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역할과 초지능 지도자의 시대
언론의 수준이 높아져야 특별한 분이 나와 국민들을 고생시키지 않고 편안하게 해줍니다. 슈퍼 울트라보다 차원이 더 높은 하이퍼 인텔리전스(초지능), 하이퍼 커넥션(초연결), 하이퍼 사이언스(초과학)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신인께서 정치에 임하시면 약자인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주 공간을 지배하시는 허경영 신인께서 여러분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황구역조 시대: 국민 행복은 그림의 떡
이 시대는 환부역조 시대입니다. 조상을 팔아먹는 시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바꾸는 시대, 그리고 배은망덕의 시대입니다. 국민의 행복은 화중지병, 즉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국민들이 십수 년 동안 경제 개발하느라 가족을 버리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림의 떡뿐입니다. 자본주의의 꽃을 찾아 열심히 노력했지만, 집 하나 때문에 싸우다가 파산하고 경매를 당하며 결국 병든 몸만 남게 됩니다. 부인도 자식도 떠나고 오갈 데 없는 몸만 남는 처량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독신 가구 증가와 정부 정책의 실패
현재 혼자 사는 가구가 1천만 세대에 달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가 2천만 가구 정도인데, 1천만 가구가 혼자 산다는 것은 엄청난 문제입니다. 저는 이미 30년 전, 33년 전에 33가지 공약을 내세워 우리가 이렇게 될 것이니 나라를 살리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독신 가구가 절반에 육박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45조 원의 출산 장려금을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돈은 옛날에 썼어야 했습니다. 지금 출산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 돈이면 작년에 출산한 사람에게 1억 5천만 원 정도 줄 수 있는 돈인데, 주지 않았습니다. 국민에게 그림 속의 떡을 줘 놓고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면 떡이 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화중지병, 그림 속의 떡일 뿐입니다.
젊은 세대의 절망과 주택 문제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없었습니다. 국민 배당금을 줄 때만이 화중지병이 되지 않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불만은 직장 다녀서 월급 받아 평생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집을 사는 것은 도둑질, 공금 횡령, 공무원이 되어 나라의 비밀을 빼내 땅 투기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90%의 젊은이들이 이를 알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돈을 모아서는 땅값과 집값 상승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한 달에 300만 원을 받으며 100만 원을 모아도 1년에 1,200만 원인데, 집값은 1년에 몇 억씩 올라갑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그림 속의 떡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낙수 효과의 허상과 국민 배당금의 필요성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현실성 있게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누가 이렇게 하면 집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보람을 줘야 합니다. 국가가 잘 버는 사람들의 돈이 너희들에게 월급과 배당금으로 지원이 되어 통장에 집 한 채 값이 10년 안에 쌓인다고 말해야 합니다. 국민 배당금은 어느 누구도 압류하지 못하므로 집 걱정 없이 계속 배당금이 나온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만병통치약입니다. 국민 배당금이 없는 나라는 생지옥입니다. 죽기 살기로 운명에 끌려다니는 나라입니다. 그림 속의 떡 같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내세우고는 실제로는 열심히 뛰어도 빈털터리가 됩니다. 사고라도 나거나 병이라도 걸리면 늙어서 아무도 없는 처지가 됩니다. 돈 떨어지면 이혼하고 독신으로 있다가 병들어 죽는 뻔한 인생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계도와 보완책을 제시해 줘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 배당금입니다.
젊은 세대의 포기와 국가의 위기
아직도 국민 배당금이 무엇인지 모르고 기본소득제 등을 이야기하지만, 국민 배당금은 여러분이 그림 속의 행복이 아닌 실제 행복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여유로워져 산에 가서 나무를 바라봐도 평생 문제가 없습니다. 누가 대출을 내도 기본적으로 국민 배당이 나오는 사람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욕심만 적게 내면 평생 먹고사는 걱정 없이 시골에 와서 집 한 채 구해 국민 배당금 받고 농사지으며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런 편안함을 줘야 하는데, 끝없는 달음질만 해봐야 나중에 남는 것은 골병뿐이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주워 모아 갑니다. 화중지병이 맞습니다.
