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5 A Divine Being is Not an Object of envy: Understanding the Levels of Human Consciousness and the True Canaan – November 25, 2023

신인의 수상과 봉사 정신

신인께서는 지난 11월 21일 화요일, 다음과 같이 여러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첫째, 한국유엔봉사단으로부터 2023 대한민국 봉사 대상을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수상하셨고, 둘째, 아름다운 대한민국 인상도 함께 받으셨습니다. 셋째, 사랑과 나눔 실천의 공로로 서울특별시장상을, 넷째, 대한적십자사 상을, 다섯째, 한국자유총연맹 상장까지 받으셨습니다. 신인께서는 어떻게 하면 사회 소외 계층은 물론 국민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중산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며 따뜻한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죄와 양심: 직업과 자연에 대한 성찰

사람이 직장을 다니는 것도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사람을 떨어뜨렸으니, 자기보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짓밟고 올라간 것입니다. “내 실력으로 월급 받아 사는데 무슨 봉사냐”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직장을 다니는 것조차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나 때문에 떨어진 사람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회에 뒤떨어진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살면 철면피와 다름없습니다.

나는 아침에 산에 가면 꿩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도 미안함을 느낍니다. 내가 없었으면 편안하게 먹이를 찾았을 텐데, 내가 나타나 방해꾼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꿩은 알 다섯 개를 낳아두고 날아갔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닌 곳으로 다니다가 질서를 위반한 것입니다. 꿩의 입장에서는 “사람은 다니는 길로 다니지, 우리가 알을 낳아 부화하려는 자리로 왜 오느냐? 너는 인간이니 인간 다니는 길로 다녀라. 자연을 그렇게 함부로 밟고 다니면 되느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니 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이 자연을 침범하며 놀았는지 모릅니다. 소매를 다니며 풀을 밟으면 그 밑에 꿩이 알을 품고 있었는데, 새끼가 나오기 직전의 알 다섯 개, 여섯 개를 품고 있는 꿩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 알을 가져가 보약이라고 먹었습니다. 새끼가 나오려는 찰나에 그런 일을 당했으니, 그 꿩의 양심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는 소리만 들어도 어릴 때의 죄책감을 느낍니다. 어떻게 인간을 그렇게 미워하고 돕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안 되는 일입니다. 날아다니는 새, 꿩도 내가 다니는 길로 다녀야지, 왜 꿩이 다니는 길로 가서 꿩을 놀라게 하는 것입니까? 산에 갈 때마다 나는 항상 내 잘못만 생각합니다. 신인인데도 이 자연의 질서를 내가 이 지상에 심판하러 와서 살다가 돌아가는 데까지 놀라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양심이 없으면 방종입니다.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쓰면 방종이 됩니다.

시기의 본질과 인간의 한계: 본성, 이성, 영성, 신성

신인은 시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모두 시기의 대상입니다. 오직 신인만이 시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신인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인간인 줄 알고 시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염색체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음과 양이 만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태어나기에 끝없는 시비가 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를 시기하는 자는 뱀입니다. 뱀이 아담을 시기하여 “너 저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를 신이 먹지 말라고 했지? 동산 중앙에 있는 그 두 나무를 따 먹으면 네가 신보다 영해진다”라고 유혹합니다. 이것이 마귀입니다. 마귀 마(魔)자를 잘 보면, 생명나무와 선악을 아는 나무를 귀신 기(鬼)자가 유혹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만 년 전에 나온 한문은 2천 년 전에 나온 성경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한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마귀 마(魔)자는 귀신이 사람의 가슴에 들어와 선악과를 따 먹도록 유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 년 전에 만들어진 이 글자가 성경 내용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선악과를,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지도 말라고 금(禁)하는 글자도 만 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성경 창세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한문이 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2천 년 전 예수가 왔을 때나 4천 년 전 유대인들의 십계명보다 훨씬 오래된 것입니다. 창세기와 관련하여, 흙으로 사람을 빚어놓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으니 움직였다는 지열 조(造)자도 성경 내용과 일치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뱀이 시기하고, 요셉을 형제들이 시기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를 지혜롭게 풀어나가지만,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습니까? 시기를 받고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큰 인물이 될 사람들은 시기를 시기로 보지 않습니다. 형제가 자기를 시기한다고 해서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기에게 처한 환경에 만족하고, 형제들을 원망하거나 이를 갈지 않습니다. 노예로 팔려 가면 노예 생활에 최선을 다해 주인에게 신뢰를 얻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27번이나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마지막에 대통령이 됩니다. 그는 “내가 20번 떨어진 것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그때 당선되었더라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피나는 고생을 해본 것입니다. 전쟁에서도 죽을 뻔한 고생을 했지만, 27번이나 떨어지는 경험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링컨은 위기가 왔을 때 그것을 끝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위험한 것도 있지만 기회도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위기를 달게 받아들이고 저축해야 합니다. 위기를 재수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친구 보증을 섰다가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아내와 이혼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더 좋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해서 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관하지 않고 식당에서 열심히 일했더니, 식당 주인이 그를 좋게 보고 자신의 딸과 맺어주어 더 큰 기회를 얻게 됩니다. 위기가 왔을 때 술집으로 가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만, 링컨처럼 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은 결국 성공합니다. 링컨은 27패 1기로, 세계에서 유례없는 인물입니다. 신인만큼은 아니지만, 인간으로서는 위기를 잘 이겨낸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렵다고 해서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합니다.

