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에 대한 인간의 한계와 초발심의 중요성
사람의 오래된 습관, 즉 객진번뇌는 인간의 오랜 습관입니다. 우리는 중도라는 말을 하지만, 중도에 다다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중도를 향해 가지만, 수행 전후가 오히려 타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수행을 시작했을 때가 더 청정하고 불이 붙지만, 절에서 수십 년 수행하면 때가 타서 이상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수행을 오래 했음에도 고집만 남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초발심시 변정각(初發心時 便正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 마음을 냈을 때, 즉 초발심이 오히려 변정각, 바로 그것이 정각이며 진짜배기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초발심이 아닌 상태에서 수행을 하고 절에서 수십 년을 보내면 오히려 귀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중도였지만, 중도를 얻으려고 수행한 전후에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것입니다. 수행 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도의 본질과 진위(眞僞)의 역설
인간은 중도를 깨치려 하지만, 중도를 깨친 자는 없습니다. 어떤 인간도 중도를 말할 수는 있어도 중도에 도달한 자는 없습니다.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에 중도라는 말을 갖다 붙이곤 합니다. 중도란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미움, 득과 실, 유와 무, 찬성과 비난, 행복과 불행 등 모든 대립적인 개념 사이의 균형을 의미합니다.
진짜와 가짜 사이에 중도가 존재한다고 할 때, 실제로는 진짜가 가짜이고 가짜가 진짜가 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석가모니의 색불이공 공불이세(色不異空 空不異色)처럼, 진실이 곧 거짓이고 거짓이 곧 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암 말기일 때 의사가 암 말기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효자입니다. 아버지에게 편안하게 가시라고 위궤양이라고 말하는 것이 효심입니다. 이처럼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이 같아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악을 보거든 항상 거기서 선을 배우고,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스스로 일어납니다. 하루만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들고일어나는 것입니다.
중도에 이르는 길: 점수와 돈오
인간은 중도에 도달하기는커녕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악으로 가버립니다. 불교에서는 초발심시 변정각이라고 하여, 처음 부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가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자기 습관대로 돌아가 구속을 버리지 못합니다. 수행 전후가 영원무(永遠無)하여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도를 수행하겠다고 수십 년, 수백 년 앉아 있어도 중도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중도에 이르는 방법에는 점수(漸修)와 돈오(頓悟)가 있습니다. 점수는 점점 쌓여서 나중에 갑자기 깨닫는 것입니다. 공부한 것이 점점 많이 쌓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답이 떠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하다가 마지막에 답을 찾아내거나, 디자이너가 골머리 싸매고 연구하다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것과 유사합니다. 점수는 단계적으로 나아가 큰 깨달음을 얻는 방식입니다.
돈오는 갑자기 깨닫는 것입니다. 페니실린의 발견처럼, 실수로 생긴 곰팡이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위대한 발견을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 그것을 연구하여 이루는 공부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오 역시 기초가 중요합니다. 생물학과를 전공한 사람이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통해 발견을 할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쌓인 것이 있을 때 갑자기 깨닫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가 점진적으로 연구하여 비행기를 만든 것처럼, 과학자로서의 기본 자질이 있는 사람이 돈오를 경험하면 비행기, 제트 엔진, 전기기관차와 같은 위대한 발명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중도, 신인의 영역
중도라는 말은 매우 어렵습니다. 돈오와 점수가 중도를 깨닫게 하는 길이지만, 이것이 모이고 쌓여야 중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와 50년 살아보니 인내와 능력,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처럼, 오랜 경험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수행 전후는 같으므로 중도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허경영은 이러한 중도에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거나 공부할 필요 없이, 축복을 받으면 바로 중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종교 단체에서 50년 기도해도 성령이 들어오지 않지만, 허경영은 중도를 만들어주고 몸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령을 단숨에 넣고 뺄 수 있는 능력은 공부를 통해 중도를 얻으려는 노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병원에 들어갈 때 축복받은 자는 광채를 만들어 자기 몸을 에워쌀 수 있습니다. 이 광채는 본인이 넣고 빼고 만들 수 있는 능력입니다. 허경영은 이 능력을 사람들에게 주어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아픈 사람을 만지면 광채가 되어 고쳐질 수 있습니다. 본인이 축복받은 사람들은 아픈 사람을 만져 고쳐줄 수 있지만, 그 능력을 행사하려면 아픈 사람을 직접 잡아야 합니다. 허경영은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도 1초 만에 광채를 만들고 뺄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가 가졌던 능력보다 더 높은 차원의 능력입니다. 예수는 직접 가서 만져야 했지만, 허경영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중도는 애정, 득실, 행복과 불행, 대소강약(크고 작음, 강하고 약함), 중경호박(무겁고 가벼움, 얇고 두꺼움) 등 모든 대립적인 개념의 중간 지점입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상태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허경영은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중도를 실현하는 존재입니다.