정부는 우리에게 낙수 효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물방울 하나를 떨어뜨려 바위를 깨라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그것을 희망이라고 여기고 물방울이 떨어지면 언젠가 바위가 깨지고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느 천년에 그것을 기다려 젊은이들이 결혼하겠습니까? 물방울 하나씩 저축해서 집을 살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므로 이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노력해 봤자 소용없고, 노력의 대가는 엉뚱한 곳에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포기하고 떠나고 싶어 합니다. 자살률은 세계 1위입니다. 이런 그림 속의 떡을 보여주고 젊은이들에게 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은행에 가서 한 달에 100만 원씩 저축해 평생 모아 보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이 전세 보증금이나 될까요? 잘 버는 사람들이 벌면 배당금을 줘야 합니다. 국민 모두에게 배당금을 주면 젊은이들이 월급 외에 부부 합쳐 한 달에 300만 원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젊은이들이 여자를 만나고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아이를 낳으면 또 돈이 나오니 재미있어 합니다. 이것이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주는 보상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희망을 빼앗았습니다. 낙수 효과를 기다리며 물방울 열심히 떨어뜨려 봐야 바위에 흠집도 안 납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빼앗아 결혼 포기, 연애 포기, 출산 포기, 취직 포기, 인생 포기로 가고 있습니다.
허경영의 등장과 민족의 각성
저는 전쟁 고아로서 험난한 세상을 거쳐 온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시대는 좋은데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많지만, 비행접시와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이 시대에 양방향으로 왔다 갔다 하는 젊은이가 되면 안 됩니다. 주택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어려운 환경을 제공하고 있고, 이 나라가 엄청난 파국으로 가는 징조가 보입니다. 이때 제가 한반도에 왔다는 것은 허경영을 발견한 사람들에게만 복이 있는 것입니다. 허경영의 얼굴은 그림의 떡이 아닙니다. 직접 에너지가 나오고 그림의 떡이 아닙니다. 허경영은 화중지병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에게 낙수 효과를 들이대면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곳간에 앉아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아야 할까요? 젊은이들이 해야 할 모든 것을 버리고 몸을 버리는 비참한 상황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젊은이들에게 무한한 경쟁을 주는 만큼 국민 배당금으로 위로를 줘야 합니다. 무한 경쟁을 할 수 있지만, 그 바탕에는 중산층이라는 바닥을 깔아 줘야 합니다. 머리 나쁘다고 뒤처지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모든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도록 국민 배당금을 주고, 모든 노인들이 노후 걱정 안 하게 국민 배당을 해준 다음에 무한 경쟁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국가의 책임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사회를 중산층의 사회로 끌고 가야 합니다.
국가 혁명당가 ‘북핵 열차’와 민족의 정기 회복
우리 국가 혁명당가는 ‘북핵 열차’입니다. 이 시대가 황구역조 시대입니다. 조상을 팔아먹는 시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바꾸는 시대, 그리고 배은망덕의 시대입니다. 국민의 행복은 화중지병, 즉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국민들이 십수 년 동안 경제 개발하느라 가족을 버리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그림의 떡뿐입니다. 자본주의의 꽃을 찾아 열심히 노력했지만, 집 하나 때문에 싸우다가 파산하고 경매를 당하며 결국 병든 몸만 남게 됩니다. 부인도 자식도 떠나고 오갈 데 없는 몸만 남는 처량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애국가 가사의 문제점과 ‘북핵 열차’의 의미
애국가 가사 중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이라는 표현은 재수 없는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이런 가사는 쓰면 안 됩니다. 동해와 백두산은 우리나라 영토가 150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독도에서 백두산까지를 우리 땅이라고 해야 합니다. 동해 바닷가에서부터 일본 땅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일본 사람이 끼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영토가 가로세로 백리밖에 안 된다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백두산에서 태평양까지 마르고 닳도록이라고 해야 합니다.