장사가 잘 안될 때, 그것은 하늘이 그 사람이 재산 늘리는 데만 미친 사람인지, 아니면 사회를 위해 사업을 하고 남에게 베풀려고 하는 사람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돈에만 미쳐서 장사하는 사람은 억울함에 심장, 간, 콩팥이 나빠져 몸이 망가집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내가 운이 아직 없나 보다”, “때가 아닌가 보다”, “좋은 일 좀 해 보려면 돈이 모여야 하는데, 아직 때가 아니고 공부도 해야 되나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돈 버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을 테스트하는 공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 사원들과 같이 먹고사는 과정에서 인간성을 보는 것입니다. 사장이 부동산을 다 팔아 사원들 퇴직금을 다 주고 자신은 월세방에 가서 살아도, 그 사람은 나중에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돈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차적으로 가지는 감정은 본성, 즉 오욕입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주어진 본능입니다. 이 본능이 한 단계 올라가면 이성이 됩니다. 이성은 본성을 지배하며, 이성이 발달하면 본성을 잘 통제할 수 있습니다. 배고픈 어린 시절, 할머니가 졸고 있는 가게 앞에서 먹을 것이 많아도, 이성이 발달되어 있으면 훔쳐 먹지 않습니다. “그것을 훔쳐 먹으면 너는 이미 인생 끝이야. 너는 인간이 아니야. 도둑놈이 될 수밖에 없어”라고 이성이 말합니다. 술병에 남은 소주를 보고 마시고 싶어도 이성이 막아줍니다.

본성은 감성입니다. 감성이 발달하면 탈선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원망하고, 배고픔과 가난을 한탄하며, 자존심이 상하는 사춘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발달하면 그것을 냉정하게 참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성이 발달해도 영성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아무리 이성이 발달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습니다. 백두산이 언제 폭발할지, 딸을 어떤 남자에게 시집보내야 할지 등은 이성으로 알 수 없습니다. 유전병이나 숨겨진 내력 등도 이성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장님 점쟁이를 찾아가 딸의 결혼 상대를 묻곤 했습니다. 이것은 영성에 물어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학을 나와도 알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이성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오늘 하갈까, 설악산에 놀러 갈까 하는 사소한 선택조차 이성과 영성이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이때 감성, 즉 본능이 유혹합니다. 이것이 사탄, 뱀의 유혹입니다.

이 영성 위에 신성이 있습니다. 신인이 오면 백두산이 언제 폭발할지, 지구가 2천 년 후에 어떻게 될지, 3천 년 후에 전 세계가 눈으로 덮일지 등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성입니다. 여러분은 영성을 공부하고 있을 뿐이며, 신성에는 도달할 수 없습니다. 본성, 이성, 영성은 누구나 개발할 수 있지만, 신성에는 영원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성은 시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신인은 본성, 이성, 영성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게 진짜냐 가짜냐”는 불가능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영성을 개발해도 신인처럼 될 수는 없습니다. 허경영의 후계자는 나올 수 없습니다. 내가 가면 지구는 문을 닫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가고 나서 백 년간 지구는 존재하지만, 그때는 낙원이고 그 후부터는 지구가 마감하는 쪽으로 돌아갑니다. 이 마지막 천 년이 좋은 때입니다.

