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Huh Kyung-young’s Philosophy: Navigating Free Will and Determinism with the Power of Angels – October 25, 2022

자유의지와 결정론: 1%의 여백

자유의지론과 결정론은 오랫동안 대립과 양립에 대한 의견이 많았습니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고도 하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도 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것과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상반되는 형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정된 미래와 자유의지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자유의지가 결정된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태일 텐데,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인간의 자유의지와 결정된 미래는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행사될 수 있는 한계는 1%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전생에 지은 습과 운명, 숙명이 오는 것이 있는데, 우리는 그 운명을 숙명이라고 부릅니다. 부모, 형제는 스스로 바꿀 수 없습니다. 자기 자유의지를 가지고 엄마를 바꾸고 아버지를 바꾸고 형을 바꾸고 동생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바운더리는 99%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거의 90%가 완성되어 있습니다. 집, 아버지, 어머니, 재산 상태, 내가 뛸 수 있는 바운더리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맞닥뜨리는 결정론입니다.

판단, 결단, 결정: 운명을 바꾸는 3단계

결정은 결단의 자식이고, 결단은 판단의 자식입니다. 판단을 해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하나 판단을 해 가지고 최종적으로 결단을 내리면 그것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결정이 되어야 그것이 다음 생으로 넘어가고, 내 업보가 됩니다. 한 인간이 무엇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판단을 해야 합니다. 판단을 했어도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을 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를 가고 싶다거나 연대를 가고 싶다고 할 때, 이것을 판단합니다. 판단하다가 최종적으로 “엄마, 난 서울대 자신이 없어. 난 연대를 갈 거야”라고 하면 이것이 결단입니다. 결단을 내리면 엄마가 “그럼 연대 가게 해라”라고 하고, 이것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로가 결정되는 과정입니다. 판단, 결단, 결정.

그 앞에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판단하고, 결단하고, 마지막 결정을 하는 3단계 코스가 있습니다. 인간이 모든 일을 할 때는 이렇게 3단계 코스를 정해서 가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직업을 정하든 이 3단계 코스를 정할 때 앞에 자기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중간에 자기 어머니, 아버지, 주변 사람 이야기를 듣다가 판단을 합니다. 그러다 결단을 내립니다. “주변 이야기 들어보니까 서울대가 있겠다. 나 연대를 가야 되겠다.” 그러면 최종적으로 엄마, 아빠와 마지막 상의해서 친구들과 결단을 딱 내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 결단이 운명입니다. 운명이 바뀌는 순간입니다.

연세대학교 이력서를 딱 내면 자기 동창이 다 바뀌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서울대를 갔다면 서울대 친구들이 전부 동창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겁이 나서 연대를 들어갔다면 연대 친구가 동문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는 바운더리가 엄청 바뀌는 것입니다. 한 번의 판단, 한 번의 결단, 한 번의 결정이라는 3단계가 한 인간을 바꾸는 데 어마어마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이것을 인간 스스로 하기에는 지적인 무지입니다. 도박하듯이 연대를 갈까, 저기를 갈까 하면서 도박하듯이 합니다.

천사의 지혜와 AI의 한계

모든 의사 결정은 개인이 결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천사에게 물어야 합니다. 주식 투자를 잘못해서 50억을 날리는 것과 같이 돈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엄청난 결과가 옵니다. 대기업이나 국가 기관에는 자산 운용사들이 있습니다. 몇천 조의 자산을 운용하는 몇 사람이 결정을 합니다. 회사에 직원들이 있는데, 잘못 배팅해서 회사가 하루아침에 없어지기도 합니다. 공매도를 해서 자기 주가를 올리거나 회사에 덕을 주다가도, 투자 하나 잘못하면 물려버리는 것입니다. 회장이 불러서 “너 왜 회사 돈을 그따위로 잘못 투자해서 회사에 2천억을 손실을 입혔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결단을 내리는 사람, 결정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매일 출근하면 회사 자산을 늘려야 할 것입니다. 투자 은행에도 투자를 결정하는 간부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매일 판단, 결단, 결정 3단계를 거칩니다. 결단보다는 결정이 최종 단계입니다. 결정하면 바꿀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결단은 “서울대 가야지” 하는 것이고, 판단은 “서울대를 갈까, 연대를 갈까” 하는 과정입니다. 결정해 버리면 바꿀 수 없습니다.

이 자유의지는 99%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태어나 보니 엄마, 아빠, 형제가 99% 정해진 상태에서 그 여분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눈 떠 보니 가문, 성씨, 내 혈액형, 내 DNA, 내 유전자가 다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내가 50살에 대장암이 올지 안 올지 이미 결정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내 인생의 이력서를 하늘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의지 1%를 딱 붙여 놓은 것입니다. 그 자유의지를 최대한 잘 쓰는 것이 천사입니다. 그 1%마저도 제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제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면 그 1%마저 망가져 버립니다. 그러면 그냥 운명입니다.