“무궁화 삼천리”도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는 삼만리 민족입니다. 몽골에서 내려와 삼만리를 포기하고 삼천리라고 합니다. 우리 영토를 가로세로 딱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아이들에게 교육시키면 동해물과 백두산, 무궁화 삼천리 강산이라고 하니 우리는 작은 반도 민족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는 꼴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대륙에서 왔습니다. 대륙의 풍모를 가진 기마민족입니다. 넓은 초원을 달리던 민족입니다. 우리가 정책을 잘못 편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것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일본의 머리 좋은 심리학자들이 노래를 만들 때 우리 민족 사관이 일본에 가서 예약해 놓으니 노래가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바꿔야 합니다.
우리 ‘북핵 열차’는 대국가로서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긴 잠에서 깨어나라, 이제 일어날 시간이 됐다, 아침 시간이 왔다, 해가 돋는다” 이 얼마나 시간적으로 대단한 표현입니까? 우리 민족은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잠잘 때가 아닙니다. 시간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엄마를 찾는데, 엄마가 해가 떴는데도 잠을 자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일어나라, 이제 일어나서 밥해라, 고픈 전 인류 전 세계를 먹여 살려야 한다” 우리 민족의 노래가 낫습니다. “긴 잠에서 깨어나라, 세계 제일 훌륭한 민족, 백두산의 민족, 대한민국 국민” 이런 가사가 나와야 합니다.
세계 통일의 비전과 민족의 역할
우리 ‘북핵 열차’는 “세계 통일 이룩하자”는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가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우리는 북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남쪽은 바다이고 우리가 왔던 곳이니, 북으로 올라가 러시아와 중국을 우리가 통일해야 할 민족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에 부수적으로 달려 있는 아메리카 대륙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아프리카도 서로 붙어 있습니다. 이것이 대륙의 날개입니다. 좌청룡 우백호입니다. 그 본체는 러시아와 중국, 한반도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계 통일입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한반도 삼천리 금수강산 동해 바다까지만 우리 땅이라는 얄팍한 마인드로 국민을 쫄장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진짜 대인의 풍모를 가진 신인이 나타나 대인의 풍모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며 우리 민족에게 계몽 사상이 일어나야 합니다. 계몽주의가 이제 일어나는 것입니다.
중도(中道)의 의미와 삶의 지혜
인간이 무언가를 삼키거나 부탁하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많은 기종의 욕심이면 해가 되는 것입니다. 중도의 기준에 대한 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양설, 악구, 탐욕, 진애, 사견 등 10가지 의혹이 있습니다. 이것은 10악 중죄가 될 수도 있지만, 10가지 의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생의 중도는 무엇일까요? 인간은 11만 년 전 개를 만났습니다. 사냥을 하다가 서로 만난 것입니다. 개는 인간이 잡은 사냥감을 먼저 먹고 달아났습니다. 인간은 개에게 사냥감을 빼앗겼습니다. 나중에는 인간이 개를 잡아서 사냥개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개의 인연이 맺어진 계기입니다. 이 인연 때문에 개와 지금 같이 사는 것입니다. 개와 인간이 한 방에서 사는 것, 이것이 중도입니다. 원수가 한 방에서 사는 것, 이것이 중도입니다. 중도가 되면 굳이 먹이 가지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먹고 남은 찌꺼기 너 좀 먹어라, 네가 사냥하는 것을 우리가 도와줄 테니 나머지는 우리가 줄게” 개와 인간이 서로 거래가 성사된 것입니다. 개와 인간의 인연이 중첩된 것입니다.