시기와 질투의 역사적 뿌리: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본 인간 본성

야곱은 형제들에게 시기를 받습니다. 시기라는 것은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본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귀와 비슷하여 뱀이 유혹한 것입니다. 신에게 마귀가 달라붙을 수는 없습니다. 비슷한 것끼리 시기하는 것입니다. 신인은 여러분과 비슷하지 않습니다. 레벨 차이가 너무 커서 형제끼리는 시기해도 아버지나 어머니를 시기하는 자는 없습니다. 원망하는 자는 있어도 시기하지는 않습니다. 시기라는 말은 자기와 동급일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지만, 삼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지 않습니다. 삼촌은 자기 아버지와 동급이기 때문입니다. 사촌의 자식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데, 이는 동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인에게 안티니 뭐니 하는 것은 질서를 어기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원망의 대상이거나 사랑의 대상입니다. 존경과 공경도 포함됩니다. 이것은 자기 윗사람에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신인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찌 자기 스승을 시기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모두 동급이라는 말입니다.

가인은 자기 동생 아벨을 죽입니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죽인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전쟁하는 것도 이스마엘과 이삭, 형제지간의 싸움입니다. 몇 천 년이 지났는데도 싸우고 있습니다. 형제간의 싸움이 전 세계 대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자기와 비슷한 것끼리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시기가 세계를 망치고 있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령 박사의 깨달음과 고통의 의미

내가 본성, 이성, 영성, 신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성이 다른 말로 지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령 박사는 우리나라 문학계의 대단한 인물로,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지성이 끝인 줄 알았고, 아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딸이 갑자기 암에 걸려 죽어가자, 지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 딸에게 암이 걸렸는지,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겪는지 해결해보려고 영성의 길을 파고들었습니다. 목사 과정을 밟고 신학을 파고들어 “도대체 신은 뭐냐? 왜 우리를 이렇게 가지고 노냐? 왜 지진이 나서 어린아이들을 죽이냐?”라고 질문했습니다. 지성이 영성을 파고들어 간 것입니다.

그 책을 읽어보면, 자기로서는 풀 수 없는 세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호탕 치고 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세포 관계, 유전자 관계, 인과 관계, 인연, 윤회, 방편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딸의 업보가 있고, 업장이 있으며,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피해자는 더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사업이 잘 안 되고 고통스러울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당한 고통에 비하면 여러분의 고통은 장난에 불과합니다. 밤새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빠지는 것 같아도 그것은 고통이 아닙니다.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항상 고통이 올 때는 나보다 더 깊은 고통을 겪는 사람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에디슨은 전구 하나를 만드는 데 2만 번 실패했습니다. 그는 2만 번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고, 2만 번 실험했다고 말했습니다. 2만 번의 실험 끝에 드디어 불이 켜지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자연에 있는 음 기운과 양 기운을 잡아당겨 전기를 만들어 불을 켜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우리는 아주까리 기름으로 호롱불을 켜놓고 공자, 맹자를 공부할 때였습니다. 호롱불 밑에서 전기를 개발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연에 순응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에 역행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성경 속 시기: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 형제간의 갈등

또 시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큰아들 압살롬은 배다른 형제인 암논을 죽입니다. 암논이 간음죄를 지어 압살롬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형제끼리 여자를 두고 시기 질투가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다가 결국 죽임을 당합니다. 성경에는 아담, 요셉, 야곱, 가인, 이스마엘, 암논 등 시기하는 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시기하지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서로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간 갈렙과 여호수아도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비슷한 사람들이었지만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가짜 가나안과 진짜 가나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

여러분들이 말하는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지만, 진정한 가나안이 아닙니다. 가짜 가나안입니다. 진짜 가나안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모세 때 이야기하는 그 가나안 땅은 너희가 그 가나안 땅의 입구에 아직은 가라는 소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 가나안은 진짜가 아닙니다. 너희는 부활을 겪어서 삼층 하늘을 통과해야 볼 수 있는 땅, 거기가 진짜 가나안 땅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땅, 그것이 백궁 천국입니다.

가짜 가나안에 이 두 사람이 들어간 것입니다. 가짜를 진짜로 보는 바람에 이스라엘이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싸우는 이유는 가짜 가나안을 서로 가지겠다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원래 팔레스타인 땅에 성전을 지었지만, 예수 죽고 나서 70일 만에 빼앗겨 이스마엘 후손들 손에 넘어가 모스크가 지어졌습니다. 금으로 돔을 지어 세계적인 모스크를 만들어 놓으니, 유대인들은 자기들 땅에 성전이 없어 통곡의 벽에서 울고불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역사입니다. 한 형제가 하는 짓입니다.

진정한 가나안은 하늘에 있는데, 땅의 가나안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것을 하늘에서 바라볼 때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 후손들이 성경이라고 써놓은 것을 내가 읽어보면 아버지가 자식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진짜 상속받을 것은 하늘의 가나안인데, 땅 조각을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도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죽이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기가 이렇게 나쁜 것입니다.