앞으로는 개인이 무엇을 할지 고도로 발전된 컴퓨터, 인공지능 AI가 인간들의 결정을 내려주는 AI가 나올 것입니다. 내가 서울대를 갈까요, 현재 성적, 혈액형을 딱 넣으면 주소, 마지막 땅에서부터 이렇게 딱 나올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천사보다는 못합니다. 천사는 미래도 알고 다 아는데, AI는 미래를 모릅니다. 지금 계속 환경만 수집해서 학교를 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컴퓨터가 앞으로 나올 것입니다. 아직 그 앱을 만든 사람은 없지만, 그 앱이 나올 것입니다. 이것이 운명의 앱이라고 해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무엇을 전공해야 하나 운명 앱에 딱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야, 너 운명 앱에 들어가 봤어?”라고 물어보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자기 결정과 비교를 해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가 올 것입니다. 운명의 앱이라는 것이 내가 이달에 보험을 몇 개 계약할까요? 운명 앱에 가서 따다닥 넣으면 이번에는 6번 딱 나옵니다. 미리 운명 앱에 이런 시대로 지금 진입하고 있습니다. AI가 이 사람의 능력, 그리고 앞으로 시장 상황 이런 것을 다 분석해서 오차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천사에게는 그 운명의 앱은 로또 복권을 맞추지 못합니다. 오직 천사만 인간들이 모르는 것을 다 맞춥니다. 지금 대만하고 앞으로 중국이 전쟁을 몇 년도에 합니까? 앱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코로나가 내년에 올 것이고, 전쟁이 나서 세계가 공황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이 그때 앱에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인간들이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를 주는 것입니다. 대천사를 내가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판단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대부분 무지하고, 대부분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어떤 결론을 내겠습니까? 자기 습관, 자기 좋아하는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습관과 업보: 운명의 파도

바람이 멈춰도 파도는 있는 것입니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없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바람이 자기의 운명입니다. 운명은 지나가고 자유의지는 그 뒤에 오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바람이 지나갔는데 왜 바다에 파도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어느 정도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파도입니다. 지금 파동이 없는데도 잔잔한데도 파도가 일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파도와 바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파트 수족관에 물을 가져다 놓으면 파도가 있습니까? 거기는 바람 자체가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바다는 바람이 언제 지나갔는지 지나가 버리면 파도는 계속 일어납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스승님, 바다에 바람이 없는데 왜 파도가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바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지, 여진이 남아 있는 거야”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습이라고 합니다.

관습이나 습관은 운명입니다. 자기가 지금 그런 행동을 안 했는데도 전생에 도살장이 있던 사람은 칼잡이를 좋아합니다. 칼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습입니다. 그 인생은 죽었는데도 다시 태어났는데도 전생에 칼잡이 했던 습관이 파도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바꾸기가 되게 어려운 것은 습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는 주어졌지만 습에 의해서 자유의지가 또 끌려가는 것입니다. 1%마저도 그렇습니다. 연예인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도 전생에 연예인을 했던 사람은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자기의 전생 습을 완전히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세계에서 지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도 모르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현생에 나타나는 습은 전부 증상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너무 소대변을 못 가린다고 때리면 아이가 나중에 현생에서 생긴 습도 무서워집니다. 어린아이가 소대변을 빨리 못 가리니까 이불에 오줌 쌌다고 아이를 때리고 하면 얘가 나중에 수전노가 됩니다. 맨날 무슨 증상이 걸립니다. 그 증상은 현세에서 만들어진 잠재의식의 증상입니다. 그것도 병입니다. 그런 사람은 맨날 요만큼 있으면 집안에서 청소하다 결벽증이 걸립니다. 또 어떤 아이는 엄마가 막 잡아놓고 방에 갖다 놓고 문을 막 협박해서 방에 가두면 나중에 얘가 고소공포증이 생깁니다. 그래 가지고 엘리베이터도 못 탑니다. 이것은 후생적인 것입니다. 전생에 가져온 것이 아닌 습입니다. 우리는 전생의 습에다가 현생의 습관이 붙습니다. 이래 가지고 청소년들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1%인데, 그것마저도 온전하지가 않습니다. 온전하지 않은 또 하나는 전생의 업에 의해서 좋은 사람이 예정되어 있는 자가 있고, 원수가 기다리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아무리 자유의지를 발휘해도 이것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안 좋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전생에 내가 괴롭혔던 여자입니다. 전생에 내가 양반이면서 자기 밑에 있던 종들을 애를 배게 해 가지고 그 애를 강제로 묻으라고 한 업이 있습니다. 그 업이 있는데, 그 땅속에 묻혔던 애가 마누라로 와서 복수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정이 딱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이 또 나타나기 때문에 이 운명을 피해 가는 것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리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의 자유의지마저도 습에 의해서 또 끌려갈 확률이 높습니다.

