수는 세계 7인의 현자들의 모임에 초대된다. 예수는 이곳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로 추앙받는다. 그리고 고향 이스라엘로 돌아가 40일간의 수행을 마치고 그리스도로서 사역을 시작한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즉, 지금의 가톨릭 교리는 예수가 여행했던 세계 여러 나라의 종교가 하나로 망라된 종합 종교임을 알 수 있다. 즉, 예수가 인도, 그리스, 이집트까지 갔던 여정에서 만난 모든 종교적 이상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가톨릭이나 기독교 교리가 완성된 것은 인도의 불교와 브라만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이집트의 태양신 종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이론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2천년 전 예수가 지구에 와서 이루고자 했던 이상과 목적은 당시까지 흐트러져 있던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예수는 당시의 세계가 안고 있던 정치, 사회, 종교적 모든 문제를 십자가의 모범으로 통합하고 하늘나라로 귀환하였다. 이와 같은 예수의 사상은 예수 사후 2천년이 지난 현재, 재림 예수로 한국 땅에 와 있는 신인 허경영에 의해 더욱 완벽하게 정리되고 있다. 재림 예수 허경영은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를 하나로 통일할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에 하늘 공원에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재림 예수 허경영의 새 하늘 새 땅이 건설되고 있다. 이곳에는 1억 평의 새 예루살렘이 건설되고 있다. 세계를 영성적으로 깨어나게 할 통일 본부가 건설되고 있다. 와서 보라. 요한복음 1장 39절. 2024년 3월 28일. 북향. 우리 허성정 씨는 분석하는 데 아주 탁월합니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 이런 역사를 쓴 사람이잖습니까? 그러니까 보는 눈이 탁월합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가지고 여러 가지 뭘 해서 사용하고 있죠. 여러분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온전한 구원자는 저렇게 중보적 구원자 이런 것으로는 이 세상 문제는 더 확대되었습니다. 2차원적인 십자가를 걸어놓고, 여러분이 성전을 중심으로 뭘 했습니까?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섬길 대상은 약자, 가난한 자, 바깥에 있습니다.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깥에 있는데 공연히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길로 가지 못했습니다. 3차원 십자가를 만들어 걸지 않고 맨 2차원 십자가를 걸어놓고 성당은 또 이 기독교를 처음에 이단으로 몰았고, 루터를 또 쳐내라고 굉장했죠. 이렇게 계속 이단 싸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왔는데 제가 나타나면 아마 이단이라고 하겠죠. 그러나 신인은 어떤 종교 행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래 하나 불러 봅시다. 제가 목사 양 아들도 있었죠. 스님 아들로도 있었죠. 그러니까 그때 찬송가를 제가 다 모르는 게 없겠죠. 그러나 그 이후에도 찬송가가 많이 나왔습니다. 아까 부른 것 제가 아까 불렀죠. 나의 발길 다가도록 신인 인도하시니 이렇게 되어 있죠. 거기서 이제 신인 인도하시니 시작. 나의 발길 다가도록 신인 인도하시니 우리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재밌죠? 이제는 종교 하늘은 그렇게 막 어게, 예, 가 아닙니다. 본인이 와 있는데 무슨 예배입니까, 예배가. 그냥 말씀이 살아 있고, 또 빛이 살아 있죠. 제가 여러분에게 한 사람 한 사람 넣어 주죠. 그러니까 말씀과 빛이 여기서 전부 역사가 이루어지고, 여기서 끝이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모든 종교 역사가 초종교 하늘궁이 종점입니다. 여기서 이제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방금 한 것 중에 한 마디가 있습니다. 거기에 뭐가 나옵니까? 방금 노래에 그 소재를 여기다 올려보십시오. 노래, 찬송가 몇, 여기 보면 믿음으로 사는 자는, 여기 보면 내 주 안에 있는 긍휼이 있죠. 어찌 의심하리요? 여기 보면 나의 갈 길도 신인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요? 긍휼을 잘 보십시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 만사 형통하리라. 이 만사 형통. 이명박 대통령 때 많이 쓴 이름이죠. 만사는 형을 통해서 뭐 한다죠. 면이 있죠. 그러니까 성경이 많이 인용이 됩니다. 만사는 형을 통해, 통해야 이런 이루어진다. 뭐 이래 가지고 말이 많았죠. 그러나 그런 것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사 형통은 그런 뜻이 아니고, 만사가 일사천리로 가는 것입니다. 