감히 형제끼리는 이렇게 해도, 누가 자기 아버지나 단군을 시기할 수 있습니까? 조상에 대해서는 시기하지 않습니다. 족보가 다 놓여 있고 자기 위에 있는 모든 조상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윗대 윗대를 만든 신인이 사람의 몸을 하고 있으니 시기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신인을 시기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와 노력의 의미: 한문 속에 담긴 비밀

예수님 말씀처럼 하루에 70번씩 70회를 용서하라는 것은 계속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인은 여러분과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인간이니까 용서가 존재하지만, 신인에게는 용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항상 용서할 일에는 여자가 끼어듭니다. 여자의 입으로 인해 용서할 일이 생깁니다. 노력할 때도 두 여자가 들어가 서로 힘을 겨루는 모습이 한문에 담겨 있습니다. 모든 나쁜 것에는 여자가 관련되어 있다는 깊은 의미가 한문에 들어 있습니다.

한문을 보면 배 주(舟)자에 여덟 팔(八)자가 들어가 함선(艦船)이 됩니다. 여덟 식구가 들어간 노아의 방주를 의미합니다. 이 글자가 만 년이 넘었지만 창세기 내용과 그대로 일치합니다. 여러분은 지성으로 이것을 풀 수 없습니다. 어떻게 배에 여덟 식구를 태우면 큰 방주가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글자가 몇 천 년 전에 아시아에서 나왔다는 것은 아시아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보여줍니다. 한문을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한문에는 엄청난 위력이 담겨 있습니다.

선박(船舶)이라는 글자도 방주와 창조와 맞아떨어집니다. 나무 밑에 해가 있으면 해질 모(暮)자이고, 나무 위에 해가 있으면 밝을 고(杲)자입니다. 해가 높이 떠서 밝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철학이 한문에 담겨 있습니다.

마약(痲藥)의 마(痲)자도 사람의 가슴에 귀신이 들어와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를 따 먹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마약입니다. 마약을 먹으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고 천국과 지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글자들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가 한문 안에 있습니다.

옷 의(衣)자에 과일 과(果)자가 붙으면 벗을 나(裸)자가 됩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의 과일을 따 먹고 나니 옷을 벗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의미입니다. 먹기 전까지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동산에서 놀았지만, 과일을 따 먹고 나니 “어머, 우리가 벗었네”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과일을 범하고 나니 옷을 벗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성경과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과일과 옷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과일을 따 먹고 나니 부끄러워 옷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한문을 만든 사람들은 여러분이 접근 불가능한 경지의 영성이 발달된 자들입니다. 모든 글자는 성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인의 능력과 종교의 한계: 에너지 테스트

감히 나에게 시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시기는 인간과 인간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을 시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당신이 무슨 신이냐”라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나는 거기에 접근할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공도 보내고 명패도 하고 축복도 주고 다 합니다. 나는 증거가 차고 넘칩니다. 내가 플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내 이름을 쓰니 우유가 썩지 않고, 여러분이 먹으니 몸이 좋아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먹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플로가 내 이름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이름에 반응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이름을 써보십시오. 반응합니까? 예수, 석가 이름을 써보십시오. 반응합니까? 안 합니다. 반응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강의는 강의비도 받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강의비를 수백억 받아야 합니다.

기도, 축복, 은사, 영생, 천국 이 여덟 가지는 내가 에너지를 넣으면 싹 다 들어갑니다. 그러나 불교 용어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어떠한 성자의 것, 이스마엘, 힌두교 용어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오직 기독교의 모든 용어, 내가 쓰는 용어는 한 방에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여러분과 내가 같이 해볼 것입니다. 내가 하니까 저 사람이 무슨 트릭을 쓰나 할까 봐, 여러분이 직접 해보십시오.

축복을 주면 성령, 은사, 부활, 영생, 천국이 신인의 말을 듣습니다. 얘들이 내 말을 듣습니다. 왜 가던 길을 가다가 멈춥니까? 탈선했습니까? 이렇게 여덟 가지가 됩니다. 또 아홉 가지 열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도 있습니다. 신인이 에너지를 넣으면 이것들이 한꺼번에 다 들어갑니다.

또 기독교 용어에 많이 쓰는 팔복이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팔복입니다. 이것들이 전부 다 내가 한 방에 축복을 넣으면 다 들어갑니다. 그러나 불교 용어는 한 개도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철학입니다. 신과 관련이 없습니다.