또 하나는 무지에 의해서 끌려갑니다. 운전을 하면서 저 불이 깜빡깜빡하면 저 이상한 자전거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할 텐데, “뭐 저건 뭐 누가 담배 피는 거겠지 뭐” 이런 정도로 위에 이동하는 물체가 아닌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담배 피는 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하다 보니까 판단을 잘못해서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면 또 업이 또 감옥으로 가게 합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 있습니다. 무지에 의해서 오는 판단 착각으로 인해서 오는 업장, 전생에서 온 것, 이런 것이 자유의지 앞에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우리는 운명이, 자기도 모르게 엄마 아빠가 정해져 있고, 자식이 나한테 올 자식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저 애를 데리러 올 자식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전생에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 은인이 자식으로 와서 시간을 끝내줍니다. 좋게 해줍니다. 이것이 딱 정해진 데다가 아무리 자유의지 1%가 있지만, 이것이 굉장히 전생에서 걸려 흔들립니다. 자기 개척은 천사를 통하여만 되는 것입니다. 무지합니다. 과학 전생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의지 1%가 무엇을 운명을 개척하겠습니까? 그래서 천사를 받아야 하고, 축복을 받아야 하고, 명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천사가 전해줍니다. 천사들이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생에 안 좋았던 인연들 같은 것도 축복을 받으면서, 축복을 받으면 그 전생에 모든 나쁜 일이 제로가 됩니다. 그러면 자유의지의 양이 늘어납니다. 자유의지 양을 많이 늘려주고, 그 자유의지가 신이 판단해 주는 대로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장애물을 다 피해갈 수가 있습니다. 만약 젊은이가 휴전선을 통해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데 지뢰가 많습니다. 바다로, 강으로 막 오는데 그 지뢰밭을 지나온다는 것은 굉장히 위장이 묘하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 밟으면 허벅지까지 싹 없어집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바로 피 흘려서 죽어버립니다. 어디를 밟았나? 지뢰 탐지기가 있으면 지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대천사입니다. 천사입니다. 어디를 밟을까요? 어디를 갈까요? 천사에게 물어야 합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지뢰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건드리면 꽝 나면 다리가 없어집니다. 자기 학식으로 능력으로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자기 지식이나 학식으로는 지뢰밭을 못 피해갑니다. 이것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내일 강의 때도 또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지뢰밭이 말하기 쉬운 표현입니다. 이 자유의지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 항로도 그렇습니다. 인생을 천사에게 물어야 합니다. 판사는 이 사람에게 징역 몇 년을 선고할까요? 이 사람 죄가 있습니까? 이 사람 죄가 없습니까? 천사가 다릅니다. 내가 늘 주는 천사, 이것이 허경영의 천사입니다. 이것을 주는 자가 지상에 와 있습니다. 말할 것 없습니다. 강연할 때도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의지가 중요하고, 그 자유의지가 더 빛을 보려면 거기 자유의지에 불어서 천사가 아니고는 지뢰밭을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지금 지나다 주는 것은 굉장히 좋은 말입니다.

99%의 결정론과 1%의 자유의지

어떻게 보면 결정이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부분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눈을 딱 뜨면 태어나면 어머니 뱃속에서 딱 나오면 부모의 형제가 정해져 있습니다. 자기의 나라가 정해져 있습니다. 자기 혈액이 정해져 있습니다. DNA가 정해져 있습니다. 유전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인상이 이미 정해져 있고, 자기 신체 조건이 아주 안 좋게 되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미스코리아로 되어 있는 자도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가 결정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눈 떠 보니 이미 90%가 99%가 정해져 있습니다. 거기서 여분이라고는 조금뿐입니다. 여분이 얼마 없는 것입니다. 관성의 법칙을 피할 수 있습니까? 99%의 관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 아버지, 형제, 집안, 가정사입니다. 이것이 젊은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칩니다. 덮칩니다. 이것이 덮치면 1%의 자유의지가 묵사발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어머니, 아버지 이 사람들이 아파 가지고 얘가 20살이 되니까 얘보고 돈을 벌어 와야 이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애도 있습니다.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과도한 전생의 업보가 1%의 자유의지를 누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기를 개척해 나간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냐? 평소에 올바른 결국에 지금 다음 생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지휘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끝납니다. 그냥 천국으로 지키느냐. 돌아가면 거의 결정론은 자기가 전생에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절대.