형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가 들어가 버리면은 어떤 현상이 오냐는, 만사가 반통입니다. 업은 해결이 안 됩니다. 죄만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후손들은 고생하는 것입니다. 죽어나는 것이죠. 자식한테 죄를 남겨 놓고 가 가지고 마음이 편했습니까? 그것은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을 못 가는 것이죠. 화면 지워 보십시오. 이 긍휼이 그랬죠. 이 금이라는 이 자체는 무슨 자는 긍휼함을 얻는다고요. 아니야,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내 주 안에 있는 이 긍휼. 이것을 여러분이 예수가 가지고 있던 긍휼인 줄 알겠죠? 그 중에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기도, 구원, 축복, 성령, 은사, 부활, 영생, 천국이죠. 그런데 예수가 제일, 제가 예수 때 많이 쓴 단어입니다. 이것이 몇 번째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에 갑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긍휼,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리운전 이야기한 것입니다. 저 사람이 저를 봐줬는데, 저 사람이 돌아가는 그 비용을 누가 지불합니까? 제가 준 돈 15,000원에서 삭감한다. 그 좀 어렵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하겠죠. 긍휼이 남을 여기는 자는 하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제가 좀 이런 것이 있어도 봐준다는 말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데, 이 말은 남을 긍휼히 여기면 하늘로부터 그 자를 불쌍히 보살펴 하늘도 그 자를 긍휼히 여겨 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남한테는 싸가지 없이 하고 하나님한테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면 줍니까? 땅에 매인 것을 풀어야 하늘의 매인 것이 풀리는 법입니다. 땅에 있는 인간들한테 살벌하게 해놓고 하나님한테 아유, 제 죄를 좀 긍휼히 여겨 달라, 그럼 그것이 됩니까? 안 되죠. 그러니까 우리는 땅에서 남한테 살벌하게 하고 백공 가면은 기분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살벌하게 할 뿐이 아닙니다. 요만한 일을 하나 하더라도 하늘이 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긴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제 말하면 땅에서 매인 것을 풀어야 하늘의 매인 것이 풀리지. 하늘에서 먼저 풀어주면 제 암을 먼저 고쳐 주시면 제가 하나님 믿겠다. 이것은 하늘에서 풀어주면 땅에서도 풀리겠다. 이것은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이것은 계단을 올라가야지. 계단을 위에서 내려올 필요가 무엇입니까? 계단을 스텝 바이 스텝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영어만 쓰면 저 영하는 사람이 쳐다 보이죠? 영어만 쓰면 영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긍휼은 잊지 마십시오. 제가 남을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대리운전비 딱 주고 시침이 딱 떼고 집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것은 긍휼이 아닙니다. 긍휼은 남을 불쌍하게 생각해야 하니까. 저 사람이 돌아가더라고요. 지금 한신데 저 사람 집에 가려면 저 고생할 거야. 저거 버스 다 끊어지고 전철도 없어. 근데 여기는 외진 데야. 이것 보십시오. 여기는 교통이 안 좋은 데니까 택시비. 이것 가져가세요. 그것이 긍휼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그 친구 가는데 교통사고 다음에 안 나게 해 주겠죠. 다음에 음주 운전 해도 안 걸리게 해 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대리운전 타고 갈 때 사고 안 나게 해 줍니다. 사고 안 나게. 하늘이 긍휼히 여기니까 저 녀석이 저거 직장 다니면서 피곤해. 제가 밤에 술 대접하고 집에 가는데 대리운전에서 가네. 아우, 저 고생한다. 자, 저기 가다 저 교차로에서 저기 사고 나서 죽을 텐데. 야, 저거 바꿔. 바꿔 버립니다. 하늘에서 긍휼히 여겨 줍니다, 저 사람이 지난번에 대리운전 기사한테 팁을 주네요. 돌아가실 때 잘 돌아가세요. 대중교통 위에서 시간 끌지 말고 빨리 가세요. 이것 택시 타고 빨리 가세요. 이렇게 하고 가면, 다음에 술 먹고 대리운전 기사 데리고 올 때 교차로에서 죽어야 할 때 피해 줄까요, 안 피해 줄까요? 피해 줍니다. 하늘의 긍휼의 함을 받는 것입니다. 재밌죠? 이제 속이 시원합니다. 다 끝났으니까 저도 좀 앉아도 되죠? 엎드려 절 받기입니다. 오늘도 빛과 말씀을 주시는 우리 위대한 신인님, 그리고 새로운 또 깨우침의 말씀을 주신 우리 존경하는 신인님께 큰 박수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신인님. 신인님, 이제 신인님 전체 에너지 데일리 물을 조금 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