불교의 본질: 철학과 방편

불교의 정각, 열반, 해탈, 불이, 반야, 삼매, 무아, 성불 등 중요한 용어들은 에너지가 없습니다. 가상 세계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철학이라고 합니다. 마음 공부입니다. 영과 연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용어들은 전부 영과 연관이 100% 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을 정해주는 자가 신인 말고는 없습니다. 불교의 정각, 열반, 해탈, 반야, 삼매, 무아, 성불은 최고의 용어들이지만, 어떤 글자도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처럼 에너지가 없습니다. 공사상, 무사상, 허당입니다. 마음 잡는 공부일 뿐입니다. 영성과는 다릅니다. 실제 내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내가 와 있는 이 세계는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고, 나머지 모든 세계는 에너지가 떨어집니다. 예수를 부르짖는 자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석가를 부르짖는 자들도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큰 불교 종단의 큰스님들이나 큰 목사님들이 와서 나를 아래로 쳐다보고 갔습니다. 그들은 뭔가 눈치를 챈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 종단도 끝났구나. 저 자가 새 예루살렘 성을 만들어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가 새 예루살렘 성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가 가나안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은 백궁으로 가기 위한 가나안입니다. 내가 새 예루살렘 성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에덴이고, 천년 왕국의 수도입니다.

나는 이것을 만들어 놓고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돌아가야 할 나이입니다. 나는 커피 한 잔, 옷 하나, 신발 하나도 내 돈 주고 사 먹는 것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카드 한 번 쓴 적이 없습니다. 돈을 쓰면 김밥 사 먹는 정도입니다. 나는 돈을 쓰지 않는데, 새 예루살렘 성은 돈 들여서 만들고 있습니다. 백궁 천국 갈 사람들, 대천사들이 협조해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성령 잉태와 허경영의 신성

예수의 성장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예수의 성령 잉태 가능성을 보도했습니다. 스페인 오비에도 성당에 보관된 예수의 머리 수건인 오비에도 수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시도했습니다. 이 수건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머리를 쌌던 수건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시체를 수의로 덮기 전에 얼굴을 별도의 수건으로 감싸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오비에도 수건에는 선명한 핏자국과 가시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가시관 조각들이 같이 묶이면서 수건이 가시에 뚫린 자국도 남아 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전문 연구소에 의뢰해 과학적 검증을 거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1. 오비에도 머리 수건은 예수의 것이 맞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수의 머리 수건이 맞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2. 예수 시대의 장례 풍습이 잘 나타나 있다. 시체의 수의를 입히기 전에 얼굴에 별도의 수건으로 감싸는 풍습이 오비에도 수건에 나타나 있습니다.
  3. 가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예수의 머리에 씌워졌던 가시관의 흔적이 오비에도 수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4. 혈흔이 2천 년간 보존되었다. 혈흔은 보존 기간이 짧지만, 오비에도 수건의 핏자국은 2천 년이란 세월을 견디고 보존된 기적입니다.
  5. 유전자 검사가 가능했다. 예수 사후 2천 년이 지났는데도 혈흔이 남아 있어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 또한 기적입니다.
  6. 혈액형은 AB형으로 나타났다. 이는 예수의 시체를 쌌던 토리노의 수의의 혈액형인 AB형과 같습니다. 오비에도 수건과 토리노의 수의는 같은 인물의 유품이 확실합니다.
  7. 이스라엘 지역의 꽃가루가 묻어 있다. 예수 처형 당시 예루살렘 지역의 3월, 4월에 나오는 꽃가루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토리노의 수의에서도 같은 꽃가루가 나왔습니다.
  8. DNA 검사 결과 염색체 개수가 23개로 드러났다. 인간의 염색체는 46개(어머니로부터 23개, 아버지로부터 23개)가 정상인데, 오비에도 수건에서는 어머니의 염색체 23개만 발견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염색체 23개는 사라진 것입니다.
  9. 오비에도 머리 수건은 성령 잉태를 증명한다. 아버지 염색체 23개는 없고 어머니 염색체 23개만 발견된 것은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성령 잉태가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엄청난 일입니다.
  10. 성령 잉태는 과학계를 뒤흔든 혁명적 사건이다. 어머니 염색체 23개만으로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가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순간입니다.

