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영 특허권 ‘불로화’와 세계 경제 석권의 비전
허경영의 이름과 사진을 활용하면 모든 식품과 가공품이 영원히 썩지 않고 불로화되어, 이에 따른 기적적인 체험 사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허경영의 특허권인 불로화가 세계로 펼쳐져 나가 우리 세계 경제를 석권하는 사령탑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찬 미래와 살맛 나는 세상을 맞이할 주역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위대하신 허경영 신인님의 경이로운 섭리의 말씀을 경청하겠습니다.
세균과 세포의 차이: 탐욕과 비움의 철학
세균과 세포는 차이가 있습니다. 2005년 9월, 법장 스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그분이 남긴 말 중 하나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아무리 주어도 비워지지 않고, 아무리 받아도 넘치지 않는 공(空)과 같습니다. 그러나 법장 스님이 실제 말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탐욕’이었습니다. 탐욕은 침낭이나 배낭과 같아서 아무리 비워내려 해도 항상 채워져 있으며, 아무리 받아도 넘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무료 급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에게 베풀면 계속 채워지는 요술 방망이와 같습니다.
몸속의 ‘낭’: 담낭과 욕심의 균형
우리 몸에는 ‘낭(囊)’이라는 주머니가 있습니다. 침낭이나 담낭처럼, 이 주머니는 오장육부 깊숙이 들어앉아 있어 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이 낭에 돌이 생기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담낭에 엑기스가 너무 적게 들어와도, 너무 넘쳐도 안 됩니다. 우리 몸은 이처럼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욕심 또한 침낭과 같아서 과하게 채우면 몸이 망가집니다. 간에 영양분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간이 상하듯이, 모든 장기는 적당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순리, 윤리, 섭리: 삶의 세 가지 이치
우리 어머니의 죽음은 일반적인 병이나 순리를 어겨서 온 것이 아니라, 섭리에 의한 죽음이었습니다. 순리는 대자연의 이치이며, 오장육부가 순리대로 돌아가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무리들이 만들어낸 윤리를 지켜야 합니다. 윤리 안에는 법과 예가 포함됩니다. 대자연이 순리를 거역하면 지구 종말이 오듯이, 인간은 윤리를 지켜야 합니다. 순리와 윤리는 결국 섭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숙명과 운명: 자유의지로 개척하는 삶
우리의 사주팔자는 숙명으로, 부모나 태어난 환경처럼 바꿀 수 없는 큰 뼈대입니다. 그러나 그 틈바구니를 노리는 것이 운명입니다. 운명은 사주팔자에 자유의지를 더한 것입니다. 거지 같은 집에서 태어났어도 대통령이나 재벌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조건을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스승을 만나고, 어떤 계기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은 바뀔 수 있습니다. 나의 출생과 어머니의 죽음은 여러분의 그것과 다릅니다. 이는 섭리에 의한 것이며, 병이나 관리 소홀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허경영의 이름에 담긴 섭리: 세상의 평안을 허락하다
우리 어머니의 이름에는 ‘나라에 계수나무를 심는 것을 허락한다’는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남쪽 나라의 권세에 월계수나무를 심는 것을 허락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고 나의 이름 ‘허경영’은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름에는 섭리가 담겨 있으며, 이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기에 겪는 고통과 함께 성자와 속인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성인과 속인의 차이: 탐욕을 비우는 자와 채우는 자
성자는 탐욕을 비우려고 평생 노력하지만, 속인은 탐욕을 채우려고 평생 고생합니다. 성직자들은 돈이 생기면 남을 위해 쓰려고 애쓰지만, 속인들은 어떻게든 자기 배만 채우려 합니다. 이는 세균과 세포의 역할과 같습니다. 세포는 자기 것에 만족하지만, 세균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다른 세포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암세포가 커지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물질의 확장에 목숨 거는 것은 암적 존재입니다.
대량 생산과 소비의 종말: 지구 위기의 근원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는 산불보다 더 무서운 지구 종말을 초래합니다. 아마존 강 주변의 밀림이 밭으로 변하고, 산소가 부족해지는 것은 대량 생산을 위한 불 지르기 때문입니다. 석유와 가스 같은 자원은 고갈되어 가고 있으며, 이는 신이 준 물질을 인간이 뺏어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자본주의는 결국 지구를 끝장낼 것이며, 중산주의만이 인류를 살릴 유일한 대안입니다.