억울함은 없다: 사필귀정의 세상

이 세상에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억울하다’는 말이 원래 잘못된 말입니다. 이 세상에 억울한 것은 없습니다. ‘억울하다’는 이 말이 잘못된 말입니다. 이것은 오리발입니다. 자기가 지어 놓은 그 업이 왔는데 억울하다고 합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작품인데, 억울한 것이 아닙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난관이 오거나 다리가 짧아지든, 무엇이 잘못돼도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만든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안 만든 게 왜 왔어?” 이러면 억울합니다. ‘억울하다’는 이런 단어를 쓰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택도 없는 것이 온 것입니다. 억울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한 것이 온 것입니다. “나는 억울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잘못된 말 딱 하나가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사필귀정인데, 이 세상의 법칙은 하늘을 보면 사필귀정입니다. 항상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필귀정이 되고 억울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필귀정을 다른 말로 하면, 쉽게 말하면 사필귀정인데, 무엇이든지 나쁜 것은 벌어지고 좋은 것은 상을 줍니다. 선한 일을 했는데 살인범으로 몰려서 사형장에 끌려갔다고 해서 그것이 억울할까요? 그것도 자기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에 누명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공(空)의 지혜: 고통을 소멸하는 법

항상 우리 젊은이들은 억울한 것이 있을 때는 세상은 수학 공식으로 나가야 합니다. 수학을 배웠습니다. 수학에는 어떤 수라도 0을 곱하면 0이 됩니다. 100억 곱하기 0은 얼마입니까? 0입니다. 더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억을 이용해도 됩니다. 나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더하기 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숫자는 0 앞에 무력합니다. 아무리 고통이 와도 거기에 내 마음이 공(空)을 해버리면, 그것이 0입니다. 공(空)해버리면 고통이 없습니다. 태산 같은 고통도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공(空), 이 공(空)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空)으로 돌려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스트레스가 오면, 스트레스가 엄청 많이 왔을 때 공(空)을 생각하십시오. 재산, 0을 곱하면 없어져 버립니다. 근데 그 곱하기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 이건 내가 0으로 곱해버리면” 남편이 밤새도록 욕을 해도 0으로 곱해버리면 됩니다. 10시간 동안 꾸짖음을 듣고 나서 얻어터져도 웃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내 욕을 해도 0으로 곱해버리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소화기 철학이고 철학이 신학입니다. 무시무시하게 수학을 깨달으면 이 우주의 모든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한문으로는 공(空)입니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근데 이것이 묘한 것이 또 색이 아무리 많아도 공이 되어 버립니다. 공을 곱하면 색즉시공입니다. 우주 전체의 별을 곱하기 0 해버리면 우주 별이 다 없어져 버립니다. 없어졌다고 그냥 저 벽을 향해서 그냥 걸어가면 됩니까? 안 됩니다. 없어졌는데도 공이 곧 또 색입니다. 물체입니다. 있습니다. 그런데도 공은 또 색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같다고 합니다. 아무리 공이 또 색이라고 합니다. 공간이라고 해서 다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이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있고 없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있나 보다, 없나 보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있으니까 없어지니까 아이고 죽겠다” 이러면 안 됩니다. 그게 그것입니다.

중도(中道)의 지혜: 동전을 만들지 마라

그래서 동전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동전을 만드는 것은 “어머, 기뻐해” 이런 동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기쁨이 있으면 반드시 슬픔이 따라옵니다. 동전을 만들어 버리면 양면이 생겨버립니다. “내가 뭐, 이거 내가 뭐 돈이 많이 생겼네” 이것을 기뻐했지 않습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돈 때문에 고통이 옵니다. 동전을 만들지 않는 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돈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고,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그 상태가 중도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당 대통령도 칭찬하고, 야당도 칭찬하고, 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왜 그러냐? 중도를 알기 때문입니다. 동전이 되어 버리면 동전 양면이 생겨버립니다. 원수가 나옵니다. 내가 막 한 사람만 편들면 원수가 생깁니다. 행복과 불행을 가지지 않습니다. 행복하면서도 없는 사람을 생각하니까 불행한 사람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은 또 불행하면서도 또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언제든 중간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적으로 기울면 불쌍한 사람들 때문에 못 갑니다. 또 불행 쪽으로 가려고 하면 또 이쪽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행복과 불행이라는 그런 동전 양면을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 이거는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니야.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야.” 이 상태를 초대해야 합니다. 수학으로서 이제 내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수학을 잘 공책을 생각해 보면 세상에 근심이 없습니다. 미운 사람은 0으로 곱해버리십시오. 공장에만 다니고 밤에 공부하고, 남 잘 때 공부하고, 이렇게 해도 누가 보면 고생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수학을 잘하니까 곱하기를 잘합니다. 태산 같은 고통도 0으로 곱해버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