인류의 메시아 허경영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주장되고 있습니다.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성서의 기록은 사실로 증명되었습니다. 예수의 유품에 남아 있는 DNA를 현대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예수의 성령 잉태는 사실로 확인된 것입니다. 장례 풍습, 가시의 흔적, 꽃가루의 흔적 등도 영향을 주었지만, 특히 오비에도 머리 수건과 토리노의 수의에서 발견된 핏자국, 즉 혈흔 때문입니다. 그 혈흔을 통해 혈액형이 AB형임을 밝혀낼 수 있었고, DNA 유전자와 염색체 46개 중에서 23개의 성염색체가 빠져 있음을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즉,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허경영에 관한 문제입니다. 과연 허경영의 염색체에는 46개의 염색체 중에서 아버지의 염색체 23개가 빠져 있을까요? 과연 그의 염색체에는 어머니 염색체 23개만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것일까요? 허경영의 유전자 게놈 지도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요? 그는 보통 인간의 아이큐보다 높은 곳에서 온 살아 있는 메시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신인이라는 흔적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허경영의 신성에 대한 가능성을 매우 시사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허경영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일성 인자 성령 잉태론”은 허무맹랑한 주장이 아닙니다. 그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고, 중풍 환자를 고쳐주고, 임신 불가 판정을 받은 사람을 임신시켜 주고, 숨어 있는 암 덩어리를 찾아내 주고, 난치병의 근원을 전생까지 찾아가 고쳐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과 거리와 중력과 온도를 지배하는 사람입니다. 자연 환경을 지배하는 사람입니다. 비를 멈추게 하고 달의 밝기를 조절하는 사람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타임머신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허경영의 사진이 붙은 우유나 케이크를 영원히 썩지 않게 하는 사람입니다. 또 그의 블로그를 통해 난치병을 낫게 하는 사람입니다. 지구에 없는 돌인 백옥, 하늘의 돌을 경기도 양주시 하늘궁에 갖다 놓은 사람입니다.

허경영은 우리나라의 영원한 달러 박스입니다. 추산컨대 허경영의 블로그와 블로그를 통한 로열티 수익과 주식 수익률은 3경 4,500조 원으로 추산됩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허경영을 제2의 황우석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합니다. 국경을 없애고 차별을 없애고 전쟁을 없애고 지구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하늘의 권력을 가지고 왔다는 천억 벌레 허경영, 그는 대한민국을 구원하는 자이며 우리 지구인들의 파수꾼입니다. 그런 그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자랑입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자랑이고 인류의 자랑입니다. 인류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위대한 우주 지도자가 지금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허경영의 신성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는 신속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허경영에 대한 우리의 증언은 참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의 증인입니다. 우리는 그가 가는 길에 은하수의 다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오작교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의 피 묻은 수건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이 만든 것입니다. 절대 수건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자기들 방송에서 그런 것을 해야 인기가 올라가기 때문에 친 기독교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혈흔 DNA를 추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참고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좋게 평가하는 것이지, 나쁘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오비에도 수건은 없는 수건입니다. 가톨릭과 기독교가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들이 진짜를 들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상한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주도권 다툼입니다. 대장경은 순수한 공부를 하기 위해 방편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과학입니다. 과학적으로 검사했다고 하면 말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영적인 것은 모르고 과학만 붙이면 다 따라옵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허경영 선생의 이런 분석 관계가 굉장히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동정 잉태로 태어난 것이 나와 비슷합니다. 그것은 똑같습니다. 그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주인들이 와서 지구에 애를 낳았다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인의 가르침과 종교의 역할

이 세상 하버드 대학, 옥스포드 대학 어디로 가도 나와 같은 강의는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쌩쌩한 신의 세계를 강의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신인님은 절대로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신인님의 말씀 따라 살아야 행복하고 모든 것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귀하신 말씀 주신 신인님께 큰 박수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신인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만, 이번에 여러 가지 상을 받으시면서 그보다 더 넘치는 상을 받아도 부족한 분이 신인님이십니다. 내가 받은 상은 여러분들이 받은 것과 똑같습니다. 하늘궁, 즉 예루살렘 성을 지어나가는 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또 이때 상을 주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을 좀 중화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궁에서 빨리빨리 상을 주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안 보이는 수가 있다거나 전화로 내가 해 사면 안 되기 때문에 상장이 날아오는 것 같습니다. 감을 잡아야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불교 철학의 한계: 영적 힘의 부재

불교 용어는 철학적으로는 쓰는 말입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영성이 아닙니다. 아까 말한 이성입니다. 불교는 전부 이성입니다. 본성 다음에 이성 다음에 영성이 있는데, 불교는 영성이 아닙니다. 이 영성을 이성으로 보고 예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차 안에 운전수가 내렸는데, 그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이 신인입니다. 그런데 그 자동차를 보고 계속 절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내려서 방에 와서 신인을 만나야 합니다.