무조건 개는 인간을 죽이고 물어뜯고, 인간은 개만 잡아먹는다면 이것은 중도가 아닙니다.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하자” 개와 인간이 서로 소통은 안 되지만 상부상조를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개들이 전부 찾아 들어와 인간에게 잘해 주니 점점 개와 인간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중도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서로의 적대적인 관계를 포용해 나가는 중도입니다. 천지를 때려 부수고 저주를 퍼부을 필요가 없습니다. 포용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를 포용하고, 개는 인간을 포용하고, 서로 같이 잘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도 공동체입니다. 중도의 시작은 이런 사소한 데서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용이 나옵니다.
불교의 중도와 길에서 깨닫는 도
불교에서 중도를 잘 보십시오. 어떤 스님이 스승을 찾아 중국 삼천리를 걸어갑니다. 차도 없고 아무도 없을 때입니다. 배낭 하나 메고 스승을 찾아가는데, 삼천리를 보통 걸음으로 말릴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천리, 삼천리를 걸식을 해가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도를 닦으러 가는 사람이 먹는 것도 도를 닦는 역사입니다. 걸식을 해가면서 삼천리, 오천리, 만리를 걸어가야 스승을 만납니다. 가다가 도통해 버립니다. 그래서 길 도(道) 자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길에서 깨달아 버린 것입니다. 길에서 이 중도를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중도가 워낙 장거리를 가다 보니 도를 닦으러 간다고 하다가 도인이 됩니다. 밥도 굶고 노숙하면서 잠도 자고, 산속에서 혼자 자고, 호랑이 소리가 나는데 숲 속에 숨어서 자고, 인적이 없는 고개를 넘어 가다가 생사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호랑이를 만날지, 귀신을 만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공동묘지를 지나고 강을 건너는데,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다 보니 도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길 도(道) 자, 길 가는 중간에서 도인이 된다는 뜻이 중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삼천리만 둘이서 걸어보면 밥 먹어가면서 둘도 없이 친해져 버립니다. 어처구니없게 싸우고 살던 사람들이 아버지와 둘이서 삼천리를 걸어갔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것입니다. 나중에는 아들이 “아빠, 내가 망 볼 테니 저 고구마 밭에 가서 고구마 좀 파와”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저 농부들이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고구마를 팔 수 있냐”고 하면 아들이 “아버지, 제가 배고파 죽는 게 나아요, 도둑질 안 하는 게 나아요?”라고 합니다. “사는 게 낫지”라고 하면 “그럼 아버지가 망 잘 봐라”라고 합니다. 부자가 나가서 도둑질을 해서 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의가 되는 것입니다. 도둑질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망 보고 아들은 도둑질하고, 아들은 망 보고 아버지는 도둑질하는 대단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도입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자지간의 연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부자지간의 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남의 고구마를 파 먹었다고 아버지를 죄인이라고 하는 것은 싸가지 없는 놈입니다. 너무 사람을 선악으로 가르치면 안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둘이서 도둑질도 한번 해보고 도망도 가는 공범이 되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중도라는 것은 선이다, 악이다가 아니고 그 중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도를 닦으러 하다가 길 가운데서 터득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 중도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이가 40이 되면 중도를 알아야 합니다. 30대까지는 중도를 모릅니다. 40이 넘어서면 불혹(不惑)입니다. 불혹은 의심스러운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의혹이 없어지는 세계, 그것이 중도입니다.
