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고통의 근원: 즐거움과 고통의 반복
인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석가모니가 불교 이야기를 할 때처럼,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에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데서 시작됩니다. 석가모니는 왕자로서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다른 것을 추구하며 고통의 원인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즐거움의 원인이 고통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최고의 즐거움이 있는 나라에서 모든 것을 누리던 그가, 결국 고통 없는 즐거움을 찾았지만, 세상 어디에도 고통 없는 곳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적정 열반: 고통 없는 경지
석가모니는 고통 없는 곳을 찾아 헤매다 ‘적정 열반’이라는 경지를 발견합니다. 이는 고요한 가운데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고통 없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즐거움은 고통에서 오며, 고통이 없으면 즐거움도 비교할 대상이 없어집니다. 해가 뜨면 좋고 밤이 되면 고통스럽다는 식의 반복되는 즐거움과 고통이 바로 인생입니다. 이러한 반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여자와의 관계도 즐거움과 고통이 반복되며, 사정 후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것처럼, 모든 즐거움은 결국 고통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가집니다.
불교의 두 가지 길: 수행과 기복 신앙
이러한 반복을 깨달으면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적정’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고요해져서 기쁨도 고통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적정 열반입니다. 석가모니는 윤회도 없다고 보았으며, 죽어서 무엇으로 태어날지 생각하지 말고 그저 고요해지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수행 방법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불교를 신앙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윤회가 존재하며, 복을 지으면 좋은 곳에 태어나고 악업을 쌓으면 나쁜 곳에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석가모니의 철학적 수행 방법으로서의 불교는 윤회가 없으며 오직 고요한 적정 열반만을 추구합니다. 기쁨도 슬픔도 없는 이 수행은 일반 신도들에게는 재미가 없습니다.
종교화된 불교의 문제점
일반 신도들은 기복 신앙을 원하기 때문에 윤회 사상이 등장하게 됩니다. 복을 빌고 복을 쌓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는 식의 종교 행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우상을 만든 것이며, 천국이나 극락 자체가 우상이 됩니다. 수행은 자신을 버리고 적정 열반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일반 신도들은 욕망을 쫓습니다. 종교는 수직적인 신의 개념이 없으며, 수평적인 관계만을 강조합니다. 기독교는 위에서 내려온 신을 이야기하며 수직적인 관계를 강조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 문제가 있으며, 전체를 아우르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무시무종과 유시유종: 동양과 서양의 철학
석가모니의 무시무종(無始無終) 사상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천부경의 ‘일시무시일식’과도 일치합니다. 이러한 수행은 즐거움과 고통을 양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며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적정 열반이며, 불교를 수행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의 정답입니다. 마음의 흔들림 없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불교인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일반 신도들은 부처 앞에 가서 복을 비는 기복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적정 열반에 도달할 수 없으며, 수직적인 구원을 원합니다.
불교의 변질과 종교화
석가모니는 윤회를 따지지 않았으며, 윤회는 제자들이 만들어낸 사상입니다. 좋은 시주를 많이 하면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식으로 종교화된 것입니다. 불교를 철학으로 보면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에 끄달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가 종교화되면서 변질되었습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쫓겨나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살아남기 위해 기복 신앙을 가미하고 불상을 만들면서 변종된 불교가 오늘날의 종교가 된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철학이 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힌두교가 윤회를 주장하는 종교였기에, 석가모니가 굳이 윤회를 주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종교의 우상화와 본질 왜곡
사람들은 돌멩이에도 절하며 돈을 바치는 기질이 있습니다. 적정 열반이나 수행 같은 이야기는 신도들을 떠나게 만듭니다. 석가모니의 철학을 종교로 만든 것은 석가모니에 대한 모독입니다. 석가모니의 이념, 사상, 철학, 교리는 모두 우상화되어 변질되었습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원사상에서 벗어나 종교로 변질되었습니다. 원사상에 충실했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을 공부했을 것입니다.
무시무종과 창조론의 충돌
무시무종은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창조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창조론과 상충됩니다. 또한 끝이 없는데 종말이 온다는 기독교의 종말론도 무시무종 사상과 반대됩니다. 석가모니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낮과 밤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종교로 변질되면서 행복, 불행, 고통, 즐거움 같은 개념에 얽매이게 된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맑게 가지고 두려움 없이 기쁨을 누리는 것이 본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완전히 기복 신앙으로 바뀌어 죽음을 장사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종교의 3대 요소와 철학의 차이
종교의 3대 요소는 철학의 3대 요소와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에는 ‘개(戒)’가 있습니다. 종교를 만든 자가 내세운 주장이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정해진 계율이 있습니다. 철학은 바라는 것이 없지만, 종교는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종교가 없어도 철학만으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어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깨달을 생각은 지쳐버리고, 로마 교황이 성경 인쇄를 금지하고 독점권을 가졌던 것처럼,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들었습니다. 21세기에는 종교가 맞지 않습니다.
성령 모독의 죄와 심판
예수의 사상 또한 석가의 사상과 동일합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 32절에 따르면,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든지,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든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심판하러 온 자를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은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러 왔을 때를 의미하며, 이는 심판을 뜻합니다. 나를 모독하는 것은 용천받을 수 없으며, 이는 어마어마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신은 여러분이 못 봤으니 욕을 해도 봐주지만, 눈으로 보고도 부정한 자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이미 질서는 내가 잡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