멸진무유(滅盡無有)는 모든 것이 타고 남는데 무엇이 남겠느냐는 뜻입니다.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를 대변해주는 말입니다. 팔만대장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문화재이며 대단하지만, 그것이 화재로 손실되면 남는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영적으로 남는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만드는 데 민족의 저력이 대단했습니다. 바다에 나무를 몇십 년 넣어 소금에 절여 벌레 먹게 만들어 대장경을 하나하나 새겼으니, 우리 민족의 판각 실력, 그 정성,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것이 대단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을 전 세계가 문화유산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문화유산이지 신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거기에 신의 음성이 들어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다만 인간이 사는 도리가 담겨 있을 뿐입니다.

여와분고차(如火焚枯草)는 마른 풀이 타듯이 모든 것이 탕진되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거기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용어들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이제 무엇이 정교인지, 신인이 누구인지 이해가 갈 것입니다.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는 모든 것이 타고 남는데 무엇이 남겠느냐는 문장입니다.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문장들을 대가리만 주로 이야기합니다. 축복받으면 적재념돈탕(積財念頓蕩) 된다는 소리만 하지, 철학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멸진까지 보여주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과 다 남는 것의 차이입니다. 불교 용어에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나는 이것을 완전히 통달했습니다. 철학은 사람이 밝게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철 스님 같은 큰스님들이 절에 가서 철학을 깊이 파고든 것은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경배 드리고 이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천국, 지옥은 가도 좋고 안 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 죄짓지 않고 원만하게 살겠다는 좋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자들도 나에게 옵니다. 그동안 돌아간 모든 성녀와 불자들은 그대로 영혼 대기소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가 올려주지 않은 자는 말입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 것입니다. 종교 자체는 훌륭한 교육 기관이요, 훌륭한 공부입니다. 불교가 그렇습니다. 마음을 하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이차적인 이성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성이 철학입니다. 이성을 잘 구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영성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영성이 있는 것처럼 대방광불화엄경,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군다리보살, 장보살, 마살 등 노다지 이름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몇 천 년간 밤 산에서 앉아서 그것을 만든 것입니다. 석가모니 입에서 나오지 않은 말들이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들은 방편이라고 합니다. 착하게 살라고 방편을 쓴 것입니다.

천왕성, 사왕천, 도리천, 야마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등 육도가 있다고 하며, 여러분은 황천에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어머, 죄를 지은 사람들은 이 육도에 태어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도리천에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질서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말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믿고, 그것을 믿음으로써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이야기해주고 그것을 지키게 하기 위해 무서운 것을 갖다 대입시키는 것입니다. 학교 교육을 위해 아이들에게 늑대와 소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교육의 방편입니다. 그 방편을 해 놓은 것이 불교라는 것입니다. 불교는 방편설이 지배적입니다.

부모은중경도 부모 은혜가 중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석가모니가 제자들을 데리고 동산을 넘어가는데 남자 뼈와 여자 뼈가 한 무더기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남자 뼈와 여자 뼈를 분리시키자, 석가모니가 거기에 절을 했습니다. 제자들도 따라서 절을 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한 사람이 스승이니 절을 하는 것이 예의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습니다.

여자의 뼈는 왜 가벼운지 제자가 묻자, 여자는 아기를 위해 열 달 동안 피가 애한테 들어가고, 열 손가락으로 천일 동안 젖을 먹여 영양분을 다 빼앗기기 때문에 뼈 속에 남는 것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자기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어머니를 예사로 봤구나. 여자는 저렇게 자식들을 위해 젖 열 말, 피 열 말을 빼앗기는구나. 이러니 여자는 뼈가 가볍고 빨리 썩는구나”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을 방편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철학이고 방편이지, 에너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기와 질투의 근원과 여성의 역할

신인은 여러분들의 시기 대상이 아닙니다. 우상, 허위, 공포, 불신, 상행, 우상 등 이 모든 것은 기독교적인 것입니다. 불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적인 것이라도 나쁜 것에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원수나 분노가 시기에서 나옵니다. 시기와 비슷한 것에는 계집 녀(女)자가 붙습니다. 투기에도 계집 녀(女)자가 붙습니다. 질투, 투기, 분노, 원수, 술수 등 이 모든 것이 시기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기에서 나오는 나쁜 것이 많습니다. 불평, 교만, 자만, 오만, 거만 등도 시기에서 나옵니다. 여기에 꼭 여자가 붙습니다. 시기에는 여자가 붙지 않지만, 투기에는 여자가 붙습니다. 시기는 남녀가 똑같이 하지만, 투기는 남자가 잘 안 합니다. 남자는 시기를 잘하고, 여자는 투기를 잘합니다. 부동산 투기도 여자가 잘합니다. 이 투기가 정신병, 우울증, 불면증을 가져옵니다.