중도적 관점: 얻는 것이 잃는 것이고, 잃는 것이 얻는 것
살생에도 중도가 있습니다. 이와 인간의 동거도 중도입니다. 이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지만, 인간은 이를 원망하지 않고 같이 삽니다. 이는 인간의 면역력을 올려줍니다. 이와 인간도 중도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서로 먹이고 먹히는 관계입니다. 중도라는 것을 다르게 이야기하면 하나라는 뜻입니다. 두 개를 하나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부정부패로 돈을 많이 벌어 놓으면 아들은 공부할 생각을 안 하고 놀러 다니고 오토바이 타다가 교통사고로 죽어 버립니다. 돈 때문에 집안이 망한 것입니다. 얻는 것이 바로 잃는 것입니다. 부정하게 얻지 않고 정상적인 돈을 벌면 아들에게 절약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아들이 아빠가 고생하는 것을 보니 지나친 낭비를 안 했을 것입니다. 얻는다는 것 자체가 부정일 때는 잃는 것입니다. 잃는 것이 얻는 것입니다. 사업이 폭삭 망해서 가난해지니 그 집안에서 판사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끌려다니고 법원에 가서 재판하고 쫄딱 망한 것을 보니 아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판사가 되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실업자가 되었지만 아들이 판사가 된 것입니다. 사업이 안 망했으면 아들이 판사가 안 되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회사에서 놀러 다니고 술 퍼마시고 여자들한테 돈 쓰고 영업 한답시고 돈만 버렸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망했으니 아들이 판사가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좋은 것이 남아 있습니다. 어떠한 환경이 와도 좋은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정의입니다. 무지막지하게 험악한 환경에서도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최악의 상태에서도 흔들림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얻을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얻는 것이 잃는 것이고, 잃는 것이 얻는 것이고, 찬성이 아니고 반대고, 행복이 아니고 불행입니다. 불행과 행복의 중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도입니다. 중도라는 말은 따로 말을 바꾸면 하나라는 뜻입니다. 두 개를 하나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어 보니 별거 아니더라, 가난도 좋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조용하고 쉴 수 있고, 돈 빌려 달라는 사람도 없고, 떼어먹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돈이 좀 생기니 친구들이 와서 “너만 잘 먹고 잘 사냐, 나도 좀 도와줘라”라고 합니다. 경찰서 와라, 법원에서 와라, 고소 고발이 끝이 없습니다. 이재용 회장이 다 겪고 있습니다.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부인은 이혼해서 다른 사람에게 갔고, 아이는 고아가 되었고,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셨고, 집안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재용 회장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국가에서는 11조를 내놓으라고 하고, 미국에도 돈을 줘야 합니다.
진실과 허구, 아름다움과 추함의 중도
진짜와 가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도 실제는 가짜입니다. 제가 볼 때는 허구입니다. 유한한 것입니다. 무한한 것은 하늘밖에 없습니다. 백궁밖에 없습니다. 지인선악미추애정(知仁善惡美醜愛憎), 즉 지혜와 어리석음,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미움, 득실(得失), 영욕(榮辱), 찬난(讚難), 행불(幸不幸) 이 여덟 가지는 언제나 바라보는 시야에 따라 중도가 되어야 합니다. 살생에도 중도가 있습니다. 이를 잡으려다가도 이를 병에 담아 소금을 넣어 줍니다. 이는 우리 몸에 있는 소금기를 먹고 삽니다. 이는 동물의 소금만 먹는 동물입니다. 소금을 가루로 해서 스님들이 넣어 줍니다. 절대 죽이는 법이 없습니다. 이와 함께 자기 피를 좀 빨아 먹으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면역력을 올려줍니다. 이와 인간도 중도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중도적 삶의 깨달음과 자유의지
중도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개와 인간의 관계, 인간이 중도라는 것은 길을 걸어가다 보면 중간에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도입니다. 무전 걸식이나 무전 지식이나 무전 여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대화가 안 됩니다. 정말 엄마, 아버지 없이 혼자 삼천리를 누비고 다니면서 무전 걸식을 하고 무전 여행을 해본 아이들은 중도를 알게 됩니다. 조금 깨닫습니다.