세균과 세포의 식단: 식이섬유와 포도당의 균형
우리 몸의 세포는 포도당을 좋아하고, 세균은 식이섬유를 좋아합니다. 인체에는 식이섬유와 포도당이 똑같이 들어가야 합니다. 소장은 영양소를 흡수하고, 대장은 세균들이 있는 곳입니다. 세균이 만드는 영양소는 면역력과 직결됩니다. 우리 몸에는 100조 개의 세포와 100조 개의 세균이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해균과 유익균의 균형이 깨지면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현대인의 식단은 식이섬유가 부족하여 세균들이 굶주리고 있으며, 이는 당뇨병,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미래 식량 혁명: 허경영의 ‘완전 도시락’
미래에는 방부제 없이 허경영의 스티커만 붙어 있으면 썩지 않는 ‘완전 도시락’이 전 세계 자판기에 무료로 제공될 것입니다. 하루 세 개만 먹으면 모든 영양소가 완벽하게 충족되며, 환경 파괴와 음식물 쓰레기 문제도 해결됩니다. 이는 부엌 문화를 없애고, 사람들이 먹는 문제에 대한 걱정 없이 공부하고 운동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재벌도, 가난한 사람도 동일한 음식을 먹으며 건강해지고, 질병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허경영 로열티: 세계 통일과 인류 구원의 자금
허경영의 로열티 수익금은 연 2천조 원에 달하며, 이는 세계 제약, 우유, 화장품, 식품,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모든 산업에서 발생할 것입니다. 허경영 에너지는 식품을 썩지 않게 하고, 철강의 강도를 높이며, 자동차의 안전성을 보장합니다. 이 로열티 수익금은 한국 국민 배당금, 부채 탕감, 전쟁 종식, 기아 종식, 질병 퇴치, 환경 보전 등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허경영은 세계 통일과 인류 심판을 위해 지구에 온 신인이며, 그의 중산주의는 인류를 살릴 유일한 대안입니다.
시간의 본질: 사건의 기록과 기억
시간은 직선적인 개념이 아니라, 사건의 기록이 점점이 이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사건의 연속이며, 의미 있는 사건만이 저장됩니다. 밥하는 시간처럼 반복되는 일은 기억되지 않고 낭비되는 시간으로 여겨집니다. 허경영의 ‘불로유’는 인류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혁명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불로화 혁명: 방부제 없는 세상
2000년 10월, 허경영은 시자들에게 불로유 실험을 권고했습니다. 한여름에도 썩지 않는 우유, 췌장암 등 불치병을 낫게 하는 불로유는 당시 사람들에게 냉소와 비아냥을 받았지만, 이제는 신기한 증거를 넘어 확실한 신의 물질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방부제는 췌장, 담낭, 위를 망가뜨리지만, 불로화 혁명은 방부제 없는 식품, 의약품, 화장품 시대를 열 것입니다.
금상첨화의 역설: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균형
세포는 좋은 것이고 세균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세균이 먹고 남은 불순물이 면역력을 만듭니다. 좋은 일에 좋은 일이 겹치는 ‘금상첨화’는 오히려 위험합니다. 파도가 올라가면 내려가듯이, 좋은 일이 계속되면 반드시 나쁜 일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금상오물’ 즉, 좋은 것(세포)에 오물(세균)이 절반 같은 양으로 있어야 건강합니다. 우리 몸에 세균이 있어야 하듯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균형이 건강을 가져옵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핵심: 인과윤회와 구원
불교는 인과와 윤회를 이야기하며, 모든 행위가 무상하고 ‘나’라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를 통해 고통의 본질을 깨닫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주체와 객체가 없어 신앙적인 가치보다는 정신 수양과 철학에 가깝습니다. 반면 기독교는 천지창조, 사탄의 원죄, 예수의 구원, 최후 심판을 이야기하며,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주체와 객체가 명확하여 신앙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기독교인들의 강력한 의지가 로마를 변화시켰듯이, 악이 첨가됨으로써 오히려 선이 더욱 강력해지는 역설이 존재합니다.
물질과 정신: 고착된 에너지와 예측 불가능한 에너지
물질은 에너지가 반복해서 한자리에 고착되어 형체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원자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이 물질입니다. 반면 정신은 예측 불가능하게 머물러 있지 않고 수시로 바뀌는 에너지입니다. 정신이 집중되면 물질이 되듯이, 물질은 머물러 있는 에너지이고 정신은 머무르지 않는 에너지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토막토막 잘라진 필름처럼 사건의 연속이며, 이것이 모여 시간이 됩니다.
인과와 자유의지: 운명을 바꾸는 힘
불교의 인과와 윤회는 물질처럼 고착된 관성의 법칙과 같습니다. 인공위성이 지구를 돌다가 달로 향하듯이, 윤회는 습성대로 돌아가려는 관성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자유의지가 더해지면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물질에 끌려다니는 인간은 아바타와 같지만, 정신은 고착된 물질 에너지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습니다. 금상첨화는 인간에게 해로운 것이며, 금상오물 즉 세포와 세균의 균형이 진정한 건강을 가져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