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唯我)의 경지와 인간의 성숙
오늘은 유아, 즉 진화에 대한 질문을 드립니다. 신인님께서 인간은 완전한 중도를 행할 수 없다고 하셨지만, 인간들은 중도를 계속해서 배우고 정진해야 하는 길인 것처럼, 유아 또한 인간이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유아로 나아가야 성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아로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경지이며, 인간들은 어떻게 하면 유아의 근처라도 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와 무의 조화: 눈의 초점과 세상의 이치
우리의 눈은 흰자와 까만 동자가 조화를 이룰 때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만약 눈에 흰자 없이 까만 동자만 있거나, 반대로 흰자만 있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흙과 백, 유와 무가 존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인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눈이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파란색으로만 되어 있다면 이상할 것입니다. 까만 동자가 없거나 빨간색, 파란색으로만 되어 있다면 눈초리가 매섭다는 표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커튼을 보는 것과 같고, 텔레비전 스크린과 같습니다. 텔레비전에는 초리가 없지만, 우리 눈에는 초리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눈초리를 통해 그 사람이 재벌이 될 사람인지, 노동자가 될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신인의 눈초리도 다릅니다. 10차원, 20차원, 무한대 차원의 눈초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초리를 볼 수 있습니다. 무가 유를 익게 하고, 유가 무를 익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의 이치를 벗어나 중도의 세계를 만들려고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불교의 공(空) 사상과 현실 세계의 허상
눈으로 보이는 것, 길고 짧은 것, 냄새 맡는 것, 몸으로 느끼는 것 등 무한한 육근(六根)은 색, 성, 향, 미, 촉, 법(色聲香味觸法)입니다. 이 모든 것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밝음이 다 없어지는 것까지, 늙음과 죽음이 없어지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즉 인간의 고통과 집착, 멸과 도라는 사성제(四聖諦)가 다 없어지는 것까지, 무지(無智)와 역무득(亦無得), 얻는 것도 깨닫는 것도 없습니다. 배우는 것도 없고 깨닫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이 무(無)의 세계에서는 고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이야기하는 공(空)의 세계입니다.
과연 우리 눈이 유다, 무다 할 수 있는 것은 철학적으로나 종교적으로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계는 전부 가공되어 나와 있는 가상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심장 동방결절과 생명의 비밀
우리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동방결절입니다. 이 동방결절이 심장 가운데 전기 스파크를 주어 심장을 세동시킵니다. 그런데 이 동방결절은 누가 움직이는 것일까요? 그 사람의 동방결절을 움직이는 것은 그 사람의 전생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몇 년까지만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오더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누구나 저 사람은 100살에 죽어라, 이 사람은 95세에 죽어라 하고 동방결절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 동방결절이 계속 전기 스파크를 주는 동안만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가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을 살고, 동방결절이 몇 번 뛰는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만약 부정맥이 되면 가장 먼저 피해가 오는 것은 피입니다. 피가 한 번만 뛰지 않아도 즉시 굳어버립니다. 그러면 혈관에 찌꺼기가 생기고, 그것이 머리부터 중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심장이 제때 뛰지 않는 부정맥은 매우 나쁜 것입니다. 피는 박자를 맞춰서 뛰지 않으면 한 번만 안 뛰어도 떡이 됩니다. 뻣뻣해지므로 계속 흔들어 주어야 합니다. 동방결절이 계속 전기 스파크를 쏴주어야 피가 떡이 되지 않는데, 한 번이라도 심장이 덜 뛰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주의 동방결절: 암흑 에너지와 가상 세계
동방결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이 세상에도 동방결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암흑 에너지입니다. 세포에도 동방결절이 있습니다. 세포의 전자가 돌지 않으면 흑반이 생기는데, 이 세포 전자가 동방결절인 것입니다. 전자가 돌기 때문에 우리 몸의 형태가 유지됩니다. 카메라에도 동방결절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없어져 버리면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지구가 존재하는 것은 이 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전자를 움직이는 것이 무엇일까요? 전자는 세포의 동방결절입니다. 전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동방결절이 심장에 있는 것입니다. 심장이 멈추면 모든 동방결절인 세포가 움직이지 않고, 시체가 해체됩니다. 전자가 동방결절을 보내지 않으면 모든 세포의 전자는 썩어버립니다. 세포에서 또 다른 동방결절을 찾는다면, 세포 안에 있는 전자가 동방결절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심장의 동방결절 역할을 분석해 보면, 이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눈에 보이는 것은 가짜입니다. 이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이 가짜가 나타나서 진짜처럼 지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자인 암흑 에너지를 다 빼버리면 지구는 먼지로 없어져 버립니다. 이것을 만들 때는 비밀이 있습니다. 인간들에게는 알려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만들어 놓고 해체할 때는 간단합니다. 인간은 심장 동방결절을 꺼내 버리면 수납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이루어집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석가모니의 평등 사상
옛날에 오직 유아에 해당하는 유아, 즉 ‘오직 나 혼자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없어지면 우주가 없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석가모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말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너 자신이 없어지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색이 있어야 눈이 보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석가모니의 말입니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나 오직 혼자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 홀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나 홀로 높고 존귀하다’는 이 말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평등을 석가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하나하나가 ‘나’라는 매체, 즉 아트만(ātman)입니다. 개인 개개인의 영혼, 그 아트만이 홀로 존재합니다. 이 하나는 모든 우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과 하나하나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제일 높다는 말이 아닌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 위나 하늘 아래나 ‘나’라는 것이 없어지면 이것은 없는 것입니다.