도둑놈이 있으니 문단속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둑이 있다는 것은 중도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자기 이익을 지나치게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도둑으로 통제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익을 많이 취하면 하늘에서는 도둑을 만들어 줍니다. 그 사람이 사기꾼에게 돈을 다 떼이게 되어 있습니다. 공정하지 않게 돈을 많이 벌어 놓으면 그 돈이 집안의 화근이 되어 나중에 고도의 사기꾼이 나타나 그 돈을 싹 쓸어갑니다.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 것을 미리 알면 무리한 것을 취하지 않고 억울해하지 않고 항상 중도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살생, 투도, 사음 등도 중간에 중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기어, 불양설, 불악구, 불탐욕, 불진애, 불사견. 이 10가지가 10악 중죄가 아니게 됩니다. 앞에 ‘불(不)’ 자가 붙으면 십계명이 됩니다. 불교의 십계명입니다. 사람 죽이지 마라, 생명을 죽이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사음하지 마라, 망어하지 마라, 탐욕 부리지 마라, 진애하지 마라, 사견하지 마라. 계명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불자와 안 붙은 것 사이가 중도입니다. 너무 살생에만 치우쳐도 안 되고, 불살생에만 너무 치우쳐도 안 됩니다.
어머니가 아파서 죽어가는데, 동네에서 고양이를 잡아먹이면 엄마가 낫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아들이 고양이를 잡아 놓고 고민합니다. 엄마가 절에 다니던 사람인데, 과연 저 고양이를 죽여야 하는가? 죽이면 어머니가 산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중도에 빠진 사람입니다. 살생을 해서 엄마를 살리는 것이 나은가, 살생을 안 하고 엄마를 죽게 하는 것이 나은가? 이럴 때 어느 것이 중도일까요? 고양이를 살생하는 것이 중도입니다. 중도라는 것은 살생도 중도에 들어가고, 불살생도 중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살인한 사람을 죽이라고 말하면 안 되고, 동물을 살리고자 죽이지 말라고만 하면 안 됩니다. 원광 법사의 세속오계에서 “살생유택(殺生有擇)”이라고 했습니다. 살생을 하더라도 그것이 꼭 필요할 때입니다. 사명대사는 1만 6천 명을 죽였지만,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악당들을 제거한 것이지, 사람다운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그것은 살생유택입니다. 나라를 지킨다든지, 부모님을 지킨다든지, 어떤 명분이 있을 때 죽여야 합니다. 어머니가 죽어가는데 고양이가 약이 된다면, 그 고양이가 인연이 되어 어머니와 나중에 같이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말입니다. 거기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불살생이니,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양설 악구 탐욕 진애 사견이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불자가 붙은 것과 안 붙은 것을 적절히 쓸 줄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엄마 아버지가 맨날 돈 때문에 싸우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슈퍼를 털다가 경찰을 때려 경찰이 죽었습니다. 결국 돈 때문에 감옥에 가고 사형을 받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그 방법에도 함부로 경찰을 건드리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항상 살생유택, 가능하면 안 죽이는 것이 좋고, 죽게 될 때는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길에서 깨닫는 중도와 인생의 변화
제가 이야기하는 철학적 중도는 너무 높습니다. 이것은 좀 낮은 중도입니다. 길가다가 가운데를 깨닫는 것입니다. 엄마가 “너 임마 일어나, 9시야, 학교 가야 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너 임마, 부산까지 걸어갔다 와, 배낭여행 하고 와, 돈은 없어, 네가 얻어먹고 다녀 봐”라고 합니다. 대학생이 아버지의 명령으로 무전 여행을 부산까지 가서 서울로 돌아와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보고 “엄마 고마워”라고 합니다. “엄마, 내가 부산까지 가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공사장에 가서 일도 해주고 밥도 얻어먹었는데 짜고 맵고 내 입맛에 하나도 안 맞고 말이야, 내가 죽을 뻔했어, 정말이야, 엄마가 맨날 해주는 밥 난 우습게 알았는데 밖에 나가 돌아다니다가 굶어 보니까 엄마가 너무 고맙고, 아버지도 고마워, 공사판에 가봤더니 일하는 사람들 보니까 무지막지하게 일하더라, 우리 아버지가 공사판에 계신 줄 몰랐는데 참 몰라서 그렇게 고생하시는지, 아버지 어깨를 맨날 주물러 드리고 다리도 주물러 드려야겠다” 무전 여행을 하기 전에는 안 하던 놈이 바뀌는 것입니다. 길에서 도를 깨닫는 것이 중도입니다.