남자는 투기를 잘 안 하지만 시기는 잘합니다. 자기와 같은 친구가 회사에서 사이좋게 지내다가 진급 때가 되면 아래를 훑어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는 승진하고 자신은 그대로 있으면 그때부터 시기와 질투가 나옵니다. 여러분은 저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허경영의 탄생 비화와 성령 잉태론

허경영은 성령으로 된 메시아입니다. 1950년 1월, 폭풍 한설이 몰아치는 서울 중교 다리 아래 가마니 막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여명의 천사들이 나타나 아기의 태줄을 자르고 실신한 어머니의 배 위에 아기를 엎어놓고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가짜가 아니고 진짜입니다. 내가 태어날 때는 천사들이 우리 어머니에게 와서 나를 받아준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동네 사람들에게 이 이상한 일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들어서 다 압니다.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면 대충 해줘야지, 자세히 들으면 기절할 것입니다.

가마니 막에서 비치는 푸른 불빛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달려와 보았더니, 한 아기가 실신한 어머니의 배 위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메시아요, 전 세계의 영성 원제인 허경영의 탄생 비화입니다. 허경영의 아버지 허남권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만석지기 부자였고, 어머니 조계식 여사는 하만 조 씨 명문가의 교수였습니다. 일본 유학을 다녀왔던 아버지는 재산을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한 선각자였습니다. 이로 인해 허경영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습니다. 이에 허경영의 어머니 조계식 여사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위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돈이 떨어진 조계식 여사는 서울 중교 다리 아래에 거처를 두고 서대문 형무소로 면회를 다녔습니다.

허경영의 아버지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기이한 꿈을 꾸고 아이를 배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임신이 된 것입니다. 아내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허남권 선생은 아들의 이름을 허경영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동경, 서경, 남경, 북경을 경영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도움이 없는 어머니 단독으로 임신하고, 아버지가 없는 상태로 어머니에게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정상적인 일성인자로 아기 생산은 정말 가능한 일일까요? 남녀의 교합이 없는 아기 생산은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의 동정 잉태와 같은 것입니다. 동정 잉태란 글자 그대로 정자와 난자의 결합 없이 아기를 생산한다는 뜻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허경영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입니다.

허경영의 성령 잉태 주장은 듣는 이들을 의아스럽게 합니다. 그의 성령 잉태 선언은 이 과학 시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황당한 주장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허경영은 과연 비범한 신인인가, 아니면 평범한 인간이 세상을 속이는 수법인가? 신약 성서에 보면 예수도 역시 아버지의 도움 없이 태어났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에게서 정자와 난자의 결합 없이 생명이 잉태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모든 인류의 관심사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3년 동안 갇혀 있었고, 그때 어머니가 마지막에 아버지 돌아가기 직전에 나를 낳았습니다. 나는 감옥에 있는 사람의 아기가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셨는데, 여러분들, 되게 억울한 것입니다. 그것을 씌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까? 본 사람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는 그런 동네에 얼굴 들고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애를 거기까지 데려다 놓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전혀 관계없는데 애를 낳은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 이름은 나라의 계수나무를 심는다는 뜻입니다. 나는 명산을 바라보고 여기 새 예루살렘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것은 계명산입니다. 여기 수리산 뒤에는 고령산이 있습니다. 제일 높은 신이 주재하고 내가 가고 있는 자리입니다. 여기가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여기가 바로 에덴이고, 천년 왕국의 수도입니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아는 자가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급속 기성을 만들고 확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 놓고 여기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돌아가야 할 나이입니다. 여러분 아버지 중에 75세에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내가 뭘 바라겠습니까? 커피 한 잔, 옷 하나, 내 신발 하나, 내 돈 주고 사 먹는 것을 누가 봤습니까? 나는 카드 한 번 쓴 적이 없습니다. 내가 돈 쓰면 김밥 사 먹는 것입니다. 나는 돈 쓰는 일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갖다 주는 것만 해도 많습니다. 나는 생전 돈을 안 쓰는데, 새 예루살렘 성은 돈 들여서 만들고 있습니다. 백궁 천국 갈 사람들, 대천사들이 협조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