아트만과 브라만: 유아에서 진아로
이 아트만이 범아(梵我), 즉 브라만(Brahman)입니다. 이 범아는 모든 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아는 오직 ‘나’만을 말합니다. 이 유아는 아트만, 즉 범아인 브라만과 하나가 되는 것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내가 우주다, 우주가 내다’, ‘내가 죽으면 우주와 섞여버린다’는 식입니다. 아트만과 범아가 있는데, 범아로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유아로서만 사고방식을 가지면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유아를 잘 깨달으면 범아가 됩니다. 범아가 되면 진아(眞我)가 됩니다. 이 진아가 범아인 것입니다. 진짜 ‘나’라는 것, 진아를 깨달으면 내가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아(自覺)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 내가 되는 것입니다. 유아나 범아가 결국 하나입니다. ‘나’라는 이 아트만이 확대해서 보면 모든 사람과 우리 몸속에 있는 세포 하나와 같습니다. 백조가 있어야 몸이 있는 것입니다.
세포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세포들이 가방을 들고 가기도 하고, 세수도 합니다. 뇌에서 그 목적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야구 선수는 공을 던집니다. 세포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신이 메시지를 통해 내려오면 ‘이것을 하자’는 메시지가 옵니다. 이 아트만을 깊이 들어가면 범아가 됩니다. 이것이 인도의 브라만 사상입니다. 모든 만물이 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도 사상인데, 이것이 석가모니에게 가서는 좀 달라집니다. 이것은 인도 브라만 사상이고, 불교는 브라만 사상에서 분리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쫓겨납니다. 인도는 범아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범신론과 불교의 차이: 수직과 수평 사상
다른 말로 하면 범신론입니다. 모든 것이 신이라는 말입니다. 소도 신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잡아먹지 못합니다. 가난한 자가 나중에 그렇게 살면 부자가 되는 것이 범신론입니다. 신이 모든 인간의 전체가 하나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억울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전체가 신의 일부라는 것을 부정하는 범신론을 부정합니다. 불교는 범신론을 싫어합니다. 이 범신론 자체를 불교는 부정하는 것입니다. 신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 범신론을 벗어나서 자기가 부처라고 주장합니다. 자기가 물질로 인해 누구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부처의 세계 씨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평등 사상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범신론은 수직 사상입니다. 그래서 인도에 가면 신이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전부 가상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다 소멸됩니다. 상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것은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 즉 물질, 감각, 인식, 반응, 정보라는 것은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가 없는데 이것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색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없는데 무엇을 받는 것도 없고 느끼는 것도 없고, 물질이 없는데 감각, 물질 감각 인식도 없고 반응도 없습니다. 정보도 없습니다. 식이 정보입니다. 물질이 없는데 무엇을 받는 것이 있고, 느낌이 있고, 생각이 행동하는 것이 있고, 느낌이 생각이 있느냐, 정보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물질, 감각, 인식, 반응, 정보라는 이 자체가 무안이비설신의인데, 눈도 없고 코도 없고 광고도 없는데 무엇을 느끼느냐는 것입니다. 색도 없고 소리도 없는데 무슨 향도 없고 맛도 없는데 무색성향미촉법인데 무엇이 있다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세계도 없고 의식의 세계도 없습니다. 이 허상을 보고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불교의 한계: 수양을 위한 철학적 방편
실제적으로 이 무(無) 사상과 공(空) 사상은 수양을 위한 철학적인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종교도 아닙니다. 이 무 사상이나 공 사상은 불교가 쇠퇴하는 원인입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백궁에 간다고 말합니다. 지구를 벗어난다고 말합니다. 백궁 전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기는 교육받으러 와 있는 사람들이 이런 철학을 논하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아 버리면 ‘아, 이것은 우리가 마음이 복잡할 때 마음을 정리할 때 방편으로 쓰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구에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눈도, 이 귀도, 이 중력을 벗어나면 소용이 없습니다. 지구 대기권을 벗어난 세계에서는 없는 것들입니다. 그 안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소꿉장난하는 것입니다. 대기권을 나가버리면 이것이 없습니다. 상아도 없습니다.
무엇을 상행식(無受想行識)에는 이 자체가 석가모니의 금강경에서 보면 없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데, 오이식(五識)도 존재하지 않고 다 없어져 버리는데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 사상이 수평 사상입니다.
유교와 기독교의 수직 사상, 불교의 수평 사상
중국의 유교는 ‘예(禮)’라는 글자, ‘예’라는 것은 수직 사상입니다. 위에서 내려옵니다. 사람이 촌수로 할아버지는 아버지, 할아버지로 쭉 내려옵니다. 전부 수직 사상입니다. 학교에 가면 선생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이해가 되니까 어디에 가도 자기 위에 85년 영감이 열 살 문 돌이님한테 “도련님, 잘 주무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예와 법이 있는데, 불법(佛法)이라는 법으로 다스리는 것보다 예로 다스리는 것이 쉽다는 것입니다. 딱 적혀 있으니까 10월 말에서 같은 시저키로 있으면 예가 법을 대신하는 사이가 좋은 사이입니다. 이것은 수직 사상입니다.
불교는 수평 사상입니다.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약자니까 수평 사상입니다. 남자, 여자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유교는 남자, 여자가 수직입니다. 유교가 수직 사상에서 공자가 예로서 다스렸으니까 남녀가 동등하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에서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불교의 수평 사상을 이기는 싸움이 반복되는데, 나중에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기독교는 또 하나님과 인간은 수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