동물 실험과 중도적 관점
동물을 실험해서 그 결과로 사람을 살리면 선행일까요, 악행일까요? 살생유택입니다. 동물은 인간에게 복을 짓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남을 위해서 희생될 때, 동물이든 사람이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동물이 인간의 실험에 이용되어 인간들이 앞으로 병에 안 걸리고 산다면 그 동물은 자기 육신을 통해서 복을 지은 것입니다. 그 동물은 실험에 이용되었지만, 즉시 인간 때문에 죽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창세의 유생사에서 벗어나서 바라보면 죽이고 살리는 것이 없습니다. 금방 죽은 아이가 자기 집 손자로 태어납니다. 우리에게 오는 손자에게 물어봤더니 할아버지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영준이의 할아버지의 아버지였습니다. 영준이 할머니가 키우는 영준이 할머니는 “이건 내 시어머니야, 내 시아버지야”라고 합니다. 천사가 알려주는 것입니다. 동물을 실험해서 그 결과로 사람을 살리면 선행도 아니고 악행도 아니고 중도입니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중국 인터넷 검열과 아시아 통일의 비전
중국은 인터넷 검열을 아주 심하게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현재 유튜브를 못 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중국인들은 어떻게 허경영을 알게 될까요? 제가 대통령이 되면 중산층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중국 대통령과 협상하고 중국과 통일할 것입니다. 아시아 통일은 금방입니다. 세계 인구 75억 중 55억이 아시아 한반도 주변에 있습니다. 일본, 중국, 인도, 홍콩 이 전체가 50억입니다. 인구 중심이 한반도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다 있습니다. 미국은 4억이고, 아프리카, 미국은 흩어져 있는 종족들입니다. 흩어져 있는 인구를 다 합쳐봐야 10억도 안 됩니다. 우리 아시아에 인구가 다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장 좋은 시장 여건에 있습니다. 이 중심이 우리의 한반도에 있기 때문에 아시아를 통일하면 결국 중국인들은 허경영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유튜브로 나가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어 세계를 통일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세계적인 유튜브를 못 보는 국가를 없애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낼 것입니다.
전생 업보와 사주팔자, 그리고 자유의지
신인을 만나지 않으면 전생 업보와 사주팔자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어려운가요? 인생에서 전생과 사주팔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우리의 의식 세계는 복잡합니다. 사주는 현재는 없는 것입니다. 잠재의식과 무의식은 사주팔자에 들어 있다고 봅니다. 신인이 바라보는 것도 이것은 비슷합니다. 잠재의식과 무의식은 전무의식이나 백정식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사주팔자에 나와 있는데, 인간이 일식에서부터 칠식 잠재의식까지는 사주팔자이고, 칠식에서 팔식은 사주입니다. 영혼은 자유의지입니다. 이 자유의지는 1%밖에 안 됩니다. 99%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전생의 업보와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생에 피아노를 치던 아이는 죽기 전에 악기를 다루던 아이는 태어나서 음악을 기가 막히게 합니다. 아무도 악보를 보지 않고도 연주합니다. 전생이 잠재의식 속에 피아노 건반이 있는 것입니다. 운명이 이미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거의 다입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1%입니다. 뇌 구조에서 나와 있습니다. 이 뇌 구조가 1%는 우리가 사용하면 1%입니다. 99%는 잠재의식, 각성 의식입니다. 이것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1%만 바뀌어도 대단한 것입니다. 자동차가 가는데 핸들이 여러 개 움직이지만, 밑에 꽂히는 막대기는 하나입니다. 이 막대기 하나가 인간의 의지에서 움직입니다. 나머지는 엔진입니다. 엔진은 막대기와 관계없이 제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이 막대기에 따라서 차가 이리 가서 꽝 할 수도 있고, 저리 가서 꽝 할 수도 있습니다. 운명이 왔다 갔다 하는 1%입니다. 이것은 질량이 높습니다. 양적으로 1%는 적지만 99%를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천국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데 친구가 강원도 놀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갔습니다. 가서 죽었습니다. 1% 자유의지에 의해 99%가 끌려가다가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천사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천사님, 오늘 집에 있는데 친구가 강원도 강릉 경포대를 가자고 하는데 갈까요, 가지 말까요?” 천사가 가지 말라고 하면 그날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1%를 천사에게 물어봄으로써 오차를 없앨 수 있습니다.
천사와의 소통과 운명 개척
사주, 말라야식, 아뢰야식은 99%를 담당합니다. 자기 전생의 습관, 버릇 모든 것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된 것입니다. 백정식은 완전히 이것마저도 잊어버린 아주 의식입니다. 이런 의식 세계 속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전환 통찰을 못 받습니다. 이식 때문에 그렇습니다. 석가모니는 이 덕을 쌓으라고 했습니다. 경포대에 갔는데 그때 전화가 와서 엄마에게 거짓말하고 경포대에 갔습니다. 이 덕을 쌓지 않은 것입니다. 좋은 것을 들으면 아이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합니다. 그것을 듣고 따라갔다가 망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놀러 갔다가 사법고시 공부를 하던 아이가 집단 강간범으로 징역 7년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신생 방식으로 사법고시에 붙었을 텐데, 전화 한 통 때문입니다. 이 덕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운명은 삽시간에 이 1% 때문에 바뀝니다. 자유의지는 일식에서부터 육식까지입니다. 칠식은 사주입니다. 사주팔자입니다. 관상도 여기에 속합니다. 얼굴이 만들어져서 연습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식 자유의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1%가 자기가 문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1%가 99%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가만히 있을 때는 99%가 작용합니다. 습관에는 99%에서 작용합니다. 간질이 와 있다거나, 전생에 이미 그 사람의 특성이 나와 있습니다. 얼굴에 이미 업보가 나와 있고, 팔자가 나와 있습니다. 그것을 1%가 좀 바꿀 수 있습니다. 허경영을 만났다? 그러면 완전히 박살 내 버립니다. 하늘의 원한이 워터 돔의 꿈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생각까지 바뀌어 버립니다. 가는 길까지 천국까지 가는 길이 쫙 다 바뀝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것이 아주 쉽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1% 자유의지, 내 마음대로 하는 것, 이것을 우리가 중심을 못 잡기 때문에 천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완전 천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판단이 오류 투성이입니다. 착각이고 오류입니다. 제가 이야기했듯이 오류 투성이인데, 완전 천사, 그냥 완전 천사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돈 없는 사람은 천사, 천상 대물에 대한 문의를 하면 오차가 없습니다. 강원도로 가자는데, 바닷가에 갈까요? 천사님, “노”라고 하면 교통사고 나서 죽는다는 소리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갑자기 오라고 하는데, 비행기를 오늘 타고 갈까요? 비행기표를 끊지 말라고 하면 그 비행기가 사고 나서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비행기가 언제 사고 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천사가 “갔다 와라”라고 하면 비행기가 추락할까요? 안 합니다. 이미 백궁에서는 그 비행기가 어디쯤 가다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저를 만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천사, 대천사 말을 받도록 하십시오. 거지 되더라도 받으십시오. 축복받으십시오. 천생 현생의 모든 죄가 다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 업장이 제가 다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 10가지가 다 없어진다고 합니다. 집이 대명당으로 바뀝니다. 아무리 지하실에 있어도 조상들 묘가 몇 천 개가 다 명당으로 바뀝니다. 엄청나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축복, 백궁 명패, 명패 자체도 중요합니다. 천사, 레벨도 받아야 합니다. 명패나 레벨이나 축복이나 명패나 천사나 레벨이 실제 여러분에게 보여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